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골목의 뜻을 찾아보았다. 

골목; 큰 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있는 좁은 길
이 '골목'은 요즘 획일적으로 도시화된 도시 문화 속에서 고유의 색깔을 지닌 '골목 문화'로 각광받는다. 그래서 '무슨무슨 골목'하며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진 골목이 등장했고, 거기에 '골목길 상권이 나타났고, 결국엔 그 개성있는 이름으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시대 '유적'의 다른 이름으로 우리 시대에 출현하고, 사라져가는 골목은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시대의 역사로 돌아온다. 바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과 <시그널>의 골목길이다. 

응팔과 시그널의 같고도 다른 골목길
<응팔>과 <시그널>에는 동일한 서울 변두리 지역의 골목길이 등장한다. <응팔>에 등장한 쌍문동이 아직도 유효한 서울 지역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따온 반면, 포탈 사이트에 그 지명을 검색하면 경상북도의 어느 곳이 뜨는 <시그널>의 홍원동은 1994년 서울 변두리 가상의 지역이다. <응팔>이 구체적 지명을 등장시킨데 비해, <시그널>이 가상의 지명을 쓴 것은 바로 드라마 속에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즉 드라마 속에서는 홍원동이라고 지칭되지만 그 사건에서 시청자들이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을 떠올리는 사건의 비극성이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여전히 미해결로 남은 사건의 결과가 <시그널> 속 지명을 가상화한다. 



두 드라마 속 골목은 각각 1988년과 1997년 거의 10년의 간극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통해 지켜보게 된 두 서울의 변두리 골목길이 주는 정서는 전혀 다르다. 쌍문동의 골목길이, 골목길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칭될 정도로 도시화된 서울에서 잔존한, 사람 냄새 그윽한 인간적 유대의 장소라면, <시그널>의 골목은 연쇄 살인을 무려 10년간 움켜쥔 불온한 공간이다. 1988년에는 공동체적 문화가 살아있던 골목길이 불과 10년이 흘러, 인간성 상실의 증거인 연쇄 살인을 품은 공간으로 전화된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골목길을 바라보는 두 드라마의 상이한 시각, 그리고 골목길을 배경으로 풀어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극심한 빈부 격차의 역사가 이런 현격한 결과를 낳게된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다. 

동일한 골목길을 배경으로 했지만 막상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골목길은 그 넓이에서 부터 다르다. <응팔>의 골목길이 심지어 자가용은 물론, 트럭 한 대가 들어서고도 공간이 한참 남는 널찍한 공간인 반면, <시그널> 속 사건이 벌어지는 골목은, 그 자체가 폐소 공포증을 느끼게 할 만큼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로 막혀있다. 뿐만 아니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은, 그 어느 후미진 곳에서 '납치'가 벌어질만큼 외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르다. <응팔>의 골목은 그 자체로 사람이다. 피 한 방울도 섞지 않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람들이 한 골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피붙이처럼 엉켜 살아간다.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대로 틈만나면 뭉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이들은 친구가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 아이를 같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백'을 포기할 만큼 형제애를 나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뒷담화'대신 진심으로 이웃의 안녕을 걱정할 뿐만 아니라, 거리로 나앉게 된 선우네를 경제적으로 돕는 굵직한 부조에서부터, 용돈, 식사, 심지어 쓰러진 택이 아빠의 간호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하기 힘든 일까지 너끈히 해내는 곳이다.

반면에 <시그널>에 등장한 골목은 같은 서울이되 서울이 아니다. 홍원동 골목길을 홀로 가던 여성들은 그곳에 움크리고 있던 연쇄 살인마에게 납치된다. 그저 다리 다친 불쌍한 강아지가 애닮아 발을 멈췄던 여성들은 연쇄 살인마(이상엽 분)의 어미가 강아지에게 했듯 검정 비닐 봉지가 머리에 씌워진 채 세상과 이별한다. 하지만 십 여년에 걸쳐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 동안, 역시나 사람들이 사는 그 골목엔 목격자가 없다. 어디 목격자만 없나? 그녀들의 실종조차도 백골 사체가 발견된 이후에야 드러날 만큼, '의문의 실종'이 가능한 곳이다. 심지어 '납치'되었던 점오 여경 차수현(김혜수 분)이 검정 비닐 봉지를 쓰고 거리로 나뒹굴고, 거기를 질주할 때, 그리고 연쇄 살인마가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를 때 골목의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다른 건 그뿐이 아니다. 어미를 잃고 아비를 따라 쌍문동 골목길로 온 불쌍한 소년 택이는 비록 불면증 약을 한 움큼 씩 먹으며 성장했지만, 봉황당이라는 금은방을 하는 아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어린 시절 부터 바둑이라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함께 자란 골목길 아이들 덕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설움도 잊은 채 우정을 쌓았고, 심지어 처음으로 마음을 준 여자 아이와 결혼까지 한 성공의 삶을 산다.

하지만 <시그널> 속 골목길에서 자란 소년은 다르다. 엄마와 둘만 남겨진 소년, 하지만 봉황당을 하는 택이 아버지와 달리, 가난한 소년의 어미는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을 소년과의 동반 자살로, 그리고 소년에 대한 학대로 푼다. 바둑 기사로 어엿하게 자기 앞가림을 하는 택이를 아빠가 아프다고 여자 친구가 중국까지 따라가서 보호를 해주고, 그 여자 친구의 부모는 어린 딸을 남자 친구를 따라 중국까지 보내주는 결정조차 흔쾌히 하는 쌍문동 골목 공동체와 달리, 수시로 어미에게 목이 졸리고, 독을 탄 음식을 먹고 변기에 토해내야 하는 소년에게 손길을 내미는 이웃은 없다. 아니 오히려 소년이 데리고 온 강아지도차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약을 먹으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견녀내기 위해 여자들을 죽이며 살아간다. 



골목의 풍경은 다르지 않다. 쌍문동 골목길에도 야한 섹규얼리티를 강조한 영화의 포스터가 흩날리고, 홍원동 역시 삭막한 골목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색채는 그 포스터의 짙은 색감이다. 그러나 똑같은 삭막한 콘크리트 담벼락과 거기에 붙은 조잡한 포스터이지만, 쌍문동의 그것들이 그저 시대를 나타내는 데코레이션에 불과한 반면, 홍원동의 그것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했던 20세기 정신 문화의 세계를 대변한다. 쌍문동의 소년들은 그저 의례로 소비했던 그것들이 홍원동 소년에게로 가면 트라우마의 실현으로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용이한 문화적 기반이 된다. 

