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관계가 tv 속으로 들어왔다. 

육아 예능으로 골몰하던 tv 속 아이들이 자랐다. 이젠 성장한 딸과 아버지들이다. 
sbs는 설 특집으로 <아빠를 부탁해>를 선보였다. 어릴 때부터 국민 아빠와 딸로 낯설지 않은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를 비롯하여, 배우 강석우와 그의 딸 강다은, 조민기와 그의 딸 조윤경, 조재현과 그의 딸 조혜정, 그들의 부녀 관계가 예능의 이름을 빌어 등장했다. 
출연자의 면면을 보면, 이경규를 제외하면 모두 다 배우로 정평이 난 사람들로 예능엔 첫 선이다. 그렇게 따지면, 최근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배우 예능의 연장 선상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tv 로 들어온 부녀 관계
아빠와 딸', 참 어려운 관계다. 
일찌기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표현하셨다. 불면 날아갈세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고. 아들을 두고는 그렇지 않았다
한 가족 안에 존재하는 이성, 그들은 철이 들기 전에는 부대끼며 한없이 가까울 수 있는 관
계이지만,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성이 요구하는 세계로 집중하면서, 아빠는 아빠대로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바빠지면서 가장 멀어지는 관계가 되기 쉬우니, 한때 국민 아빠와 딸이었던 이경규와 딸 예림이의 관계가 딱 그렇다. 조민기와 그의 딸 조윤경도 비슷하다. 
서양의 경우, 아버지를 둘러싸고 어머니와 딸 사이에 애증의 삼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런 서양의 가족 관계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최근엔 강석우씨네처럼 아내조차 질투하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조재현처럼 일관되게 자신의 일로 바쁜 아빠와 그런 아빠 해바라기에 지친 딸들도 우리 사회엔 존재한다. 이렇게 <아빠를 부탁해>를 보면 어느 집에서나 아, 저건 우리집!이라고 감탄할만한 경우의 부녀 관계가 연예인의 경우를 빌어 등장한다. 

첫 회, 관찰 카메라를 네 집에 잔뜩 설치해놓고 이경규, 조민기, 조재현, 강석우의 부녀 관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예능인답게 이경규가 첫 스타트를 끊는다. 하지만 첫 스타트가 무색하게, 10시간 집 안에 감금된 이경규는 몸서리를 친다. 도무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는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하기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오로지 그 집에 사는 개들만 활개를 친다. 강석우 말대로 개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모양새다. 
다음 조민기네 집은 조금 낫다. 모처럼 유학에서 돌아온 딸, 그 딸을 위해 아버지는 대낮부터 고기를 굽는 성찬을 마련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설겆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가 잔뜩 부추켜야 아버지 안마를 해주는 딸처럼, 어느새 웃자란 딸에게 아빠는 조금 어색한 사이다. 
첫 스타트가 무색하게 강석우와 조민기의 비웃음을 샀던 이경규를 살려준 건 조재현이었다. 붐을 일으킨 드라마 <펀치>에서 열연하고 있는 조재현, 드라마 촬영 중이었던 그에게, 딸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방문을 열어 놔도, 아빠 앞에서 피곤하다며 몸을 푼다며 운동을 한답시고 알짱거려 봐도, 아빠는 한번 쳐다보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여태 딸내미가 밥을 먹는지, 뭘 먹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의 일 등 자기 자신에게만 골몰하고, 그런 자신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주며 맞추어 주는 아내만이 편하다. 
그렇게 관심없는 아빠에게 무안해져 버린 딸로 인해 눈물이 핑그레 돈 조재현을 무색하게 만든 아빠는 딸 바보 강석우였다. 자고 일어나서는 웬만하면 눕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게 외국어 공부에서 음악까지 아침부터 분주한 그는, 딸의 기상에서 부터 아침식사까지 일상인 양 자연스럽게 준비해 준다. 또 딸과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딸의 머리를 넘겨주며, 딸과 함께 외국의 입양아에게 편지를 쓴다. 딸을 곧잘 시키지만, 딸이 도와줄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마지막은 추운 날 운동가는 딸의 마중까지 완벽한 아빠다. 

기사 관련 사진
▲ 아빠를 부탁해
ⓒ sbs



첫 회가 끝난 후 각 게시판을 도배한 이 프로그램, 아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녀들에 대한 의견처럼, <아빠를 부탁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각 부녀 관계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렸으며, 심지어 누군가의 딸의 옷차림에서 부터, 누구는 불쌍하다. 좋겠다에서 부터, 어떤 아빠의 에티튜드까지 호사가들의 말은 끊임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예능으로 들어온 아버지와 딸들의 모습은 애초에, 연극 영화과를 다니는 딸들의 연예계 입문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과 달리, 각 집안의 실제 부녀 관계에 빗대어 tv 속 부녀 관계에 골몰한 현상이었다. 

