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특집으로 꾸려졌던 여성 멤버 들의 화학제품 없이 일주일 살기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단 두 번의 특집 방송으로 여성 멤버들은 당당하게 <인간의 조건> 정식 멤버로 입성하게 되었다. 주어진 일주일이란 시간을 버티던 그녀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4주차에 걸친 방송을 통해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은영, 박지선, 박소영 여섯 여성 멤버들은 열성적으로 자신들이 <인간의 조건>을 이끌어 갈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보였다.


'화학 제품 없이 살기'란 미션을 받아든 멤버들이 보인 과정은 마치 암선고를 받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 까지의 과정과도 같았다. 화학 제품이라는 미션을 막연하게 받아들였다가, 그게 알고보니, 여성이며, 연예인인 자신들에게 있어, 그간 해오던 모든 겉치례를 벗어던져야 하는 혁명적인 미션이라는 것을 알고 이른바 '집단 멘붕'에 빠지고, 자학과 자기 부정을 거쳐 미션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기 까지의 과정은, 연예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에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많은 '허울'을 필요로 하는 과정인가, 그래서 여성으로서 그 미션이 얼마나 버거운 과정인가를 여섯의 여성 멤버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움에 앞서 여성 방송인으로서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김지민의 모습은 우리 사회 여성의 딜레마를 가감없이 드러낸 모습이었다. 당장 3월 8일에 이어진 남성 멤버들의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기' 미션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에서 샴푸나, 수분 크림등이 날아가고, 최소한의 로션 만이 살아남고, 오히려 안경이나 담배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과정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살아가는 틀의 차이가 고스란히 보여지는 것이다. 


우먼 특집 인간의 조건 - 화학제품 없이 살기

하지만 미션을 수긍한 여섯 멤버들은 언제 '멘붕'이 왔냐는 듯이 적극적으로 화학제품 없는 삶에 도전한다. 집에서 가져 온 천연 비누가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화학 제품 없이 사는 삶에 도전한다. 심지어 생방송을 진행해야 하는 아나운서 박은영이 사상 최초로 멤버들이 급조한 숯으로 그린 눈썹과, 꽃물로 들인 입술 등으로 면피한 채 민낯에 가까운 모습으로 거침없이 내보이기도 한다. 
무공해, 천연 제품의 사용이 사회 일각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찾아보면 '한살림', '생협' 그게 아니라도 그걸 주대상으로 하는 업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섯 여성 멤버들은 그런 완제품을 찾아 쓰는 대신, 마치 만능 칼 하나로 모든 것을 만들어 쓰던 '맥가이버'처럼 그 자신들이 직접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주방 세제에서 부터, 샴푸,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만들어 쓰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여성 멤버들을 정규 편성으로 밀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간 남성 멤버들만의 방송이 지속될 때 <인간의 조건>의 시청률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고심하기도 하고, 안타까워도 했지만 그것이 어떤 지점에서 문제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언제나 미션이 주어지면 남성 멤버들도 열심히 그 미션을 수행해 냈었으니까. 하지만, 여성 멤버들의 일주일이 진행되면서, 그 차이점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남성 멤버들은 미션이 주어지면, 어느새 자신을 엄습해 오는 그 미션의 불편함을 방어하는 수준에서의 미션을 수행하는 수동적 모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내 온도를 몇 도에 맞추면, 거기에 맞추어서 견디고, 버티는 그 정도랄까. 대신 그런 버티는 과정에서의 한데 어울려 사는 남자들의 공동체적 삶이 방송의 주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다 보니, 그런 사람냄새나는 삶의 모습도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짬만 나면 거실 소파에서 자는 김준현이 푸근했고, 밥을 하는 정태호가 친숙했고, 아웅다웅거리는 김준호와 박성호가 흐뭇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저 늘 그런 모습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뻔함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성 멤버들에겐 그 자신의 동력 외에 외부 게스트가 에너지로 충원되어야 하는 상황까지 도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새로운 조합을 맞춘 여성 멤버들은 그 조합의 신선함만큼, 미션에 대해 도전하는 의욕이 남다르다. 여성들로써는 버거운 미션에 당혹스러워도 하지만, 각자 최선을 다해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남성 멤버들의 그것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늘 화장을 해야 하는 그녀들이 소금을 이를 닦고 민낯을 드러내야 하는 그 자체도 볼 거리가 되었지만, 그 볼거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칫솔에서 부터, 샴푸, 비누 등 기초적인 세정 용품에서 부터, 립그로스, 천연 분을 넘어, 향초 등 생활 용품에 이르기 까지의 시도가 볼만했다. 

(사진; tv리포트)

뿐만 아니라, 방송의 꽃인 아나운서가 목욕 가운을 입는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낸 시도에서 부터, 천연 제품을 고수하기 위해 방송 내내 자신이 데뷔 때  했던 개그 꼭지의 한복 의상이나, 짚 머리띠에서 버선에 짚신 까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한복을 고수했던 박은영, 김신영, 박지선의 철저함은 그녀들의 실천에 신뢰를 보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회, 수가 놓인 아얌에, 가죽 당의를 신고, 천연 염색으로 고운 빛을 낸한복을 입고 완벽하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천연 제품을 실천한 김숙은 그저 과제의 실천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다. 그저 이 정도면 화학 제품 없이 살기가 되겠지가 아니라, 매회, 매 순간 그저 화학 제품 없이 살기가 아니라, 그것의 대안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만한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물론 남성 멤버들의 수동적 태도와, 그에 반해 적극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단지 타성에 젖은 것과 새로운 멤버들의 적극성으로만 구분할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적당히 '갑'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한 남성적 삶과, 사회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유리 지붕을 뚫고 살아가는데 익숙한 '을'의 여성들의 습성이 자연스레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이제 정규 편성된 여성 멤버들의 <인간의 조건>은 정체된 프로그램에 활력을 줄 것이며,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할 꺼리와 볼 거리를 줄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9. 11:32

나이가 들어 얼굴에 검버섯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을 발견한 친구가 시술을 권한다. 그 정도는 시술도 아니라고, 70이 넘은 노인도 그 정도 검버섯 없애는 시술은 한다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은 때마다 보톡스를 맞는다, 필러를 맞는다 분주하다면서. 
하물며 저렇게 시술까지 하는 마당에 화장이야 더 말할 꺼리가 되지 않는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이라 하지 않고, 무대에 서지 않는 사람조차도 '분장'이란 말을 즐겨쓴다. 화장을 하지 않는 얼굴을 민낯이라 하며 차마 남에게 들키면 안되는 심각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취급한다.
이렇게 누구나 다 자신의 얼굴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드는 '화장'의 담론이 시험대에 오른다. 바로 두번 째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다.