골목, 경제적 빈부 격차가 낳은 다른 풍경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응답하라 1988>이 우스꽝스럽게 조명했던 야한 포스터가 나붙고 상영되던 그 시대는, 이른바 3s 문화 정책이 구체화되던 시대다. 군부가 민간 정부로 자기 변신에 성공하고, 경제적 호황이 그 성공을 뒷받침할 때, '독재'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것은 바로 sex, screen, sports의 3s이다. 

그에 따라 1982년 프로야구, 83년 프로 축구, 86년 아시안 게임, 그리고 88년 올림픽으로 sports 정책은 정점을 이루었다. 또한 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거리는 불야성의 환락의 도시로 번쩍이기 시작한다. 또한 80년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되었고, 영화는 그런 컬러 tv에 대응하는 자구책인 양 tv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성인용 19금 영화들을 양산해 낸다. 그리고 그렇게 3s의 우민화(愚民化)정책이 벌어지는 동안, 사회적 비판 의식이 무뎌지는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삶에 매몰되고, 그 과정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일한 서울의 골목이지만, 그 골목길에서 배태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응팔>을 매개로 등장한 이야기는 철저한 서울 중산층의 자기 성장 스토리이다. 단칸방에서 끼니를 굶었던 정팔이네의 복권 당첨. 덕선이네 보증이라는 극적인 스토리까지 끼얹었지만, 결국은 전자대리점, 은행원, 금은방을 하는 당시 좀 살만했던 중산층의 약간은 굴곡있는 부의 에스컬레이션, 그리고 그런 안정된 기반 위에서 탄생한 아이들의 성공을 그려낸다. 골목길에서 위협이래봐야 바바리맨같은 위협적이지 않은 변태일 뿐이다. 심지어 그 마저도 미래의 남편감이 구해준다. 안온한 중산층다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그런 중산층의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응팔>을 보며 향수에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골목길의 그 누군가가 안정된 경제적 기반과 그에 따른 성공적인 자식 농사를 지었던 반면, <시그널>의 연쇄 살인마처럼 그런 경제적 기반을 누리지 못한 그 누군가에게 골목은, 상실과 범죄의 태반이 된다. 이미 사전에 제작된 <시그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지력이라도 가진 듯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아동 학대와 범죄를 다룬 데서 보여지듯, 2016년에 드러나고 만 아동 학대의 시초는 이미 저 1997년, 아니 <응팔>이 다루고 있지 않은 1980년대의 그 어느 골목길에서 비롯된다. 아니, 만약에 정환이네가 복권을 맞지 않아다면이라는 단 하나의 물음표만으로도 가능하다. 과연 그래도 여전히 쌍문동 골목길의 그들은 형님, 아우하면서 즐겁게 지냈을까? 거리로 나앉게 될 선우네를 택이 아빠가 돕지 않았다면 선우는 무사히 서울대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가족도 없이 홀로 공장을 다니다 수은 중독이 된 여공과 다른 삶을 살수 있었을까?

by meditator 2016. 2. 21. 18:02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남편찾기 전략은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소소한 우정, 가족애 에피소드로 화력이 딸리던 드라마에 '남편찾기'란 노이즈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등장했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정환)'란 신조어가 무색하게 일대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접전'은 그저 드라마 속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정환과 택의 신경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배우조차도 자신이 못내 이룬 사랑을 자신보다 더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말할 만큼, 시청자의 대리전은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겐 <응팔>은 애청자를 배반한 최악의 드라마로 기억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초지일관 엄마도 없이 불쌍한 택이네의 가족 만들기라는 뚝심있는 주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나서도 가라앉지 않는 <응팔>의 열기는 다른 드라마의 남편감조차 흐트러 뜨리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하고 나면 어줍잖게 응답하라의 복고적 분위기를 따라한 드라마가 우후죽순 등장했던 <응답하라> 낙수 효과(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고 맨 꼭대기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흘러가듯, 영향력의 확산을 노리는 전략)와도 같은 현상이다. 즉, <응팔>의 전략을 따라하면 '중간'은 가겠다는 안이한 제작 방식이, 복고 전략에 뒤를 이어 드라마 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과도 같은 사랑 찾기 
<응팔>을 연출한 신원호 피디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한 이경규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예능 피디'라 재확인했다. 그런 그의 예능 피디 커밍 아웃이 어색하지 않게 <응팔>이란 드라마는 예능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이다. 일찌기 드라마계에선 볼 수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면 등장하는 '매에에~~'하는 양의 울음 소리에서 부터, 거의 두 시간을 육박하는 방영 시간을 채우는 상당부분의 이야기들이 '에피소드' 중심의,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시트콤과 같은 내용, 거기에 무엇보다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남편찾기'에 둔 마치 한 편의 게임 관전과도 같은 전반적인 드라마의 구조가, 여느 드라마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실제 거의 두 편의 미니 시리즈를 방영하는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응팔>을 보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응팔>은 앞선 <응사>나, <응칠>보다 더 노회한 '남편 찾기' 전략이 등장했다. 이미 전작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어남류'란 신조어를 만들며 그간 제작진이 했던 방식을 간파하자, 드라마는 '어남류'로 낚으며, 그 아래 '어남택'의 복선을 깔면서, 시청자를 희롱한다. 즉, 카메라의 시선은 정환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그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된 곳에서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반응, 혹은 제작진의 의향에 따라, 정환과 택이 두 사람 중 그 누구라도 '남편'이 될 수 있는 '사전 포석'이 된다. 만약에 정환이 남편이 된다면, 역시나 <응답하라>의 전통에 따랐다고 할 것이요, 택이가 남편이 되었다면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사전에 깔아놓았던 복선을 들먹이며 이것을 몰랐나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시청자들은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남편이 누구였는가를 추적하려고 하지만, 가장 정확한 의견은, 바로 어차피 남편감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아니 그것보다 시청자를 낚기 위해 철저하게 밑밥을 깔아두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한 밑밥 덕분에 덕선은 '금사빠'가 되었다가, 모성이 충만한 택이 바라기가 되었다가의 이중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덕분에 마지막에 가서 덕선의 마음을 한껏 드러내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정해지지 않은 남편감 때문에 '덕선'은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언제나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걸, 그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게 생각하는 십대 소녀의 캐릭터로 대체하기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기엔 미흡한 캐릭터가 되었다. 아직 '자아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설명하기엔 해프닝을 넘어선 '내면'의 묘사가 미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흡한 덕선의 마음은 '남편찾기'의 불을 붙이는 데 충분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신의 마음조차 모른 채 휘둘리는 덕선을 따라,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를 하느라 눈이 벌개진다. 결국 덕선은 게임 속 보물을 찾아가는 캐릭터처럼, 시청자를 대신해 남편이란 보물을 찾는 여정을 떠난 존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응팔>이 88년 당시의 골목 공동체를 매개로 여전히 소중한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소박하게 그려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방식에 있어, '불손'함은 거기에 휘둘린 시청자들의 마음을 쉬이 침잠할 수 없게 만든다. 