모범답안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드디어 화제에 얹힌 2회, 관찰 카메라를 넘어 아빠와 딸은 함께 무언가를 해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관찰에 머물던 부녀 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경규는 모처럼 딸과 함께 떡국을 먹고 개들을 데리고 동물 병원을 간다. 조재현 역시 딸과 함께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딸과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대학로를 향한다. 조민기는 홀로 사는 딸에게 청소법을 가르치고, 강석우는 딸을 위해 침대에 케노피를 설치한다. 

막상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하니, 첫 회에 드러난 부녀 관계의 설정이 더 강화되기도 하고, 변화되기도 시작한다. 
여전히 이경규는 딸보다도 자신을 찍는 vj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하다. 딸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며, 여전히 그에게 딸은 화장도, 술도 하지 않는 천연지대여야 한다. 그러니, 딸에게 할 말은 화장하지 마라, 살쪘다는 잔소리 뿐이다. 그런 그가 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함께 기르는 개들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개들조차 딸에게 더 친근한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가정에 무심한 아빠인가가 다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애지중지하던 개를 떠올리며 흘리는 딸의 눈물 앞에 무심한 아빠 이경규는 어쩔 줄 모른다. 
딸과 함께 버스를 타고, 대학로 거리를 거닐다 스티커 사진까지 찍은 아빠 조재현은 딸이 하자고 하는 것을 할 때마다 반문한다. 이게 정말 좋냐고. 자신의 세계에만 충실하던 아빠 조재현에게 딸의 세계는 낯설다. 

첫 번째 방송에서 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경규나, 두번 째 방송을 시작하며 세상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신과 같다며 큰 소리를 치는 조재현의 마음이 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두 사람 다 딸이 누군가와 결혼을 할 거라는 걸 상상할 수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딸은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 보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그들은 정작 모른다. 방송을 보면 이경규냐 조재현이 딸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난다. 즉, 그들에게 사랑은 감정이지, 관계가 아니다. 딸뿐만 아니라, 아내와도 눈을 점점 더 마주치지 못한다는 이경규를 보면 전형적인 우리네 아버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딸들은 현재를 산다. 아빠와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하는 조재현의 딸을 보면, 딸의 바램이 그지 큰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단 한번 개 산책을 시키면서 관계의 희망을 가지는 예림이도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이경규나, 조재현, 참 바쁜 아빠들이다. 자신의 세계로도 차고 넘치는 아빠들이기도 하다. 그런 아빠들에게 딸과 함께 살아갈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가장 우리네 일반 아빠들의 모습이며, 그래서 이경규나 조재현의 모습이 친근하고 걱정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그리고 딸과의 관계가 완벽해 보이는 조민기나 강석우네 모습도 두번 째 가니 조금은 달라보인다. 모처럼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두 아빠는 모두 아빠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한다. 
조민기는 딸에게 청소법을 가르치고자 하고, 강석우는 딸을 위해 케노피를 설치한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를 가르친다고 하더니 잔소리가 범벅이다. 깐깐해 보이는 아버지 조민기의 방식은 웬만한 사람이 보기에도 참 어렵다. 그런데도 딸은 꾸역꾸역 아빠의 잔소리를 참아가며 청소를 배운다. 
강석우도 만만치 않다. 딸을 위해 케노피를 해준다더니, 그 모든 과정에 함께 해야 한다. 아빠와 함께 재료를 고르는 일에서 부터, 케노피를 만드는 과정 모든 것에. 아빠 말대로 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빠는 어떻게 저걸 했을까 싶게, 딸의 조수 노릇은 만만치 않다. 
케노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딸의 의견을 무시하고 굳이 번거롭게 일을 하는 강석우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조민기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사랑에 자부하는 또 다른 기성세대를 발견한다. 강석우나 조민기는 자신들의 사랑이 넘친다고 자랑하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엔 그런 극성스런(?) 어른을 참아주는 착한 딸들이 보인다. 역시나 여기도 관계다. 아빠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그런 사랑을 견뎌주는 딸들이 한편에서는 있는 것, 이 역시 만만찮은 관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아빠를 부탁해>의 정규 편성의 가능성이 보인다. 첫 회 딱 한번만 봐도 순위가 딱 매겨지는 네 아빠들의 모습이, 단 2회만에 조금씩 각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전혀 소통이 되지 않거나, 소통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빠의 일방 통행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모범 답안이 분명해 보이던 것이, 다시 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가 헷갈려 가면서, 각 가족만의 답을 찾아가지 시작하는 과정, 거기에 <아빠를 부탁해> 존재 이유가 생긴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가 아니라, 이경규는 이경규답게, 조재현은 조재현답게, 조민기는 조민기네에 어울리고, 자부심에 넘치는 강석우도 자신의 부녀 관계를 새롭게 들여다 보는,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가족들도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아빠를 부탁해>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2. 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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