2월 8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은 다시 한 번 여성 멤버들을 불러 들였다.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소영 등의 기존의 멤버가 잔류한 가운데, 개그우먼 박지선과, 아나운서 박은영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지난 번 여성 멤버 버전 <인간의 조건>이 기존의 남성판 <인간의 조건>이 했던 쓰레기 없이 살기,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 등 미션등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문화적 차별성에 방점을 맞추어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면, 이번 두 번째 미션은 '화약 약품 없이' 살기로 온전히 여성 멤버의 특성에 맞춘 미션이 등장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사진; tv데일리)

남성 멤버들이 일정한 물의 양을 가지고도 쉽게 적응하며 일주일을 버텨냈던 것과 달리, 늘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돋보이는 자존감의 향상 요건이자, 시청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여성 멤버들에게 '화학 약품 없이 살기'는 그 심각성을 고민하기에 앞서, 샴푸, 화장품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상황은 '아노미'적이다. 
특히나 이쁜 개그우먼이라고 인정받는 김지민의 경우에는, 최근에 돋아난 얼굴의 뾰루지로 인해 그것을 가려야 하는 화장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했기에,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조차 느낄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힘들어 한다. 
그런 김지민의 모습은 아마도 일상 생활에서 화장에 의존도가 높은 보통 여성의 반응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모습일 것이다. 트러블 때문에 애초에 화장을 하지 못하는 박지선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이번 미션에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멤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을 떠날 때부터 '화약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지가 주어지고 아지트에 모이자 마자 가지고 있는 화약적 처리가 된 모든 물품들을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넣어야 하는 미션에 여성 멤버들은 크게 당황한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볼 만큼, 화학이란 단어가 막연했던 멤버들은 오히려 화학에 대해 알아가면 갈 수록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일상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화학의 힘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화학 약품 없이 살기 위해서는 샴푸, 화장품은 물론, 당장 입고 있는 옷부터 모두 벗어제껴야 하고, 비닐 포장지에 둘러싸인 먹거리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차분히 화약 약품의 문제점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이 각자의 방송들을 맞닥뜨린 멤버들은 당장 자신의 민낯을 가릴 화학 약품이 아닌 꺼리들을 찾느라 분주하다. 김신영은 눈썹 화장을 하기 위해 갈비집에서 숯을, 피부톤을 위해 방앗간에서 콩가루를, 그리고 입술 화장을 위해 체리를 구한다. 샴푸는 소금으로 대신하고 달걀과 식초로 유연 과정을 거친다. 당혹스러워 하던 김지민도 궁여지책 구해든 것이 밀가루와 꿀이다. 하지만 늘 그녀를 돋보이게 해주던 화약 약품 덩어리인 인조 속눈썹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넘겨는 보지만 누렇게 뜬 얼굴톤과 시큼한 냄새를 숨길 수는 없다.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김숙와 박은영은 화학 약품이 들어 있지 않는 천연 화장품 만들기에 도전한다. 몇 가지의 천연 재료로 약간의 품만 들이면 만들어 지는 화장품을 보며, 수십만원을 투자했던 화장품에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쉽게 만들어 진 것에 비해 막상 사용해 보니 그간 화학 약품 덩어리인 화장품에 못지 않는, 아니 심지어 그와는 다른 차원의 만족도를 주는 천연 화장품, 천연 세제에 경이를 느껴간다. 

김숙, 박은영이 재빠르게 찾아 내었듯이, 우리가 주위에 눈을 돌리고 보면 화학 약품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천연 세제, 천연 화장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시간을 투자해 서점에서 책을 독파했던 박지선의 깨달음처럼, 더께를 두르듯 일상을 겁박한 화학 약품의 세상이 몇몇 천연 제품을 찾아내고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물만으로도 얼만든지 깨끗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실천하는 사람도 있듯, 결국은 이런 '화학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되돌아 보는 우리 삶의 담론이 문제이다. 

늘 몇 겹의 화장으로 짙게 자신을 치장하고, 매일매일 샴푸에, 린스에, 에센스까지 덧칠을 하며 머리를 감아야 하고, 때마다 유행에 맞춰 옷을 사입어야 하는 '소비'의 담론이, '화학 약품 없이 살기'의 일주일을 통해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것이 이번 <인간의 조건>의 미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한 몸 깨끗이, 아름답게, 내 한 입 맛있게, 넉넉하게 만드는 그것들이, 결국은 내가 일부인 지구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가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시간, 그래서 조금은 덜 아름답고, 덜 깨끗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되는 것, 그런 신선한 담론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9. 11:00

2014년을 맞이한 <인간의 조건>의 첫 미션은 한 겨울에 어울리는(?) '난방비 없이 살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없이 살기' 미션이 기간 동안 일관되게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없던가, 쓰레기가 없는 생활을 유지한 것과 달리, '난방비 없이 살기'는 그것을 실행하는 기존의 미션과 달리, 미션 기간 동안 '~없이 살기'라는 목적을 맹목적으로 고수하지 않았다. 

첫 날과 둘째날은 원래의 목적에 충실했다. 
첫 날, 게스트 하우스의 난방을 끊어버리자, 더운 물도 한 방울 나오지 않고, 방안 온도는 급격하게 내려가, 창가 옆에서는 거의 2 도  정도가 측정될 수준이 되었다. 온도로만 측정되지 않는 추위는 더했다. 온기가 드리우지 않는 바닥에서 새벽으로 갈수록 차오르는 냉기, 열려진 방문 밖에서 스멀스멀 스며드는 찬바람, 자고 일어난 멤버들은 온몸이 쑤시는 경험을 했고, 밤새 뒤척인 덕분에 전혀 하루의 피로가 풀리지 않는 듯 했다. 


(사진; 스타투데이)

둘째 날, 바깥만큼 추운 실내를 경험한 멤버들은 각자 최선의 피한 방법을 동원했다. 등산용 침낭에, 실내 텐트에, 창문용 뽁뽁이 비닐에, 바닥에 깔 은박비닐은 물론, 수면 양말에 잠옷에, 내복에, 군대용 깔깔이까지 각장 다서 여섯 겹의 옷을 껴입는 것 당연지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인간의 조건>을 여는 건 추위에 시달린 힘겨운 비명이었다. 그리고 미션을 약올리기라도 하는 듯 동장군은 더 거세어 질 뿐이었다. 

그리고 셋째 날, <인간의 조건>은 지금과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적정 온도 찾기' 막무가내로 추위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난방비를 최소화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조건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를 추동한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유난히도 기세를 떨치던 2013년 말의 추위였다. 하지만 그런 외적 조건만은 아니다. 멤버들이 직접 발로 찾아 뛴 난방비 zero를 향한 실험 현장에서 마주친 것은 이미 지어진 게스트 하우스 조건에서 난방비를 없앤다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 때문이기도 했다. 즉 난방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애초에 집 자체를 다르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방비를 하나도 쓰지 않을 수 있는 이른바 passive house는, 몇 겹의 비닐을 두르는 식의 방풍이 아니라, 애초에 집을 지을 당시 벽과 벽 사이에 엄청난 두께의 스치로폼을 넣는 식의 방한용 건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은 맹목적으로 난방비를 없이 사는 전략 대신에 적정 온도라는 현명한 전략적 수정을 택한다. 하지만 첫째, 둘째날의 잠 못이루던 밤의 혹한 덕분에, 멤버들은 겨우 10도, 실제로 추위를 느낄 정도의 상화에서도 한결 나은 밤을 보낸다. 14도로 올린 날은 제법 잘 만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실제 정부가 권장하는 적정 실내 온도 18도로 자던 날, 멤버들은 그간 겹겹이 싸매고 있던 파카 등 겉옷을 벗어제낀 채 내복 바람으로 이불을 차내며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인간의 조건>의 수정된 전략, 적정 온도로 찾아가기가 절묘했던 것은 혹한의 시간 덕분이다. 그들이 애쓰고 버티는 그 이틀의 시간에 대한 간접 경험 덕분에, 시청자들조차, 겨우 10도, 14도의 공간이 충분히 지낼만 하다는, 18도 정도면 금상첨화라는 공감에 이르게 되었다. 아침이면 온 몸이 부서져라 느껴지는 고통이 느껴지는 이틀이 없었다면 막연한 난방비 절약은 그저 슬로건이 되었을 뿐이다. 이봉원과, 양상국이 찾아간 시골의 촌로의 명언처럼 겨울은 추운 것이라는 진리를 우리는 화석연료의 늪에 빠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준호가 찾아간 홀로 사는 할머니처럼, 우리가 덮다 싶을 만큼 난방을 때우고 사는 동안, 그 이면의 그늘에 난방비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이 있다는 사실 또한 놓치지 않았다.

