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위스, 이탈리아,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빠짐없이 다녀온 국가이다. 물론, 해외라고는 제주도만 겨우 가본 기자에게는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책이나, 다녀온 이들의 경험담, 영상 등을 통해 그곳이 마치 가본 듯 익숙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 '익숙함'에 신선한 균열을 가져온 프로그램이 있다. 여행을 가고, 캠핑을 하고 뭐 또 새로울 게 있을까 하는 여행 예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으로 캠핑을 가다니, 뭐가 새로울까 싶은데 보고 있노라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나도 그곳으로 떠나 스위스 산맥을 마주하고 라면을 끓여먹고 싶다. 한적한 이탈리아 마을을 달려보고 싶다.
넉넉한 리더쉽의 유해진이 이끌고
예능하는 유해진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일찌기 ,<1박2일 >로부터 시작해서 <삼시세끼 어촌편>, <스페인 하숙> 등 그의 예능 출연은 2012년부터 쭈욱 이어져 왔다. 영화 속 그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여유롭고 만능 캐릭터로서 그의 모습이 그를 예능의 단골 출연자로 만들어 왔다. 예능에서 익숙한 유해진, 그래서 다 안 것 같은 유해진,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에서 유해진은 그렇게 시청자들이 익숙하게 소비해왔던 유해진과 또 다른 면의 유해진을 만나게 된다. 마치 벗겨도 새로운 면이 나오는 양파처럼 유해진은 또 새로운 인물로 시청자들을 새로운 공간 속 새로운 만남으로 이끈다.
애초에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평소 유해진이 즐겨찾는 유럽의 여행 루틴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자신이 가보니 좋았던 곳을 제작진에게 추천하고 그에 따라 유럽에서 캠핑을 한다는 '신박한' 발상의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즉 평소 촬영이 없을 때면 스위스를 찾아가 조깅을 하며 여유를 즐긴다는 유해진, 그러기에 <텐트 밖은 유럽>은 애써 만들어진 코스가 아니라 그가 즐겼던 여정을 따라 유연하게 흐른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프로그램 속에서도 아침이면 일어나 조깅을 하고, 그러다 더우면 강에 뛰어드는 유해진을 통해 '자유로움'을 공유하게 된다.
이건 어촌이나 스페인 하숙처럼 제작진의 주문한 공간과는 또 다른 여행의 맛이다.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어딘가를 '본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여행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었다. <텐트 밖은 유럽>은 지금까지 여행 예능과는 다른 여행을 한다. 14일 방영된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탈리아 하면 빼놓지 않고 다니는 피렌체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맛본 일행은 피렌체을 '관광'하는 대신, 차창 밖으로 유명한 피렌체의 다리를 지나치는 것으로 대신하고, 토스카나로 떠난다.
멈춤, 그리고 쉼
유명한 도시의 유적 대신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즐비한 길을 달리고, 잠시 내려 그 자연의 풍광을 만끽하는 식이다. 토스카나 한갓진 곳의 캠핑장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진선규가 '평생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말이 온전히 실감나는 이유이다. 공작새가 기웃거리는 그 낯선 이방의 공간, 그 찰라의 시간은 그의 말 그대로 평생 다시 만나기 힘든 여행의 순간이다.
다시는 못올 인생의 순간, 그 말을 공감케 만드는 건 익숙한 유럽의 여행자 유해진과 함께 한 다른 출연진들의 몫이다. 캠핑도 처음이고 유럽도 공연말고는 처음인 진선규, 캠핑 마니아이지만 산넘고 물건너 이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다신 못올 거 가다는 박지환, 그리고 붙임성 좋은 막내 윤균상의 조합이 절묘하다. 더구나 최근 <공조 2>를 통해 돌아온 유해진과 진선규의 선후배 조합에, <우리들의 블루스>, <범죄도시2>를 통해 대중적 호감도가 급상승한 박지환의 등장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흥미롭다.
영화 속 캐릭터와는 다르게 뭘 해도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반응하는 진선규와 , 캠핑 매니아답게 등장하는 순간부터 주먹구구식 캠핑초보들을 이끄는 박지환의 능숙함과 배려심, 그리고 아직도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딘가 쑥쓰러운 모습에 한참 어리지만 내공 만랩인 선배들 사이에서 무던하게 어우러지는 윤균상의 넉넉함이 <텐트 밖은 유럽>의 팀웍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팀웍의 중심에 넉넉한 리더쉽을 지닌 유해진이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이 나이든 세대들을 거부하는 상징인 '라떼는 말이야',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은 유해진의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된다. 자신이 다녔던 스위스의 인터라켄 정상으로 일행을 이끌고, 강물에 기꺼이 몸을 담을 것을 권해보는 식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고 하지만, 그의 방식은 여느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랑 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14일 방영된 토스카나 캠핑 장에서의 '수구' 경기에서처럼 그는 일행보다 한 발 앞서 같이 즐기면 좋을 것들을 챙긴다. 먼저 가서 수영장도 보고, 깊이도 측정해 보고, 같이 수구할 수 있는 공을 대신할 빈 페트병도 챙기는 식이다. 자신이 가봐서 좋았던 인터라켄의 등정도, 유럽의 더운 날씨에 함께 옥빛 호수에 몸을 던져 보는 것도 평생에 잊지 못할 순간을 후배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그는 솔선수범한다.
그의 자유로운, 하지만 용의주도한 리더쉽 덕분에 후배들은 스위스 빙하수에 몸을 던지는 일탈을 만끽할 수 있다. 어디 함께 한 후배들뿐인가. 첨벙하고 그들이 물에 몸을 던지는 순간. 시청자들도 일상의 균열을 가져오는 여행의 온전한 감성을 함께 만끽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이 던지는 그의 ' 썰렁한 아재 위트'는 70년생 그와 한참 터울이 진 후배들 사이의 균열을 메우며 '짬밥'으로 따지면 수직 서열인 이 '무리'의 긴장감을 잊게 만든다.
취리히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8박 9일의 여정은 아직 진행중이다. 흔히 우리에게 여행은 많은 것을 보는 것, 더구나 먼 유럽으로의 여행은 빠듯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눈에 담는 것이라는 강박을 가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그런 여행의 방점을 달리하도록 만든다. '불멍'이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최근들어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보다, 일상을 탈출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명대사 ' Dolce far niente (돌체 파 니엔테), 달콤한 게으름'이라는 말처럼. 그런 면에서 <텐트 밖은 유럽>은 그런 새로운 트렌드의 확장판이다.
매일 새로운 캠핑장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게으름'과는 멀다. 날마다 텐트를 펴고 접고, 박지환이 들고온 '한식 가방'들을 박지환보다 더 반기듯 매일의 끼니를 마련하는 수고로움들, 그리고 거친 비바람과 대번에 빨래도 말려버리는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들, 하지만 그런 고달픈 여정 속에서도 출연진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유럽의 자연을 놓치지 않고 호흡한다. 그들의 애써 찾은 '여유'덕분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들 사이에 숨쉬는 유럽의 풍광들이 시청자를 찾아온다. 길게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 저편에 펼쳐진 밀밭들을 거니는 잠시의 시간, 그저 스위스 산맥을, 옥빛의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 그 '멈춤'의 순간이 온전한 '쉼'의 여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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