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져서 손석희의 <jtbc 뉴스룸>에 출연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꽤 유명해져서 우리는 그를 jtbc의 <말하는 대로>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다. 바로 박준영 변호사이다. 우리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피해자가 10년간 복역했던 '약촌 오거리 사건'의 재심을 성공시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부터다. 재심의 과정은<그것이 알고싶다> 등에서 이미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이미 알려진 사건 '영화'를 통해 더 알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영화 <재심>은 신문 지면의 보도, 혹은 다큐를 통해 드러난 사실의 행간 속에 깊은 진실의 울림이 있음을, '재심의 성공'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고통과 부조리한 사회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억울한 가족을 위한 재판 이야기 
<재심>은 2013년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김경미 씨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가족>을 감독했던 김태윤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의 제목 '또 하나의 가족'은 대기업 삼성이 자사의 이미미메이킹을 위한 '광고'의 캐치프레이즈였다. 하지만, 영화는 전국민의 가족같은 삼성이 드리운 그늘, 반도체 산업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산재에 대해 인정보다 하지 않고 있는 비감한 현실은 김경미 씨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곡진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은 영화 상영 자체가 또 하나의 '투쟁'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어둠의 한 자락을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든 싸움이었던 김태윤 감독은 자신을 찾아온 기막힌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진실을 접하고 다시 '실화'를 영화화하기에 이른다. 

'살인 누명을 썼다'는 억울한 진실을 '영화가 넘어서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김태윤 감독의 마음을 돌려세운 것은 <또 하나의 가족>처럼 최군 가족에게 닥친 '누명' 이상의 억울함이었다.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최군, 하지만 최군의 감옥 생활동안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조차 잃어가는 어머니와 최군에게 근로복지 공단이 구상권을 청구했던 것이다. 살해 피해자에게 근로 복지공단이 피해자가에게 애초 청구한 금액은 4000만원이었지만 투옥된 동안 이자가 붙어 1억 4천만원으로 불어난 빛. 그리고 그런 최군의 억울한 사연에 함께 하게 된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는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김태윤 감독은 <또 하나의 가족>에서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국민적, 법적 권리로부터 배척된 가족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동네 다방에서 심부름이나 하며 지내는 이른바 '동네 양아치' 현우(강하늘 분)와 어머니(김해숙 분)의 억울한 가족사를 전면에 내세운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남들처럼 학교를 다녀야 해서 입은 교복 옷깃을 세우고, 팔뚝의 문신을 드러내려는 현우, 하지만 그런 세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양아치스러움' 이면에 숨겨진 15살 소년의 순박함과 의리를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그런 현우의 진솔한 캐릭터는 곧 목격자였던 그를 폭력적으로 겁박했던 당시 공권력과 사법부의 비리와 무능, 혹은 협잡에 대한 분노를 상승시키는 가장 적절한 동인이 된다. 

강하늘과 정우가 그려낸 진심의 '버디 무비' 
그리고 10년 '양아치스러울려고'했지만 순박했던 소년은 이제 '독기'와 '절망'을 품은 청년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자식의 일이라면 '악다구니'밖엔 할 수 없는 앞이 안보이는 어미와 함께. 그리고 그런 현우 모자 앞에 나타난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 준영(정우 분)이 '속물스럽게' 등장한다. 

영화는 그렇게 1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절망을 아로새긴 현우와 그의 앞에 나타나 그를 부추켜 자신의 입신양명을 노리는 준영을 '버디 무비'처럼 그려간다. 이 기묘한 조합의 '버디'들은 감독의 그 어떤 상상을 뛰어넘는 진실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대한민국 그 누구라도 공감하는 공권력과 사법 제도가 만들어 낸 '탈법 사회' 대한민국이란 장애를 '스펙타클'하게 겪어내려간다. 모텔, 혹은 폐모텔을 배역으로 암약하는 공권력은 그 어떤 조폭 못지 않은 공포의 대상이며, 재심 앞에 '이익'을 위해 변절하는 동료, 심지어 진범을 잡고도 일신의 이해 관계를 위해 협잡하는 공권력과 사법부 등은 그 어떤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버디무비보다 극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그런 현실 속에 때론 좌절하고, 의심하던 두 사람이 약촌 오거리을 배경으로 한 판 뜨려다, 순식간에 사건 재연의 동지로 '둔갑'하는 씬은 아마도 <재심> 속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제도 교육, 아니 지역 사회에서 내팽개쳐진 15살 질풍노도의 청소년에서, 감옥 생활 10년후 절망에 잠긴 청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15살 시절의 그 '순박한 진심'을 한 구석에 간직한 현우를 배우 강하늘은 우직하게 표현한다. <세시봉(2015)>의 윤형주도, <동주(2015)>도 그의 연기로 빚여낸 실존 인물들이었지만, <재심>의 현우로써의 강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우 강하늘의 매력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15살 소년의 불량스러운 외모에 숨길 수 없는 순박함도, 이제 10년이 지난 절망에 자신을 던졌지만 어찌할 수 없는 진심도, 강하늘의 눈빛을 통해 설득력을 얻어간다. 

이런 빛을 발한 강하늘의 곁에 모처럼 반가웠던 건 정우다. 지잡대 전공과 출신의, 변호사의 목적이 '돈'이라고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설파하다, 현우와 현우 어머니의 진심에 방향을 돌려세운 준영은 <응답하라 1994> 이후 정우를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가 될 듯하다. 속물과 진심 사이, 믿음과 의혹 사이, 그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혼선'의 연기를 정우는 <응답하라 1994>츤데레 쓰레기 못지않게 매끄럽게 소화해 낸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청년 현우의 강하늘과 그런 현우를 얼르고, 때론 의심하며, 그리고 결국 그의 손을 놓치지 않는 속물 변호사 준영의 정우의 '호모 사케르' 식 '버디 무비', <재심>은 그 어떤 액션 '버디 무비'보다도 배우들의 연기와 합을 보는 맛을 충족시켜준다. 거기에 단 한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의 누선을 풀어헤치고 마는 김해숙의 '모성 연기'야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요, 이동휘의 반전 연기 역시 신선했다. 



이런 배우들의 호연 덕분일까? 아니, 또 하나의 가족인 척하는 진정한 권력 대기업이 등장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 '권력의 농단'을 체감하는 시절 덕분일까? <또 하나의 가족>을 완성시키고도 개봉관을 잡지못해 동분서주하던 김태운 감독에게 <재심>은 박스 오피스 1위의 영광을 안긴다. (2월 15일 기준, 735,469명, 예매 33.9%) <재심>의 1위는 또한 이제는 슬슬 클리셰가 되어가는 부도덕한 권력과 재력의 콜라보레이션을 다룬 사회물, 혹은 작품성은 낮지만 대중성은 좋은 '액션'과 '유머'를 앞세우 흥행작의 딜레마에서 <변호사> 이후 모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by meditator 2017. 2. 19.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