(사진; osen)

추우니까 촘촘히 붙어 앉아있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본능 때문일까, 난방비 없이 살기 미션에 도전한 이번 기간은 유독 멤버간의 시너지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이돌 등의 이질적 성향의 멤버가 아니라, 이봉원, 김기리라는 선후배 동료와 합을 이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솔선수범 일을 나가는 후배들을 위해 밥을 해먹이는 선배 이봉원의 따스한 마음에, 반짝 반짝 막내의 몫을 톡톡히 해낸 김기리까지, 그 어느때보다도 게스트의, 그리고 게스트와의 시너지가 온기없는 게스트 하우스를 훈훈하게 덥혀 주었다. 

난방비라는 특수한 조건 덕분일 지 몰라도 달라진 <인간의 조건>의 융통성있는 궤도 수정, 그리고 시너지 넘치는 게스트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2014년의 <인간의 조건>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4. 1. 26. 11:26

2014년 새해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 오프닝에서 김준현은 자신있게 말한다. 향후 7년 정도, 작년 연말 연예 대상 시상식에서 <인간의 조건> 팀이 받은 '실험정신상'을 대신할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김준현의 말대로, 실험적 정신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은 <인간의 조건>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인데,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결코 연예 대상에서 수상을 할 일 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독보적인 위치로 자부심을 내보이는 <인간의 조건>이지만, 프로그램의 성격 외, 동시간대 타 방송사와의 경쟁으로 들어가면 위축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의 <세바퀴>가 1위의 자리를 탈환하는가 싶더니, 이젠 케이블의 <히든 싱어>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이젠 특집 <히든 싱어>에 밀리기 까지 한다.
이렇게 작품의 내용으로는 자부심을 한껏 뽐내지만, 타 방송사와의 경쟁에서는 위기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이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사진; tv리포트)

1월 11일 선보인 <난방비 0에 도전하기>에서 보여지듯이, <인간의 조건> 제작진이 우선 선택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강력한 미션을 내세우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촬영이 이루어지던 지난 연말, 날마다 갱신하던 한파 속에서, <인간의 조건> 팀에게 주어진 것은 10도의 냉기가 가득한 아지트였다. 영하가 아니라니 다행이라고. 게스트로 등장한 이봉원이 딱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8~10 도가 냉장고 적정 온도라고. 결국 한파주의보 속에 멤버들은 온수 역시 나오지도 않는 냉장고 집에서 1주일을 보내야만 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 겨울 얼음 동동 띠워진 냉면을 먹으며 겨울을 만끽하듯, 추위에 떠는 <인간의 조건>을 보며 자신이 누리는 안온한 온기를 역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추운 냉골에서 서로 껴안듯 도란도란 부대끼는 멤버들과, 서로가 추울까 내복에, 수면 바지에, 심지어 군대 깔깔이 까지,  각자 바리바리 싸들고 온 훈훈함은 냉기는 커녕 따스함을 배기시킨다. <인간의 조건>의 제 맛이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도 바뀌었다. 그동안, 제 아무리 유명해도, 멤버들에게는 낯설었던, 그래서 어쩐지 함께 게임을 해도 겉도는 거 같고, 얼굴 알고, 서로 이제 친숙할 만하면 헤어져야 했던 아이돌 멤버 대신에,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개그맨 선후배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흔히들 개그맨들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온갖 재밌는 행동을 해서 평소에도 재밌는 사람이라는 속설과는 달리, 실제 개그맨들이 대부분 진지하고 숫기가 그다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는 건,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접해야 할 때마다 진땀을 흘리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을 통해 익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잘 모르는 아이돌 멤버의 등장은 그들과 섞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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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이제 새롭게 등장한 김기리는 이들의 <개그콘서트> 직속 후배로, 그런 시간을 압축할 수 밖에 없는 장점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이미 <개그콘서트>를 통해 연예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람이지만, 예능에서는 신선한 캐릭터이기에, 이제 1년 여 여섯 멤버의 면면이 익숙해져 가는 <인간의 조건> 자체에도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었다. 잘 아는 막내 동생을 얼르고 달래는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활기차 보였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없이, 그 누구랑도 함께 붙여놔도 바로 푸근한 그림이 나오는 김기리의 선택은 뻔하지않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선한 김기리를 보니, 또 다른 개그 콘서트의 익숙한, 하지만 예능에서는 신천지인 인물들의 활약을 어떨까 지레 기대를 해보게도 되는 것이다. 첫 방에 불과한 <사남 일녀>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거, 별거 없다. 정말 막내딸 같던 이하늬의 천진난만함이 다다. 부디, 광활한 <개그 콘서트>라는 풀을 <인간의 조건>이 올 한 해 제대로 써먹어 보길 바래본다.

덕분에 이 날 방송의 화룡점정은 당연히 김기리의 몰라 카메라가 되었다.
등장부터 개구장이 막내동생처럼 그리고 <인간의 조건>게스트가 되었다는 기쁨으로, 공중으로 한  1m는 부양된 듯 의기양양해 하던 김기리가 선배들이 짜고 치는 몰래 카메라에 희생되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은 물론 가학적이었지만, 그의 순수함을 한껏 보여준 정점이었고, <인간의 조건>에 모처럼 등장한 클라이막스였다. 

<꽃보다 누나>가 왜 별 거 아닌, 길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겠는가. 이제는 다큐에서도 드라마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그간 부족했던 것은, 단타의 잽은 난무하지만 전체적 드라마를 만드는 고비가 없었는데, 친근한 후배 김기리가 등장해 단번에 그걸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어려워하고, 당황해 하고,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고, 그런 그가 안쓰러워 선배들이 물고 빨고 하는 장면은, 그간 <인간의 조건>에서 드물었던 진심이 보여진 장면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인간의 조건>이 관록의 <세바퀴>를 이기기 위해, 또 다른 절창의 감동<히든 싱어>를 제끼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체취인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인간적인 체취'는 김기리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선배로 등장한 이봉원은, 야구 방망이를 들고 군기를 잡겠다는 모습과는 달리, 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이른 아침 밤새 추위로 잠못들다 곯아 떨어진 후배들을 위해 솔선수범 상을 차린다. 늦게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 김기리를 위해 상을 차려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였기에, 그를 믿고 날뛰던 김기리가 그의 호령에 더 당황스러워 했던 것이다. 김기리의 말처럼, 선배이기 보다는 아빠같은 훈훈함으로 다가왔기에. 그런 이봉원의 재발견도 또 다른 '인간적인 체취'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선후배의 훈훈한 모습으로 시작된 '인간적인' 새해의 출발이 좋다. 부디 이 분위기를 좀더 농밀하게 끌어내, 새해에는 '실험적' 시도 이상, 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인간의 조건>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12. 12:11

