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비스킷 공장에서부터, 직업 알선 정보 업체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직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한 통의 통조림이 완성되기 위해, 남태평양의 거친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는 어부에서 부터, 물류 회사, 수많은 기계 공정들이 완성하는 통조림 공장까지, 섬세한 과정이 낱낱이 밝혀진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가지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요소요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그들의 많은 일들이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가를 작가는 직접 발로 뛰며 그려낸다. 굳이 구구절절 감상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저 한 봉지의 과자, 한 캔의 통조림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는가를, 그 책을 읽다보면, 경건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미생>을 보고 있노라면, 알랭 드 보통이 정작, 가장 중요한 걸 설명하는 걸 놓친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세상을 완성하는 수 많은 일, 그 일이 완성되기 위해, 사람들이 흘리는 땀과 노력 뒤에, 복잡 미묘한 '인간 관계'라는 게 숨겨져 있다는 걸, 알랭 드 보통은 몰랐을까? 아니, 유독, '경쟁'이 체화된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질일까?
<미생>이란 드라마가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밥벌이'의 고단함이다. '청년 실업'이 화두인 시대, 청년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직장이란 곳, 하지만, 막상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무방비하게 '정글'에 던져진 사람과도 같은 처지다. 일과 일이 덩굴처럼 얽혀 그의 발을 거는 곳,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그의 생명을 노리는 독사는, 그의 일보다는, 그가 만난 사람이기가 십상이다. 실제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나오듯이, 직장인들의 퇴직 이유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건, 상사 혹은 동료와의 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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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회 <미생>은 그렇게 직장인들의 숨통을 조이는, 동료, 상사와의 불화의 원인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추적의 끝에서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라고.
회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위치에 있는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은 그의 부하 직원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의 분석에 따르면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모헙적인 일로 돌파하고자 한다. 그런 그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이란 원유 개발이다. 하지만, 그의 야심찬 시도는 번번히 그를 가로막는다. 국제 정세에 따른 이란 원유 봉쇄 조치가 그것이요, 애초에 부장이 시도했던 중국건이 그것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오과장은, 이란의 봉쇄 조치는 터키라는 카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보지만, 부장의 중국건에는 그만 주저않고 만다. '중국으로 해'라는 부장의 퉁명스런 한 마디에, 그간 애써 노력했던 이란건 서류를 묻고, 다시 중국 수출을 위해 뛰고자 한다. 하지만, 아내의 면박을 받으며, 한 잔의 술로 삼킨 이란건이 무색하게, 중국 수출건도 만만치 않다.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가 목을 조른다. 부장은 다그치고, 오과장은 자신들을 돌아봐주었던 '부장에 대한 보은'으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부장은 오과장의 제안이 시원치 않자, 영업2팀 고과장의 제안에 솔깃해 하고, 오과장은 북한의 희토류 수출이라는 카드를 통해 이 난관을 돌파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오과장의 아이템은 차장을 등에 업은 고과장의 배후 작업으로 한 수 뒤로 밀리고 만다. 설상가상, 지나가던 전무의, 희토류 같은 사업 아이템은 자원팀에게 넘기란 한 마디가, 그걸 추진했던 부장까지 물을 먹이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이리저리 이 사업 저 사업,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영업 3팀은, 결국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꾸역꾸역 음식과 술로, 일의 허기를 달랠 수 밖에 없다.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부장을 보고, 장그래(임시완 분)는 김대리에게 우문을 던진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김대리는 딱히 다른 게 없다면, 결국 돈과 승진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결국, 부장의 손바닥 뒤집듯한 말 바꾸기, 그리고 난감한 상황에서 자기 혼자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기의 궁극적 목표는 그의 승진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더 많은 월급이다. 지금까지 그런 방식을 통해 그가 이른 나이게 부장에 오른 것처럼, 그는 그렇게 다시 한 자리 더 '업그레이드'를 시키기 위해, 부하 직원들을 이리저리 휘돌린다. 드라마는 그런 그의 앞에 한 수 위인, 전무를 등장시킨다. 우리가 어디선가 보았던 그 그림, 가장 작은 물고기를 그보다 큰 물고리기가 먹고, 그것을 조금 더 큰 물고기가 먹고, 하지만, 그 뒤엔 더 큰, 더더 큰, 더더더 큰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7회 <미생>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약육강식의 세계의 원인이 바로, 돈과 승진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데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영업 3팀도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회사에서의 위치를 돌파하고자 무리수인 아이템을 집어든 오과장이라고 돈과 승진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김대리는 말끝마다, 올해는 오과장님이 승진하셔야 할 텐데라고 한다. 하지만, 7회의 보여진 위기마다, 오과장의 결정을 번복케 하는 것은, 그저 돈이나 승진만이 아니다. 치받기를 좋아하는 오과장이 자신의 아이템을 누르며 중국건으로 어렵게 궤도 수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자신들을 배려해 주었던 부장에 대한 '보은'이요, 어려운 중국 환경을 돌파해보고 했던 것도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다. 말끝마다 '오과장님이 승진하셔야 할텐데'라는 김대리의 돌림노래에는 그저 '돈'과 '승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끝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취해 낸, 그래서 오히려 같은 팀의 미움을 배가시킨 안영이(강소라 분)의 집념 역시 그저 '돈'과 '승진'이란 말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7회의 <미생>은 인간에 대한 배려, 혹은 다른 욕망, 혹은 성취 동기들이, 경쟁 사회 속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혹은 무의미한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느냐고?
그저, 변기를 부여잡고 술을 토하는 오과장을 보고, 쯧쯧거리고 말았는가? 그의 잔혹사가 다친 나의 마음 같아, 새삼스레 가슴이 죄어왔는가? 혹은, 어느새, 그런 논리에 길들여져, 오과장처럼 살면 세상 살기 힘들다고 하진 않았는가? 회사 생활에는, 그저 열정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생존 논리가 있다고, 그새 노회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하고 있는가?
김훈의 책 중,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이 있다. 그저 그 제목만 보고 반가워 집어들었던 책이다.
그런데, 이 냉소적인 작가,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정의내린다. '희망과 전망 없이도 살아야 하는 게 삶'이라고, '희망없이도 잘 사는 사람을 그려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대가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 속에서, 뿌리 뽑히고 거덜난 삶 속에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눈물겹다'고 말한다. 저무는 논길,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되면 돌아갈 때를 알아, 남편이 운전을 하고, 그 뒤에 앉아 가는 노부부의 삶처럼, 고단하고 버려지는 삶 속에서도, 말없는 실천에 도달한 그들은 '성자' 같다고 말한다.
제목이 '미생'이듯이, 드라마는, '성자'가 되지 못한, 고단하고, 버려지는 삶 속에 혼란한, 그래서 희망을 찾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드라마를 보면, 희망과 전망없이 사는 게 삶이란 정의가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노부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여전히 깨지고 무너지고 그래서 아파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돈'과 '승진'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미진한 가슴 뜨거운 우리의 삶에 대한 복기이자 회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미생'의 끝에, 완생이 있을 날을 기다리며,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살아내는 실천을 통해 도달할 그 어떤 '성자'의 경지를 기원하며, 그들이 언젠가 웃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꾸역꾸역 <미생>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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