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생활을 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한석규가 예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자신은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리스너'가 편하다던 한석규는 쭈뼛거리면서도 주섬주섬 마치 철학 강의에서나 들을 법한 23년차 내공을 풀어 놓아, mc들로부터 '리스너'이기보다는 '말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소크라테스 한석규

고대 그리스의 명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대화법'으로 유명하다. 상대방과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나아가 철학적 명제에 대한 깨달음을 유도하는 것으로, 명연설을 통해 대중의 귀를 현혹시켰던 당시 철학계에서는 획기적인 철학적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크라테스처럼, 한석규는,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후배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통해, 뻔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전개될 뻔한 토크쇼를 구제했다.

물론 <힐링 캠프>가 유도하고자 했던 메뉴얼은 있었다. 한석규란 배우가 어떻게 배우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천만 배우는 아니지만 그가 했다하면 대중적 흥행과 작품성을 담보하리라 믿어졌던 가자 잘 나가던 배우가 뜻하기 않게 오랜 칩거를 하게 된 이유,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예전의 그만큼 해내지 못했을 때 겪었을 마음 고생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말하기가 저어된다고 난색을 표하던 한석규가 '행복하시냐? 언제 행복하시냐?'는 질문을 역으로 던지며 mc인 이경규, 한혜진, 김제동을 초토화시켰을 때부터 <힐링 캠프>는 한석규 버전으로, 그리고 진짜 '힐링'이 되는 시간이 되어 갔다.

그저 후배들에게 연기를 왜 하느냐? 란 질문을 던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그 질문을 되묻곤하는 한석규는 힐링 캠프가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복', '일', '편안한 마음' 중 무엇을 고르겠냐고 3지 선다로 던진 질문에 엉뚱하게 '자연'이라는 기상천외의 답을 선택한 것처럼, 어쩌면 진짜 사람들이 토크쇼에 출연하는 사람들로 부터 듣고파했던 겉으로 드러난 구설 외의 '진실'을 힐링 캠프식의 '우문'과 한석규식의 '현답'을 통해 얻어 듣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한석규입니다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흔히 도용하는 한석규의 나긋하면서도 정감있는 그러면서도 설득력있는 목소리로 시종일관 휘감긴 <힐링 캠프>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어떤 아름다운 노래보다도 매력적인 '리스닝'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23년 만에 처음,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혹은 영원히 조우하기 어려울, 그래서 더 진솔했던 그의 속내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제는 흔해 빠진 '힐링'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생(生)철학'의 시간이었다.

젊은 시절 가장 잘 나갔던 배우가, 젊음을 그저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이 아니라, 앞날이 두려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불확실성의 시간으로 정의내린 것도 그러하거니와, 이제는 히끗히끗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내로라 하는 배우가 여전히 삶은 혼돈의 도가니이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신은 질풍노도의 격랑 속을 헤매인다고 말했을 때, 그런 한석규의 토로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는 김제동의 평가처럼 한석규가 궁금해 텔레비젼 앞에 모였던 사람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쓰레기처럼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견뎌내듯 내 하나의 문제가 버겁지만, 나란 존재가, 세상 속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러기에 '작아져버린' 나를 혹은 거대한 세계를 책임감있게 받아들이고, 또 그러에도 불구하고 남은 인생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파서 하는 사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자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석규가 가진 '주체적 자아'는 위로 이상의 '살아보자'는 용기를 주는 시간, 그것이 바로 한석규에게 '접속'을 했던 <힐링캠프>의 시간이었다.

한 시간 남짓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허허거리며 던져진 한석규의 말들 속에서 그가 살아온 시간들의 구체적 사실들은 잡히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진실한 삶'에 대한 희망이 돌아왔다.

by meditator 2013. 3. 5. 07:38
  • 익명 2013.03.05 10:07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meditator 2013.03.06 14:26 신고 EDIT/DEL

      학교 다니랴 리뷰 쓰랴 고생이 많네요, 날도 푹해지고, 텔레비젼 앞에 앉아있기 보다는 거리를 쏘다니는게 더 어울릴 계절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