지난 연말 kbs연예 대상에서 <인간의 조건> 팀은 '실험 정신상'를 수상했다. '아나로그 정신'의 발현이라며 화제를 끌며 첫 화두를 뗀 것에 비하면 조촐한 결과였다. 그를 두고 '시상식이 학예회냐, 그러려면, 시청률은 안나오지만, 네 마음은 다 알아' 상을 주지 그러냐'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jtbc <썰전> 허지웅) 시청률도 마찬가지다. 1회, '쓰레기없이 살기'에서는 10%를 넘으며 관심을 끌었고, 그 이후에도 그 언저리를 오가며, 동시간대 경쟁작인 <세바퀴>를 눌렀지만, 이제는 <세바퀴>를 이기기는 커녕, 특집으로 한번 방영한 여성판 <인간의 조건>보다도 못한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결과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1월4일 설 특집 편 <인간의 조건>에서는 시청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지지하는 층을 '매니아'라고 칭하는 애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청률이라는 가시적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이 받은 상이 '실험 정신'상이듯, 그리고 지난 1년간 <인간의 조건> 팀이 환경부 등에서 받은 여러 수상 실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조건>은 공중파 예능으로서는 보기 드문, 우리의 문명적 삶을 되돌아 보는 건강한 화두를 프로그램을 통해 발현한 좋은 예이다. 1월 4일 방영된 송참봉네 농장 MT를 통해 되돌아본 1년을 보면,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젼 없이 살기를 필두로, 쓰레기없이 살기, 원산지 알고 먹기, 자동차 없이 살기 등, 현대인이 자신의 삶에서 반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들이 총망라되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온몸을 굴려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이 실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지난한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1년만에 주어진 상이 겨우, '실험 정신상'이라는 구차한 명색에, 이제는 설마 없어지진 않겠지라며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요 를 읍소하는 처지라는 건 안쓰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조건>이 지향하는 다양한 문명적 삶에 대한 반성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지난 여성판 <인간의 조건>이 이슈가 되며 화제를 끌고 남성판에 비해 좋은 시청률을 나타낸 것을 보면,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처음 텔레비젼, 컴퓨터, 핸드폰 없이 살기의 파일럿 프로그램 때, 그리고 1회 쓰레기 없이 살기의 화제성을 떠올리면 얼마든지 사람들은 이런 아날로그한 시도에 관심을 가질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겨우 1년의 문턱을 힘겹게 넘어서고, 그럼에도 이 좋은 프로그램이 항구적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인간의 조건>의 위치는 애매하다. 관찰 예능이 대중적 관심의 중심이 되는 트렌드에서, <인간의 조건>은 관찰 예능적 성격과,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과도기적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1박2일>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던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라는 관찰 예능으로 넘어가기 전 런칭했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건>의 위치가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조건>이 가지는 관찰 예능이기도 하고, 리얼 버라이어티 이기도 하는 복합적 성격은, 양날의 칼로써 프로그램에 작용한다. 양자가 적절히 잘 조화되었을 때는, 금상첨화요, 그렇지 않았을 때는 말 그대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매니아 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처지에 이른 <인간의 조건>은 전자 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처지라 해도 큰 손색이 없을 듯하다. 양 자의 재미를 다 가지면 좋은데, 관찰 예능도 아니고,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도 어정쩡한 그런 위치라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 답을 '역지사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찾아보자. 나영석 피디가 새롭게 만들어 케이블임에도 전국민적 화제를 끌고 있는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시리즈, 그리고 나영석의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시즌 3를 역시나 화제의 중심을 올려놓는데 성공한 <1박2일>을 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마자, 제작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바로 등장하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잡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의 짐꾼 이서진, 그리고 <꽃보다 누나>의 짐 이승기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손에 잡히는 명확한 캐릭터를 잡고, 이어서, 회를 거듭할 수록, 다른 캐릭터의 맛을 더해간다. 그래서 처음엔 이서진과 이승기가 궁금해서 보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다른 할배들의 매력에, 다른 누나들의 새로운 면에 끌리면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것이다. <1박2일>도 마찬가지다. 당장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김주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자신이 토로하듯, 6개월 이상을 드라마를 해도 몰라보던 사람들이 단 몇 주만에 김주혁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이 <개그 콘서트>를 통해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개그맨들이긴 하지만, 과연 지난 1년 <인간의 조건>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되돌아 보
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첫 회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텔레비젼, 컴퓨터, 핸드폰 없이 살기에서만 해도 아날로그적인인 삶에 힘들어 하다가 슬슬 그 맛에 새롭게 눈을 뜨고 행복해 하는 김준현 등의 새로운 모습이 관심을 끌었다.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는 지렁이까지 키우며 애를 쓰는 양상국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후로는, 딱히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는 멤버라 없다. 늘 여섯 멤버는,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른 캐릭터로서의 성장이 없다. 그들을 늘 형제 같고, 모이면 게임을 하고, 즐겁다. 그뿐이다. 희로애락이 없는 캐릭터는 밋밋하다. 그냥 오늘 보아도, 다음 주에 보아도 늘 똑같다면 무슨 꼭 보아야 할 의무감이 들까. 그렇게 캐릭터 변주에 실패한 제작진은 외부의 사람를 게스트로 들이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활기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껏 제작진이 불러모은 게스트는 대부분 아이돌이며, 그들과 멤버들과의 시너지는 아이돌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편차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아이돌이라서 장땡인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안타까운 이유는 정작 좋은 게스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섯 멤버라는 충분히 인간적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원을 가지고도, 여전히 납작한 캐릭터의 변주 밖에 해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의 한계이다. 1월4일 방영분에서, 마지막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정태호는 말한다. 차를 타고 오면서 김준현과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결혼도 하고 그러니까 꿈이 옅어지는 거 같다고, 어떻게 그런 감동적 이야기를 평면적 멘트로 나열하게 할까. 그렇게 말로 때우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오면서 김준현과, 정태호가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그 이야기가 감회어린 대화로 나왔다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그 두 사람이 말하는 늘 화이팅 넘치지만, 그래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김준호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에서 김준호는 그저 늘 짖궃은 철딱서니 없는 큰 형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화이팅 넘치는 큰 형의 이미지는 지난 1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OSEN)

반면 그 시간에, <꽃보다 누나>는 무얼 보여주었는지 보면 <인간의 조건>의 패착을 더욱 더 잘 알 수 있다. 촬영 6일차 늘 스태프들과 함께 해야 하는 김희애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그런 김희애의 심정을 윤여정의 첨언으로 공감을 끌어낸다. 이제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자연스레 녹아들 무렵, 그래서 슬슬 권태로울 시점에, 새로운 갈등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는 그게 없다. 늘 그들은 모이면 좋고, 희희낙락하고, 흥겹다. 미션을 통해 겪는 괴로움은 외면적이다. 그들이 토로하는 고통은 몇 마디의 단어로 마감한다. 가족을 보여주고, 집을 공개하는 것이 성장은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 캐릭터, 인간적 맛의 변주가 이루어지지 않는 멤버들이 보여주는 미션의 마력으로 시청자를 사로 잡기에 시청자들은 쉽게 변심하는 애인과도 같다. 정이 들지 않는 캐릭터를 지켜봐야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지난 1년간 해온 미션들은 다종다양했고, 미션을 수행하는 강도가 결코 낮다고 말할 수 없다. 정말 '실험 정신상'을 받을 만큼 충분히 고생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처음엔 미션만 주어지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멤버들이 이젠 어떤 미션이 주어져도 크게 당황치 않고 딱딱 해내듯이, 제법 능수능란해 졌다.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메꾸어 가는 건, <개그콘서트>를 재연한 듯한 그들의 번다한 게임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워가기엔 역부족이다. 게스트가 그걸 해줄 수 없듯이 말이다. 

정태호가 집안 일을 하기 싫다며 버둥거리고,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모습도 그저 미션의 일부로 흘려 버린다. 그가 4시간을 걸어서 미션 장소에 오는 것도 뒷모습 몇 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때운다. 그 시간에 대신 양상국의 데이트와, 시끌벅적한 MT 장소의 게임이 화면을 채운다. 아직도 사람들이, 시청자들이 무엇에 약한지, 무엇에 흐물흐물 무너지는지 모르는 구성이다. <인간의 조건> 1년, 여전히 여섯 멤버의 인간적 매력에 갈증이 난다. 부디 2014년에는 이 멤버들 각자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인간적 매력마저 만점인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를 끌고, 2014년 말에는 '매니아 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애잔한 모습 대신, 스스로 1년간 수고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5. 09:18

이번 <인간의 조건> 미션은 스트레스없이 살기이다. 시간과 일에 쫓겨사는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없는 삶이라니!  스트레스없이 살기라는 미션를 받아든 순간, 스트레스의 불가피함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는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미션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여섯 명의 개그맨들을 차근차근 스트레스학의 개론부터 시작해 간다.