<응팔>의 전략을 되풀이 하는 로코들- <치즈 인더 트랩>, <한번 더 해피엔딩>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배우들의 인터뷰 토씨 한 자를 가지고 여전히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하는 설전은 이후에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부러운 전략이다. 그러니 당연히 따라할 밖에. 

1월 4일 부터 방영되는 tvn의 <치즈 인더 트랩>은 순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캠퍼스 연애물이다. 원작의 팬들 중에 드라마화 된 <치즈 인더 트랩>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원작인 웹툰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유정 선배와, 거기에 쥐덫에 걸린 쥐처럼 사랑의 노예가 된 홍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풀어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걸출한 피디 이윤정에 의해 작품화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은 이윤정의 장기인 전형적인 청춘 연애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웹툰의 원작이 드라마화 되는 과정에 '각색'을 거치고 원작과 다른 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 심리물이, 연애물로 탈바꿈되는 것은 연애물이 융성한 드라마계의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불 수 있다. 하지만 그 달라진 전략이 원작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조차 훼손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즉 원작은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지닌 유정 선배와 홍설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된 <치즈 인더 트랩>은 <응팔>처럼 팽팽한 남녀 관계를 대두시킨다. 즉, 원작에서 그저 주요한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백인호(서강준 분)가 유정(박해진 분)과 홍설(김고은 분) 사이에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호는 로맨틱 물의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로 홍설이 어려울 때면 나타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홍설을 돕는 홍설 바라기의 인물로 설정된다. 문제는 이렇게 백인호가 홍설 바라기로 그려지는 동안, 드라마 방영 초기 원작의 유정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로 찬사를 받았던 유정이란 존재가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치즈 인더 트랩>이란 원작이 가진, '심리적 질감'을 고스란히 반영된 유정이란 존재가 미미해 지면서, <치즈 인더 트랩>이란 드라마가 그저 재벌남과 가난한 피아노 천재 사이에 낀 대학생 홍설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홍설 역시 그 캐릭터의 진실성 대신 점점 이 남자는 이래서 좋고, 저 남자는 저래서 좋은 어장 관리녀가 된다. 

이렇게 대놓고 두 남자를 내세운 전략을 드러내는 것은 <치즈 인더 트랩>만이 아니다. 1월 20일 시작한 mbc의 새 로맨틱 코미디 <한번 더 해피엔딩> 역시 다짜고짜 첫 회부터 송수혁(정경호 분)과 한미모(장나라 분)의 결혼식 해프닝을 벌이는가 싶더니, 다음 회에선 상황을 확 뒤집어 한미모를 구해준(권율 분)에 빠진 금사빠로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르른 드라마는 한미모를 놓고, 일찌기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가꿔 온 두 싱글남의 팽팽한 싸움을 예고한다. 이 드라마 역시 '우정'이냐, '사랑'이냐 전략까지 놓치지 않을 기세다. 드라마는 한 회에서는 한미모를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청순한 여자라며 자신의 친구와 결혼식 해프닝까지 벌인 그녀의 금사빠를 거뜬히 받아넘긴 구해준에 집중하는가 하면, 또 한 회는 그런 구해준의 거침없는 행보에 속앓이를 하면서 속정깊게 한미모를 챙기는 송수혁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한 회에는 송수혁이 괜찮았다, 또 다른 한 회에는 구해준에 마음이 쏠린다. 한미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예 <한번 더 해피엔딩>은 시트콤처럼 두 남자와의 갖가지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채운다. 



이렇게 <응팔>에서 전염되기 시작한 '남편 찾기', '사랑찾기' 전략은 달라진 철저히 리모컨을 쥔 '고객 만족 서비스'이다. <응팔>의 배경이 되던 시대 한 잘 생기고 멋진 남자를 두고, 순정파의 여주인공과 악녀 조역과의 피말리는 '사랑과 전쟁'에 집중하던 tv는 좀 더 적극적으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층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실은 이러면 이래서 잘 나고, 저러면 저래서 좋은 양 손의 떡을 쥐어준다.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싸우지만, 쌍문동 골목길의 공부도 못하고, 미래도 불투명했던 덕선이가 잘 나가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공군 파일럿이랑, 당대 최고의 바둑 기사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체가 환타지의 끝판왕인 것이다.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같지만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순정파인 재벌집 자제랑, 가난하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자신바라기인 두 남자나, 비록 아들은 딸렸지만 자상하면서도 능력있는 기자랑, 뭇 여인들이 흠모해 마지 않는 역시나 마음마저 따뜻한 잘생긴 의사라니, 그 나열만으로도 '므흣'해지는 구도인 것이다. 사실은 누가 된들 동화같은 환타지이지만, 게임을 시작 한 순간 쉬이 로그오프를 할 수 없는 게이머처럼, 시청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남편감을 향해 치달린다. 

by meditator 2016. 2. 4. 16:49

결국은 '남편찾기'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19회 케이블 드라마로 17%가 넘는(19회, 19.597% 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공중파 드라마가 10%만 넘어도 중박이라 치는 세상에서 놀라운 성과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는 확연히 세대별 시청 프로그램이 갈리는 tv 콘텐츠에서, 10대에서 50대까지 거의 전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구가했다는 점이 시청률을 넘어서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이런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 50대의 세대가 20대의 삶을 살았던 1988년이라는 '추억'과, 시대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두 가지 화두가 절묘하고도 적절하게 버무려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이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혹은 엄마와 딸이 '덕선이의 남편감'을 두고 격의없는 설전을 벌이는 '세대간 화해'를 이루는 성취를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은 응팔이라는 세대 공감의 드라마의 비등점을 끓게 만든 것은, 두 말 할 것이 없이 '덕선의 남편찾기'이다. 극이 중반에 들어서며 현격하게 떨어지는 서사의 빈 공간을 가족 에피소드와, 제작진이 매회 던지는 남편 찾기의 떡밥으로 채워져 갔던 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도, <응답하라 1997>에서도, 그리고 이제 <응답하라 1988>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화두'로, 제작진의 초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관통하는 강력한 '클리셰'가 되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 진부한 '남편찾기'라는 그래서 극 초반, 전작을 '독파한' 시청자들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정의를 지레 내리는 불상사에 대처하고자, 전작과는 상이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응팔>은 '남편찾기'라는 <응답하라>의 고전적 클리셰를, 전작과는 다른 결론으로 '진부함'을 피해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제작진의 선택은, '어남류'라 철썩같이 믿었던 시청자들을 '멘붕'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응답하라>시리즈가 가진 고유성마저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제작진의 새로운 전략, 어남택? 
2012년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응팔>처럼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커징텅(가진동 분)을 비롯한 같은 반 남학생들은, 쌍문동 골목길의 소년들처럼 같은 반의 여주인공 션자이(진연희 분)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커징텅은 <응팔>의 정팔(정환, 류준열 분)처럼 마음과 달리 자꾸 그녀와 어긋나기만 한다. 두 사람은 잠시 사귀기도 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응팔처럼>. 아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은 말 그대로 그들의 십대 시절의 풋풋함과, 그 시절과 상황이 달라진 나이 먹어감을 두 소년소녀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응팔>의 정환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가징텅처럼 그 시절의 대표적인 남학생인 듯 하다, 어느 순간 심지어 20회에 들어서는 존재조차 없는 존재로 <응팔>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타이밍'을 놓친 죄로, 자신을 찾아온 택에게 '덕선을 사귀라는' 잔인한 덕담이나 하는 존재로 소모된다. 

