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인현왕후의 남자>나, <나인>을 재밌게 봤던 독자들은, 이제 7회를 방영한 <삼총사>가, 송재정 작가와 김병수 연출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이른바 '닥본사'를 해왔다. 하지만, 7회에 이르기까지, <삼총사>는 <인현왕후의 남자>의 절묘한 러브스토리나, <나인>의 운명론적 스토리의 매력을 맛보기 힘들었다. 액션 활극을 내세웠지만, 액션은 둔감했고, 활극에 걸맞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맥을 못추는 시청률만큼이나, 애청자들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7회에 이르러, <삼총사>는 비로소, 이 드라마의 숨겨진 매력을 드러냈다. 7회를 견뎌온 호청자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듯이. 


무엇보다 <삼총사>가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게 된 데는 명청 교체기의 조선에서 각 권력들의 자기 입장이 분명해지면서, 그 대립각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삼총사'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진; tv리포트)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등극했던 중심 세력인 김자점(박영규 분)은 소현 세자(이진욱 분)를 만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소현세자의 아버지, 인조가 왕이 될 깜냥이 아니라는 자기 의견을 드러낸다. '광해을 몰아내고, 임금을 만들었더니, 광해만도 못하다'는 김자점의 생각은, 비록 그의 사저에라도, 한 나라의 세자 앞에서 드러낼 사견이 아니라, 신하로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정의 주역이었던 그는, 지금의 왕조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자부심과, 그래서 다시 언제라도, 아니 언제까지나 권력의 '뒷배'가 되겠다는 야심을 마구 드러낸다. 세자전의 상궁을 포섭하여, 용골대가 머무는 방의 자물쇠를 바꿔 버리는 노골적인 행동을 보인 김자점은 청에 대한 세자와 자신의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자신과 손을 잡을 것을 세자에게 종용하고, 그 결과를 만 하루 안에 줄 것을 요구한다. 

김자점을 야심을 알게 된 세자는 결코 김자점이 함께 할 수 없지만, 용골대를 세자전에 숨겨둔 처지에서 뾰족한 묘책이 없어 고민한다. 그때, 세자와 칼을 겨누며 맞섰던 박달향(정용화 분)이 찾아와, 미령 혹은 향선(유인영 분)의 소재를 알려주고, 세자는 한 달음에 그녀를 찾아간다. 

6회에서, 7회 초반의 내용은, 마치 세자가 스파이가 되어 나타난 첫사랑을 못잊어 다시 찾아가는 듯한 스토리의 전개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줄곧 그 존재가 의문이었던, 세자빈에 간택되었으나, 세자에게 스스로 목을 매달 것을 명령받은 여인 미령, 아니 사실은 향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녀와 세자의 애증어린 독대를 넘어선, 김자점과 소현 세자, 그리고 그의 측근인 주화파 최명길과 익위사 허승포(양동근 분), 안민서(정해인 분) 그리고 박달향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드라마 <삼총사>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용골대를 자신의 처소에 숨긴 세자는 김자점의 손아귀에 놓인 처지이고, 그의 고변에 따라 의심이 병적인 왕의 눈밖에 나는 건 시간 문제인 상황을 과연 세자와, 그의 측근들이 어떻게 역전시키는가가 '포인트'였다.
그 지점에서, <삼총사>는 소설<삼총사>의 속고 속이는 파워 게임 못지 않은 흥미진진한 반전을 선보인다. 
안그래도 의심병이 강한 인조는 드디어 세자를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궁에 머물지 않은 세자를 의심해 세자빈을 찾아 닥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등장한 박달향은 세자가 그간 투전판에 몰두해 있으며, 투전판에서 의문의 양반에게 칼을 맞아 피을 흘린 채 정신을 잃었다고 고한다. 그리고 그 시간, 세자의 전갈을 받고 향선의 처소를 찾은 김자점은 거기에서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는 세자를 발견하고 그를 찌른 칼을 발견해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그곳에 궁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절묘하게도, 김자점은, 세자와 함께, 투전판에서 셈을 논하다 세자를 찌른 높으신 양반네의 혐의를 받게 된다. 또한 그런 김자점의 혐의를 더하기 위해, 허승포와 안민서는 잃은 돈을 찾아내라며 김자점의 집을 뒤집고.
이런 기막힌 삼총사와 박달향의 활약에 힘입어, 위기에 처한 소현 세자는 무사히 궁으로 돌아와 치료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김자점의 농간에서 놓여나, 오히려 그의 집 병풍 뒤의 벽장 안에 숨겨놓은 서신으로 그의 목을 죄는 역전된 처지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삼총사>는 이런 극적인 스토리의 재미를 넘어서, 고지식한 애송이 무사 박달향을 통해, '애국'의 의미를 되짚고자 한다. 신하로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수행하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전부라 생각했던 그는, 적국의 장수를 숨기면서까지 전쟁을 막고자 하는 소현 세자와, 나라의 위기와 상관없이 권력이 중심을 놓치고자 하지 않는 김자점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 진다. 

