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 어울리는 한 마디라면, 이게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연예인들의 뉴욕 체험기를 장황하게 다루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얻지 못했던 수요일 밤 11시 예능의 자리에, 진짜 일반인들의 삶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달콤한 나의 도시>, 2006년 발행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정이현씨의 소설의 제목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제목만이 아니다. 도시에 사는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루었던 소설의 내용이 고스란히 예능의 한 장르가 되어 등장한 것 역시 다르지 않다. 소설에서도 그랬다. 달콤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던, 순도 100%의 다크 초콜릿처럼 쌉싸름하기 이를데 없던 도시 여성의 삶처럼, 첫 방송을 선보인, 예능 <달콤한 나의 도시> 역시 달콤하기 보다는 역시나 쌉싸름하다. 도시에서의 그녀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방송이 시작되자 마자, 매우 매운 것을 먹고 씩씩거리거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후배를 야단치거나, 남자 친구에게 벌컥 화를 내는 모습으로 네 명의 출연진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루 고객 200명을 거느리는 이제는 중진급에 속하는 미용사 최송이, 스포츠 아나운서의 꿈은 접었지만, 여전히 인터넷에서 미모를 뽐내며 영어 강의를 하는 최정인,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레지던츠 4년차의 남자와의 결혼을 앞둔 임현성, 항공대 출신 최초, 로스툴 출신 최초 라는 최초의 직함을 두 개나 단 3년차 변호사 오수진,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만한 아름다운 미모에, 내로라 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들,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런 그녀들의 화려한 외면에 숨겨진 고충을 토로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의 성격을 드러낸다. 잘 나가는 미용사이지만, 여전히 고객의 관리와 성과가 그녀를 짖누르는 최송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변호사이지만, 다짜고짜 자신과의 연락을 두절한 전 남친과의 아픈 사연을 가진 오수진, 그리고 600일이나 사귄 남친이 있지만, 그에게선 결혼하자는 말을 들을 수 없어 답답한 최정인까지 다짜고짜 화를 내고, 매운 걸로 풀어야 하는 그녀들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강의라는 특수한 환경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미모의 최정인에게, '돼지'라던가, '살찌는 dna'라는 수모를 겪게 만들고,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강요한다. 3년차의 변호사인 오수진은 선배와 폭탄주를 곁들인 회식을 하고도 자기 뺨을 치며 사무실로 들어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하루 열 다섯 시간의 고된 업무에 시달리게 한다. 대학 1학년 때 친구로 만나,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 임현성의 커플은, 연인이라기엔, 차라리 오래된 부부처럼 친근해도 너무 친근하다. 하지만, 친근한 건, 친근한 거고,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는, 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아마도 <달콤한 나의 도시>가 가진 가장 최고의 장점은, 바로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의 도시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가장 '진짜'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연예인들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며 어디가서 살아보고, 어떤 직업을 체험하는 '가짜' 리얼리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리얼리티'로서의 대한민국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일과 사랑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진; nsp 통신)
물론 여전히 그것이 정말 진짜냐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다큐'의 연출성 여부가 논란이 되는 세상에, 예능으로서 일반인 리얼리티의 연출성의 한계 역시, 한 때 수요일 시간대의 영광을 누렸던 <짝>처럼, <달콤한 나의 도시>가 가진 태생적 위험 요소이다. <짝>이 일반인 리얼리티의 요리 여부에 따라 영광과 몰락을 누린 것처럼, <달콤한 나의 도시> 역시 연출의 관점과 욕심에 따라, 진솔한 젊은이들의 속내를 다룬 프로그램을 기억되거나, 연예인처럼 가쉽에 시달리는 일반인의 흥망성쇠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첫 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인의 기준보다는, 연예인에 더 어울릴 듯한, 예전 <짝>으로 치자면 모든 남성들이 그녀 앞에 줄을 설 것같은 미모의 여성들이 동시대의 여성 표준처럼 등장한 그것 자체가 문제 발생의 소지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창 리모컨을 쥔 여성들의 입맛에 따라,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리얼리티 예능이, 이제 여자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보겠다는 취지 자체는 반길만 하다. 첫 회에서 보여지듯, 그저 그녀들의 일상임에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듯이, 다종다양한 동시대 여성들의 고민을 담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어느 한 장면에선가 만나본 듯한 이야기들임에도, 그들이 일반인인 한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가 풀어낸 이야기는 진솔하고 신선해 보인다.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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