물론 덕선의 남편이 택이로 정해진 후, 그리고 시리즈의 후반 제작진이 확고하게 택이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덕선과 택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눈밝은 시청자들은 거기서 부터 유추해 들어가, 덕선과 택이의 '사랑'이 어느날 갑자기 결정된 제작진의 결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진 '세월'이라고 확인사살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덕선의 '관점'에 대한 해석이 덧대어지며 '택이'만이 덕선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결론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어남류'라 믿었던, 혹은 정팔의 관점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저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의 연기가 너무도 극진하여, 그게 아니면 류준열이란 배우의 매력에 빠져 '착각'을 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극 초반부터 등장했던, '어남류'는 그저 '남편찾기'의 바램이 아니었다. 그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아왔던 시청자들이 터득한 나름의 <응답하라>의 정서이자, 과도하게는 '주제'였던 것이다. 



그저 '어남류'가 아니라, <응답하라> 당대성의 표현이었던 정환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들은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17살 그들처럼, 94년에, 97년에, 그리고 88년에 살았을 '평범한' 녀석들이다. 비록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 분)나, <응답하라 1997>의 윤제(서인국 분)가 대한민국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의사'가 되었어도, 그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같은, 싸가지 없는 평범한 그 시대의 녀석들일 뿐이다. 그에 비해, 그들의 연적이 되었던 <응사>의 칠봉이(유연석 분)나, 윤태웅(송종호 분)는 당대의 영웅이었다. <응답하라 1988>의 이창호가 연상되는 최택처럼. 그래서 그들은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처럼 잠시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해서, 한껏 여주인공의 러브 환타지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다가, 어느덧 그들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제 아무리 잔인한 이별을 고해도, 그들에게는 당대의 영웅으로 거듭날 그들만의 서사가 남아있으니까. 그들에게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위로받을 수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잠시 그녀를 사랑했던 영웅은, 그들답게 그들의 '마이웨이'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응팔>은 이미 시청자들이 익숙해져 버려서, '어남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이 시리즈의 클리셰를 극복하기 위해 전작이 하고자 했던 '당대성'을 파괴한다. 즉, 당대의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최택이라는 당대의 영웅같은,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주인공과 맺어짐으로써, 그 시대 보통 소년이었던 정환의 존재가 공중으로 붕 뜬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 시리즈가 가져왔던 '당대성'도 함께 공중으로 붕 뜨게 된 것이다. 그저 당시의 시대상이나 소품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청춘'의 당대성'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여주인공인 덕선이가 사랑을 찾았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 안타깝게도 제작진이 남편찾기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트릭이었던 것인지, 드라마는 거의 16부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정환'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했다. 언제나 카메라의 시선을 정환을 향해 있었고,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는 그런 정환의 시선 속에서, 그리고 정환에 중심을 맞춘 카메라의 외곽에 에피소드처럼 다루어 졌다. 그러니 드라마에 골몰한 시청자들은 정해진 미로를 탐구하는 모르모트처럼 제작진이 프레임 안에 가두어 둔 정환의 풋사랑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덕선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정환의 마지막 고백 장면에 등장했던 '정환'의 순애보의 전사를 덕선보다도 잘 안다. 거기다, <응답하라> 시리즈 전작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정환은 '가족애'의 현현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무뚝뚝하지만, 라미란 여사네 아들로써 그 누구보다 속깊은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심장병에 걸린 형 대신 공사까지 가는 '가족애'의 주인공이다. 가족뿐인가, 그가 첫 번째 존재감을 드러낸 선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그 씬 이래 정환은 좋은 친구 이기도 했다. 이전의 작품들은 이런 '공동체'를 봉합하려 종종 자신마저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그 보상으로 '사랑'을 선사했는데, 이번 시리즈에선, 그런 정환에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고백'조차 거짓으로 하게 만드는 '진따'로 만들어 버렸으니, <응답하라>에 '모범생'처럼 제작진이 주는 받아먹는 충성을 바쳤던 시청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배신이 된 것이다. 착한 아들, 착한 동생은 심지어 착한 친구로 남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정환만이 아니다. 그만큼 평범했던 동룡이마저 실종되었다. 어느 시리즈보다 가장 혈육같았던 친구들은 그저, 덕선과 택이의 러브 메신저로만 소비되었다. 

그런데 이제 원래 '어남택'이었다니, 이것을 <응답하라>의 변경된 전략을 그저 이전과는 다른 '남편찾기'로의 재미로 해석할지, 그게 아니면 덕선이에 대한 일편단심 택이의 순애보로 받아들일지, 그도 아니면 남편찾기에 골몰하다 스스로 궤도 이탈해 버린 시리즈의 궤멸로 받아들일지조차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번에도 역시 '남편찾기' 흥행을 대성황이라며 삼페인을 터트리는데, 제작진에 순종했던 시청자들은 '분노'하거나, '허무'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분명 다음에 또 <응답하라>가 만들어 지면 볼테니,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by meditator 2016. 1. 17. 02:01

17회 <응답하라 1988> 자체 최고 시청률 (15.472% 닐슨 코리아)을 찍으며 쌍문동 골목길의 아이들은 저마다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80년대가 저물었다. 7수를 하며 사랑하는 여자 애를 위해 학 400마리를 접던 정봉이 마저 성균관대 법대에 들어서며 화려한 90년대를 시작한 '쌍문동 서민'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접어든 <응답하라 1988>을 보며 문득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그래서 도대체 19080년대, 그 중에서도 1988년은 어떤 시대였던건가요? 라고.

 

 


핏줄과 우정만 남은 시대?