스트레스없이 살기 미션을 풀어내기 위해 멤버들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것들을 써보고,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한다.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어떤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늘 멤버 중 엄마 노릇을 자청했던 정태호, 내세울 것이 없다 생각하여 늘 남보다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열심히 일을 하려 했던 정태호에게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말하듯,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결국 정태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과정에서 등장한 '감정 노동'이란 단어는 요즘 현대 산업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자살, 우울증' 등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산업 재해를 낳으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큰 공감을 낳았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 그 반대 급부로 감정 노동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 생긴다는 이면의 진실이 시사적이다. 

(사진; 스타투데이)


당연히 스트레스를 탐구한 미션은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미션으로 이어진다. 착한 엄마 노릇을 하던 정태호는 이번 미션에서만은 아지트의 요리사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요리를 안하는 것만으로도 정태호는 한결 편안해 한다. 그런 정태호의 모습에서 우리네 가정의 주부들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언제나 다른 멤버들이 부산하게 미션을 향해 움직일 때 그 둔중한 덩치 만큼이나, 조금 느리게 한발 비껴서서 미션을 맞이하는 김준현은 이번에도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열중하는 멤버들과 달리, 느긋하게 스트레스를 피해가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즐겁게 먹고, 심지어, 스트레스에 덜 시달리기 위해 일도 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일탈'을 즐기기 위해 나선 곳은 공원 벤치이다. 통기타 하나를 튕기며 노래를 부른다.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르고~' 김광석과 이상은의 노래가 그의 입에서 나직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기한듯,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먹거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노래를 마친 김준현은 그의 노래의 값으로 받은 핫바를 물며 말한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의 자신도 이렇게 거리에 나와 노래를 불렀었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았었다고, 그러면서, 일탈은 과거의 자기를, 이제는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불러내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을 넘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을 찾아 위로도 해주어야 한다. 직업적인 스트레스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박성호는 며칠간 냉전 중이었던 아내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김준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세 아이의 아빠 김대희를 찾는다. 박성호와 김대희의 시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장의 고뇌이다. 함께 나누려는 가족과, 그것을 혼자 감당할 짐이라고 생각하는 가장의 딜레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쉬러 가고 싶지만, 그것이 제 2의 직장이 되어버리고 마는 육아의 딜레마,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현대인의 참회록같은 스트레스없이 살기 미션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는 미션을 행간의 한 줄로 다룬다. 대부분 함께 어울려 짜하게 게임을 하고, 벌칙을 수행하는 시끌벅적한 시간들로 채워진다. 지난 번 광희에 이어, 합류한 택연으로 인해, 안그래도 여섯 멤버로도 중구난방으로 채워진 듯한 미션은 과부하가 걸린 듯 달려간다. 미션의 내용은 스트레스없이 살기인데, 한 시간 남짓한 시청 시간의 감상은 떠들썩한 잔칫집을 보고 난 느낌이다. 거기로 나가 웃통을 벗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프리 허그를 하고, 심지어 볼 뽀뽀를 해달라고 애걸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결했다고 한다. 즉자적이고, 감각적인 일탈이, 관조적이고 철학적인 일탈의 잔향조차 날려버린다. 

되돌아 보면 <인간의 조건>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젼 없이 살기라는 단순 미션을 '아날로그한 삶'으로 승화시켰을 때였다. 말 그대로 <인간의 조건>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여섯 멤버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이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조건>은 스스로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인간의 조건>의 본향을 지켜 가는 것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래서 <인간의 조건> 팀이 선택한 것은 광희, 택연 등 아이돌 자원의 유입으로,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의 참여와, 본향의 목적이 잘 어우러진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최근 <인간의 조검>은 '아날로그한 인간의 향취'와 오락 프로그램 사이에서 늘 줄타기를 하거나, 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에 함몰된 듯한 느낌이 든다. 

(사진; 스포츠 월드)

과연 토요일 늦은 밤 떠들썩한 <세바퀴> 대신 <인간의 조건>으로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정태호는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의 고민과 그의 고민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가사에서 해방되려고 하는 발버둥과, 몸에 문신을 하면서까지 착한 사람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일련의 과정을 조금 더 이번 스트레스 없이 살기의 중심 스토리로 엮어 갔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조금 더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훌륭한 주제와 좋은 자원을 <인간의 조건>은 산화시켜 버린다. 

아이돌 게스트를 초대한 <인간의 조건>은 정태호의 스토리를 차근차근 보여줄 여력이 없다. 그는 열외로 밀려난 채 택연을 중심으로 한 오락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욕심만 드러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뻔한 개그맨들의 웃기려고 애쓰는 쇼가 될 뿐이다. 웃음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처음 시청자들이 눈길을 돌린 게 여섯 멤버가 웃겨서가 아니다. 웃음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과정의 양념일 뿐이다. 양념이 센 음식은 쉬이 물린다. 


by meditator 2013. 12. 15. 11:06

'서로 가까이에 인접하여 사는 집'을 이웃이라고 한다. 가족애가 우월한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웃을 '이웃 사촌'이라며 혈육만큼 진한 사이로 인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 사촌'도 옛말이다.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는 '주차 문제'나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한 시시비비 혹은 심지어 살인까지도 초래하는 사건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무색해 지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허긴 가까운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세상이다. 그렇게 변화된 의미(?)의 '이웃 사촌'의 세상에서, kbs2의 <인간의 조건>은 '이웃의 도움으로만 살기'라는 난해한 미션에 도전했다. 


그간 주어진 <인간의 조건>의 미션들이 그 어느 것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었지만, '이웃의 도움으로만 살기'라는 미션이 더더욱 난감해 보였던 것은 바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곤란함에 있다.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나 '쓰레기 버리지 않기' 같은 것은 나 하나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친구'를 찾고, 돈없이 사는 데 필요한 '물물교환'을 위해 측근 누군가를 찾거나, 간혹 이웃의 도움을 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온전히 이웃의 도움으로만 6일을 살아야 한다니! 그것도 '요즘'같은 세상에!

여섯 멤버들에게 주어진 미션이 더더욱 난제인 이유는 그들이 미션 때마다 이용해 왔던 연남동 게스트 하우스 때문이기도 하다. 그간 미션 과정 중에 가장 많이 이용했던 연남동 게스트 하우스는 그만큼 촬영으로 인한 이웃들의 피해 정도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 촬영이라는게, 그저 출연자들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촬영하기 위한 스텝에, 출연자 개인 스텝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공사(?) 이다 보니,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연남동 게스트 하우스가 그간 촬영으로 인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번잡했으며, 그로 인해 주민들의 피해가 작심했을 것이며 그로 인한 주변 이웃의 불만도 종종 표출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 난감한 상황을 제작진은 역설적으로 활용한다. 그저 주변 이웃에게 입에 발린 사과 몇 마디를 전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조건>의 미션으로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를 제시한 것이다. 
왜 이 미션이 기발한 것인가는 3주에 걸쳐진 미션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 설명된다. 당장 한 끼조차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연남동 동네 속으로 들어간다. 다짜고짜 이웃집의 문을 두드려 아침 밥을 구하고, 집에 남은 멤버들을 위한 음식 적선을 부탁한다. 거기서 조금 더 진화하면 체계적인 끼니 구하기에 돌입한다. 동네 문화센터에 들러 거기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이웃들 얼굴을 익혀가며 먹거리를 구하거나, 그곳 직원들의 식사에 숟가락을 얹는 식이다. 한 발 , 한 발 연남동 동네 주민의 삶 속으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스며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뜨네기 연예인들이, 야곰야곰 들어와 동네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말 신기한 것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들어와 밥을 적선하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끼니를 나누어주는 이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이 먹는 밥상에 수저 한 벌을 더 얹어 식사를 함께 하고, 곳간을 열어 가진 음식을 나누어 주고, 심지어 깨질지도 모를 그릇까지 선뜻 빌려주는 이웃이 여전히 서울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을 여섯 멤버들은 알아간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친근감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집 문을 열어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스스럼없는 행동을 하는 '이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 미션은 일정 정도 성과를 얻은 것이라 보여졌다. 가까운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했다. 여섯 멤버가 6일을 이웃의 덕분으로 살아갈 만큼. 

