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나 <대추 나무 사랑 걸렸네>의 종영 이후 '농촌'은 tv 콘텐츠의 영역에서 한물 간 분야로 치부되는 듯했다. 그런 한물 간 '농촌'을 다시 tv로 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예능의 중심으로 부상시키는데 tvn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저 산좋고 물좋은 곳에 내려온 도시민들이 하루 삼시 세끼 밥 해먹는 것만으로 '힐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삼시 세끼>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tvn에 농촌 예능이 <삼시 세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어수룩한 농촌 사람보다 더 농촌 사람 같은 양준혁, 양상국, 강레오의 농촌 행을 그린 <삼村 로망스>(2014, 12부작)가 나름 농촌 예능의 효시가 되었다. 하지만, 예능만이 아니다. 우리의 밥상을 장악한 외국 농산물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다룬 실험적 다큐 <농부가 사라졌다>(2014, 4부작) 역시 tvn이 준비한 야심찬 실험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하이킥의 김병욱 감독이 기획한 증권회사 루저들이 어느 시골 마을에서 맞닦뜨린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욕망에 뒤엉킹 도시인과 농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원스 어폰어 타임 생초리> (2011, 20부작)역시 '생초리'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이었다.
그렇게 이제는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져 간 농촌을 중심으로 tvn의 프로그램들은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제 또 한편의 새로운 시도가 tvn의 프로그램으로 찾아든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다. 자식들은 장성해 도시로 나가고 외로이 농촌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께 로봇이 찾아들었다. 국내 최초 로봇 예능프로그램 바로 <할매네 로봇>이다.
연예인과 로봇, 2인 1조 콤비가 되어 어르신을 위로하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은 그 자구책을 로봇 산업에서 찾고 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실제 현실에서 활발하게 산업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로봇 산업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용 로봇에서부터 가사용 로봇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홀로 생활하기 힘든 노인들의 도우미가 되고자 한다. 심지어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로봇 강아지와 로봇 아기까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초고령화 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노인 산업에서 '로봇'의 존재는 상상 밖의 영역이다. 홀로 남은 노인들의 '고독사'와 '노인 빈곤'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 도우미 로봇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에도 나오듯이 아직 로봇의 기술 자체가 우리가 연상하는바 그 '로봇'처럼 주도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않는 점도 현실적 제약이 된다.
바로 그렇게 현실의 로봇이 스스로 도우미로써 작동할 수 없는 기술적 딜레마가 <할매네 로봇>에서는 예능적 관전 포인트로 작동한다.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농촌 어르신들을 위한 첨단 장비 로봇, 하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현실에, 도우미로 사람, 즉 연예인들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할매네 로봇>에서는 이희준, 장동민, 바로가 로봇의 도우미로, 프로그램에 등장하게 된다.
첫 회를 연 <할매네 로봇>, 제작진의 국내 최초 로봇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막상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장재임 할머니 댁을 찾아든 머슴이 로봇도, 양계순 할머니 댁의 토깽이 로봇도, 그리고 양길순 할머니 댁의 호삐도, 막상 예능의 주인공 다운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말이 할머니를 도울 로봇이지, 울퉁불퉁한 시골집에서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고, 뭐 하나 제대로 된 일을 하지도 못하는 로봇들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금속 덩어리처럼만 느껴졌다. 오히려 처음 보는 로봇보다는 그래도 낯이 설어도 로봇과 함께 온 연예인들을 더 반기는 어르신들에게서, 로봇을 빙자한 연예인 농촌 방문 예능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로봇을 소닭보듯 하는 노인들과, 존재감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는 로봇의 조합은 프로그램의 중반을 넘어서며 묘한 예능적 질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출연한 연예인과 맞춤한 듯한 2인 1조의 인간과 로봇, 그리고 어르신의 조합에서 오는 신선한 질감이다.
예능에 첫 출연인 이희준은 느리고 또 느린, 거기에 지시어 몇 개만을 수행할 수 있는 머슴이를 데리고 어떻게든 장재임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쓴다. 고지식한 이희준이 애써 머슴이로 계란 후라이를 하려 하다 실패하고, 소금을 쏟아붓고, 어거지로 케찹을 뿌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픈 예능적 지점을 발생시킨다. 이희준이 그렇게 곧이곧대로 애쓰는 동안, <지니어스>의 장동민은 역시나 남다른 예능감을 발휘한다. 농촌의 어르신들을 찾아간다하면 대부분 이희준처럼 어떻게라도 도와드리려는 자세와 달리, 장동민이 촛점을 맞춘 것은 홀로 계신 어르신께 손주처럼 구는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와 함께 한 로봇에게 조차 그처럼 어리광과 응석을 장착시켜, 양계순 할머니의 경계을 대번에 허문다. 거리에 새로운 환경에 왔다는 기분에 자신이 더 신이 나서 기분을 내다 결국 첫 회에 로봇 얼굴을 뭉개버리는 대형사고를 치는 바로의 엉뚱함도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처음 로봇이 등장해도 멀뚱하니 바라보다 곧 하시던 일을 마저 하시던 어르신들은, 연예인들과 2인 1조의 고군분투를 보면, 조금씩 금속 덩어리 로봇을 마음으로 들이신다. 뭐 쓸모가 있겠냐시던, 연예인들이 어거지로 로봇의 쓸모를 증명해 보이면 헛웃음으로 대거리하시던 어르신들이, 프로그램 막판이 되면, 서로 자기 집 로봇이 더 쓸모가 있다며 자랑이 늘어지시는 모습은, 금속 덩어리도 쓸쓸한 시골 마을에선 손주보다 차라리 낫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토깽이의 일거수 일투족이 귀여워 보이고, 머슴이가 진짜 허당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금속덩어리든, 낯선 연예인이든, 그 누구 찾아드는 사람없는 시골 마을엔 그 자체가 삶의 활기가 된다. 아직은 이게 로봇 예능인지, 로봇을 빙자한 연예인 농활기인지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이 어설픈 로봇 예능의 귀추가 궁금해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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