기꺼워하지 않는 동생을 데려다, 국방색 담요까지 씌운 의자에 앉혀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자는 정봉, 그리고 그런 형의 해프닝에 언제나 그랬듯이 군말없이 따라주는 동생 정환. 그리고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정봉이 빌던 소원, '정환이 너는 (심장 수술을 한 자기처럼 못하는 거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정봉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정환은 영화 <탑건>을 보며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형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공사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정환의 마음을 눈치채고, 형을 위한 것이 아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한 정봉의 말에, 정환은 형의 시선을 피하며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이 장면이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애초에 정환은 '형'의 소원을 알았어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형은 흔쾌히 그런 동생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아마도 두 형제의 엔딩은 각자 자신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응답하라 1988>의 선택은 기승전 '가족'이다. 그들은 '가족'으로 '금의환양'한다.

 

어디 정환뿐인가? 17회에 마무리는 부모들이었다. 도란도란 모여앉은 아빠들, 엄마들은 각자 자신들의 꿈을 떠올리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가족'과 '가정'으로 회귀되었음을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그들의 수다는 그들이 한때 '가수'를 꿈꿨던, '화가'를 꿈꿨던, 심지어 '한 춤'을 했건 기승전 '가족 걱정'으로 귀결된다. 덕선과 보라의 엄마는 보내지도 않은 딸내미들의 결혼 생각에 눈물짓고, '개딸'이라며 버럭거리는 '동일' 아빠는 '꿈'이 없다는 딸을 다독이며, '아버지'로만 살아온 삶에 자부심을 내보인다.

 

부모들만이 아니다. '남편찾기'라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최대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부모의 재혼 덕분에 하루 아침에 호형호제하게 될 선우와 택이가 서로 이물감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을 나눌 수 있듯이, 어쩌면 핏줄보다도 더 가까웠던 쌍문동 골목길 아이들은 그 '핏줄보다 진한 우정'때문에 덕선에 대한 사랑조차도 내보일 수 없었다. 자신보다 친구를 더 생각하는 '우정'의 시대다.

 

 


 


대한 뉘우스같은, 트루먼 쇼같은

이런 <응답하라>의 화법은 죽은 동료의 시신을 찾아 히말라야로 떠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떠나는 산악대의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우정과 다르지 않고, 역사의 격동기에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국제 시장>의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니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족'의 눈물어린 후원 뒤에 '성공'을 일군 우리 앞선 세대들의 영광을 찬란하게 '홍보'했던 ,대한 뉘우스>에 더 가깝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응답하라>에 없는 것이 있다. 거기에 공중파 시청률 고공 행진을 벌이는 드라마들에 필수 요소인 질투와 질시, 그리고 협잡이 없다. 쌍문동 골목길 아줌마들은 그 아줌마들의 전매 특허라는 뒷담화가 없고, 한결같이 '이웃집을 질투하는 대신' '내집처럼 이웃집을 걱정한다', '부러워는 할 지언정,' 사촌이 땅을 사도 배아프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그래서, 눈물과 감동이 넘쳐나느 대신, 회를 거듭할 수록, 그 눈물과, 가족애와 우정이 공허해진다.

 

마치 가상의 80년대 같다. 드라마 속 80년대에는 80년대의 광주 사태 이후, 깊어질 대로 깊어진 지역 간의 골은 드러나지 않은 채,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격의없는 이웃으로만 등장한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심화되기 시작한 사회적 빈부격차는 서울 변두리 쌍문동 골목길은 피해간다. 저마다 아파트니, 땅을 향해 달리던 부를 향한 열망도 그저 tv 배경 화명일 뿐이다. 그저 경제 융성기의 세례를 받고, 재수를 거쳐 다들 무난하게 저마다 화려한 스펙을 얻는다. 공무원 시험 10년이라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꿈도 꾸기 힘들.

 

허긴 화려한 꽃구경같은 <응답하라> 속 진실은 있다. 광주 사태가 나건, 지역 감정의 골이 깊어지건, 사회적 빈부 격차가 심해지건, 그저 붙잡고 매달리 수 밖에 없는 것은 '가족'밖에는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대사라는 '빈곤함'이다. 아버지 세대건, 어머니 세대건, 그저 그 시대를 이야기할 때, 6.25세대건, 4.19세대건, 70년대 세대건, 이구동성으로 자식을 위한 희생외에는 말할 것이 없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증명이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건 내 새끼, 내 식구 먹고사니즘이 최대 과제였던 '가족주의'라는 구심점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 현대사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국회 청문회 자리에 앉은 높은 분들이 내 가정의 보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그라지 않는 것이 범사가 되어버린 세대인 것이다. 그리고 한때는 의식이 있건 어떻건 결국은 개인의 '입신양명'으로 귀결되는 서사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보라처럼 의식있는 아이들도 결국은 '사법시험'을 통해 금의환양의 길을 택하고, 홀어머니 밑의 선우는 의대 전액 장학금이라는 화려한 성공으로 보상해야 하는, 하다못해 공부 못하는 보라도 비행승무원으로 제 앞가림 정도는 번듯하게 했다 해야 사람대접을 받는 시대인 것이다. 그게 평범한 서민의 삶이라고 <응답하라>는 은연중에 강요한다.

 

by meditator 2016. 1. 9. 15:52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의 '힐링'이란 단어가 전 사회적으로 유행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인 '웰빙'이 열풍처럼 사회를 휩쓸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치유와, 편한한 삶의 방식은 치유되지 않는 관계와 편안함을 주지 못하는 사회의 반증을 의미했다. 그래서, 힐링을 내걸었던 예능 프로그램이 애초의 자신의 정체성을 지운 채 mc를 바꾸는 특단의 조처를 하듯, 힐링도, 웰빙도, 이젠 입 밖에 내밀기가 '촌스러운' 철 지난 단어들이 되어간다. 


어디 웰빙과 힐링 뿐인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던 자기 계발서들은 여전히 그 아성을 공고히 하지만, 그 내용과 작가들은 어느새 다른 이의 다른 말들로 대신한다.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젠 '힐링'도, '웰빙'도 무색해지고, 자기 계발조차 공허해진 채, 그 자리를 내 꺼 아닌 그 누군가를 향한 화풀이 성 '혐오'. '집요한 막말'로 채워가고 있는 것이 저물녁의 2015년의 풍경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정작 손가락질 해야 할 사람은 외면한 채 만만한 연예인이 되었건, 사회적 해프닝의 당사자가 되었건, 심지어 지난 사건의 피해 당사자들이 되었건 거침없이 욕을 퍼붇고 화풀이를 해대는 송년의 시기에,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두 작품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예외없이 이번에도 '응팔'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응답하라 1988>이요, 또 다른 하나는 잔잔히 그 파문이 조금씩 퍼져 나가는 고레이데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이다. 



