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방영되었던 28회 <애인있어요>의 마지막 장면은 은솔이를 죽인 범인이 출소한 후 도해강을 찾아와 오히려 도해강을 몰아붙이다, 그만 도해강을 쓰러지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정신을 차린 도해강의 뇌리에 그녀가 독고 용기로 살던 지난 4년간 잊었던 기억, 바로 그녀의 '핵심 기억'인 최진언과의 이별 과정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13일 방영된 29회에서 다시 되풀이된 그 장면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도해강은 그녀가 사고를 당하기 전 바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바렸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즉, 그녀는 도해강으로서의 기억을 되살린 대신, 지난 4년 독고용기로 살아왔던 기억을 지웠다. 




파렴치범 최진언에 대한 속 시원한 도해강의 복수 
50부작 <애인있어요>의 초반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은 바로 남자 주인공인 최진언의 불륜이었다. 아니 불륜도 불륜이지만, 비록 아이가 죽었다지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왔던 아내에게, 아이의 죽음에 대해 태연하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모진 말을 퍼붇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이 여자만 치워준다면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는 폭언을 최진언은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그가 시간이 흘러 4년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해강을 잊을 수 없고, 도해강과 다시 사랑을 하기 위해 '순애보'를 펼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최진언을 연기하는 지진희의 설레는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29회를 통해 배유미 작가가 왜 그토록 극 초반 최진언에게 그 모진 말을 도해강에게 퍼붓도록 했는지 설명한다. 바로 독고 용기로 살아왔던 지난 4년을 잊은 채, 그 4년 전 최진언에게 갖은 수모를 당한 채 시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도해강의 기억으로 돌아간 현재의 도해강은, 최진언에게 예전의 그가 그녀에게 그랬듯이, 치를 떨어한다. 그래서 극 초반 최진언이 도해강에게 퍼부었던 그 '혐오'의 대사들은 29회를 통해 통쾌하게 최진언에게 돌려진다. 도해강은 결혼 생활 동안에서 듣지 못했던 '사랑해요'라는 말까지 들으며 가슴이 설레이던 최진언에게, 4년 전 최진언이 그랬듯이 당신에게 질렸으며, 당신을 보면 가슴이 떨리는 대신 소름이 끼친다며, 자신의 앞에서 최진언을 치워달라 최진언에게 퍼붓는다. 그래서, 독고 용기가 되어도 여전히 최진언을 보고 가슴이 떨리던 그녀는 그 기억을 지운 채 마치 체증이 풀리듯 도해강의 묵은 분노를 맘껏 표출한다. 



원죄의 주인공으로 돌아온 도해강
물론 도해강으로 돌아온 그녀로 인한 아픔도 있다. 마치 1인 3역처럼, 도해강, 그리고 독고 용기, 독고온기로 도저히 한 사람의 연기로 보여지지 않은 김현주의 연기력에 의해, 다시 도해강으로 돌아온 그녀는, 지난 4년동안 독고 용기로 살아온 도해강이 떠올려지지 않을 만큼 찬바람이 씽씽 분다. 그래서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던 독고 용기는 울화통이 터져 술잔을 기울이고, 지난 4년간의 순애보를 접지 못해 애태우던 백석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 주저앉아 버린다. 

또한 도해강으로 돌아와 극의 긴장감은 배가되었다. 백석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그리고 백석의 동료 변호사로서, 도해강으로서 살아온 지난 날의 '속죄'에 매진하려 했던 독고용기였던 도해강은, 이제 다시 그 예전의 피도 눈물도 없는 도해강이 되어 '천년 제약'으로 복귀한다. 그녀의 복귀에 천년 제약 측 민태석과 최진리, 그리고 최진언바라기인 설리의 셈은 저마다 복잡해졌다. 