물론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가 그저 이웃집에 숟가락 하나 얹는 미션이 아닌 만큼 여섯 멤버들은 이웃에게 받은 도움을 갚아나간다. 밤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는 여성들과 함께 늦은 밤길을 걸어주기도 하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를 위해 도시락 배달에 나서기도 한다. 그저 밤늦은 시간에도 시끌벅적한 촬영을 견뎌준 이웃에게 '떡 한 덩이'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벌였던 행사를 결국 연남동 동네 잔치까지로 확장하여 멤버들의 감사는 진화한다. 40여년을 한 곳에서 살아온 분들이 계신 곳이지만, 이제는 얼굴을 아는 이웃보다 그렇지 않은 이웃이 더 많은 곳이 된 연남동에서 동네 잔치를 통해 주민들은 이제는 서로 거기를 지나다 인사라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간다. 그저 동네에서 자주 민폐를 끼치던 연예인들이었던 <인간의 조건> 멤버들도 이제는 떠나는게 아쉬운 동네 주민이 되었고. 이웃에게 끼치던 폐를 갚기 위해 시작한 미션이었지만, 지금까지 미션 중 '자각'과 '계몽'을 넘어선  '뿌듯한' 결과물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성과을 얻어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연남돈 주민 잔치와 함께 병행하여 보여졌던 박성호가 벌였던 구미시 동네 잔치는 상대적인 초라함의 기억만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동안 연남동 주민들 사이에 스며들어 차곡차곡 관계가 쌓여진 행사와 그렇지 않은 행사는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 지방판으로 속편의 형식으로 기획했다면 더 좋았을 부분이다. 

또한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의 과정이 연남동 주민들과의 관계 설정에 치중한 부분도 아쉽다. 그간 <인간의 조건>이 매 미션마다 그 미션에 어울리는 공공부분의 견학을 했던 분량이 꼭 들어갔었는데, 이번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 미션에서도 실제 마을 공동체를 잘 꾸려내고 있는 '성미산 공동체 마을'이나 실제 <다큐3일>을 통해 방영된 '산새마을'같은 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예 '성미산 마을 공동체'같은 경우는 '공동체로 살아보기'란 미션으로 권장해 보고 싶다. 

멤버간 대화에서도 등장했듯이 파일럿으로 잠깐 방영된 <인간의 조건> 여성편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결국 남성판 <인간의 조건>의 숙제로 남는다. 이제 멤버별 개성이 충분히 알려진 상황에서, 결국 미션 별로 진행되는 <인간의 조건>이 계속 승승장구할수 있는 방향은, 탁월한 기획력 밖에 없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에게 끼쳤던 민폐를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란 미션을 통해 연남동 동네 잔치로 승화시킨 이번 미션은 성공적이다. 더더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시 멤버 개인으로 돌아가 자신이 실제 사는 곳의 이웃을 방문하는 후일담까지 곁들인 마무리는 '화룡점정'이었달까.


by meditator 2013. 11. 24. 10:57
"광희야~"

인간의 조건 멤버 중 하나가 광희를 부른다. 그런데, 헐! 돌아다 보는 아이돌 광희의 얼굴이 무성하다. 밤새 수염이 자란 것이다. 

상투적으로 이야기되는 아이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수염이란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에 특별 멤버로 초빙된 광희는, 밤새 자란 민낯의 수염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뿐만 아니다. 인간의 조건답게, 그간 시끄럽고 정신사나운 아이돌이라던 그에게 씌워진 선입관을 거둬내고, 털털하고 사람좋은 인간 황광희를 자연스레 보여준다.

번번히 동시간대 경쟁자 <세바퀴>와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시던,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다섯 멤버의 시너지가 시청자들에게 권태기를 느끼게 할 즈음에, <인간의 조건>이 모색한 방식은 각 미션 별로 특별 멤버를 초빙하는 것인 듯했다. 
그래서 '휴가의 조건' 때에는 엠블랙의 멤버 이준이 합류해, 멤버들과 24시간을 온전히 보냈었다. 처음엔 박성호 등이 낯을 가리기도 했지만, 엄마같은 정태호의 배려로, 이준은 함께 목공을 하기도 하고, 마빡이 퍼포먼스를 하는 등, 아이돌이 된 이후에 누리지 못했던 '휴가'의 즐거움을 누리고 떠났었다. 
그리고 이번 '책 읽으며 살기' 미션에서는 아이돌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광희가 미션 전체에 함께 하기로 한다. 
인간의 조건 광희
(사진; tv데일리)


이준이나, 광희는 그들이 '엠블랙'이거나,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이지만, 그 그룹의 멤버임과 동시에, 여러 예능을 섭렵하며, 예능돌로써 더 이미지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 과연 이미 예능을 통해 소비된, 혹은 소모된 이미지 외에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등장이 정체기에 들어선 <인간의 조건>에 활력소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이라고 말하기조차 무색한 장수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도, 기가 막힌 게스트의 선정과, 그들과의 예외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무한도전의 의의를 적절히 살려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처음 초라하게 몇몇 주민들을 앞에 두고 했던 '무도 가요제'가 <무한도전> 1년 농사 중 가장 풍성한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미션이 되었고, 시청률도 그런 반응에 맞게 반등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무도 가요제에서 유희열과 유재석 팀의 경우, 콜라보레이션의 주도권을 누가 가지고 가는가를 놓고, 포털 사이트에서 투표를 할 정도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런 기발한 게스트에 비해, 이준이나 광희라는 이미 꽤 알려진 아이돌의 투입은 그런 면에서 신선도가 꽤 덜어지기는 하다. 게다가 이준의 경우, 하루를 잠깐 다녀가는 것으로, '시너지'를 논하기에는 전체 미션에서의 영향력이 미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광희는 온전히 미션에 함께 합류하면서, 외부 게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의 효과를 제대로 논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 외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책 읽으며 살기' 미션에서 광희의 합류가 긍정적이 된 것은, 상당 부분, 그간 알려진 아이돌 광희 이외의 매력을 <인간의 조건>이 발견해 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희 자신이 더 보여줄 것이 남은 매력적 인물이라는 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멤버들이 원래 말투가 그래? 라는 질문에, 설마 제가 원래 그랬겠어요? 라며 학교 다닐 때도 시끄럽긴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잘 생긴 멤버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니, 이런 컨셉으로 밀고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라는 광희의 허심탄회한 매력말이다. 