(사진; osen)

물론, 여전히 아쉬운 점은 남는다. 박달향과 최명길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소현 세자의 애국론은, 막상 그와 향선의 만남에선 죽음을 각오한 채 다시 돌아온 첫사랑의 그녀와 그녀를 잊지 못한 세자만이 드러났을 뿐, 나라를 생각하는 세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드러나지 않은 채 박달향의 후일담으로만 전해진다는 것이다. 즉, 역시나 죽음을 각오하고 첫사랑을 다시 찾아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세자의 '애국관'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과정에서 드러났으면 하는 '사족'으로서의 아쉬움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사족'을 덧붙인다면, 아직도 양념으로만 쓰이는, 양승포, 양동근의 존재이다. 모처런 연기로 돌아온, 양동근, 그는 계속, 극의 긴장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긴장을 풀어주는 조연으로만 쓰여질 것인지하는 아쉬운 의문이 남는다. 허긴, 어디 양동근 뿐이랴. <정도전>에서, '이인임'으로 인생 연기를 보여준 박영규나, 공민왕으로 뚜렷한 궤적을 남긴 김명수가, 전작 캐릭터의 복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채 머물고 있는 점도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기는, <삼총사>의 화룡점정이다. 

하지만, 7회 정도만의 박진감넘치는 스토리와, 재미를 이어간다면, 침체된 <삼총사>는 제작비를 다 어디에 썼느냐는 오명을 벗은 채 시청자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29. 10:14

첫 번째, 매주 목요일 밤 11시 tvn을 통해 방영되었던 <잉여 공주>가 조기종영하기로 확정되었다. 애초에 14부작으로 기획되었던 <잉여공주>는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4부를 줄여 10부작으로 마무리짓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두번 째, 9월 16일 <아홉수 소년> 게시판엔 이 작품이 대학연합 동아리의 <9번 출구>와 유사하다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아홉수 소년>의 제작사 측은, 이에 대해 이미 2013년 겨울부터 기획되었고, 2014년 1~2월에 최종 시놉시스가 완성되었기에,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제작진의 의견에 대해, <9번 출구>의 이정주 작가는, <9번 출구>가 이미 2013년 9월부터 공연되었고, 기획은 그 이전에 이미 이루어 졌기에, <9번 출구>를 참조하지 않았다는 <아홉수 소년> 제작진의 의견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세번 째, 일요일 밤 9시 20분, 시즌제를 주창하며 100억 블록버스터 대작이라 홍보를 했던 <삼총사>의 궤적이 미미하다. 야심차게,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모티브로 하여, 조선 인조 때 소현 세자와 그 주변인들을, '삼총사'로 엮어, 무협 활극을 주창했던 드라마 <삼총사>는 일요일 밤 단 한 번의 방영이 무색하게, 느리 전개와 지지부진한 스토리로, 작가의 전작 <나인>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네번 째, 월요일 밤 <마이 시크릿 호텔>, 킬링 로맨스를 내걸고, 추리극과 로맨스의 콜라보레이션을 주창하던 이 드라마는, 하지만, 연속적으로 살인이 이루어 지는 것과 달리, 극중 추리극의 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중론이다. 

