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부 마지막 장면, 우영우의 친엄마 태수미(진경 분)가 있는 태산을 찾아간 권민우(주종혁 분)는 말한다. '착한 척 위선이나 떠는 한바다, 그 밑에서 나약해 지고 싶지 않다'고, 여기 권민우 변호사의 말에는 두 가지 논리가 들어있다.

착한 건 위선, 그리고 착하게 살면 나약해 지는 것, '권모술수'라는 별명에서도 보여지듯이 거대 로펌 한바다의 1년 계약직인 권민우는 우영우에 대한 편견이 가장 없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우스개가 있다. 왜냐하면 권민우는 우영우의 자폐조차 권민우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만드는 '아이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였기에, 이제 태산을 찾아와 말한다. 자신이 아는 진실이 힘이고, 무기가 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로만 권모술수가 아니라, '본격' 권모술수의 길에 나선 것이다. 

그런 권민우에게 태수미는 우영우(박은빈 분)가 한바다를 떠나도록 하라는 '딜'을 한다. 당장 12회에 그 일을 실행에 옮긴 권민우, 시청자들은 그의 '권모술수'로 인해 고통받을, 그래서 한바다에서 쫓겨날 지도 모를 우영우가 걱정된다. 여느 드라마들이라면 '빌런', 권민우가 드라마적 갈등 요소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런 갈등에 대해 조금 다른 접근을 한다 바로 '양쯔강 돌고래'에 대한 질문이다. 

 

 

변호사는 어떤 사람일까? 
12회차에서는 미르 생명의 여직원 정리 해고 사건을 다룬다. 우영우는 해고된 여직원들이 아니라, 미르 생명의 입장에서 변호를 맡게 된다. 극중 보여지듯이 한 직장을 함께 다니는 부부 직원들 중 아내에게 회사는 부당하게 '정리 해고'를 종용한다. 21세기에 '시어머니', '눈치'니 , 남편의 앞길이니 하면서 말이다. 결국 100명이 넘는 여사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고, 이 과정에 승복하지 않은 2명의 여직원이 재판에 나선다. 

재판 과정에서 우영우는 혼란을 느낀다. 글로만 드러난 '사실'과는 다르게 , 재판의 과정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겉으로는 남자 직원을 역차별한 것같지만, 사실은 여직원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말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정명석(강기영 분) 변호사를 찾는다. 

그런데 정명석 변호사가 언성을 높인다. 화를 내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얼굴은 우영우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우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물었다. 

정명석은 옳고 그름은 '판사'가 판단할 몫이며 변호사는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강력하게 충고한다. 정명석의 말에 따르면 '변호사'라는 직업적 성격상 '가치 판단'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우영우는 변호사법 1조 1항을 말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희망 퇴직 권고는 난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우영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한바다' 변호사로써, 강제 퇴직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며 자신들에게 수임을 맡긴 미르 생명의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재판은 결국 원고의 손을 들어준다. 인사부장의 다이어리 속 메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문화된 법 조항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이긴 한바다 변호사들과 미르 생명의 인사부장의 표정이 씁쓸하다. 심지어 인사부장은 다음은 자리 차례라며 착잡해 한다. 반면, '졌잘싸'라며 패소한 여직원들과 '시끄러운 여자' 류재숙 변호사는 얼싸안고 서로를 독려한다. 

 

 

정명석과 류재숙, 당신은 누구입니까? 
미르 생명에 대한 한바다의 법률 자문 사실을 알게 된 우영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뿌르르 정명석 변호사 방으로 달려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는 '어미 고래'와 같다. 우영우 김밥을 하며 영우를 키운 아버지가 집에 있지만, 사회에 나온 영우를 음으로 양으로 보살피는 건 정명석 변호사의 몫이다. 처음 영우에 대한 편견을 가졌지만, 가장 먼저 영우에게 정중히 사과한 이래, 정명석 변호사는 언제나 영우에게 기회를 줬다. 심지어 권민우가 '차별'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어미 고래'같은 정명석이기에 그의 말대로 우영우는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런데 정명석과 우영우, 그들이 속한 대형로펌 '한바다'의 의뢰인은 '미르 생명' 같은 곳들이 많다. 수임료가 비싼 한바다와 같은 곳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온다. 