<애인있어요>의 묘미는, 쉽게 그 누구의 편도 들수 없는 반전의 반전, 그 연속에 있다. 극 초반 불륜파렴치범이었던 최진언은 4년 후 도해강 바라기의 '순애보'로 변모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천년 제약의 개 도해강은 사고 후 의협심강한 독고용기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다시 그 기억을 지운 채 도해강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마치, <송곳> 속 구고신의 '사는 데가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라는 말의 극화처럼, 드라마는, 요동치는 운명 속에서 자신의 업보에 허우적거리는 남녀 주인공의 행보가 시청자을 쥐락펴락한다. 이제 최진언의 순애보 앞에 쉽게 가슴을 열었던 도해강은, 그녀가 4년 전 미처 못했던 복수의 말들을 퍼붓는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잔인한 복수는, 바로 최진언의 사랑을 잊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독고용기였던 도해강이 제 아무리 자신의 지난 기억이라 해도 도해강의 지난 원죄에 대해 제 3자적 입장이었다면, 이제 도해강은 그 원죄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게 된 것이다. 과연, 사랑도,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지난 시간의 원죄도 어떻게 풀어갈 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5. 12. 13. 01:05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는 <응답하라 1988>, 그 드라마 속 성동일의 장녀 성보라는 운동권 여학생으로 등장한다. 그 당시 성보라같은 운동권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제일 먼저 읽는 책 중에 하나는 바로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었다. 대학 입학 초기 교양 강의에서도 종종 권장되었던 이 책에서는 중간자로서의 지식인의 정체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어떤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 곧 지식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 사회의 지배 체제를 이끌어 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전문가들이 지배 계급과 비 지배계급의 중간자로서의 위치에서 지배 계급 유지의 '집 지키는 개'가 되는 대신, '자신의 권한 밖에', '자신과 무관한 일에 참여하는 귀찮은 존재'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존재로서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7,80년대의 대학생들은 '선택받은 자'로서의 지식인의 사명과 고뇌를 대학 입학의'세례'로 받아들이는 것을 시대적 숙명으로 여겼었다. 그래서 88년의 시대상을 그려내는 대중적 드라마에서 대학생 성보라는 고뇌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운동권 학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에서 자신의 사상적 계급의 선택 기로에 놓인, 그래서 고뇌해야 했던 지식인은 자본주의 발전, 그리고 신자본주의의 발현과 더불어, 지배 계급 체제 속으로 '흡입'된다. 한때 운동을 했던 선배들이 대기업을 다니며 자연스레 소시민이 되어갔고, 그 다음에는 imf와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각자도생의 삶에 침몰되었다. 그 과정에서 '재벌과 관료, 법조의 커넥션'이 대한민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입시 전쟁'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지식인으로서의 고민 이전에 불경기 안에서 그 커넥션 속에서 어떻게든 한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다시 '취업 전쟁'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청년 실업률이 장년의 실업률을 앞서는 나라에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사치가 되어가는 것이다. 



2015년의 지식인은? 내부자 혹은 송곳이 되어 
그렇게 모두가 저 마다의 밥그릇조차 찾아먹기 버겁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2015년에 등장한 영화와 드라마들은 저 오래된 지식인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물론, 2015년의 그들을 '지식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로 '재벌과 관료, 법조' 커넥션 속의 '내부자들'로, 혹은 참을 수 없는 '송곳'같은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11월 29일 12부작으로 종영한 jtbc의 <송곳>,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수인은 프랑스계 유통 대기업 푸르미의 과장이다. 과장이라는 간부직인만큼, 그는 재벌 카르텔의 내부자이지만, 드라마 속 그는 '재벌'의 밥그릇을 지켜주는 대신, 정리해고를 당할 푸르미 직원들의 편에 선다. 드라마는 하지만, 그런 그를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중간자적 위치의 지식인'이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 걸림돌같은 인간들, 삐죽 튀어나오는 송곳같은 인간들'이라며 '인간의 존재론'에서 접근해 들어간다. 하지만 드라마 속 지현우가 분한 이수인의 송곳론은 샤르트르의 '지식인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앞잡이가 되는 대신' 자신과 무관한 일에 참견하려 드는 귀찮은 존재를 드라마는 '송곳'인간형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 자신의 송곳같은 심성을 어쩌지 못해 결국 노조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이수인이 그 이전 세대의 운동권으로 고문 휴유증에 시달리는 노동상담소장 구고신과 연대하는 것은, 세대와 세대를 이은 지식인의 만남으로 상징적이다. 

그렇게 내부자들로 피지배계급 속으로 들어간 이수인이 드라마 <송곳>에 있었다면 영화 내부자들은 대놓고 '내부자들'의 각성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을 확고하게 쥐고 흔드는 재벌-언론-법조의 커넥션 속에서, 결국 그 커넥션을 궤멸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내부자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영화 속 손을 잃은 이병헌이 분한 안상구는 조국일보 주필 이강희(백윤식 분)의 똘마니였고, 조폭 이병헌 대신 내부 고발의 총대를 멘 우장훈(조승우 분)은 검찰 카르텔의 또 다른 똘마니였다. 내부자로 입신양명 해보려 했던 그들이, '토사구팽' 당한 후 자신들이 들었던 칼의 향방을 바꾸어 카르텔의 궤멸에 나선 '한바탕 신명난 환타지 영웅극이가 바로 영화 <내부자들>인 것이다. 

드라마 <송곳>이 '송곳같은 인간형'으로서 지배 계급의 카르텔에 동조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객관자로서의 지식인의 고뇌에 집중했다면, 영화 <내부자들>은 그 카르텔의 '개로서 내부자들의 숙명에 대한 서사에 집중한다. 



<애인있어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최진언의 각성과 도해강의 회개
그런가 하면 이혼한 남녀의 다시 만난 사랑 이야기로 화제가 되고 있는 <애인있어요>에는 또 다른 지식인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 드라마에서 드러난 이야기의 주된 줄기는 4년전 불륜으로 아내를 저버렸던 남자 최진언(지진희 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잊지 못하고 기억을 잃은 아내 도해강(김현주 분)을 찾아 다시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순애보이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타고 저변에 흐르는 이야기의 본질은 드러난 사랑 이야기와 다르다. 

