해마다 돌아오는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이제 '스승'이란 말은 생경한 단어가 되어간다. '스승의 날'을 맞이한 각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대부분의 학교들은 '촌지 사건'이나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자체 휴업을 하거나, 수업을 하더라도 단축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막상 수업을 하더라도, 거창한 스승의 날 행사는 없다. 그저 수업 시간에 꽃을 달아주는 정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느 날처럼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교단의 선생님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스승의 의미는 퇴색되었고, 교사와 학생이란 직업적 관계만이 남았다'고. 


지난달 한국 갤럽이 19세 이상 성인 남녀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83%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2014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결과를 보면 10년 전에 비해 두배 이상 교권 침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가르치는 직업인 '교사'가 처한 어려움,이에 대핸 교사들은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까? '스승'이 사라지고, '교사'조차도 위기에 처한 교실, <ebs다큐 프라임>은 그 해결책을 교실의 한 주체인 교사로 부터 찾고자 한다. 경기도 모당 초등학교 교사인 이경원 선생님이 1년 여의 시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만난 '고수' 선생님들, 그분들의 수업과 철학에서, '스승' 상실 시대의 해법을 모색해 본다. 



백인백색의 선생님들

속초 청호 초등학교의 탁동철 선생님의 별명은 '외계인'이다. 만만해서 아이들이 놀리기에도 좋은 탁선생님 주변에는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있다. 그런데 탁선생님 곧잘 사고도 치신다. 교장 선생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창고에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는 식이다. 수업 시간이 아이가 가져온 나무 막대기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수업을 마치시고는 종례 후 나가는 아이에게 기껏 손이 다치니 테이프를 감고 가라신다. 아이들과 시 읽기를 하는 시간 오이의 두툴두툴한 면을 여드름 자국으로 표현한 부분에 징그럽다는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공감을 표명하신다. 탁선생님 앞에서는 말이 안되는 것이 없다. 


'반가워요, 사랑해요'라며 초등1학년 아이들을 맞아주시는 서울 이문 초등학교의 조성실 선생님의 별명은 곳감 선생님이다. 전래 동화 호랑이와 곳감의 그 곳감말이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시고, 그래서 모든 수업의 시작이 '이야기'를 통해 접근하시는 선생님의 수업 시간, '상상' 속 이야기에 아이들의 눈빛은 이야기를 들을 즐거움으로 빛이 난다.


군산 개정초등학교 김성효 선생님은 아침마다 와플을 굽는다.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의 아침밥이다. 선생님은 와플을 굽고, 대신 아이들은 학급 조례에서부터 수업까지 알아서 척척한다. 서로가 잘 하는 걸 가르쳐 주는 문화가 정착된 반, 아이들은 과학 수업은 물론, 종이접기에서 피아노까지 품앗이를 한다. 


수학 도사가 된 최혜경 선생님의 시작은, 수학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학 도사가 된 선생님의 수업 시간은 선생님이 그랬듯이 누구나 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보고, 서로 도와가며 문제를 푸는 시간이 되었다. 아침 청소를 선생님이 솔선수범하며 아이들의 학습 분위기를 만들었던 그 마음으로, 선생님의 눈높이는 아이들에게 맞춰져있다. 


바다 건너 제주도의 교실 스트라이터 최용수 선생님 교실의 하루는 게임으로 시작된다. 아침이 즐거워야 하루가 즐겁다는 모토 아래,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즐겁게 시작된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대신 아이들이 바쁘다. 각자 알아온 걸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나누는 과정, 그것이 수업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 생소한 수업을 설득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편지까지 쓴다. 


이분들만이 아니다. 글쓰기 선생님으로 널리 알려지신 이호철 선생님의 교실에서는 '실패는 성공 이상의 배움'이 되고, 경기도 대정 초등학교 옥흠 선생님의 아이들은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숲으로 간다. 경북 장수 초등학교의 이혜경 선생님은 처지는 아이없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1;1 수업을 하다시피 하신다. 