12회 내내 정명석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이는 재벌 2세였다. 감옥행이어야 할 그를 '구해주다시피'한 정명석과 또 다른 변호사, 그들은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장재진을 '변호'했다.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의 감형을 했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형량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변호사를 찔러 상해를 입힌다. 당연히 정명석 변호사는 자신도 '린치'를 당할까 두려움에 떤다. 

해프닝처럼 등장한 이 사건은 대형 로펌 변호사의 '숙명'을 그린다. 의뢰인이 어떤 사람이어도 그의 '편'에 서야 하는. 반면, 변호사의 '사'자가 검사, 판사의 '事' 와는 다른' 士' 라며 변호사법 1조 1항을 우선하는 류재숙 변호사는 다른 길을 걷는다. 

어미 고래같던 정명석 변호사는 난임 치료 사실을 법정에서 쓰지 않으면 안되냐는 우영우의 청을 묵살한다. 반면, 류재숙 변호사는 권민우가 우영우의 이름으로 보낸 한바다의 법률자문 의뢰서를 재판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문에 졌을 수도 있지만, 류재숙은 '졌잘싸'를 밝은 얼굴로 외친다. '패소 전문 변호사'란 류재숙 변호사, 그런 그녀를 우영우는 '멸종 위기'의 양쯔강 돌고래라 한다. 

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업무에 쫓기고, 의뢰인이라는 무뢰한에게 쫓기고, 이제 피까지 토하고 마는 정명석, 그런 그와 대비되어 '채소를 덜 잘 가꾼다'는 초라한 사무실, 하지만 넉넉한 인심의 류재숙이 대비된다. 드라마에서는 양 극단의 인물을 ㅖ로 들었지만, 결국 정명석과 류재숙의 삶은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까? 우영우의 표현에 따르면 어떤 고래의 삶을 선택할까?  극중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을 읊는 류재숙, 자신을 태워 사랑을 이룬 삶은 아름답지만 쉽지 않다. 유인식 피디의 전작 <낭만 닥터>가 떠오른다.  류재숙을 유심히 보는 우영우, 어쩌면 그녀에게 닥친 위기를 영우는 뜻밖의 선택으로 돌파하지 않을까? 제주 바다에 풀어놓은 수족관 돌고래처럼.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연탄 한 장, 안도연

by meditator 2022. 8. 5. 17:23

기차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인의 아들, 새로운 노선이 생기면 가볼 정도라고 한다. 장래 희망은 기관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차라리 국토교통부에 들어가면 어떻겠니? 말인즉슨 '공무원'이 되라는 거다. 엄마는 사촌 형이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데 아직 자기 아들은 철이 없단다. 의대, 한의대를 목표인 세상, 초등학교 때부터 하다못해 공무원이라도 장래 희망을 삼아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지금 놀자'는 어린이 해방군이 '사상범'이 되는 시절이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이렇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날 선언'은 시작된다. '농사'가 사람들의 주된 '업'이던 시절, 몇을 낳고, 그 중 몇을 잃었고, 그래서 지금은 몇이 남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어른들은 이른바 아이들을 '케어'는 언감생심이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자꾸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시절의 아이들은 한 반에 7,80 명 교실에서 '콩나물'처럼 자랐다. 하지만 이젠 지하철에 '임산부' 자리가 배려될 만큼 아이가 귀한 시절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도 낳을까 말까 한 아이가 귀한 시절에 자식은 그만큼 '투자 손실'을 피해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상정'하고 '조련'한다. 이른바 '헬리콥터맘'이 보편이 된 시대다. 

 

 

서울대 나온 방구뽕은 왜 어린이 해방군이 되었나? 
여기 잘 나가는 학원이 있다. 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한다. 그리고 학원에서 있는 동안에는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 못한다. 이 '강압적'인 학원이 엄마들한테는 인기가 좋다. 원장 선생님이 아들 셋을 다 서울대에 보냈기 때문이다. 극중 부풀려진 면은 있지만 서울대만 간다면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늦도록 학원에서 공부만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는게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데 그 서울대 간 막내 아들이 엄마의 학원 버스를 훔쳤다. 버스만이 아니라 그 버스에 탄 아이들을 '납치'했다. '방구뽕'이라고 이름조차 개명했다는 아들은 '어린이 해방군' 대장을 주장하며 재판에 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회의 사건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데는 자폐형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라는 인물을 박은빈 배우가 기가 막히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짓, 몸짓, 눈빛이 표현해 내는 우영우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은 스스륵 빠져든다. 그런 박은빈 배우의 캐릭터 우영우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9화에 등장했다. 방구 '뽕'을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구교환 배우, 아마도 그가 아니었으면 '어린이 해방군'이라는 이 터무니없는 설정에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간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 그가 아이들과 한 일이라고는 술래잡기, 비석치기 등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에 나오는 그 별거 아닌 놀이들을 하고 놀았다. 그리고 이 편의 제목 '피리부는 사나이'의 결말과 달리, 아이들의 가방을 혼자 짊어진 채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자신들을 찾으로 온 경찰들에게 제 발로 찾아내려온다. 