광희는 그저 말투가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아이돌이었다. 
심지어, 동료 아이돌 '시크릿'의 한선화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었어도 그의 그런 면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와 함께 얼크러져 지내는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각인된 광희 이외의 매력이 슬금슬금 드러난다. 
처음엔 24시간 따라다니냐며 투덜거렸지만, 민낯의 수염투성이 얼굴을 꺼리낌없이 드러낸 정도로 털털한 모습은 또 색다르다. 늘 성형돌이라는 이미지도 되새김질 된 그의 얼굴, 여전히 자신의 얼굴은 조심해 달라는, 보톡스의 효능에 대해 너스레를 떠는 걸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며칠을 지낸 멤버들이 자세히 보니 너 잘 생겼다라고 말해 줄 정도로, 찬찬히 광희라는 사람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그저 가벼운 사람이려니 하는 예상을 뛰어넘는 3시간의 독서 미션을 바쁜 아이돌 생활 중에도 해내는 성실함도 다시 보게 만든다.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 책을 소개 받는 미션에서, 대뜸 일면식도 없는 홍진경을 찾아가, 당신의 성취를 존경한다며 누나라고 서슴없이 너스레를 떠는 넉살도 신선하다. 더구나, 사업도 하고, 일도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그의 생각도 제법 주관이 확실해 보인다. 세간의 사람들이 광희라는 아이돌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생각 외로 만만치 않다. 즉, 이미 꽤 소모된 이미지 외에도 광희에서는 원석처럼 찾아낼 매력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진; 뉴스엔)

<인간의 조건>은 '관찰 예능'이다. 여섯 멤버들을 한 공간에 밀어넣고, 그리고 그들에게 특정한 미션을 던져놓고,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섯 멤버의 가상의 삶을 그리고 그 가상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진솔한 속내에 울고 웃으며 '인간다운' 맛을 느끼는 시간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조건>은 늘 느낄 무언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늘 신선해야 하며, 하지만, 거짓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초반에, 김준호나, 허경환이 시청자들에게 밉보였던 이유 중 하나도, 꼼수를 부리거나, 진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밉상들 조차도 정이 들어갈 무렵, 그와 함께, <인간의 조건>이 보여주는 인간다운 맛도 시들해져 갔다. 엄마같던 정태호의 요리 신공도, 정말 가족같던 그들의 푸짐한 먹방도, 이제는 각 방송마다 넘쳐나는 먹방과 함께, 늘 하는 그저 그런 것이 되어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아이돌 광희를 뛰어넘은 또 다른 광희의 진솔한 면을 보여준 '책 읽으며 살기'는 책을 읽는 미션 자체에서 비롯되는 볼 거리 외에도, 광희라는 또 특별 멤버를 통해 빚어지는 볼 거리가 풍성한 미션이 되었다. 
하지만 광희에게 통한다고 해서, 다른 아이돌 모두가 통할 거라는 일반화는 우려가 된다. 카라의 깜짝 방문처럼, 그간 <인가의 조건>에서 아이돌의 등장은 범람에 가까웠고, 그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가 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게스트 개개인의 능력차가 프로그램의 풍성함을 좌우하고, 그만큼 게스트의 선택은 보다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부디 모처럼 잡은 호기를 뻔한 게스트로 다시 뻔한 <인간의 조건>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10. 6. 10:33

<꽃보다 할배>의 시청률이 7%를 넘었다.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 중 <슈퍼스타K>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가장 높은 시청률일 것이다. 더구나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할아버지들의 '황혼 배낭여행'이라는 어찌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얻은 것은 수치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한 감마저 있다. 그 정도로 할배들의 여행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 일색이다. 
이렇게 <꽃보다 할배>가 붐을 이루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나날이 낮아지는 시청률로 인해 고전하는 또 하나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인간의 조건>이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런칭'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두 프로그램의 엇갈리는 희비는 아이러니하다. 

나영석 피디는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본인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 였다고 슬그머니 발을 뺀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떠나와, 프로그램의 인기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케이블이라는 전쟁터로 들어온 것에 대한 감회를 '도전'으로 대신했던 그의 소감을 기억에 떠올려 보면, <꽃보다 할배>가 나영석,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브랜드가 되어가는 아이디어 뱅크의 출사표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 바로 전에 시도한 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은 이른바 <1박2일>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의 해가 저무는 시점에, 관찰 예능으로서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꽃보다 할배>가 그저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담는 '관찰'에 집중하는데 비해, <인간의 조건>은 여섯 남자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측면에서는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띠지만, 4회 정도에 걸쳐 굵직한 대 미션과 매회 주어지는 소미션이 주어지는 점에서는 리얼리티 예능의 성격도 지니는 '과도기적'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똑같이 나영석 피디가 만들었음에도 이제 30회차를 넘어가는 <인간의 조건>은 처음만 못한 화제와 인기에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했을 때, 그 분위기는 <꽃보다 할배>와 유사했다.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네 할배와 한 명의 짐꾼처럼, 그저 웃기는 개그맨으로만 접했던 여섯 남자에게서, 문명의 이기를 빼앗자, 아날로그한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좀 비약은 있겠지만, 나영석 피디의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만들어 낸다 싶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개개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치중한다. 이서진이란 그저 잘 생겼던 남자 배우를 몰래 카메라를 통해, 그 예전의 허당 이승기 못지 않은 국민 짐꾼으로 돌변시키고, 직진 순재에, 로맨티스트 박근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나영석 피디는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투자한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뚱뚱한 개그맨이었던 김준현을 아날로그한 감성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는 여백이 넘치는 인간으로, 온갖 웃기는 분장으로만 다가오던 정태호를 따뜻한 엄마같은 인물로 만들어 낸 것도 바로 <인간의 조건>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같이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던 두 프로그램인데,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의 조건>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30회 정도 되니 인기가 떨어질 때도 돼서? <1박2일>이 꽤나 오랜 시간 국민 예능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을 되돌아 보면, 겨우 30회차에 벌써 피로가 누적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인간의 조건>을 질리 새도 없이 매 달 새로운 미션이 들어가고, 더구나 최근엔 <꽃보다 할배>처럼 휴가 미션까지 했는데?

아마도 그 결정적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 캐릭터의 변주에 있어, <인간의 조건>이 그 깊이를 더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31회 '휴가의 조건' 4부에서 완성된 김준현의 피톤치드를 앞에 두고 여섯 멤버는 각자 자신의 닉네임을 호명한다. 김준호는 '호감, 호감, 비호감', 김준현은 '뚱이, 뚱이, 뚱뚱이'에 양상국은 '활동'을 담당하고, 박성호는 '불혹'이란 식이다. 여전히 허경환은 '얼굴'이요, 정태호는 '엄마'다. 처음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여섯 남자에게 주어졌던 캐릭터에서 30회차를 넘은 지금까지 이들의 캐릭터에 별 변화가 없다. 첫 회에 보았던 이미지랑, 지금의 이미지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납작한' 캐릭터로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고군분투한다. 

반면에 <꽃보다 할배>는 겨우 8회만에 캐릭터들이 롤러코스터다. 직진 순재였던 이순재가 다리가 아픈 일섭을 위해 독일어까지 해가면서 길을 알아보기에 분주한 따스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드라마에서 엄격한 회장님이었던 박근형은 부인을 위해 사진을 찍어보내느라 바쁜 로맨티스트다. 사람 좋아보이기가 한량 없던 신구는 시즌 2에서 숨겨왔던 외국어 실력을 내보이며 짐꾼이 필요없단 말이 나올 만큼 리더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영문과 출신 일섭은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가 최고요, 대화는 한국어로 완성된다. 게다가 떼쟁이일줄 알았더니, 정의의 화신이란다. 
사실 <꽃보다 할배>의 내용은 별거 아니다. 여행을 가서 무언가를 보고, 뭘 찾아 먹고, 잠잘 곳을 마련하고,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게 되는 것은, 그 속에서 찾아내지는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매회 샘솟듯 솟아나는 출연자들의 색다른 면모에 젊은 사람들조차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분명 여섯 남자의 색다른 인간적인 면모였었다. 그런데, 30회를 지난 지금, 여섯 남자는 처음 그 자리에 아직도 서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정태호는 부지런히 음식을 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김준현은 열심히 시간만 나면 먹고, 뚱뚱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속내와 능력을 내보인다. 김준호는 여전히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잔머리를 쓰기에 바쁘다. 
미션도 해야하는 과도기적 성격이 <인간의 조건> 멤버들의 인간적 모습의 능력을 활짝 펼치는데 방해가 되는 걸까? 돌아가면서 미션 수행하는 모습만 줄줄이 나열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많은 걸 해내는데, 막상 기억에 남는 건 점점 드물어 진다. 