제약 회사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부도덕한 사업 방식에 불편해 하며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최진언, 아내를 치워달라며 아버지에게 매달린 대신 그는 회사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맞추어 불륜녀와 유학을 마친 그는 아버지 회사의 중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아내 도해강을 만나면서, 그는 아버지 회사의 변호사로 온갖 궂은 일 처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아내의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부도덕한 제약 회사의 '헬게이트'로 들어선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부작용을 덮기 위해 살해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도덕한 경영을 알게 된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해 거기에 뛰어든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결백하다 외면했던 그 진실'에 뛰어든 최진언의 각성과, 백석이란 인물을 만나 정의로운 변호사로 거듭난 도해강이 '천년 제약'의 개로 살았던 지난 날을 회개 과정이 이제 후반부에 들어선 <애인있어요>의 실질적 이야기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정의를 논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은 이제는 굳건하게 자리잡은 대한민국의 재벌-언론-법조-관료의 카르텔의 내부자들로부터 시작된다. <복면 검사>의 의로운 주인공은 검사였고, 남은 생의 마지막을 정의롭게 펼친 <펀치>의 박정환 역시 검사였다. 이것은 곧,  7,80년대의 지식인이 변화된 사회 체제 속에서 편입된 자신의 존재로부터의 각성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강고한 체제 속 지식인의 존재론의 새로운 모색이기도 하다. 또 한편에서는 지배 체제가 강고해 지는 반명 그에 저항하는 대체 세력의 무기력이 '내부자'나 '내부 고발'의 소극적 표현으로 등장하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내부자'나 '송곳'으로 돌출한 영화나 드라마의 지식인의 선택은 '환타지'적인 영웅서사로 마무리되어 가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2. 7. 16:26

24회 <애인있어요>, 드디어 주민센터에 들러 자신이 도해강(김현준 분)임을 확실하게 알게 된 도해강은 도해강의 이름으로 최진언(지진희 분)을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불륜과 생과 사의 고비마저 갈라놓지 못하는 말 그대로 이 죽일 놈의 맹목적인 사랑이다. 


이 죽일 놈의 맹목적인 사랑 
극 초반 자신의 재판 피해자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리고 심지어 자신들의 아이의 죽음에도 요동조차 하지 않는 아내 도해강에 질려버린 최진언은 이제 다시 도해강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전 아내 앞에서 '사랑에 지쳐서'아내를 버리려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아내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마다치 않고, 심지어 아내의 어머니 빛쟁이에 맞기까지 했던 최진언의 지독한 사랑은, 그 사랑이 아이의 죽음과 함께 환멸로 바뀌어, 결국 불륜이란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 앞에서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저 사람 좀 치워주세요'라고 말하던 최진언은 하지만, 아내와 헤어지고 불륜녀 설리와 함께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와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에 밤을 세워 매달리고 쪽잠을 자면서 자신을 내몰았지만, 4년만에 자기 앞에 독고 용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도해강에게 불가항력으로 무너지고 만다. 



도해강도 만만치 않다. 남편의 앞에서 물에 자신을 던져 가면서 구출하려 했던 결혼 생활도 최진언의 가차없는 오해와 시누이의 음모로 하루 아침에 회사에서의 직위와 결혼 생활, 모든 것을 잃은 처지가 되어서도 다시 한번 남편을 만나러 가다 사고를 당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독고용이가 되어 산 4년이 흐르고서도 그녀는 최진언을 만나자 다시 가슴이 뛴다. 그녀의 기억은 잊혀졌지만,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는 최진언으로 인한 아픔보다 그로 인한 사랑이 더 크다. 

그래서 사고 후 기억을 조금씩 다시 찾게 된 도해강은 거침없이 최진언을 선택한다. 그리고 최진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하고자 한다. 

7%의 딜레마, 바로 설득되지 않는 사랑?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4년후 고국에 돌아온 최진언이 아내 도해강을 만나고 마치 일방통행 도로처럼 도해강을 향해 달려가지만, 시청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그가 지금 그렇게 맹목적으로 아내를 향해 사랑으로 치닿듯이, 4년 전에는 아내와의 이별을 향해 그렇데 치달아 갔었다는 것을.

즉 <애인있어요>는 극 초반 최진언에게 '혐진언'이란 별명이 붙여지듯이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왔던 아내를 떨어버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상황을 설정했던 부담을 상쇄하기라도 하는 듯, 4년 후 도해강을 만난 최진언은 그녀를 향해 세상에 없는 순애보를 펼친다. 