상실의 아픔을 다른 이의 상실을 껴안는 것으로;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 잔잔한 이야기의 시작은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의 아버지 부음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막내 치카는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곁을 떠난 사람이다.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별 일이 아니'라고, 혹은 밤 근무때문에 장례식에 가지 않을 그런 사건인 것이다. 그래도 세 자매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았고, 거기서 그녀들의 배다른 동생인 스즈를 만난다. 그리고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큰 언니인 사치는 뜬금없이 그녀들을 배웅나온 스즈에게 자신들과 함께 살겠냐고 하고, 스즈는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그렇게 네 자매는 외할머니의 오래된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매실이 열리고, 지고 하는 계절이 바뀌어 가며,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며 조심스러웠던 네 자매는 조금씩 서로의 벽을 허물고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처음 배웅 나온 스즈에게 함께 살지 않겠냐고 하는 큰 언니 사치의 행동은 뜬금없어 보였다. 하지만, 잔잔히 흐르는 영화를 보며 결국은 사치를 이해하게 된다. 십대의 시절 부모를 떠나보냈던 그녀는 어린 스즈에게서 그 시절 자신에게서 느꼈던 막막한 외로움의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두 시간여의 시간 동안 결코 흐트러짐없이 낡은 집의 가장으로 동생들을 품어 안는 사치를 보며 그녀의 지난 시간에 배어있는 버거움의 역사를 느끼게 된다. 사치만이 아니다. 언니의 말 한 마디에 기억도 없는 아버지가 남긴 동생, 주변 사람들이 비록 동생이라도 함부로 들이는게 아니라고 극구 말리는 아이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나머지 자매들의 태도 그 속에 숨은, 말끝마다 아웅다웅해도 지난 세월 아이들 세 명이서 서로 부등켜 안고 커왔던 시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처럼, 조심스레 스즈를 맞이했던 세 자매도, 그 아이의 아픔을 지켜보며 자신들을 복기한다. 

그렇게 그 네 자매들은 아버지가 바람을 펴서 자신들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그런 아버지를 핑계를 대며 자신들을 떠났지만,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리게 만든 그 여자가 낳은 아이를 자신들의 자매로 품어 안는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라면 머리 끄댕이 몇번은 잡고, 재산 싸움을 벌이며 피투성이가 될 관계들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심스레 가족으로 융합한다. 그런 언니들의 배려 속에서 사치만큼이나 일찍이 철이 든 아이 스즈도 쉼없이 떠나야만 했던 지난 시간의 강박을 드디어 내려 놓는다. 그저 한바탕 울고 불고 엉크러지고 난 후, 화끈하게 '가족'이 되는 대신, 서로의 상처를 섣불리 끄집어 내지 않고 조심스레 지켜보며, 그쪽에서 마음을 열기를 기대려 주는 방식은 생소한데, 그 어떤 '힐링'보다도 위로가 된다. 

네 자매를 버티는 것은 결국 언니 사치다. 그녀가 집을 떠난 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동생 스즈를 데려왔건, 아버지를 사랑했던 그 여인처럼 자기 자신이 유부남을 사랑하는 처지때문이었건, 사치는 외할머니의 낡은 집을 지킨다. 이제는 떠날 수 있다며 함께 외국으로 떠날 것을 종용하는 오랜 연인 대신, 낡은 집을 지키며,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일을 택하는 사치의 방식은, 발전과 개발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삶의 방식에 길들여진 2015년의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질문이다. 내 삶의 결핍을 채울 요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언니 사치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갈아치는 애인의 사랑 대신 보람이 될 일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요시노도, 특이한 취향을 넘어 지켜볼 줄 아는 치카의 조용한 사랑도 이 다이어리의 빼놓을 수 없는 페이지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 이번에도, 상실로 시작되어 그 상실을 치유하는 방식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친다. 결국, 문제는 상실이 아니라, 상실을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문제라고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그건 여전히 오랜 저성장에 피폐해진, 거기에 원전 피해까지 얹혀진 일본 사회의 트라우마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역시나 어디까지 갈 지 모르는 저성장 사회에 떠밀려 가는 국가 만족도 9%의 대한민국에도 유의미한 질문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시련에 빠뜨리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다른 '선택'을 하며 '행복'해 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도 깊은 울림이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소승불교처럼 쉬이 사회적 해결을 볼 수 없는 사회의 불가항력의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가난을 베품으로; <응답하라 1988>의 라미란
부모로 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아버지를 잃은 동생의 아픔을 보다듬으로써 치유해가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다른 이들을 껴안으며 넉넉해지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응답하라 1988>의 정환, 정봉이 엄마로 나오는 라미란 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환이네 집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문간방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며 아픈 정봉이를 놔두고 엄마가 도배 일을 하며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집안이다. 그런 정환이네 집이 정봉이의 올림픽 복권으로 하루 아침에, 라미란 여사의 말 그 대로 '벼락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흔히, 아니 한국 현대사에서 등장했던 다수의 벼락 부자들의 행태와 달리, 라미란 여사의 품은 넉넉하다. 사실 '확대 가족', 거의 '골목 공동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쌍문동 골목의 인심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라미란 여사네 곳간과, 그 곳간의 인심에서 기인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수학 여행을 앞두고 딸인 덕선의 용돈마저 주기 어려워 쩔쩔 매는 덕선 모 앞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터억하니 용돈을 하라고 봉투를 내미는 라미란 여사의 넉넉함은 바로, 쌍문동 골목의 인심을 상징한다. 그런 식이다. 아버지의 빛 보증으로 쪼들리는 덕선네의 안간힘도, 남편없이 아들과 딸을 키우는 선우네의 쪼들림도, 훈훈한 인심으로 끝날 수 있는 에피소드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 구비구비에서 '라미란 여사'네가 있다. 

때론 화장품 아줌마를 불러,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만, 결코 혼자만이 아니라, 덕선 엄마랑 선우 엄마와 함께 그걸 누릴 줄 아는, 정환이네 집에서 매회 등장하는 그 무지막지한 음식의 향연은 곧, 자신의 부에 인색한 대신, 가난을 이해하고 함께 풀어가는 라미란 여사의 과도한 여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여전히 가난한 시절의 습관을 벗지 못한 남편에게 눈치를 주기도 하고, 서슴치않고 '벼락 부자'라 자신을 지칭하면서도, 그 '벼락부자'가 연상케 하는 '인색'함 대신, '곳간'에서 인심을 내는 라미란 여사의 방식은,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부의 방식이다.  