이번 <휴가의 조건>에서 박성호는 시간이 주어지자 용감하게 혼자 사이판 행을 감행한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의 여행 과정은 다른 멤버들이 제주도를 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비춰진다. 그걸 보면 제주도를 가건, 사이판을 가건 무에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꽃보다 할배>에서 하듯이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먹을 곳을 찾고, 여행을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더더욱 <꽃보가 할배>와 비교된다. 할배들이 거리를 걸을 때, 화면을 결코 쉽게 지나친 적이 없다. 직진 순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하고 기가 막힌 배경 음악이 깔린다. 박성호가 사이판의 밤길을 동네 개들을 두려워하며 걷는 모습은 그저 맹숭맹숭 지나쳐간다. 사이판에서 박성호는 여전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잘 노는 형일 뿐이다. 

(사진; tv리포트)

<꽃보다 할배>에서 한지민이 할배 일행과 조우할 뻔하다 엇갈린 일이 화제가 되었다. 결국 일정상의 조율 문제로 엇갈렸을 뿐인데, 인간의 도리까지 나오면서 갑론을박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의 조건>에 아이돌 그룹 멤버인 이준이와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뿐이다. 이미 이준이란 개인의 캐릭터 자체가 여기저기 온갖 프로그램을 다니면서 소진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멤버들의 모습도 새로울 것이 없었기에 화제를 끌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준과 함께 마빡이를 했다? 그건 화제조차 되지 못했다. 
한때 <남자의 자격>에 몸담았던 김준호가 프로그램에서 꽁트를 할 때마다 프로그램의 좌장 격인 이경규가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꽁트가 당장 인트턴트 식 웃음을 만들어 낼 지언정, 기본적으로 캐릭터로 깊어져야 하는 프로그램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를 거듭할 수록, 캐릭터는 여전한데, 꽁트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을 보다보면, 무엇을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을 초대하기 보다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인간적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개그콘서트> 멤버들을 활용하란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의 조건>의 정체 혹은 하강은 미션의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그 미션을 요리하는 방법과, 그것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는 여섯 남자의 매력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초심으로 되살리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5. 10:23

8월 17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에서는 각자 휴가를 즐기던 멤버들이 모처럼 한 집에 모여 늦잠에 빠져있는 아침, 느닷없이 엠블랙의 이준이 방문을 한다. 이유인즉, 자신의 그룹이 활동을 끝내고 휴가라, <인간의 조건>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생뚱맞은 아이돌 게스트의 출현에 멤버들은 조금은 낯을 가리거나, 남의 집에 찾아오면서 빈 손으로 왔다고 타박을 하며 경계를 허물어 가면서, 예의 그 가족적인 따스함으로 게스트 이준을 <인간의 조건>안에 녹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날 하루 이준은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함께 긴 하루를 보낸다. 

(사진; sstv)

<인간의 조건>에는 종종 아이돌 게스트들이 방문한다. 17일 방영분의 이준이 그랬고, 그 이전에 전기 없이 살기 미션 중에는 2pm이 단체로 혹은 친구의 자격으로 개인 멤버가 방문을 하기도 했었고, 뜬금없이 예은이 자신의 강아지와 함께 <인간의 조건>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와 먹방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같은 아이돌들이지만 그들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 멤버들의 반응 혹은 멤버들과의 합이 달라진다. 여자 아이돌이었던 예은은 남자들만 드글거리는 집에 말 그대로 '꽃'처럼 등장해, '공주'처럼 대접을 받다 갔고, 2pm은 전기 없이 모시 옷을 입고 버티는 미션에 합류해 땀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 이준도 멤버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던 일 하는 휴가 미션에 도전을 한다. 

아이돌이건, 그렇지 않건 게스트의 첫 등장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관건이 되는 것은 '개연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아이돌 게스트의 등장은 17일 방영분의 이준의 등장처럼, 이유불문, 뜬금없이 나오니까,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을 시작하고 집을 떠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게 낯설던 시절 개그맨 후배 신보라한테 놀러오라고 하다가, 그녀와 같은 소속사인 이유로 등장했던 에일리는 그나마 기승전결이 있는 셈이다. 허경환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임슬옹의 등장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넘어선 아이돌 게스트의 등장은 대부분 안타깝게도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이 나오면 어느 프로그램이던지, 아이돌이란 프리미엄을 인정하고 대접하면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멤버들의 접고 들어가는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까지 공유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가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면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나 누가 누군지 이름을 기억하기기조차 어려운 아이돌이 범람하는 이즈음엔. 더더욱 아이돌의 프리미엄이란 냉소의 대상이기가 십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조건> 박성호처럼 낯을 가리는 멤버는 생경한 아이돌의 등장으로 얼음이 되어버려 원래의 활약조차도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게스트의 존재가 기존 멤버와의 시너지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 반대의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젠 화제성도 그닥이다. 결국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것은 그들을 통해 1회성이라도 화제를 끌어모으려고 하는 것인데, 김준호의 자평대로 닉쿤이 모시옷을 입었지만 화제는 되지 않았고, 분홍색 미션 티를 리폼해 입은 이준 편의 시청률이 그걸 증명한다. 


(사진; 마이데일리)


비단 이런 경우는 <인간의 조건>만이 아니다. sm 소속의 신생 아이돌 그룹 exo는 sm 소속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면 어느 곳이나 얼굴을 비춰 자신들을 알리기에 분주하다. <불후의 명곡> 게스트는 애교일 정도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태민과 함께 등장하는가 하면, <나 혼자 산다>에서 강타의 소속사 후배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룹 exo 팬들이야 우리 오빠가 자주 나와서 좋았겠지만, 그들의 출연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태민과 강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을 낳는다. 
<우리결혼했어요>의  exo처럼 지금의 남편보다 태민보다 멋있어보이게 등장하는 후배들은 역효과도 이런 역효과가 없다. 
더구나 최근 <나 혼자 산다>의 경우는 애초에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독거남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당초의 취지와 달리 넘쳐나는 게스트들로 인해 프로그램의 방향 조차 모호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결국 exo는 그런 분위기를 몰아가는데 일조한 셈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최근 생각보다 여의치 않는 시청률을 1회성 게스트의 출연으로 만회해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건 외려 <인간의 조건>의 본연의 취지를 흐뜨러뜨리는 꼼수가 되어버리는 듯 하다. 

이제 와 새삼 당연한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아이돌 게스트의 출연을 문제삼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그리고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이미 출연진들의 합이 이루어져 있고, 그들간의 시너지가 우선이 되어야 할 프로그램에서 섣부른 게스트의 출연은 심사숙고 해봐야 할 지점이다. 왜냐하면 생각만큼 홍보도 되지 않고, 멤버들의 합마저 흐트려뜨리고, 프로그램의 흐름마져 깨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제 더 이상 아이돌 게스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3. 8. 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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