(사진; osen)

위의 네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거나, 애초에 내걸었던 취지를 도달하지 못한 채 표류하거나, 심지어 조기 종영 사태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채널을 아예 tvn에만 고정시켜 놓고 본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열성적인 독자를 모았던 tvn 드라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애초에, 공중파 드라마를 상대로 tvn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과 같은 연애 드라마를 통해서 이다. 이들 드라마를 멜로 드라마라고 하지 않고 , 굳이 어색한 '연애' 드라마라고 지칭한 것은,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사랑에 이르기 까지, 남녀의 연애 과정을 미시적으로 천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쁜 색지라도 한 겹 덧댄듯한 뽀사시한 화면, 거기에 한껏 트렌디한 패션으로 등장한 남녀 주인공들의, 다종다양한 종종 19금을 불사하는 진솔한 연애 담론이, 로맨스 물에 갈급한 젊은 층의 취향을 정확히 조준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인기를 끈 연애 드라마들은, 이제 kbs2의 <연애의 발견>처럼, 공중파 드라마에까지 진입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tvn을 전성기로 이끈 연애 드라마들이, 오히려 최근에는, tvn 드라마들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다. 
tvn의 연애 드라마처럼, 젊은이들의 솔직한 연애 담론을 토크로 다룬 <마녀 사냥>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엔, 이런 신세계가 있어 싶었던 남녀간의 솔직한 연애 이야기가, 회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저번 주에 봤던 이야기나, 이번 주에 봤던 이야기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은 경지에 이르른다. 
다른 배경, 다른 등장인물, 다른 스토리이지만, 결국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소통하지 못해 오해하고, 사랑의 짝대기가 어긋나 마음을 앓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세상에, 병원에서 연애하고, 회사에서 연애하고, 심지어 법원에서 연애하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tvn 드라마라고 무에 그리 다를 것이 있나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부족하지만, tvn의 드라마들이, 유독 연애 과정 그 자체에 흠씬 빠져, 순정만화에서 등장하는 듯한 로맨스들을 마구 분출해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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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한 두 작품일 때는, 매력적이었는데, 이제 한 주에, 위에 등장하듯이 네 작품이나 되었을 때는, 그 연애 이야기가 적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색다르지 않은 연애 이야기는 <잉여 공주>의 조기 종영을 낳았고,  결국 신선한 연애 이야기에 대한 수급 욕구는, 표절 사태에 이르게 된다. 
매주 월, 화 방영되는 <마이 시크릿 호텔>은 추리극과 로맨스의 두 마리 토끼를 지향하지만, 실제 드라마 방영 시간의 대부분은, 남상효(유인나 분)를 중심으로 전남편 구해영(진이한 분)과 호텔 이사 조성겸(남궁 민 분)의 삼각 관계에 치중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남상효와 구해영을 중심으로, 갖가지 해프닝들이 방영 시간 대부분을 메꿔간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날 구해영의 신부가 줄행랑을 치고, 남상효는 호텔을 위하는 책임감에, 그 결혼을 대신하는 웃지 못할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런 해프닝에 가까운 스토리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것은, 주인공 세 사람의 오해와, 그 오해를 해명하지 못해 벌어지는 또 다른 해프닝이다. 호텔에서 사람들은 연신 죽어나가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듯, 이 이야기가, 그저 로맨스물이 아니라는 증거로 간간이 등장한다. 

100억 대작 <삼총사>도 마찬가지다. 대작 블록버스터가 무색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소현 세자와 강빈, 박달향, 그리고 미령의 엇갈린 사각 관계이다. 역사극에서 멜로가 가미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정도전>의 걸출했던 연기자들을 캐스팅하고, 모처럼 돌아온 양동근까지 합류했지만, 스토리는 주인공들의 사각 관계의 울타리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조기 종영이 결정된 <잉여 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된 인어 공주의 사랑 찾기와 함께 잉여 하우스를 배경으로,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를 다루겠다고 했지만, 역시나, 드라마는 지리한 삼각 관계, 엇갈린 사각 관계로 채워진다. 잉여 하우스 멤버들은 그럴 듯하지만, 어쩐지 그들의 고군분투는 다가오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삼촌, 조카 둘의 사랑 찾기에 천착한 <아홉 수 소년>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음악과 드라마의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한다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방점을 찍고 싶어하는 음악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ost가 과잉인 세상에서, <아홉수 소년>의 음악들이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의 ost의 영광을 되찾고 싶겠지만, 추억이 담기지 않는 이야기의  음악은, 그저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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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의 면면을 보면, 사극에, 추리극, 청춘물에, 음악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일주일동안, 이 드라마들을 시청하고 있다 보면, 여전히 트렌디한 연애 이야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 보여 아쉽다.사랑 이야기에도 다양한 질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tvn드라마의 연애 이야기들은, 한결같은, 낭만주의적 사랑주의보이다. 취향 저격은 훌륭했지만, 이제 그 취향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킨다.  tvn의 드라마들이 좀 더 많이 방영되는 추세에서,  좀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을 넘어선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예로 대표적인 것이, <갑동이>이다. <갑동이>는 24~8일 개최되는 영국 'k-드라마 위크'에서 한국 장르물의 대표작으로 상영된다. 물론, 방영 중, <갑동이> 역시 애매한 사랑의 작대기로 인한 방만함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지만, 연쇄 살인마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그려낸, tvn의 수작임에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아홉수 소년>의 후속작으로 예정된, 윤태호 작가 원작의 <미생>이 기대된다. 부디 사무실에서 연애 하기가 아니라, 진짜 '미생'의 삶을 그려내기를. 


