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절대 언어'이다.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던 그 시절부터, 그리고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까지, '가족'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기본 단위가 된 그 시간 동안, 부모는 자식의 삶을 보호해 주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하여, 여전히 tv 속 여러 프로그램들은 '가족애'와 '효'와 '내리 사랑'의 지극함을 찬양한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의 존재로 '성공'을 향해 치달려온 박태석(이성민 분)의 알츠하이머 투병기를 다루고 있는 <기억>은 그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 아버지를 복기한다.
박태석, 또 다시 아들을 잃을 위기에 처하다
<기억> 속 박태석은 이미 아버지의 자격을 한번 잃은 아버지이다. 전처와의 결혼 생활 동안 유치원생이었던 여섯 살 아들 동우를 뺑소니 사고로 잃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 헤맸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고, 그는 마치 그 아들의 죽음을 잊기라도 한듯이 전처와의 이혼 이후 동우 아버지로 살던 그 시절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태선 로펌 최고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박태석이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고, 기억 속에 묻었던 동우가 자꾸 그에게 되살아 남과 함께, 종종 그가 술이 취하면 동우라 부르는 지금의 아들 정우에게 위기가 생긴다. 말수를 잃고 편의점에서 술을 훔기기도 하던 정우는 친구의 시계를 훔쳤다기도 하고, 심지어 친구의 머리를 돌로 치는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우리 정우'라 하지만 정작 자신의 성공 가도를 달리느라 가족은 뒷전으로 밀쳐둔 채 아이들의 일을 아내에게 맡겨 둔 박태석은 도둑을 누명이라 호소하는 정우의 애원에도 '변호사'로서의 객관성을 놓지 않는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던 아들 정우가 사라졌다.
정우를 찾아헤매던 박태석은 다시 한번 자신이 큰 아들 동우때처럼 또 한번 아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다는 점을 깨닫는다. 뺑소니 사고로 순식간에 놓쳐버린 아이, 그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어찌할 수 없었던 사고라는 박태석의 말을 전처 나은선(박진희 분)은 거부한다. 아니라고 동우는 우리가 죽였다고. 아빠인 당신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엄마인 자신이 사법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아이를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 나은선의 자책어린 목소리는 이제 박태석의 귓전에 울리며 박태석은 자신이 놓쳤을 지도 모를 정우의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가 달려간 곳엔, 자신의 진심을 그 누구도 몰라줘서 홀로 빌딩 옥상에 올랐던 정우의 외면당한 진실이 있다.
이찬무, 아들을 구하려 아들의 목을 조이다
그렇게 잃어버릴뻔한 아들을 가까스로 찾은 박태석의 이야기 한편으로 또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로 박태석의 아들 동우를 죽인 범인인 이승호(이회현 분)의 아버지 이찬무(전노민 분)가 바로 또 한 사람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박태석의 아들 동우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이찬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수치를 느낄 사이도 없이'.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동우의 아버지였던 박태석이 그를 형으로 부르며 태선 로펌에 합류한 것도 동우 사건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마치 볼모이자 보상인듯.
이제 15년전 동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자 이찬무는 경솔하게 그 자리에 나타난 아들 승호를 닦아세우지만 발빠르게 cctv를 삭제하는 등 범죄를 숨기기에 급급한다. 그런 이찬무의 모습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국회 인사 청문회를 비롯한 각종 가족 비리 사건에서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 우리 사회 지도층의 상징적 모습이다. 하지만, 아버지 이찬무가 아들 승호를 닥달하고, 그를 감싸려 들면 들수록 아들 승호는 흐트러진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처음 자신이 사고를 쳤던 그때 진실을 알렸어야 한다고, 아버지는 과거에 매여 살지 말라고, 잊으라 하지만, 그의 아들 승호는 말한다. 자신에게는 오직 그날 그 사건만이 있을 뿐이라고. 매듭지어지지 않은 사건은, 아버지가 부정으로 덮은 사건은 아들 승호에게서 미래를 빼앗아 갔다.
박태석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아다면?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동우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박태석도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도 이제 막 세상에 박태석이란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기 시작한 그도, 이찬무처럼 아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아들의 사건을 덮으려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에 걸려 불가피하게 과거를 돌아보게 된 그는 아들의 진심을 헤아려 아들을 구한다.
6회까지 전개 된 <기억> 속 두 아버지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사회 아버지들은, 어른들은 드라마 속 이찬무처럼 하는 걸 '부모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설령 어긋난 방법이라 한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 가는 길에 걸릴돌을 제거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 우리 현대사 속 가족내 어른들의 몫이었다. 그건, 전쟁과 산업화의 속도전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우리네의 생존 본능이기도 했고.
하지만 드라마 <기억>은 박태석의 알츠하이머를 통해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들의 발을 잡아챈다. 당신들이 본능적으로 살아온 그 부모 노릇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냐고 반문한다. 아들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았냐고 묻는다.두 아버지 박태석과 이찬무의 얼굴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우리 함께 이 시대의 아버지, '어른'들의 자리를 생각해 보자고 권한다. 알츠하이머란 가장의 병을 통해 최루성 가족사를 쓰는 대신, 회한의 복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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