이렇게 1년 여의 교육 대동여지도를 발로 그려낸 이경원 선생님의 교실, 이경원 선생님은 새학기를 맞이한 아이들에게 교과서가 아닌 새로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 공부는 학원에서 선행학습 할 수 없는 공부이니, 그저 교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 과목이 재편되는 수업,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은 함께 배움을 나눈다. 또한 독서 모임을 통해 이 생소한 수업 방식을 학부모들에게 설득해 간다. 지난 1년여의 발품을 팔아 얻은 선생님의 도착점이다. 



스승 부재 시대에 마련한 스승의 길

교육대동 여지도가 찾아간 선생님들은 '군사부일체'의 그 엄격한 '스승'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엉기고 선생님이랑 장난도 치고, 게임도 한다. 게임에 진 선생님께 우스꽝스런 모자를 씌우고 셀카를 찍게 만든다. 선생님이 만든 와플이 너무 달다고 타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낯빛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생님들의 목표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난 선생, 넌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마음을 열고 '수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반자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면 수업 목표의 80%가 도달했다고 만족해 한다. 그것을 위해 게임을 하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기꺼이 아이들 장난의 재물이 된다. 슬쩍 와서 경기도에서 오셨냐는 아이의 말 한 마디에서 예전에 경기도에서 장사를 하던 아이의 아버지의 전력까지 끄집어 내는 탁동철 선생님, 그리고 지그시 아버님 요즘 뭐하시냐고 물어보는 배려과 관심의 한 마디에선, 그저 만만한 선생님이라 치부할 수 없는 '고수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아침 '너희들은 책을 봐', 선생님이 청소는 할게'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솔선수범이 '교육 상실 시대'의 해법이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손해라고 하는 이 교육 대동 여지도 속 선생님들의 수업 시간의 또 다른 특징은 수업의 주체가 학생들이다. 아이들이 하자고 하면 교장 선생님 몰래 벽화도 그리고, 온갖 가지 상상 속 이야기들을 만들고, 편한 교과서 대신 새로운 통합별 교과 과정을 창출해 낸다. 수업 과정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남긴 일지는 정년이 다가온 선생님의 역사다. 수업 내용에 대한 세세한 감상이 들어가고, 모르는 점과, 새로 알게된 내용, 궁금한 내용이 빠짐없이 기록된 아이들의 학습 일지 역시, 아이들과 선생님이 만들어 간 '교감'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생님들이 만들어 가는 수업 속에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배움이 있다. 잘 해서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함께 배워고 깨우쳐 가는 기쁨이 있다. 


선생님은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벽을 낮추고,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할 수 있는 온갖 가지 묘안을 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 하나, 이 '고수' 선생님들의 수업에선, 아이들은 늘 함께 한다. 그들은 성적순 대신, 함께 하는 소중함을 배운다. 잘하든 못하든 서로가 함께 함으로써 성숙해 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지식'의 과잉 대신, 깊이를 배운다. 수준별 교육을 반대하는 최혜경 선생님은 물론, 이경원 선생님이 만난 모든 전국의 선생님들의 일관된 목표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국 방방 곡곡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선생님들에 대해 이경원 선생님은, 그걸 선생님의 폭으로 귀결시킨다. 선생님이 먼저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폭을 넓혀갈 때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탁동철 선생님의 삶을 지탱할 힘을 키우는 곳, 조성실 선생님의 공부의 즐거움, 평등을 실천하는 곳, 그리고 최혜경 선생님이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곳, 여러 선생님들이 바라보는 학교는 다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들의 생각과 철학에 따라 수업은 달라지고, 그 수업이 아이들을 향해 열려있을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소통하며 교실안에서, 수업 속에서 신뢰하는 인간으로 성장해 나간다. '스승이 없는 시대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ebs 다큐 프라임>이 모색한 해법, 그 시작은 선생님이다. 

by meditator 2015. 5. 14.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