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저녁 무렵 당신의 집에 낯 모르는 그 누군가가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해달라고 한다면?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가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라면? 그에 대한 반가움은 있겠지만, 그래도 준비되지 않는 우리집 저녁 밥상을 '개그맨'을 빙자한 방송에 공개한다는 건 어쩐지 무리수다. 차라리 아쉽고 말지. 10월 19일 첫 선을 보인 <한끼 줍쇼>의 1회을 요약한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결국 큰 소리를 치며 숟가락 하나만을 달랑 들고 야심만만하게 떠난 강호동과 이경규의 여정은 7시간의 행보 끝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궁여지책 편의점에서 식사하는 여고생들 틈에 껴서 컵라면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음 회를 기약하며, 그런데 다음 회엔 가능할까?




이경규, 강호동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저녁을 잃어버린 삶
지금도 재래 시장에 가면 간혹가다 만나기도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에 경문을 외며 집집마다 '보시(施)'를 받으러 다니는 탁발승이 있었다. 스님은 음식을 얻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그를 통해 자신의 업을 덜 수 있다하여 '구원'해주는 길이라 당당했다. 이렇게 '보시'가 가능했던 것은 담이 낮았던, 그리고 담만큼이나 인심이 넉넉했던 우리 집과 외부가 열린 '마을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오늘날이라면 아파트라면 경비실을 넘지 못할 것이요, 혹시라도 넘는다 하더라도 당장 업무가 불성실하다 경비 아저씨가 경고를 먹을 일이 될 것이다. 단독 주택이나 빌라라면 문이 열리기는 커녕, 인터폰으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시골이라면 다를까?

그래서일까? 도시의 이경규와 시골의 이경규는 달랐다. 지난 6월 22일 종영한 <예림이네 만물 트럭>을 몰고 오지를 돌던 이경규는 그의 딸 예림이와 유재환과 함께 시골 마을을 누볐다.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드리는 목적에서 였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홀로 계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집에서 이경규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마을 노인정에서도 무사통과였다. 하지만 그렇게 어르신들에게 프리패스였던 이경규가 '도시'로 오니, 그의 '자신만만'이 무색하게 옹색해 진다. 당장 거리로 나서니, 그의 수제자이자, 파트너라는 강호동의 너스레는 백발백중인 반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싶게 인지도부터 떨어진다. 

하지만 강호동의 너스레라고 다 통하지는 않는다. 제 아무리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천하장사'를 내세워도 닫힌 문은 요지부동이다. 예능 대부 이경규라는 이름표도, 철 지난 강호동의 '천하장사'란 타이틀도 무색해지게 결국에 쫄쫄 굶고 만 <한끼 줍쇼>, 첫 회니 '규동'이라 이름붙인 '망원동 브라더스'의 어정쩡한 조합을 각인시키기 위해, 거기에 오히려 굶어서 '한 끼'가 부각될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위해 굶을 만도 하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때늦어 버린 건 아닌가라는 노파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능은 아닐까?
프로그램 말미 강호동은 실패했다 하지 말고 성공하지 못했다로 하자며 자위한다. 그리고 비록 밥은 얻어 먹지 못했지만, '망원동'이라는 동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이란 수식어답게 몇 십년만에 처음 지하철을 타고 망원동에 내려 해가 저물도록 다리 품을 팔았지만, 애써 강호동이 '문학적'이란 수식어를 내세우며 강조한 것도 무색하게, '망원동'이란 동네가 그리 정겹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를 가나, 인기척 대신 꽏 닫힌 문들로 점첩된 도시의 동네를 마주하게 될 뿐이다. 심지어 해가 지니 으슥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매번 거절 당하기도 하였지만, 과연 저 집들 중 얼마나 되는 집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까 하는 회의가 먼저 든다. 



'저녁이 있는 삶', 모 정치인의 슬로건으로 시작된 이 단어, 하지만 도시민의 '저녁'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이제는 '가족'을 이루어 사는 집보다 홀로 사는 이의 가구가 더 많아져 버린 나라에서 아이들이 뛰놀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음식 냄새 풍기는 집을 향해 각자가 달려가 퇴근하신 아버지와 함께 밥상머리에 빙 둘러 앉아 한 끼를 나누던 그 저녁은 이제 '추억'의 한 장일 뿐이다. <응답하라>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붐'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잃어버린 도시 공동체를 기억 속에서 '소환'했기 때문이었으니. 6시부터 8시까지라고 저녁 시간으로 정해놓고 망원동을 두 mc가 헤매는 시간, 그들이 헤맨 골목에는 불이 켜진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겨우 불 밝혀진 집으로 찾아가면 거절 당하기 일쑤니. 지하철에서 만난 신혼의 아내 고백처럼 하루에 한끼도 밥을 나누지 못하는 부부들이 사는 세상에서, 애초에 밥 숟가락 하나 얹을 저녁상을 받을 집이 '희박'한 것이다. 

취지는 좋다. 도시의 저녁을 함께 나누며 잃어버린 도시의 온기를 느껴보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 밥 한 끼의 낭만은 어쩌면 이제 시대 착오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한끼 줍쇼>가 고민해야 할 것은 25년만에 처음으로 만나 어색한 '규동' 커플의 어울리지 않음이 아니라, '저녁'을 잃어버린 '도시'가 아닐지. 그건 그 옛날 '양심 냉장고'같은 캠페인으로 해결될 길 없는 시대의 삭막함이다. 


by meditator 2016. 10. 20.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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