상실을 또 다른 상실을 이해하고 품어내면서 스스로 치유해가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삶의 방식이나, 가난했던 지난 날을 이웃에 대한 무한 퍼줌으로 상쇄해가는 라미란 여사의 부의 방식은 상실된, 혹은 결핍된 삶을 채우는 방식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된다. 물론, 사회가 변화되지 않는 한 개인의 고통은 종식되지 않겠지만, 사회적 변화에 앞서, 혹은 사회적 변화 이전에, 삶에 대한 근본적 대처 방식에 대해 두 작품은 한 해의 마지막 우리에게 묵직한 과제를 안긴다.  

by meditator 2015. 12. 23. 21:04

11월 20일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이 드디어 케이블 시청률 10%를 넘었다.(닐슨 코리아 기준 10.145%) 그도 그럴 것이 20일 방영된 5회는 자식되는 혹은 부모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모성'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고 홀로 자식을 키우는 선우모(김선영 분)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의연하게 견뎌냈지만, 결국 친정 엄마의 측은지심에 무너지는 모습에 시청자의 누선을 자극했다. 민정당사 농성에 가담했다 잡혀가는 큰딸 보라(류혜영 분)를 막아선 엄마(이일화 분)의 애끓는 일편단심 모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남편과 아들 둘을 놔두고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던, 그리고 자신의 부재에도 잘 지내는 가족들에게 실망하는 정환 모(라미란 분)의 모정은 바로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 그자체로 공감을 자아냈다. 그렇게 울고 미소지으며 한 시간을 시청하고, 채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하지만 마음은 씁쓸해졌다. 




부동산 투기를 하던 엄마도 88년의 모성이었고, 
유신 말기에서 부터 전두환 정권이 끝나던 시기인 85년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세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88년 부동산 광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부동산 광풍은 강남권 아파트는 물론 전국의 모든 토지가 그 대상이 되었고, 오죽하면 '망국병'이라 지칭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시 '망국병'에 앞장선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바로 그 누군가의 '엄마'들이다. '부동산 투기'바람의 선봉에 선 그 누군가의 엄마들이 드라마에서 처럼 '마른 자리 진 자리' 보살피는 대신, 아파트다. 토지다 하며 전국을 휩쓸며 다닌 덕분에, 그 '엄마'의 자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한 자리 할라치면 너도 나도 불법 토지 거래로 걸리는 망국 유전병'을 가진 자식들이 되었다. 그렇게 <응답할 1988>은 88년의 모성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이 드라마 이야기 하지 않고 있는 모성은 또 있다. 바로 운동권 자녀를 둔 보라 엄마의 모성이다. 엄마는 골목에 숨어있다 잡혀가는 보라를 막아선다. 빗속에 신발도 벗어제친 채 달려온 엄마의 발에선 피가 흐리고,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없다. 잡혀가는 딸을 막아서며 자신의 딸 보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자식인가, 부모를 생각하는 딸인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딸 보라는 집안 식구들조차도 꼼짝못하게 만들었던 그 기세 등등한 보라는 '잘못했다'는 말을 성큼 내뱉고 만다. 자식을 위해서는 맨발도 마다하지 않고 가녀린 몸으로 막아서는 모정, 그 앞에서 자식은 결국 '자존심'을 내던지고 만다. 그리고 드라마는 보라가 내던진 자존심이, 그리고 사복 경찰 앞에서 빌듯이 애원하는 엄마의 보잘것 없는 자존심이  바로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삼베 수건을 쓰고 거리로 나선 엄마들도 88년의 모성이었다. 
하지만, 88년의 모성은 보라 엄마같은 모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시작은 보라 엄마처럼 시작했을 수도 있다. 85년 12월 12일 서울 기독교 회관 2층에서 민주화 가족 협의회가 창립되었다. 이 조직의 원칙은 특이하게도 '담보물 우선주의'이다. 여기서 말하는 담보물은 바로 '감옥에 갇힌 자녀'들이고, 그 담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선 부모들이 이 협의회의 회원들이다. 이 회원들도 보라 엄마처럼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부모들은 '한 개인의 석방을 애원하기 보다는 민주화의 대열에 함께 서는 것이 고통받는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지름길'이라고 믿으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부모들은 6.10 항쟁의 기폭제가 박종철 치사 사건 때 머리에 삼베 수건을 뒤집어 쓰고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어간 남영동 대공 분실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었다. 7월 4일 최류탄을 맞고 죽어간 이한열 군 장례식때도 시청까지 꽉 매운 행렬의 선두에 선 것은 역시나 머리에 삼베 수건을 쓴 어머니들이었다. 그 어머니들이 바로 드라마가 배경이 된 88년에 무엇을 했냐 하면, 10월 기독교 회관에서 의문사 유가족을 중심으로 135일의 농성을 벌였다. 



‘그들도 처음엔 평범한 어머니 보통의 아내였다. /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기다리고 / 자기 일에만 바쁜 남편이 밉던 / 남들과 똑같은 여자였고 어머니였다. 자식이 혹시 / 무슨 물이나 들지 않을까. 조바심 내던 아버지였다. / 적어도 가족들이 고난받는 길을 택하기 전까지는 / 식구 중의 하나가 이 민족의 고통을 끌어안고 / 전생애를 다 던지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도종환; 민가협 창립 열돌에 부쳐; 민가협)

드라마는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보라의 문제를 '집안 문제'로 해결한다. 아버지가 나서서 딸을 주리틀듯 잡아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튕겨나갔던 딸은 어머니의 눈물 겨운 모성에 결국 '항복'을 하고야 만다. 극중 보이듯 보라는 '단순 가담'으로 인해 '훈방'조치에 처해진다. 마치 드라마는 엄마 아빠의 극진한 마음이 닿았던 것처럼 그려지지만, '훈방 조치' 할만 하니까 한 사안인 것이다. 오히려 그 기세 등등했던 보라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핑계로, 도망치고 싶던 자신의 '퇴로'를 마련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민주화 시위'에 가담했던 보라의 일은 드라마 속 가족의 '해프닝'으로 다루어진다. 마치 경기에 진 택이를 동네 아이들이 응원하여 추스리게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그저 드라마의 해법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모성'에 기대어 우리의 가족을 설명하듯이, 그 모성과 부성의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사회가 선택한 해법이다. 

'내 가족'을 선택한 우리 사회의 결과, 헬조선 
민가협의 어머니들이 자식을 잃은 고통을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의 민주화에 적극 동참하는 것을 '지름길'을 찾았지만, 우리 사회는 가족에게 전해지는 모든 사회적 부담과 고통을 '가족끼리' 보담고 '사랑'하는 것으로 해결해 왔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복지 제도를 가진 스웨덴이 자신들의 집이 곧 사회이며 국가이고 민족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노인과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열렬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새끼', 내 부모'를 보담고, 각자 도생하기 위해 각자 고군분투 해왔다. 그래서 어느 부모는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껴 자식을 번듯하게 키워내고, 또 어느 부모는 자식의 밥을 챙기는 대신 열심히 투기 바람에 날라 다녔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2015년이 '헬조선'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회이기에 대통령이 된 사람의 과업이 아버지 되살리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내고 있는 88년에도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극진한 가족애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1. 21. 16:11

10월 30일 2.996%로 시작한 <응답하라 1998>이 4회만에 시청률 8%를 넘었다(닐슨 코리아 기준 8.251%) 이 정도면 앞선 <응답하라>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신드롬에 도달하고 있는 중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평가다.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별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쌍문동 골목 가족들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역시나 전편에 이어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 퍼즐의 반복인데도, 하염없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묘하다. 그 이유가 뭘까?