 

   

 

하지만 이 잠시의 일탈에 부모들은 한결같이 들고 일어나 그를 법정에 세운다. 심지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며 탄원서에 사인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 잠깐의 일탈조차 세상의 속도에 뒤처질까 닥달하는 부모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아침에 눈뜨며 /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이 아이들과 함께 한 놀이들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보물'이다. 놀기만 해도 하루가 너무나 짧았던 내 어린 시절의 시간이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아이들은 그 '보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 아직도 그저 '방구'니 '똥'이니 그런 소리만 들어도 깔깔거리고 웃는 아이들, 그래서 방구뽕과 함께 '보물'같은 시간에 얻은 도토리 알을 소중한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방구뽕은 '보물'같은 '찰라'의 시간을 선사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런 그가 '납치범'이란다. 이 시대의 '만화경'이다. 

어린이의 '인권'을 묻다
드라마는 학원 원장의 자부심인 서울대 나온 셋째 아들이 개명까지 하고 방구뽕이 되어 등장한 내막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로망인 '서울대'와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의 간극을 통해 그가 살아오며 무엇을 놓쳤는가그래서 뒤늦게라도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짚어보게 만든다. 

어떻게든 감옥만은 안보내려는 어머니인 학원 원장과 한바다의 뜻과 달리,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은 구치소에서 '구타'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우영우 변호사는 방구뽕을 '사상범'으로 주장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방구뽕은 최후 진술에서 말한다. '나중에는 늦습니다. 대학에 간 후,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 후에는 늦습니다.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니체는 말한다. 주사위 놀이, 그 단순한 놀이가 바로 '불투명한 미래 속에 던져진 불안한 삶'에 대한 '대비'라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놀이들이 '주사위 게임'과 같다. 그렇게 삶에 대한 'exercise'를 해보지 않은 채 부모가 마련해준 '학습'만을 하며 큰 아이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삶을 '재단'하려는 부모들, 그런 속에서 크는 아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런 9화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10화의 지적 장애인의 서사와 연결된다. 지적 장애를 가져 13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신혜영(오혜수 분), 그녀와 사귀며 돈을 얻어 쓴 양정일(이원정 분)이 준강간 혐의로 재판정에 선다. 양정일은 신혜영의 말대로 '제비같은 새끼'이다. 하지만 그를 신혜영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같은' 신혜영의 보호자인 어머니는 그를 '준강간' 혐의로 법정에 세운다. 

아이같은 수준의 지적 장애인, 과연 그녀는 '나쁜 사랑'도 할 수 없는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하겠다는 그녀의 엄마,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밤늦도록 학원에 보내는 이 시대 다른 부모들과 다른가? 드라마는 결론을 내렸지만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우영우네 김밥 집에 나타난 엄마 태수미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영우에게 제대로 된 '케어'를 해주었냐고. 1989년 채택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은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아동', 혹은 아동에 준하는 존재들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는가? 드라마는 묻는다. 







by meditator 2022. 7. 29. 18:02

거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앙'을 부르짖던 사람들, 그 추상의 대상이 '우영우'로 변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서울대 로스쿨을 나왔지만 그 어느 로펌에서도 오라하지 않았던 우영우 변호사, 그녀의 어떤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추앙'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답을 7,8화 소덕동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소덕동을 왜 지켜야 하지? 
소덕동은 작은 마을이다. 신도시를 위한 도로가 관통하게 될 처지에 놓인 노덕리, 이장을 중심으로 한 대책위원회는 '소덕동 도로구역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하기로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 사건은 이렇게 표현된다. 자로 잰듯 소덕동을 가로지르는 도로, 게다가 소덕동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아름드리 팽나무마저 뽑혀나가야 하는 '행정 편의적'인 결정이다. 심지어 그린벨트라 제대로 받기 힘들다던 보상금이 오를 지도 모른다는 태산의 '입김'에 소덕동 손흥민도, 소덕동 유진박도 등 소덕동 주민들을 콩가루처럼 뿔뿔이 흩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건이다. 