그런데 그 최진언의 순애보가 그 누군가의 눈에는 순애보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이기적인 사랑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애인있어요>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아이의 죽음을 자기처럼 슬퍼하지 않는 아내가, 순수했던 시절을 잊은 채 입신양명에 매달리는 아내가 싫어서, 이혼을 하자 하고, 매달리는 후배를 안고,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 앞에서 아내를 치워달라고 말하며 모멸감을 안겼던 최진언과, 지금 그가 헤어지면서 바랬듯이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그 이전 도해강과 달리 정의롭게 살아가는 독고 용기가 된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사랑했던 도해강만을 확인하기 위해 독고용기의 삶에 뛰어드는 최진언이 똑같이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화제성을 넘어 7%대에서 쉽게 상승하지 못하는 시청률은 그 딜레마의 반증이 아닐지.



사랑은 이기적이라지만, 한 입으로 두 말 하듯, 극 초반 아내를 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최진언이, 이제 와 도해강을 향한 순애보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애인있어요>를 처음부터 시청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극중 도해강과 최진언을 연기하는 김현주와 지진희의 연기는 순애보를 설득하기에 넉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그 딜레마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 24회를 넘긴 <애인있어요>의 나머지 추동력이 될 것이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도해강 앞에 순애보를 펼치며 돌아온 최진언, 그런 그의 사랑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도해강이 과연 이 순애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애인있어요>의 후반부 전개의 키 포인트이다. 또한 거기에 두 사람의 부모가 얽힌 오랜 해원도 만만치 않다. 

즉, 최진언의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적 욕심에 도해강의 아버지의 죽음을 묵과했거나 방조, 심지어 도발했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는 기억을 찾은 도해강을 다시 한번 최진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두 사람을 원수의 집안으로 서로 사랑하게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하지만, 딜레마는, 극초반 불륜도 마다하지 않는 최진언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이 둘의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순애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에 휘둘려 사랑을 기만한 '햄릿'과 그 사랑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오필리아'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다시 돌아온 순애보적인, 거기에 정의로운 인물인 최진언이, 이 모든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아내를 버릴 수 있다면 그 싫어하던 아버지의 사업도 물려받겠다던 인물의 순애보를 나머지 극의 흐름이 설득할 수 있을지. 거기에 자신의 과거, 거기에 더해진 최진언의 혐오스런 사랑까지 도해강이 '결자해지' 할 수 있을지, 그것이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가 <애인있어요>의 관건이 된다. 

by meditator 2015. 11. 23. 15:37

sbs주말 드라마 <애인있어요>의 18회 시청률은 7.6%(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이다. 동시간대 mbc 주말 드라마 <내딸 금사월>이 23.5%(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 각종 게시판에 오르내리는 이 드라마와 관련된 설전을 놓고 보면 화제성 면에서는 거의 국민 드라마급이다. 


<애인있어요>를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도록 만드는 주요 요소는 바로 부부였던 도해강(김현주 분)와 최진언(지진희 분)가 최진언의 불륜으로 인해 부부 생활이 파탄이 났음에도, 이제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독고용기가 된 도해강과 만나 가슴이 설레는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때문이다. 아이를 잃고 상심에 똑같이 상심에 빠졌음에도 그 부부의 위기를 불륜으로 돌파(?)한 최진언은 욕받이가 되었다가, 몇 년후 다시 독고용기가 된 도해강을 보고 '나는 알아요, 내 아내라는 것을'이라며 저돌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가슴설레는 대상이 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들쑤셔 놓는다. 

그런가 하면 아내 도해강은 남편에게 버림받다시피하여 이혼을 당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채 사고를 당해 시청자들의 안쓰러움을 독차지하는가 싶더니,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온 백석(이규한 분)과 최진언의 약혼자연하는 설리(박한별 분)을 제치고 최진언에게 다가가 시청자의 가슴을 헤집는다. 

두 주인공, 그 누구도 마음을 선뜻 주었다가는 그가 저지르는 도덕적 딜레마에 시청자조차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드라마, 그저 막장이라, 불륜이라 치부해 버리기엔 불편한 <애인있어요>, 이 두 주인공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50부작의 대하드라마급 이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이 가을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멜로일까?



뇌가 순수한 남자 최진언 
<애인있어요>가 파란을 일으키는 문제의 근원은 바로 최진언으로 부터 시작된다. 일찌기 대학 시절 목이 매달다시피하여 도해강을 자신의 아내로 만들었으나, 아버지 회사의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며 하루가 다르게 그 순수한 모습을 잃은 채 욕망의 화신이 되어가는 그녀에게 최진언은 실망한다. 그리고 그 실망은 아내의 재판 결과로 인해 딸이 목숨을 잃게 되면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최진언이 선택한 것은 불륜. 그랬던 최진언이 4년만에 아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독고 용기에에 아내를 잊지 못했다며 다시 사랑하자고 다가간다. 

언뜻 보면 치정극의 주인공과 같은 설정을 가진 최진언이라는 캐릭터, 멜로의 주인공이라는 시선에서 한발 떨어져 그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학 시절 첫 눈에 반한 아내에게 저돌적이듯, 아내가 싫어지자 어린 후배에게 다시 그러고, 이제 시간이 흘러 다른 이의 모습을 한 아내에게 다시 들이대는 이 남자, 이 캐릭터를 시청자들은 불쾌해하면서도, 지진희라는 멋진 배우가 연기하는 그의 사랑에 어쩔줄 몰라한다. 