by meditator 2014. 9. 26. 22:14

소설 <삼총사>는 아직 절대왕권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않은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뒤마의 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루이 13세는, 실권은 쥐고 있는 리슐리외 추기경과 대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 3총사와 달타냥은, 왕에 충성을 바치는 총사대원으로 리슐리외와 그의 근위대원들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왕을 흔들기 위해, 리슐리외 추기경은 프랑스와 앙숙이던 영국과의 갈등을 부추겼으며, 결국 영국군이 프랑스로 침입해 오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이 지점,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프랑스와, 그런 프랑스를 위협하는 영국이라는 외적의 위기가, 드라마 <삼총사>에서 명청 교체기의 풍전등화와 같은 17세기의 조선으로 절묘하게 되살아 난다. 
8월 31일 방영된 <삼총사>에서 소현 세자(이진욱 분)는 말한다. 자신은 세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왕이 되는 바람에 자기 역시 세자가 되어 버린 사람이라고. 그렇다. 소현 세자의 아버지 인조(김명수 분)는, 신하들의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으로 옹립되었다. 드라마에서 김자점은 이미 그런 인조를 왕이 될 깜냥이 아니라고 규정내린다. 왕이 될 깜냥이기 이전에, 인조는, 그 자신이 왕이었던 광해군을 밀어내고 신하들에 의해 옹립된 왕이기에, 평생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산 인물이다. (후에 그의 이런 불안감은 아들 소현 세자에 대한 질시와 의심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불안감은 그의 통치 능력으로 증명되지 못한 채 그의 치세에 두번의 호란을 겪게 된다. 그렇게 아직 절대왕권을 지니지 못한 루이 13세의 허약함은, 신하들에 옹립되어 그 위치가 불안한 인조로 대응된다. 


드라마 속 <삼총사>는 정묘 호란이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1627년 아직 청이라는 국호를 내세우지 않은 후금은 조선을 침공한다. 아직 임진왜란의 상처에서 채 극복하지 못한 조선은 후금의 침략에 당황했고, 역시나 임진왜란 때처럼 각지의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그나마 황해도 까지 내려온 후금에 대항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당시 후금은 이제 막 중국 대륙에서 그 세력을 키워가던 중으로, 중원의 명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친명 사대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조선을 본보기삼아 치려했던 것이었기에, 조선과 후금 사이에 쉽게 화의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왜에 의한 상흔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오랑캐가 낮잡아 보던 후금에 의해 국토를 다시 한번 유린당한 상처는 조선에 깊게 드리워졌다. 드라마<삼총사>에서 매일 밤, 후금의 장수 용골대에 의해 시달리는 인조의 심약한 정서는 그런 조선의 트라우마를 반영한다. 하지만 정묘호란 이후, 여전히 왕권을 강화하지 못한 채 신하들의 눈치만 살피는 인조와 달리, 후금은 명을 밀어내고 중국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고 조선에게 형제의 나라가 아닌, 중국 대륙의 패자로서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그리고, 드라마 속 김자점 등 시류에 민감한 무리들은, 벌써 그런 청의 강력한 세력을 감지하고, 청과 은밀하게 손을 잡을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치 소설 속 리슐리외 추기경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국과의 전쟁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세자를 다치게 한 적을 뒤쫓다 사신으로 온 용골대 무리에게 쫓기게 된 박달향에게 최명길은 말한다. 하필 입신양명의 꿈을 안고 무과에 급제한 박달향이 맞닦뜨린 조선이, 조만간 전쟁을 다시 한번 치르게 될 지도 모를 풍전등화의 상황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최명길의 안타까운 정의에 대해, 이제 막 벼슬길에 들어선 박달향이 어떤 입장인가, 혹은 어떤 생각인가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처음부터 세자 무리에 휩쓸려 불의를 제압했던 그 활약처럼, 소설 속 달타냥처럼 그저 의협심이 강한 인물 정도로 그려질 뿐이다. 아니, 아직 그를 휘말아 감싼 정치적 격변에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라고나 할까.

