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질서로 부터 튕겨져 나온, 무협
'협객'의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처음 시작한 이는 위의 사마천이다. 그가 쓴 <사기>에는 협객들을 다룬 <유협 열전>이란 범주가 있다. 혹자는 <자객 열전> 또한 협객의 이야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들 좀 과거에 한가락 한 인물들의 그 과거 '한 가락'은 결국 '협객'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또 다른 동양 고전, <수호지>는 협객사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정의가 된다. 여기서 보듯이, '협객'은 우리나라보다는, 동양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의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또한, '당시 시대 기준으로도 엄연히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그들이, 스스로가 내세운 '대의명분'에 의거, '의롭고 기개가 있는'인물로 캐릭터의 변이가 이루어 지는 것은, 삼국지의 배경이나, 수호지의 배경으로 보건대, '국가 권력이 사회 전반을 관할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국면'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칼부림이나 하는 양아치들이 될수도 있는 인물이 당대의 영웅으로, 이른바 '협객'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꼭 국가 권력의 영역에서만 '협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보는 중국의 무협 영화 다수를 보면, 개인의 원한에서 부터 국가에 대한 환멸, 의리까지 무협의 종류는 다종다양하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건, 기존의 사회 질서가 그의 검을 혹은 다른 무기를 다스릴 수 없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어쨌든 무협은 그 서사의 시작이나, 서사의 융성은 '중국'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무협지'는 다수의 마니아를 구축한 문학 장르이지만, 정통이 아닌 '하위 문화'장르로 취급받아왔었으며, 심지어 메이드인 코리아의 '무협지'의 배경 역시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의 어떤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정의에 근거하여 2015년에서 2016년에 걸쳐 대두되기 시작한 tv 무협을 살펴보자. 1월 11일 첫 선을 보인 kbs2의 월화 드라마 <무림 학교>는 말 그대로 '무협'을 배우는 학교이다. 산속에 신비스러운 결계에 가려져 있는 이 학교는 소림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모여 '무'(무)에 근거한 심신 수련을 하는 곳이다. 이미 <드림 하이> 1, 2를 통해 정규의 학교 과정 외에 '신선한' 배움의 장을 마련해 왔던, 그리고 방학마다 '학교' 시리즈를 통해 학생 시청자들에 호응해 왔던 kbs2가 마련한 신선한 '고육지책'이다. 첫 회에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될 두 주인공들 면면에서 보여지듯이, 재벌 회장의 서자이지만 전 세계 어느 학교에서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말썽꾸러기 왕치앙(홍빈 분)에,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와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핸디캡으로 그가 속해있던 곳에서 방출되다시피한 윤시우(이현우 분) 등 아웃사이더들에게 마지막 비상구로 열려진 곳이 바로 '무림학교'로 설정된다.
2016년 tv로 온 무협
그런가 하면 고려말 국가적 혼란기라는 <육룡이 나르샤>의 시대적 배경은 '무협'이 득세하기엔 더할나위없는 상황이다. 이제 슬슬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고려 건국에서 부터 왕실의 뒤에서 고려를 도와왔던 '무명'이라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그런 무명에 대항하여, 정도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갈 <뿌리깊은 나무>까지 이어질 '밀본' 역시 그 행동책에는 '무협'들이 다수 자리잡는다. 극의 기본 줄기는 이제 이방원을 내세워 정권의 뒷배가 되려는 무명과, 그에 맞서 왕이 중심이 아닌, 백성과, 백성의 뜻을 받든 '신하'들의 민주적 집합체이자, 유교적 구현을 이루고자 하는 '밀본'의 대결로 이어져 가지만, 그들의 구체적 행동 양태는 그들의 수하인, 각 조직의 '무협'들의 대결로 실현된다. 그 무협들은 중국 제일검 장삼봉과, 그의 제자로 삼한 제일검이 될 이방지, 그리고 여성으로서 장삼봉의 제자를 살한 척사광, 그리고 홍대홍의 제자로 홍대홍을 넘어선 훗날 조선 제일검이 될 무휼 등은 기존 왕 중심의 역사극에서 탈피하고자 한 <육룡의 나르샤>의 진짜 용이 되어 조선 건국이라는 격동에 휘말려 들어간다.
이렇게 기존 학교 교육의 권태라는 공간에 드밀고 들어온 <무림 학교>나, 고려 말 격동의 아노미 속에서 한 획을 그을 무협들의 쟁투로써의 <육룡이 나르샤>의 설정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 그럴 듯한 서사가 막상 드라마로 구체화되는 지점에서는 아직은 '실험적'이란 것이 정확한 평가일 듯하다.
결계에 쳐진 무림 학교 라는 공간으로 들어온 재벌 아들과 아이돌이라는 설정부터 청소년 환타지의 진부한 클리셰를 답습한다. 또한 무림학교 라는 공간에서 이들을 굴러온 돌처럼 여기는 기존의 자부심 강한 학생들과 이들의 갈등, 거기에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은 '학교', 혹은 '청소년' 물에서는 신물나도록 되풀이 되었던 설정이다. 심지어 여주인공을 둘러싼 어설픈 삼각 관계까지. 그런 '납작하고 또 납작한 갈등'을 어설픈 'cg'를 곁들여 펼쳐냄으로써 '어린이 드라마'같다는 평가를 받고야 만다. 이범수, 신현준, 신성우까지 묵직한 조연들과, 무림이라는 신선한 구도가 보여주는 기대는 크지만, 기본적으로 무림이건, 학교건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는 청소년에 대한 전개가 '청소년'에 대한 일천한 이해, 혹은 설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무림학교>의 가장 큰 난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영 당일, 그리고 다음 날까지 이어진 화제성에서 보여지듯이, 어설픈 cg로 나마 구현한 무협의 세계는 신선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화제성이 높은 것은 안타깝게도 작가들이 이 비천한 육룡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역사의 뒤안길이 아니라, 작가들 자신도 이미 본말이 전도된듯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무협'의 세계인 것이다. 즉, <육룡이 나르샤>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과연 누가 진짜 조선 제일검이 될 것인가? 그들의 무협 순위 등이 관심이 높은 것이다. 정도전이 구현할 세계와, 이방원의 뜻이 어떻게 어긋날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과, 그들이 손잡을 조직, 그리고 거기에 이합집산할 무협들의 한판 싸움이 드라마의 볼거리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정작 '밀본'의 프리퀼이어야 할 <육룡이 나르샤>에서 가장 존재감없는 캐릭터는 분이가 도와야만 힘을 발하는 '밀본'의 본산 정도전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2016년초부터 한국의 tv 드라마에서 b급문화였던 '무협'과 '무림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 과연 콘텐츠의 신선한 기획인지, 아니면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얕은 설정인지는 모호하다. 또한, <드림하이>처럼 신선한 학교 시리즈의 개척일지, 그저 <블러드>와 같은 괴작의 탄생일지 미지수다. <육룡이 나르샤>도 마찬가지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시작된 밀본의 탄생의 성공적인 프리퀼일지, 역사에 대한 어설픈 해석으로 귀결될 본데없는 퓨전 사극일지는 역시나 가늠하기 어렵다. 얕은 수로 시작된 시도라 하더라도 부디, 그 얕은 수가 신선하고 새로운 기획의 분수령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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