이 글을 쓰는 기자는 83년에 대학을 입학한 연식이 제법 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83학번 세대가 본 <응답하라 1988>은 동시대적 공감 그 자체일까? 그런데 이상하다. 동시대, 아니 이미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는 듯한 회고조의 기시감이 든다. 드라마는 1988년인데, 막상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정취는 1970년대의 어느 시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그건 내가 살았던 1980년대에는 느끼기 힘들었던 정서를 <응답하라 1988>이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존무죄, 무전유죄의 1988
11월 13일 방영된 3회 <응답하라 1988>의 소 제목은 유전무죄, 무전 유죄였다. 드라마의 사회적 배경은 지강헌 탈주 사건 과정에서 그가 외친 '유전무죄, 무전 유죄'가 사회적 유행어가 되던 시기이다. 왜 당시 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유행어가 되었을까? 이 말 그대로 이미 당시 대한민국은 '유전(有錢)'이 곧 사회적 기득권을 얻는데 직행 티켓이 되는 것이 당연시 되어가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를 살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부의 격차를 넘어선 사회적 격차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시기였기에, 한 탈주자의 이 말이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사회적 유행어로 자리매김하던 시기가 되었다. 즉, 광주 사태를 진압하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 정권을 뒷받침한 경제적 호황은 그 떡고물이 편중되어 계층 차이가 분명하게 체감되기 시작하던 때가 바로 저 88년 올림픽의 뒤였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선 그런 빈부의 격차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정환이네는 형이 산 올림픽 복권으로 졸지에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이 가진 부를 전횡하지 않는다. 말끝마다 '졸부'잖아 하면서도 수학 여행을 가는 덕선이의 용돈까지 챙길 정도로 정환모의 마음은 넉넉하다.  빛보증을 잘못써서 하루 아침에 반지하로 내려앉은 덕선네는 막내 아들 노을을 친구들이 '반지하'라 불러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파지만, 그럼에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그리고 여전히 술만 마시면 누군가에게 퍼주는 마음 넉넉한 가장의 여유를 가진 집안이다. 드라마 속 골목 사람들에게 빈부격차는 그저 경제적 지수일 뿐, 말 그대로 콩 한 톨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정서를 쌍문동 골목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은 그런 시대를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농촌을 다룬 <전원 일기> 속 농촌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듯이, 쌍문동 골목 이야기를 다룬 <응답하라 1988> 속 서울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1988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가 시작된 시기는 1980년 10월 21일이다. 이 시기가 상당히 상징적이지 않은가. 1980년 하고도, 광주 사태가 마무리 된 10월 21일, 거기에 농촌 공동 사회가 파괴되고, 도시 집중 현상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 1980년대의 그 첫 무렵에, 농촌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다룬 <전원일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원일기>는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할머니, 아버지, 자식 삼대, 사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과, 그 주변 이웃들이 너나없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의 이야기로 당시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오죽하면 그 드라마에 나오는 최불암, 김혜자 씨를 진짜 부부로 알았을 정도로. 



우리가 상실한 도시 공동체, <응답하라>
그렇듯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기초 단위로 한 도시 공동체의 이야기를 <응답하라> 시리즈는 일관되게 다룬다. <응답하라 1997>이 부산의 성시원네를 배경으로 너나없이 지내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응답하라 1994>는 서울 신촌의 하숙집을 배경으로 역시나 혈육같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드라마 모두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해져 버린 벗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핵심에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성동일-이일화 부부가 있다. 즉, 이 부부를 중심으로 한 확대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응답하라> 시리즈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화룡점정이 된 것은 당시의 시대를 묶어낸 음악을 비롯한 문화적 상품을로 점철된 문화적 공감대가, 공동체적 정서를 더하여, 완성된 시대적 공동체가 완성된다. 즉, 해체된 원자화된 21세기 사람들이 잃어버린 공동체와 그 정서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점을 쌍문동 골목으로 가지고 간다. 왜 쌍문동일까? 그것은 <전원일기>가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양촌리라는 곳을 찾아간 것과 같은 이치다. 당시 서울이라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변두리 쌍문동을 배경으로, 마치 70년대나 60년대에나 있을 법한 서울 도시 공동체의 정서를 드라마는 담는다. 서로의 밥그릇 갯수까지 알 것같은 이웃들, 그래서 드라마는 개인의 문제로 시작하여, 공동체의 해결로 끝을 맺는다. 반대로, 관계의 문제가, 공동체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4회, 바둑 경기에서 자꾸 지는 택이의 문제를 친구들이 함께 왁자기껄 웃고 해결하는 것이 공동체 해결의 대표적인 사례요, 매 시리즈마다 시청자들을 낚는 여주인공의 남편 문제가 대표적인 공동체의 문제화환 개인의 문제이다. 즉,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공동체가 나서서 서로서로 해결해 주지만, 감정조차 공유해 버리는 그 공동체의 부담 역시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매 시리즈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는 그저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너와 나가 분명치 않는 공동체적 문화의 필연적 산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응답하라>는 <국제 시장>과도 같은 코드를 가진다. 그 시절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아버지가 오늘의 현재를 일구었듯이, 이제는 사라진 가족 공동체의 아름다움이 그 시절의 추억을 한껏 살려낸다. 과거는 아름답고, 추억은 흐뭇하다. 그저 문제는 그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떨구어져 나온 현재의 우리뿐. 그런데 오늘의 빈익빈 부익부, 배금주의, 해체된 가족, 그리고 원자화된 개인을 낳은 것은 누구일까? <국제시장>의 아버지는 오로지 희생만 했을 뿐이고, <응답하라>의 가족은 가족을 중심으로 사랑하고, 뭉쳤을 뿐일까? 과거를 그린 드라마들은 답하지 않는다. 그때는 아름다웠고, 지금의 현실은 불쌍할 뿐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정이 넘쳤고, 우리는 그 정마저 잃은 채 도시를 헤맨다. 도대체 그럼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현재를 만든 부모 세대의 배금주의, 성공 지상주의를 드라마는 그려내지 않는다. 

<전원일기>는 파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의 이야기를 시늉만 했을 뿐, 아름다운 농촌만을 그려냈다.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역시 그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 속에서 살아낸 가족들은 성공한 중산층으로 그려질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성공한 자의 후일담은 약간의 흉터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응답하라>가 달착지근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by meditator 2015. 11.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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