그런 최진언에게 성격 유형 검사를 한다면 아마도 '외곬수형'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일찌기 천년 제약의 외아들로 고이고이 자라난 그는, 물론 배다른 누나로 인한 갈등은 있었다지만, 늘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환경과 선택지를 가진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속물같은 아버지와 누나를 멀리하고, 자신은 고고하게 연구실을 택했듯이, 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순수해 보이던 도해강을 택했고, 그녀가 자신의 가족들과 같은 부류가 되어가자, 그 예전 아내처럼 순수해 보이는 설리를 택한다. 그리고 이제, 그녀와 함께 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집안에서 당연히 약혼자 취급을 하는 설리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도해강에 매달린다. 18회라는 짧지 않은 회차 동안 최진언의 선택은 늘 '자신의 마음 가는대로'이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참는 대신, '사랑'이란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해 왔다. 천년 제약이라는 집안 배경을 '도해강'과의 사랑으로, 그리고 '학문'으로 외면해 왔고, 아내에 대한 불만을 '불륜'으로 도피했으며, 이제 '설리와의 결혼'을 아내와 같은 도해강으로 피해간다. 

그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기적 행위'의 연속이었으며, 그의 '이기적 행위'로 인해 주변의 누군가는 늘 상처를 입곤 했다. 18회, 독고 용기가 된 도해강과 '이름을 다 잊고 처음부터 사랑하자' 했던 그가, 아내가 죽었다는 백석의 말 한 마디에, 옆에서 떨고 있는 도해강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는 모습에서, 최진언의 존재론은 여실히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양가가 모인 상견례 자리에서 그간 자신과 함께 하리라 믿어왔던 설리에게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 아마도 최진언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아닐까? 그러기에 최진언의 '결자해지'는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만을 사랑하게 된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혼한 아내에게 주변을 돌아보라고 충고했던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그것을 책임지려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숙명이 되어버린 도해강의 사랑
사고로 인해 자신이 누군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도해강, 그래서 백석이 만들어준 독고 용기의 존재에 기대어 지난 4년을 살아온 그녀가 최진언을 보자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 누구보다 그녀를 믿어주고, 그녀에게 다시 웃음을 찾아준 백석과 그의 가족을 생각해야 함에도, 결국 최진언에게로 달려가고 만다. 밤마다 꾸던 악몽을 잠재우지 못한 채 현실로 끌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사람을 죽게 만들었던 나쁜 변호사였던 그녀을 잊고 불륜의 피해자로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최진언을 보란듯이 밀쳐내며 그의 도덕적 딜레마를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들에 아랑곳없이 도해강은 그녀 자신이 상처받았던 그 길을 똑같이 달려가고 만다. 



마치 금기의 열매처럼 최진언과의 사랑에 다시 빠져버린 도해강은, 결국 4년전의 시간으로 자신을 다시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론과 이혼이라는 과정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니 마무리 할 수 없었던 전쟁과도 같은 사랑으로의 회귀이자, 이제는 자기 자신보다 주변을 더 챙기고, 정의에 분노하는 백석의 사무장에서, 재판의 피해자가 죽어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던, 더 높은 자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도덕적 아노미'에 빠진 도해강에 대한 복기가 될 것이다. 

'사랑'으로 시작하여 반성과 회개가 되어갈 
불륜과 다시 불륜과도 같은 사랑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애인있어요>는 가장 극단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역설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쉽게 그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 힘든 처지에 놓인 두 주인공을 통해, 일반적인 막장 드라마의 편한 선악 구도에 손을 들어주었던 시청자들은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더불어 회의를 느낀다. '사랑'과, '도덕'과 마음에 대해, 그리고 거기에서 부터, 시청자들과 함께, 두 주인공들은 진짜 자신들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날 듯하다. 

인류사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인류 역사의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인 듯 여겨지지만, 사실은 누군가와의 '사랑'을 전제로 한 '자유로운 연애' 그 자체가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 인연은 당연하게 가족과 가족 사이의, 혹은 신분과 신분 사이의 이합집산이었던 것이, 자본주의가 되고, 핵가족이 필요가 되면서, 그 가족을 이루는 전제 조건으로 자유로운 연애라는 것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 모든 욕망의 가장 극적인 상징체가 바로 '사랑'인 것이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감정은, 우리 사회 모든 욕망의 최고봉이다. 그러기에, 그 사랑에서 시작된 회의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 전반에 대한 회의와 회개로 귀결된다. <애인 있어요>의 뒤죽박죽 연애담은 결국 후반부의 그 연애담의 근저에 흐르는 각자의 욕망으로 귀결되어갈 수 밖에 없다. 

