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선균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구속과 구질이 평범한 선발 투수'라 정의내렸다. 하지만, 이 '평범하다는, 그리고 심지어 그의 까칠한 연기가 진부하다는 '이선균'의 '성난' 연기가 이제 스테디 셀러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끝까지 간다>에 이어, 다시 한번 짜증내고 성질내는 연기로 돌아온 이선균의 <성난 변호사>가 <마션>, <인턴>에 이어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박스 오피스 3위에 안착하며 순항 중이다.
이선균에 의한, 이선균을 위한 <성난 변호사>
2015년 백상 예술 대상에서는 이변의 장면이 연출됐다. 바로 남자 최우수상에 이선균과 조진웅이 동시에 호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 맥스 무비 시상식에서 영화에서는 주연이라고 해놓고는 맨날 조연상만 준다고 반 농담, 반 진담을 했던 조진웅은 이선균만 수상을 하는 줄 알고 축하해 주러 기립했다가 자신이 공동 수상인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반적으로는 공동 수상이라고 하면 구설이 따를만도 했건만, <끝까지 간다>로 수상한 이들 두 사람에게는 모두가 마음을 모아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이선균 조진웅이라는 쌍두 마차가 이끌어 영화의제목처럼 집요하게 박스 오피스에서 생존하여 350만의 흥행과, 두 배우는 물론, 감독에게 각종 수상의 영예를 안기며 <끝까지 간다>에 대해 배우 이선균은 평범한 선발 투수 였던 자신과 함께 한 4번 타자같은 조진웅이 만루 홈런을 쳤다며 영화의 공을 조진웅에게 돌렸다. 하지만 이번 <성난 변호사>는 그가 공을 돌릴 4번 타자는 커녕, 대타도 없다. 영화의 예고편에서 그와 콤비처럼 등장한 임원희는 그저 양념에 불과했고, 상대 여배우 김고은은 여전히 불안정했으며, 악역 장현성의 포스는 평범했다. 하지만, 자신을 겸허하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다>를 통해 자신의 '까칠' 연기에 자신감이 붙은 이선균은 이제 그 스스로 4번 타자가 되어, 영화를 온전히 이끌고 간다.
그렇게 제목부터 사람들이 일찌기 <파스타> 이래로 이선균을 통해 연상되는 '까칠'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건 <성난 변호사>는 온전히 이선균을 위한, 이선균의 영화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선균은 이제 진부하다는 그의 예의 '까칠'한 캐릭터를 '스테디셀러'처럼 능수능란하게 펼쳐낸다. 그저 '이기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변호사 변호성이 제약 회사를 상대로 부작용 소송을 건 환자를 상대로 '골뱅이' 통조림까지 등장시켜 역전시키는 장면은 이선균이란 배우의 독무대로서의 <성난 변호사>를 손색없게 만든다.
허종호의 기발한 영화적 장치들로 인한 가속, 하지만
하지만, <성난 변호사>의 미덕은 이선균만은 아니다. 한예종 동기라 잘 되어야 한다는 이선균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영화 초반 감독 허종호는 기발하게 영화를 이끌어 간다. 분명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부작용 사례, 거기에 내막을 모른 채 휩쓸린 일신 영달의 속물 변호사의 반전을 담은 영화는 상투적이다. 하지만, 그 상투적인 틀은, 영화 초반 법정 씬에서 부터, 이어 이선균과 살해당한 여대생이 한 공간에 머무는 듯 현실감을 부여한 수사 장면, 그 뒤의 각종 소소한 반전 씬들로 신선한 영화로 거듭난다. 분명 뻔한 이야기지만, 그 뻔한 이야기를 채운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지 못한 이야기들이 <성난 변호사>를 그저 이선균의 원맨 쇼 이상의 볼 거리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선균에의한을 넘어설 뻔한 영화가 중후반 '반전'을 향해 달려가면서 미덕은 길을 잃고 만다. 오히려 안타깝게도 이선균을 믿고 가야 할 영화는 후반, 이런 범죄를 다루는 영화들이 저지르기 쉬운 '반전'이라는 트릭에 매달려 평범해 지고 만다. 애초에 이 영화의 제목이 '성난 변호사'였던바, 그렇다면 영화는 충실히 '입신양명'에 목매달아 문지훈(장현성 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노심초사하던 변호성이, 그로 인해 뒷통수를 맞고 '성이 나서' '정의'의 심판을 하기 까지의 변화 과정을, 그가 문지훈의 뒷통수를 치는 트릭으로 대신한다. 문지훈의 개인양 굴던 변호성이 막판에 이건 몰랐지 하고 그를 몰아가는 수법은 나름 신선했지만, 예견되었던 바였고, 오히려 그 보다는 변호성이란 인물의 자존심, 그리고 감정 변화에 조금 더 충실했다면, 아마도 마지막까지 신선한 영화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 대신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나름 기발하다 준비된 트릭과 반전으로 후반부를 장식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그 장황한 변호성의 트릭을 보아 넘기며 언제쯤 막판 반전이 등장할까 시계를 들여다 보게 된다. 과연 허종호 감독은 이선균을 믿고 가려던 영화에서 결국 이선균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준비한 따지고 보면 뻔한 반전과 트릭을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좌석을 채운 관객들에게 마지막 깜짝 쇼를 선물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까? 덕분에, '성난' 이선균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시작된 영화는 결국 뻔한 반전 범죄 영화로 귀결된다. 변호성이란 캐릭터를 잊어버릴 정도로.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난' 이선균의 캐릭터는 영화 마지막 사표를 낸 사무장의 말처럼 다음 시즌에 '성난' 탐정으로 돌아올만한 매력을 남긴다. 그렇게 되면 cj가 준비할 버디 무비로서의 탐정 시리즈는 <탐정; 더 비기닝>에 이어 또 한 편이 늘어난 걸까? 다만 다음 시즌이 준비된다면, 이번 '성난 변호사'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이 아쉬운 박사무장 임원희를 위한 배려가 좀 더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균이 말하듯, 그의 짜증이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공감가는 '짜증'이었기에 그렇듯, 뻔한 반전보다는, 박사무장과 변호성의 사람 냄새 나는 '고군분투'가 조금 더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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