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vs. sbs의 월화극 대결 1라운드, 김래원, 박신혜 주연의 <닥터스> vs. 장혁, 박소담 주연의 <뷰티플 마인드>였다. 동일한 의학 드라마를 편성한 이 '핓빛어린 대결'은 싱겁게도 <닥터스>의 압승이었다. <닥터스>가 20%를 오르내리는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너끈히 수성할 때, <뷰티플 마인드>는 최고 시청률이 4.7%(3회, 닐슨 코리아 기준)였다. 물론 이 두 드라마의 대결은 '외연적'으로 보면 '의학 드라마' vs. 의학 드라마라는 동일한 장르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구조였던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였던 <닥터스>를 상대로 하여, 사이코패스 의사의 성장담이자, 병원을 둘러싼 비리를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이며, 나아가 '교육'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심리'드라마였다. 일반적인 시청자들이 선호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비리와 인간의 속내를 훑어보는 이 드라마가 결국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에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드라마 판에선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다른 주제와 내용을 다룬다 해도, '의학'이라는 소재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같은 장르의 드라마의 격돌은 '전파 낭비'가 아니냐는 반응이 뒤따랐다. 2
sbs vs. kbs2의 두 번의 월화극 혈전, 장군멍군
하지만 전파 낭비따위, 마치 승자 독식이 순리가 된 세상에서, 압도적 시청률의 승리는 그만큼 매력적이었던 것이었을까? kbs2와 sbs는 다시 한번 '사극'이라는 장르로 2차전을 벌였다. <닥터스>를 통해 승기를 잡았던 sbs, 방영 전 이미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던 <보보경심>의 리메이크 작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를 포진시키며 2차전에서도 압승을 예언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150억 대작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김규태 피디가 선보인 <달의 연인>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 압도당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차전의 <닥터스> vs. <뷰티플 마인드>의 시청률이 고스란히 반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장군멍군인 셈이다.
그래도 <닥터스>에 대해 고전했던 <뷰티플 마인드>는 비록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웠지만,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사이코패스와 그를 둘러싼 병원과 가족의 관계를 '해부'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받았었다. 그런데 <구르미 그린 달빛>에 기를 못펴는 것은 물론, 동시간대 방영중인 <몬스터> 시청률에도 한참 뒤처진 <달의 연인>은 안타깝게도 <구르미 그린 달빛>과 시청층이 겹치는 '과거'에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9월 6일 방영된 <구르미 그린 달빛> 6회, 세자 이영(박보검 분)은 청의 사신에게 수청을 들게 된 동궁전 내시 홍삼놈(김유정 분)을 구하기 위해 다짜고짜 사신이 머무는 곳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내시에게 칼을 들이댄다. 드라마는 제 아무리 궁중의 법도 따위는 밥 먹듯이 무시하고 지내는 '똥궁'이라지만 외교적 절차를 무시한 이 '사태'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사태의 진행 과정을 생략한 채 세자의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 작전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법도'와 외교적 상식을 무시한 세자의 무례 대신, 사랑하는 여인에 눈이 먼 사랑에 빠진 남정네의 과감한 행동에 홀리게 된다.
기승전 '사랑'의 두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은 조선 순조 때 세자인 '효명 세자'로 그려진다. 역사적 인물인 효명 세자는 아버지 를 대신하여 19의 나이에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를 상대로 수렴 청정을 했을 정도로 영민한 인물로 전해진다. 또한 이덕일의 책 <조선 왕 독살 사건>을 비롯하여 일부에서 그의 죽음이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한 죽음으로 전해지기도 하는 세도 정치의 중심에 놓여있던 '정치적 인물'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과도한 업무 등으로 인해 4년 동안 거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과로사'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워커 홀릭'에 가까운 면모를 기록으로 남긴 인물 효명세자, 하지만 그 세자가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게 '사랑꾼'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은 여자지만 내시로 궁에 들어온 홍삼놈을 '친구'로 여긴 세자는 그가 김윤성(진영 분)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시기하여 내치거나, 그에 대해 화를 내며 어쩔 줄 모른다. 홍삼놈이 등장하기전 세자는 비록 '똥궁전'이지만 안동 김씨의 세도에 대응하며 정치적 반전을 꾀하는 인물이었던 반면, 홍삼놈의 등장 이후 그의 모든 행보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 연애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기승전 스토리이다.