그런데 돈 앞에 마을이 결딴나는 이 '도로'의 이름이 '행복로'인 건 아이러니하다. 신도시 주민들의 '행복'을 위해 소덕동 주민들, 그리고 아주 오래된 팽나무는 '희생'되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상식'인 듯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인 결정'에 한바다의 호적수 '태산', 그리고 8회 말에 드러나듯 우여우의 엄마이자, 태산의 대표 변호사였던 태수미(진경 분)가 앞장선다. 

물론 한바다도 이 소송을 수임하는 것조차 회의적이었다. 굳이 돈을 더 들여 행복로가 소덕동을 우회해야 할 '가치'와 '의미'에 대해 회의적인 상황에,  소덕동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를 보여준다. 아직도 손흥민이니 장동건이니, 평범한 이들이 소덕동 안에서는 세상 의미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소덕동을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못됐지만 소덕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이다. 그런 소덕동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이장님, 그런 소덕동에 한바다의 '마음'이 움직였다.

 

 
바위의 세상에서 계란의 선택? 
소덕동을 관통하는 행복로 건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니 세상을 핑계댈 것 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묻는다. 

소덕동 소송 사건이 펼쳐지는 가운데, 권민우는 우영우를 한바다 블라인드 게시판에 고발한다. 부정 취업이라는 것이다. 우영우의 아버지가 한바다 대표와 선후배 사이라는 걸 알게 된 권민우, 안그래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봐주는 게', 불공정하다고 매번 이의를 제기했던 그는 '낙하산'이라며 반발한다.

'부정취업'을 시인하는 우영우, 하지만 '봄날의 햇살'답게 최수연(하윤경 분) 블라인드 게시판을 보고 수근거리는 한바다 사람들 모두가 들리게 큰소리로 말한다. 그게 왜 부정취업이냐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나오고, 변호사 시험에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낸 우영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이 애초에 '부정'한 거 아니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8회는 이런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이란 화두로 대비시킨다. 

'공정'이란 이름으로 한바다의 정당한 절차와, 그 허들을 아버지를 아는 대표의 도움으로 넘어온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 그리고 소덕동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신도시 주민들의 편의와 경제적인 비용과 대비되는 소덕동이란 마을이 지니는 고유의 가치와 정서, 그리고 오래된 팽나무 사이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말이다. 

이런 건 어떨까? 7,8회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간 '짐작'했던 우영우의 친모가 드러난 것이다. 태산의 대표 태수미,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오르내리는 그녀는 정부 관계자와의 사전 검증에서 '혼외자식'이란 말에 코웃음을 치며 넘긴다. 

대학 시절 우영우 아버지 우광호와 사귀던 태수미는 막상 아이를 가지자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의 '배경'이 된 태산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그런 태수미에게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는 '아이'만이라도 낳아주고 가라고 눈물로 읍소한다. 

아버지는 영우에게 '부정취업'의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며 자신이 보다 '정치적'으로 살아오지 못함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우영우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사법고시도 치르고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다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져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우영우에게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후회를 들으며 외려 시청자들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한 한 청년 우광호 덕에 오늘의 우영우가 있음을 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치적'인 선택을 하며 태산의 대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성공을 뒤로 미룬 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영우를 키웠다. 자신의 어머니조차 돌봐주지 않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았고, 왕따 당하는 영우를 위해 동그라미네 동네까지 이사를 했다. 왕따의 경험으로 인해 영우가 유일하게 먹게 된 김밤을 말다 이젠 김밥집을 하고 있다. 