(사진; BNT뉴스)

오히려, 드라마 <삼총사>에서, 극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된 캐릭터는 소현 세자이다. 그의 말처럼 애초에 세자로 태어나지 않아, 궁밖이 더 편한 그는 그의 익위사들과 함께 밤이슬을 맞으며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소현 세자와 그의 익위사 두 인물 들 역시, 이제는 강대해진 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김자점등의 권신들의 전횡에 대해 왕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로운 인물로 그려질 뿐이다. 

이제 3회를 맞이한 드라마 <삼총사>는 소설 속 17세기의 불안정한 왕권으로 인해 내분과 외환이 분분했던 프랑스 정가를 절묘하게, 허약한 왕권, 외침의 위협이 극대화 되어가는 17세기의 혼란기 조선으로 등치시킨다. 하지만, 등치의 절묘함을 넘어선, 극적 긴장감이 회를 거듭할 수록 배가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주 1회 방영의 모험을 하며,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극을 지향코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 1회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한 회 분량의 내용이 흡족치 못하다. 만약 내일 또 방영되는  주2회라 해도, 조금은 처지는 템포의 극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미령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와, 용골대와 얽힌 사연은 궁금하지만, 이미 2회에서 그에 대한 궁금증을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뿌려놓은 상황에서, 3회는, 다시 한 주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회차였다. 제작진은 3부작에 이르는 시리즈라는 방대한 기획 하에 매주 방영을 하겠지만, 시청자의 조바심은 과연, 그걸 감내할 수 있을지, 갸웃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주인공인 소현세자임에도, 삼총사라는 고전의 틀을 빌려와서, 박달향이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설정됨으로 인한, 자중지난같아 보인다. 더구나, 많은 제작비를 고려한 듯한, 박달향의 급제례 같은 건, 주 2회 방영시에나 용인되는 애교가 아닐까 싶다. 주1회의 애청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소설 <삼총사>의 형식적 캐릭터 배분은 조금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를 있을 듯하다. 이미, 시대적 배경의 절묘함만으로도, 드라마 <삼총사>의 터전은 풍성하다. 


by meditator 2014. 9. 1. 06:56

삼총사는 루이 13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뒤마의 소설이다. 1844년에 씌여진 이 소설은, 원작이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계속 재연됨은 물론, 원안을 기초로 한 다양한 버전의 '삼총사'가 만들어져 왔다. 여러 아이돌들이 달타냥이 되어, 지금도 어디선가 막을 올리고 있는 '삼총사' 뮤지컬이 바로 그것이며, 폴w 앤더슨 감독의 '삼총사'는 3d 버전으로 화려하게 재탄생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삼총사'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타락한 권력에 저항하는 의협심 강한 네 젊은이의 좌충우돌 열혈 투쟁기가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다. 또한 삼총사와 달타냥 네 명이 선보이는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 역시, 유명세의 한 이유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그 '고전' 삼총사가, 2014년 텔레비젼을 통해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선하고도, 인조 대왕 시절이다. 