아내를 불륜까지 저지르며 외면했지만 결국 다시 아내를 사랑하게 된 남자와, 불륜의 피해자가 되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자가 다시 남의 남자를 빼앗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두 주인공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되돌아 보게 되고, 거기서 자기 자신들을 얽매인 또 다른 욕망의 민낯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민낯을 향해 가기 위해, 두 주인공은 위험한 통과 의례를 거치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5. 10. 26. 14:55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상처받은 두 여성이 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이혼을 했으며, 동시에 삶에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거나,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두 여성들에게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보며 가슴이 뛴다. 이 사람과 다시 사랑을 해도 될까? 그런데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 째 사랑이 전적으로 반갑지만은 않다. 




<두번 째 스무살> -하노라의 이혼=성인식, 그리고 두번 째 사랑의 딜레마 
tvn의 금토 드라마 <두번 째 스무 살>의 여주인공 하노라(최지우 분)는 이제 겨우 서른 여덟 살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벌써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있고, 대학 교수인 아들이 있다. 그건 그녀가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아들 민수(김민재 분)를 가진 채 홀로 할머니를 남겨두고 남편을 따라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하노라의 선택으로 인해, 이제 서른 여덟이 된 하노라는 남편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이혼을 당할 처지에 놓였고, 역시 대학 새내기인 아들은 매사에 '엄마는 몰라도 돼!'라며 무시한다. 청천벽력같은 남편의 이혼 선고에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리려 한 하노라는 남편, 아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을 가고자 했고, 해프닝 끝에 입학한 우천대 인문학부 새내기 생활은 그녀에게 전과 다른 세상을 선물했다. 

그 결과 이제 하노라는 오히려 당당하게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가진 남편 김우철(최원영 분)과의 만남을 '그의 탓'이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라 담담하게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말 한 마디 섞지 않는 아들에게 '이혼'을 이해받고 위로받는 처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김우철을 만나 멈춰버린 하노라의 십대는 그녀가 우천대 새내기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비로소 '어른'으로서의 시작으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김우철을 만난 그 시간 이래로 정체되어 있던 하노라의 시간이 다시 흐르게 된 데에는 대학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자 첫사랑 차현석(이상윤 분)의 도움이 크다. 하노라를 만나자마자 벌컥 화부터 낸, 말도 없이 사라져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첫사랑 하노라로 인한 상처를 가진 차현석은 불치병 해프닝을 거치며 하노라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그의 가슴이 그 예전처럼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하노라의 가슴도 차현석을 보며 두근거린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이런 하노라, 차현석과 다시 사랑해도 될까?

<두번 째 스무살>의 소개글에서는 이 드라마가 분명 '캠퍼스 로맨스 드라마'라고 정의내려져 있다. 하지만, 막상 가슴이 뛰기 시작한 하노라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노라가 김우철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은 다친 그녀의 발을 치료해 주는 '아빠같은'그의 등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지 김우철이 '아빠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이 하노라-김우철 커플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렇게 '아빠같은' 남자를 선택하려 했지만 실패한 하노라, 그렇다면 이제 진짜 '아빠같은' 남자 차현석을 만나 행복하면 될까?

극중 차현석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아빠같은' 키다리 아저씨이다. 제일 잘 나가는 연극 연출가임에도 그의 모든 일상의 촉각은 오로지 하노라를 향해 있다. 그래서 하노라가 어려운 고비마다 그는 '슈퍼맨'처럼 나타나 척척 해결해 주곤 한다. 그리고 하노라는 그의 도움을 받아, 김우철 앞에서 말 조차도 어려워하던 무기력한 서른 여덟의 주부에서, 왕따를 극복하고, 동기들의 사랑을 받는 늦깍이 대학생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비로소 '어른'으로 시간을 열어가는데, 여기서 차현석과의 해피엔딩이라면, 그녀는 김우철 '아빠' 에서, 차현석 '키다리 아저씨'로 말만 갈아탄 셈이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어른'으로서의 홀로서기가 꼭 누군가와 사랑을 배제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우철이란 존재의 그늘에서 숨죽여 살아온 하노라가, 이제 비로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두번 째 스무살>에서, 차현석과의 사랑은, 예측되는 해피엔딩이면서도, 한편에서, '어른되기'를 극중 화두로 삼았던 드라마의 내용으로서는 불협화음을 낸다. 부디 이런 '의존'으로서의 사랑을 승화시켜 하노라의 홀로서기를 훼손시키지 않는 진정한 사랑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해 본다. 



<애인 있어요>-독고용기가 된 도해강에게 찾아온 사랑, 그런데 그 사람이 전 남편?
그래도 다시 찾아온 첫사랑의 <두번 째 스무살>은 나은 편이다. <애인있어요>의 독고 용기가 된 도해강에게 찾아온 사랑은 설상가상이다. 