모두가 조금 더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가 되려하는 세상에 영우의 아버지는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 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키워주는 부모가 없다면 세상에 그 기량을 펼칠 수 없다. 
우리가 열광하는 우영우가 있기 위해서는 그 우영우를 깨질세라 보다듬은 아버지의 '계란'같은 선택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 덕택에 우영우는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승승장구'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선택은 돈 대신, 소덕동 사람들과 동산 위의 팽나무를 선택한 이장님을 비롯한 소덕동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돈, 편의 등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인 세상의 허들을 힘겹게 넘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권민우처럼 나의 것을 '침범'하는 듯한 대상에 대해 예민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이 우영우를 '추앙'한다. 아버지의 후회처럼 좀 더 정치적으로 살고, 좀 더 편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기실은 '계란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임'조차 마다하던 시니어 변호사가 소덕동 사람들을 보고, 소덕동 동산 위에 올라가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사건을 기꺼이 맡은 것처럼,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영우를 길러낸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영우는 자신을 버린, 그리고 뒤늦게 자신을 스카웃하겠다는 엄마에게 말한다. 아버지를, 한바다를 선택하겠다고. 한번은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가장 통쾌한 계란의 복수'이다. 또한 소덕동 재판 역시 우영우 편 계란이 이겼다.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바위같은 세상을 살아내는 '계란'들의 이야기이다. 보다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며, 편의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여전히 우리는 곧이곧대로인 우영우의 신화같은 이야기에 감동한다. 내 안에 꼭꼭 숨겨놓은 '계란'의 마음, 그 계란이 바위를 깨뜨리는 '순수의 신화'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2. 7. 22. 18:38

우당탕탕 vs. 권모술수?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와 권민우(주종혁 분)가 서로를 헐뜯으며 지칭한 말일까?

 

 

우영우는 최수연(하윤경 분)을 통해 전해들은 권민우의 별명 '권모술수'를 입에 올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ATM 기를 둘러싼 법정 싸움을 함께 맡게 된 권민우와 우영우, 그런데 1년짜리 계약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라도 더 나은 실적을 쌓고 싶은 권민우는 함께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우영우에게 전하지 않는다. 사건을 맡긴 이화 ATM의 대표를 만나기 겨우 5분 전에야 자료를 전해주는 권민우에게 우영우는 그의 연수원 시절 별명을 내뱉는다.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해 거뜬히 동료를 속이려는 권민우, '권모술수'라는 말이 딱이다. 

권모술수 우영우? 
하지만 5회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당탕탕 VS. 권모술수는 우영우와 권민우의 대립이 아니다. 변호사로서 우영우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도 우영우는 아버지의 김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한 여성이 들어오며 다짜고짜 김밥이 비싸다고 난리다. 그러자 우영우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저런 손님을 두고 '진상'이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손님은 지금 나보고 그러는 거냐고 화를 벌컥내며 영우가 이 집 딸이냐고 묻는다. '손님, 다 드셨으면 그만 가세요,'라고 말하며 눈을 끔쩍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면 한참을 눈을 껌뻑이던 영우는 나직하게 말한다. '네, 아저씨,'라고.

 

 

그런데, 이런 융통성이 다른 방향으로 발휘된다면? 안그래도 우영우의 '무단 결근'이 유야무야 넘아가는 상황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권민우였다. 더구나 1년짜리 계약직으로 무한 경쟁 궤도에 자신과 우영우가 놓여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영우를 배제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권민우의 방식에게 우영우가 경고하자, 권민우는 뭐하나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없다며 '우당탕탕'이라 맞불을 놓는다. 그 '우당탕탕'이 우영우의 '승부욕'을 불지폈다. 

우영우가 맡은 사건은 ATM 기의 신기술을 둘러싼 업계 1,2위의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 사건이다. ATM 기의 직원 횡령을 막기 위한 카세트 인식 신기술, 과연 그것이 이화 ATM 기의 독자적인 개발인가를 둘러싼 공방이다. 이화 쪽은 자신들의 기술팀이 몇 년에 걸쳐 애를 써 만든 제품이라 하고, 그런 이화의 주장에 금강은 이미 미국에서 개발된 오픈소스의 기술이라 맞대응한다. 