<달의 연인>도 그리 다르지 않다.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 후에 광종이 되는 왕소(이준기 분)는 역시나 결혼 정책으로 34명의 자식을 둔, 극중 8명의 왕자들과 피튀기는 권력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이다. 하지만, 어머니에 의해 얼굴에 흉터까지 지닌, '늑대'라고 불리우는 이 사내는 볼모로 잡혀있던 곳에서 개경으로 온 이후 현재에서 타임슬립한 해수(아이유 분)와 얽히며 '사랑'에 눈이 멀기 시작한다.
아니 드라마 속 사랑꾼은 이들 남자 주인공만이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무소불위 권력가 김헌의 유일한 아들로 등장하는 김윤성 역시 홍삼놈을 만난 이후로 줄곧 끌린다. 김헌과 이영은 한때 우정이었으나, 이제 여인 홍라온 앞에서 '권력'을 내건 연적으로 자리 바꿈을 한다. <달의 연인>은 고려 판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란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극중 8왕자 들이 대부분 왕실의 예법에서 자유로운 해수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인연'을 만들어 가며 '사랑'의 볼모가 되어간다. 심지어 해수의 육촌 언니의 남편 8왕자 왕욱(강하늘 분)까지도.
드라마는 조선 순조 때 안동 김씨 세도가에 대항하는 세자 이영과, 태조 왕건 시기의 결혼 정책으로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세자들을 내세우지만, 결국 그들의 '권력' 투쟁이자, 정치적 위기는 '사랑'을 극적으로 그려가기 위한, 보조적 장치일 뿐이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그들은 사랑꾼이요, 사랑에 웃고, 울고, 자신의 많은 것들을 거는, '역사'와 무관한 '로맨스 가이'들이다. 심지어 이영이나, 왕소나 모두 어머니가 없거나, 어머니에 의해 버림받은 '모성 유발'의 남성들이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항해야 하는 운명적 인물들이다. 그렇게 태생적으로 '불운'한 그들 앞에 그들의 맘을 위로하는 '밝은' 소녀같은 여인이 등장하여, 벗인양, 그들과 어울리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안타깝게도 두 드라마의 공통적 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익숙한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정통 사극의 모양새를, 유려한 화면으로 그려내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그보다 시대적 배경이 먼, '고려'를 배경으로 한 <달의 연인>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만다. 만약에 <달의 연인>이 고려판 <꽃보다 남자> 설정 대신, 초반 왕소의 치명적 존재를 중심으로 태조 왕건 시기의 권력 싸움에 집중했더라면, 이런 정치 사극에 흥미를 가진 '남성 시청자 층'의 호응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의 연인>은 그런 가능성 대신, 무엇을 해도 사극과 이질감을 주는 해수 역의 아이유와 왕자들과의 '로맨스'에 매진하며, 이미 몰입도가 강한 이영과 홍삼농의 로맨스에 스스로 '하수'로 자리매김하고 만다.
이런 <달의 연인>의 안이한 선택은 그보다는 다층적 서사를 그려냈던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에 매료되었던 팬들을 이반시키는 자충수이며, 동시에 스스로의 차별성을 닫아버리는 결과물이 되고만다. 하지만, <달의 연인>의 패착이든, <구르미 그린 달빛>의 승기든, '사극'을 표방한 역사를 배경으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그 시청률의 성취와 상관없이 가장 '안이한' 시청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얼마전 서울 드라마 어워드에서 <육룡이 나르샤>의 작품상 수상이 무색해지는 드라마 시장의 답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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