천년 제약의 며느리로, 그리고 변호사로 천년 제약의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던 도해강(, 하지만 어린 딸이 그녀의 사건 피해자로 인해 죽임을 당하자 그녀의 남편이자 천년 제약의 아들인 최진언(지진희 분)은 그런 그녀에게 정내미가 떨어져 한다. 그리고 그런 최진언의 마음은 결국 그를 불륜으로 이끌고. 결국 도해강은 최진언과 이혼을 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천년제약의 모든 직위를 잃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시아버지의 배려로 중국으로 떠나던 날, 쌍둥이 독고용기로 오인을 받아 사고를 당하고 그녀를 구한 백석(이규한 분)덕분에 '독고 용기'가 되어 살아간다. 

그렇게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백석에 의해 독고 용기로 살기위해 애쓰는, 그러면서 최진언의 바램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을 찾고, 그 예전 악덕 변호사 대신, 정의로운 사무장이 되어 살아가는 독고용기인 도해강 앞에, 귀국한 최진언이 우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백석의 의동생 설리(박한별 분)의 남자 친구로 엮이게 된 두 사람, 기억을 잃은 4년 동안 오로지 도해강 바라기로 사랑을 고백해온 백석, 이제 결혼만을 앞둔 설리를 두고, 도해강과 최진언의 가슴은 다시 뛴다. 

도해강과 최진언, 죽은 딸이 좋아했던 음악 앞에서 가슴이 떨리는, 감정의 데시벨이 일치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저 이혼을 했던 전 남편과 기억을 잃은 전 아내라는 순애보의 조건 외에, 두사람의 애정을 가로막는 장벽은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이제 4년이 흘러 독고용기가 된 도해강이 그 예전 최진언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도해강의 감정을 고스란히 상기하여 다시 가슴이 뛴다 하지만, 이렇게 기억조차 잃은 채 독고용기로 살아가야 하는 도해강의 굴곡진 삶에 최진언의 전과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최진언이 저지른 불륜만이 아니다. 오히려 불륜을 빙자하여 아내 도해강으로부터 도망가려 했던 비겁한 동반자 최진언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도해강과 최진언의 부부 관계를 넘어서, 도해강과 독고용기를 불행에 빠뜨린 원인을 제공한 최진언의 아버지의 부도덕, 그리고 도해강이 공범자이자 결국 피해자가 되어버린, 그리고 독고 용기는 그로 인해 남편까지 잃게 된 천년 제약이란 재벌 기업의 부도덕이 이 두 사람의 다시 불붙은 사랑의 배후에 어둡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불붙은 두 사람의 사랑은, 금기였던 도해강의 존재를 망각 속으로 부터 불러오고, 결국 금기였던 천년 제약의 모든 부조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결국 독고용기가 된 도해강과 최진언의 사랑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다. 그리고 성서 속 무책임의 캐릭터 이브처럼, 최진언은 그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댓가는 앞서 설리와의 불륜 이상 처절하게 그와 그의 집안을 무너뜨려 갈 것이다. 



이혼 뒤에 두 여자에게 찾아온 사랑은 트렌드의 드라마답다. 하지만, 녹록치 않다. <두번 째 스무살>의 사랑은 키다리 아저씨의 환타지를 넘어, 이제 막 성인식을 치룬 하노라의 홀로서기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애인있어요>는 사랑이, 이 드라마가 드려놓은 큰 그림, 부도덕을 먹이로 성장한 재벌 기업의 파멸을 향한 도미노의 첫 스타트가 될 것이다. 그래서 <두번 째 스무살>과 <애인 있어요>가 그저 뻔한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달콤하다. 심지어, 한때는 불륜남이었던 최진언이 다시 설레일 만큼, 하노라의 홀로서기는 기대되지만, 차현석이란 백마탄 왕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다. 과연 이 딜레마를 잘 극복하고, 좋은(?) 드라마로 기억될런지, 남은 숙제가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5. 10. 12. 16:32