드라마는 두 업체 간의 진실 공방을 둘러싼 과정에 놓인 '변호사' 우영우의 진실 찾기로 이어진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는 우영우, 늘 '팩트'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극우뇌형 인간' 우영우 입장에서는 '거짓'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인간 사회의 '권모술수'가 난공불락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그런데, 늘 우당탕탕 거리며 '진실'을 향해 '직진'하던 우영우가, 권민우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그 '진실' 앞에서 '네, 아저씨'같은 모습을 보인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드러내는 '바디 랭귀지'를 고스란히 보이는 이화ATM 개발진의 모습을 본 우영우는, 그에게 '진실'을 다그치는 대신, 진실을 피해가는 '팁'을 전수해준다. 덕분에 '연극 배우'처럼 변신한 개발팀을 증언대에 세운 우영우는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룬다.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도산' 위기까지 처한 상대 기업 대표가 우영우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는 그녀가 두 눈 질끈 감은 현실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다. 연극배우처럼 천연덕스럽게 거짓 증언을 한 이화의 개발팀, 결국 우영우도 재판에 이기기 위해 뻔히 눈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리고 편지를 본 권민우는 묻는다. 정말 몰랐냐고. 외려 니가 '권모술수'인 건 아니냐고. 아버지의 김밥집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했던 '예, 아저씨'처럼, 재판만을 이기기 위해 우영우가 눈감은 '진실'이 한 사업체의 '목숨값'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 우영우의 고개가 떨구어진다. '후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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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합니다 
우당탕탕 우영우,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자신도 별명을 가지고 싶다던 최수연, 늘 성공과 배려 사이에서 늘 머뭇거리는 수연에게 우영우는 '봄날의 햇살'이라고 말한다. 손에 힘이 부족해서 병을 따지 못하는 영우 대신 병을 따주고, 학교 다닐 때부터 동료들이 영우를 따돌리지 못하게 애쓰고, 영우가 미처 못챙긴 정보들을 알려주었던 수연, 하지만 그래서 늘 세상이라는 운동장에서 밀쳐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수연에게 영우는 말한다. 봄날의 햇살처럼 밝고 따듯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상대방의 눈빛을 보지 못해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다던 우영우, 하지만 우영우는 '팩트'를 근거로 하여 그 누구보다 인간이 가진 진정성의 빛깔을 잘 파악한다. 그런데 그런 우영우조차도 '현실의 허들' 앞에서 '권모술수' 우영우가 되고 만다. 

앞서 1회에서부터 4회에 이르기까지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완수해내는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녀의 별명, '우당탕탕' 우영우처럼 그 과정은 시끌벅적했고, 때로는 사표를 내던질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지난한 도정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 우영우는 이제 또 다른 '미션'을 받는다. 그건, 그녀의 방에 이화의 대표가 걸어준 해바라기 그림처럼 세상의 햇살을 얻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기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또 다른 '허들'이다. 그 직업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우영우가 겪고 있는 성장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만이 아니라, 우영우나, 권민우, 그리고 최수연 모두, 즉 이제 막 '세상'이라는 관문에 첫 발을 내딛은 청년들에게 던져진 공통 과제이다. 

자신이 한 발 더 앞서나가기 위해, 함께 수임한 동료에게 필요한 정보조차 나누어 주지 않거나 왜곡하며 '승부'를 거머쥐려는 권민우, 자신의 선함과 경쟁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최수연, 그리고 고지식한 우당탕탕 우영우조차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그런 '시험대'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미션은 생존과 경쟁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요즘 젊은이들 모두의 '현실'일 것이다. 

변호사라는 자신의 존재 대신 자신의 장애를 먼저 인지하는 세상 앞에 우영우는 사표를 던진 바 있다. 이제 스스로 '권모술수'가 되었던 우영우는 다시 도망치는 대신, 해바라기 그림을 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 '편지'를 그 자리에 건다. 과연 우영우의 다짐처럼 그녀는 세상을 따스하게 밝히는 봄날의 햇살같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그녀의 또 다른 '우당탕탕'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22. 7. 14. 20:05

오직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는 감정을 잃은 검사, 그렇다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이다. 뇌수술로 인해 감정에 취약해진 그는, 외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삶의 무기로 삼았다. '감정에 구애없는 성문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그의 '수사' 덕분에 '숲'과 같았던 거대한 비리의 장막이 걷혀졌다. <비밀의 숲> 시즌 내내 시청자들은 로봇같던 황시목에 열광했다. 

 

 

그러다면 이런 인물은 어떨까? 아버지가 첫 출근 날 입으라고 옷을 마련해 주었다. 그 옷을 사준 아버지를 떠올리기 위해서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 '기쁨'에 해당하는 표정을 찾는다. 6월 29일 넷플릭스와 ENA를 통해 공개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이다. 

'모두 진술에 앞서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


첫 변론, 자기 이름이 호명되는데도 대답을 못할 정도로 긴장을 하던 우영우가 변론에 앞서 자기 소개처럼 한 말이다. 드라마는 우영우의 나레이션으로 아버지의 잊을 수 없는 어느 날로 시작한다. 다섯 살이 되도록 말이 늦된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간 아버지는  '자폐'일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 한없이 시름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 그런데 주인집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다. '의처증'이 심한 할아버지의 오해였다.

