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폐막한 '인디 다큐페스티발 2014'에서 관객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관객상'을 받은 작품은 바로 이진우 감독의 <전봇대 당신>이다.

<전봇대 당신>은 kt를 다녔던 이진우 감독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작품이다.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 이만구 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kt사내 교육 연수원에서 직원들 사내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로 일하시던 분이다. 하지만, kt가 민영화된 이후, 승진에서 탈락한 뒤, 비연고지 업무와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다 겨우 2010년 12월 퇴직하셨고, 아들인 이진우 감독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래도 영화 <전봇대 당신>에서 아버지는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면서도 결국 회사 생활을 '퇴직'으로 마무리하셨다. 하지만, 2003년 5000명, 그리고 2014년 8300명 등, 민영화 이후 kt에서는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처럼 그래도 나이를 꽉 채워 '퇴직'하지 못한 '희망 퇴직'이 대규모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mbc 다큐 스페셜은 지난번 <pd수첩>1000회에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kt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거의 '직장인 학살'이다싶은 '희망 퇴직'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룬다. 

전봇대 가장(家長)-희망퇴직 이야기_1

연수원 교수였던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발령난, 상당수의 kt퇴직자들이, 심지어 여성들까지 보직 발령된 '전봇대 업무'라는 건 무얼까? 
다름 아닌 전국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kt의 전봇대를 관리하는 업무이다.  kt 영업소 뒷마당에는 전선줄이 연결되지 않은 전봇대가 놓여있다. 바로 전봇대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연습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연습을 위한 전봇대는, 때로는 희망 퇴직자들에게 '고문'을 위한 장소로 씌여진다. kt를 다녔던 중년의 여성은 전봇대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잃는다.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아, 희망 퇴직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전봇대 업무'가 주어졌다. 전근 발령된 영업소,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희망 퇴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전 처음 전봇대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올라간 전봇대, 하지만, 눈앞이 까마득해지고. 결국 그녀는 kt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전봇대 업무'가 아니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다. imf 시절, adsl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kt의 부흥을 이끌었던 공규식씨가 지금 하는 일은, 또 다른 전봇대 업무이다.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잘못 설치된 전봇대를 찍는 일이 그의 업무의 전부다. 그와 함께 '전봇대 업무'를 하는, 즉, 그처럼 희망퇴직예정자이지만, 안나가고 버텨서 전봇대 업무를 배정받은 이들은, 한때 kt의 핵심 두뇌였던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영광이란다. 공로를 인정받기는 커녕, 그에게 돌아온 것은 '토사구팽', 말이 좋아 '희망 퇴직'이다.

kt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에서 일하던 대신증권 직원은, 하루 아침에,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근한다. 그저 버티라는 아내의 말을 외면할 수 없어, '희망 퇴직' 대상자임에도 회사를 나가지 않은 그에게 지금 주어진 일은 대신증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다. kt의 전봇대 업무와 같은 대신증권의 프로그램에는 별 희안한 업무가 다 있다. 직접 발로 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심지어 식당 주방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한 흔적을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하는 것은 물론, 각 식당 별로 돌아다니며 명함을 모아다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쓸쓸히 명함을 모으며, '희망 퇴직 대상자'가 된 직원은 말한다. 이게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저 '희망 퇴직'을 하라는 전조등일 뿐이라고.

대신증권, 현대 증권 등, 회사의 경영 합리화를 직원들의 정리 해고를 통해 해소하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의 경우, '희망 퇴직'을 피하기 위해, 성과를 내려고, 자신의, 그리고 주변의 자금을 끌어들인다. 그 과정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증권맨'의 숙명인, '빛'이 눈더미처럼 불어난다. 결국, 버티다 못해, '희망 퇴직'을 한 퇴직자들에게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빛'뿐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희망 퇴직'이 선포된 현대 증권 회사 앞, '먼저 가겠다'는 희망 퇴직자의 편지를 듣는 직원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말이 좋아 '희망 퇴직'이지, 하루 아침에, 메신저로, 혹은 은밀하게 쪽지로 전달되는 '희망 퇴직' 통지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 '사형선고'이다.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충성'을 다했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직장인들은, 대부분,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때로는 그 감정적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채 정신적 상처를 입고 세상과 담을 쌓기도 한다. '희망퇴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쌍용 자동차 퇴직자 직원은 결국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었다. 아내와 이혼 한 후,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이제 그는 한 달에 한번 보는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는, 자기 키만한 짐 더미를 오르내리는 평택항의 일용직 근로자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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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당신>을 연출한 이진우 감독은, '순이익 50%를 무조건 주주들을 위해 배정하겠다는' 이석채 전 회장이 주관한 주주총회 광경을 영화에 담는다. 그는 말한다. 민영화 이후,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더 피폐해지고, 직원들 보다 '주주'를 위한 회사가 되었다고. 
kt만이 아니다. 불황을 견디는 대다수 기업들의 해결 방식은, 평생을 직장을 위해 살아온 직원들을 '홀로코스트'처럼 대규모적으로 감원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 '희망 퇴직'이지, 하루 아침에 직장을 벗어난 중년의 가장들은 정신적 내홍과,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기에 버겁다. 그렇다고 '희망 퇴직'을 하지 않고 버티자니, 남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모멸'뿐이다. 

<pd수첩>에 이어 다시 한번 다루어진 '희망 퇴직'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oecd회원국중, 근로자 평균 근로 연수가 가장 짧은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봇대 가장'은 그 어떤 비극보다 '리얼'하다. 
물론, <pd수첩>이 말하지 않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비극도 있다. '희망 퇴직'이 아니라, mbc의 '건강한' 보도를 위해 싸우다가, 해직당한, 그리고 복직되지 않은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무덤, '희망퇴직' 이야기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by meditator 2014. 9.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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