작가 배유미는 대표적인 주말 드라마의 작가이다. <진짜 진짜 좋아해>, <반짝 반짝 빛나는>을 경유하여, 2013년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까지 mbc의 내로라하는 주말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이전 배유미 작가하면, 일찌기 <해피투게더>를 시작으로, <로망스>, <12월의 열대야>까지 독보적인 주중 미니 시리즈의 일가를 이룬 작가이기도 하다. 배유미 작가의 작품은 그 작품이 주중 미니 시리즈이건, 주말 장편 드라마이건, 여타 드라마들과 달리 '배유미'라는 작가의 색깔이 분명하다. 배유미 월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그저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얽히고 섥히는 인간 관계들 속에, 올곧이 추구하는 어떤 독특한 '휴머니티'랄까, 혹은, 인간애의 천착이라고나 할까, 배유미의 작품을 보다보면, 분명 다른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막장과 멜로임에도 어딘가 그 결이 다르다. 아마도, 그것은 그 현란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작가가 욕을 먹으면서도 끈질기게 놓지 않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인간의 모습에 천착함을 놓지 않던 배유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을 계기로, 좀 더 확장된다. 그저 드라마의 배경처럼 등장하던 부와, 그 본질에 대한 시선이 좀 더 날카로워지고, 분석적이어지고 비판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살기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작가 역시 눈을 감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5년 <애인있어요>로 돌아온 배유미월드는 어떨까? <애인있어요>를 통해 배유미 작가는 다시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한다. <애인있어요>는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과 <스캔들>의 콜라보레이션한 작품과도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캔들'; <애인있어요>
일찌기 친구의 특허권을 빼앗아,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채 악몽으로만 등장하지만 심지어 친구의 목숨과 바꾼, 자신의 영혼을 팔아 천년 제약을 일군 최만석, 그렇게 또 하나의 부도덕한 스캔들로 시작된 기업사는 이제 그 자식대에 와서는, 신약 개발을 둘러싼 시약 실험을 위시하여, 그 부도덕한 스캔들의 사회적 확장판이 되어간다. 그렇게 <스캔들>의 개발 재벌은, 이제 2015년 <애인있어요>의 도 하나의 부도덕한 제약 재벌로 현현된다. 배유미의 작품 속 재벌은, 그저 여느 주말 드라마의 부도덕한 재벌보다 구체적이다. 그들이 부를 일구는 과정은, 기억을 더듬으면 그 누군가가 손에 잡힐 듯, 한국 사회의 '원시적 부의 축재'의 과정을 복기한다. 그런가 하명, 6회 등장하는 최진리의 휠체어 씬은 애교일 정도로, 극중 천년 제약의 신약 개발 과정을 둘러싼 비리는 실제 우리 사회의 그것을 복기한다. 그렇게 현실적 부의 부도덕함을 배경으로, 거기에 얽혀든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풀어내는 방식 역시 <스캔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마치 막장 주말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홀리려 작정이라도 한 듯 가장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아이를 건물 붕괴 사고로 잃은 하명근(조재현 분)이 그 일의 주범 장태하(박상민 분)의 아이를 납치하는 사건으로 시작된 <스캔들>처럼, 1회, 자동차 사고로 위장하여 죽음의 위기에 몰린 독고 용기 대신, 도해강이 사고로 기억을 잃게 되고, 그로부터 4년을 거슬러 올라가, 천년 제약의 며느리로, 최진언(지진희 분)의 아내로 살아가는 도해강이 겪는 최진언의 뻑쩍지근한 불륜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최진언의 불륜에 분노하는 도해강이라는 평범한 주말 드라마의 공식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필연과 우연이 뒤범벅된 인간 군상의 관계가 펼쳐져 있다. 도해강은 바로 그 특허권을 빼앗은 최만호의 친구의 딸이자, 최만호가 가장 미더워하는 회사의 중역이다. 그런가 하면, 도해강의 쌍둥이 동생은 그 천년 제약의 신약 실험 비리를 알리려다 목숨을 잃은 연구원의 약혼자이자, 유복자를 낳을 천년 제약의 직원이자,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은 <애인있어요>의 얼개가 되는 부의 부도덕한 구조와, 인간사의 인연으로, 뒤엉켜있다. 

하지만 배유미 작품 세계의 특징은 그저 얽혀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괴범의 아이가 된 부도덕한 재벌의 아들처럼, 피와 인연의 아이러니를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반짝반짝 빛나는>의 운명이 뒤바뀐 한정원(김현주 분)과 황금란(이유리 분)을 통해 드러난 아이러니한 운명이다. 이제 그 운명은 죽음의 위기를 뒤바뀌게 된 도해강과 황금란, 그리고, 원수의 자식이면서 사랑의 굴레가 씌워진 최진언과 도해강으로 현현한다. 



4년 뒤 반전을 위한 길고 지리한 서론
하지만, 이렇게 필연과 우연, 사회 구조적 부도덕과 인간사의 아이러니로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 때문일까, 유독 <애인있어요>의 발동이 늦다. 워낙 mbc의 10시 주말 드라마의 아성이 굳건한 탓도 있겠지만, 첫 방 이후 6회에 이르는 3주차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속 인간 관계의 우연과 필연의 깊이를 더해가려 하다보니, 서론이 길단 느낌을 준다. 특히, 앞으로 역전될, 도해강의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최진언의 불륜에 대한 과정이 너무 상세하다보니, 그것 자체가 인내심을 요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해강의 피폐함이 깊어질 수록, 4년 후 그녀의 도발이 설득력을 얻겠지만, 그럼에도 최진언의 불륜 과정은 너무 장황하다. 또한, 도해강과 독고 용기 김현주의 1인2역으로 펼쳐져 가는 두 자매의 서사를 탄탄하게 다루려다 보니, 아직은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독고 용기가 묻히고, 도해강의 불륜이 더 늘어지게 느껴지는 탓도 크다. 

하지만, 이제 그 길고 지리한 서론도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 하니, 배유미의 세계을 탐닉하며, 김현주의 연기로 버텨낸 시청자의 인내도 끝이 보인다. 이번에도 부디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고 배유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5. 9. 7. 16:10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