조선에는 몇몇 유명세를 치루는 임금님이 계시다. 27분의 임금님 중 일찌기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시작으로 하여, 한글을 만드신 세종 대왕이 한때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서 가장 대세를 이루는 건 아마도, 드라마, 영화를 섭렵하고 계신 '정조' 임금님이실 것이다. 이성계나, 세종 대왕이, 순기능의 권력의 상징이라면, 정조 임금님은, 그런 분들과 달리, 아버지를 뒤주에 여의시고, 할아버님 치하에서 숨죽여 살다, 왕이 되어, 할아버지의 치세와는 다른 길을 걸은 '개혁 군주'라는데, 하지만, 마치 3일 천하인 것처럼, 별로 길지 않은 치세로 인해, 더더욱 드라마틱한 운명의 인물로 종종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인물들은 임금님만 계신 것은 아니다. 왕이 되었으나, 그의 앞서가는 '사대'라는 틀을 벗어난 정치적 식견, 하지만, 그런 정치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근시안적인 권력 전횡으로 말미암아, 한때 왕이었던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도 게시고,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아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 세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런 분들에 비해, 소현세자는, 비록 역사적으로는 병사라고 기록되지만, 이젠 그보다는 아버지에 의한 독살이라는 야설이 더 신빙성이 높아지는(이덕일, 조선왕 독살 사건), 결국 사도세자 못지 않은 불운의 세자였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 관심에서 벗어나있던 인물이었다. 바로 이 소현세자가, 화제를 모았던 <나인>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tvn의 새 역사극, <삼총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틱했던 그의 삶에 비해, 늦은 등장이라 할 만하다. 

삼총사
(사진; tv데일리)

첫 선을 보인 <삼총사>에서도 중국인 첩자를 통해 해외 동향을 전해듣는 소현 세자가 등장하듯이, 소현 세자는 당시 조선에서는 드물게, 세계사적 식견이 깨인 인물이었다. 무능한 아버지 인조 대왕을 대신하여 전장에 나섰으며, 전쟁 후 볼모로 잡혀가 청에서 생활하면서, 사대주의에 찌든 조선을 넘어서는 정치적 안목을 키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선경지명 덕분에, 왕의 자리에 올라보지도 못한 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조선이 사대주의와, 척신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몇 번의 기회 중 하나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바로 이런 소현세자의 드라마틱한 삶을 리슐리외 추기경의 전횡에 맞선 의협심 강한 청년들의 이야기 <삼총사>를 빌려와, 드라마로 재탄생시켰다. 

드라마 <삼총사>의 첫 회는, 소설 <삼총사>의 첫 회를 보존한다. 시골뜨기 달타냥이 파리로 올라와 왕실 근위대가 되고자 하나, 돈을 잃고, 뜻하지 않게 삼총사와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가, 강원도 고성에서 무과를 보기 위해 올라온 박달냥의 스토리로 둔갑한다. 그 역시 거리에서 돈을 잃고, 겨우 남은 돈으로 찾아든 주막에서, 급제 예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습에 의협심으로 맞서다 '삼총사'를 조우한다. 시골뜨기 달타냥과 한때 흠모했던 여인이 세자빈이 된 것도 모른채 그녀를 얻기 위해 무과를 보러 올라온 박달냥은 묘하게도 다른 듯 같다. 또한, 왕실 근위대 삼총사와, 세자와 그의 익위사 허승포와 안민서 역시 다르지 않다. 더구나, 첫 회 부터 넉살좋은 포르토스를 원작 못지 않게 해석해 낸 양동근의 연기는 그 잠깐의 장면에서도 역시 양동근이라는 감탄을 불러온다. <나인>에 이어 다시 한번 합류한 이진욱의 세자 포스도 만만치 않고. 박달냥의 정용화나, 안민서의 정해인도 이물감이 없다. 

비극적 인물 소현세자를 다루지만, 유쾌상쾌 통쾌했던 원작 삼총사처럼,  첫 회를 통해 본, <삼총사>는 미래의'비극'은 우선 제쳐두고, 멋진 사내들의 조우와 활약에 우선 방점을 둔 드라마가 될 듯하다. 그리고  수작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나인>이 모작의 그늘로 인해 그 명성에 흠집이 생긴 것과 달리, 아예 이번에 제작진은 <삼총사>를 대놓고 불러온다. 그리고 순조로운 첫 회, <삼총사>를 통해, 사라진 인물, 그저 왕이 되기에 실패한 채 아비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만 불운의 소현 세자가 멋들어진 역사적 인물로 거듭날 것 같은 기대가 든다. 


by meditator 2014. 8. 1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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