자폐스펙트럼의 천재 변호사
그런데 두 사람이 큰 소리를 치며 멱살잡이를 하는 걸 충격을 받은 영우의 입에서 '상해죄는' 하며 형법 조항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오해를 사 억울해하던 것 따위, 아버지는 말문이 터진 딸이 기쁘기만 하다. 게다가 알고보니 딸은 법대를 다녔던 아버지가 쌓아둔 법전을 다 외웠다. 이렇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 주인공 우영우를 소개한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 답게 그녀는 로스쿨 내내 1등,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하지만 법전의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이랑, 드라마 속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의 말처럼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변론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또 다른 영역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그러나 천재적 능력을 지닌 우영우라는 인물이 과연 그런 '변호사'라는 '대인적 커리어'를 해낼 수 있을까? 이건 어찌보면 '감정에 구애받지 않는 성문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황시목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미션'이기도 하다.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과 영화<증인>의 문지원 작가가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제작진의 말처럼 '박은빈'이 아니고서는 우영우가 불가능했다는 말처럼 배우의 몰입된 캐릭터화를 통해 우영우라는 인물을 설득한다. 

'자폐'라는 '장애'라는 한계라기 보다는, 우영우와 늘 함께 유영하는 듯한 '고래'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인식과 세계를 가진 인물로 그려낸다.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그녀지만 '현실'의 세계에 어우러지기 위해 그녀는 주변인들의 '팁'에 의거하여 나름의 현실 적응 '루틴을 만들어 간다.  그녀가 앞뒤가 똑같은 자기 이름처럼 늘 외우듯한 '별똥별', '인도인' 금지 조항이라던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하는 '반향어' 금지, 그리고 '고래' 이야기 금지 처럼 말이다. 이런 우영우의 모습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서 외려 유품정리사로서의 직업을 성실하게 완벽하게 수행해 낼 수 있었던 주인공 한그루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준비된 루틴은 '회전문'처럼 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전문보다 우영우에게 더 '난관'은 제 아무리 로스쿨 일등이래도 '자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여기서 드라마는 '감정'이 없어서, 외려 이것저것 눈치보거나 따지지 않고 비리에 '돌진'할 수 있었던 황시목처럼, '사건' 그 자체의 '진실'에 다가가는 우영우만의 '탁월함'을 내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영우가 자폐이면서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던 할아버지는 결국 참지 못한 할머니의 다리미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할머니는 '살인죄'로 기소된다. 법원은 할머니의 처지를 살펴 불구속 기소했고, 우영우 소속 법무법인 한바다는 공익재판으로 '집행유예'를 받게 될 것이라며 우영우를 시험해 보는 차원에서 맡긴다. 

하지만 우영우는 사람들이 쉽게 보고 넘겼던 사건에서 다른 걸 찾아낸다. '형법'이 아니라, '민법' 사건이라고 우영우는 주장한다. 그저 '집행유예'면 된다는 법인의 판단이, 평생 주부로만 살아오던 할머니의 경제력을 상실케 할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그래서 살해 혐의는 있지만 정상참작을 한 집행유예가 아니라, 애초에 죄가 없다는 '무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이런 우영우의 '혜안'에 비로소 '편견'을 가지고 우영우를 바라봤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이 사과한다. 물론 그 순간, 우영우는 '속마음 얘기하기 금지'을 잠시 잊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라며 응수한다.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실례인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사과를 했음에도 시니어 변호사는 바로 병원으로 피해자를 보러 가야 하는 우영우에게 '편견'의 발언을 하고 만다. 다시 사과하고 마는데, 그런 그에게 우영우는 말한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져서 보통이 아닌, 그래서 늘 '편견'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 하지만 또 한 편에서 어릴 적부터 본 책을 모두 기억한다는 천재적인 특별함, 이 상반된 '보통이 아닌' 우영우를 드라마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법정에 선 우영우를 본 아버지의 눈빛이 일렁인다. 그리고 그 아버지처럼 우영우가 하나씩 그녀의 미션을 수행하는 지점에서 보는 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집행유예'라는 결과가 아니라 홀로 사실 할머니의 처지가 먼저 보이고, '너죽고 나죽자'는 할머니의 말보다 할아버지에게 볕이 들까 배려하고 잠이 깰까 조심하는 할머니의 깊은 사랑에 눈밝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때'가 묻지 않은 우영우의 편견없는 직시와 판단이 도달하게 되는 '휴머니즘'이 주는 감동이다. 




by meditator 2022. 6.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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