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가요프로 mbc <음악 중심>의 1위 후보 가수는 이선희, 임창정, 박효신이었다. 마치 눈을 씼고 이게 2014년이 맞는가 싶게 확인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한 시절 가요계의 레전드라 칭송받았던 이들이 2014년 4월 첫 째주 <음악 중심>에 다시 1위 후보곡을 가지고 모여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이선희와 임창정은 같은 날 저녁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전설과, 전설을 노래하는 가수로 다시 조우하였다. 

최근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예전 같지 못하자, 트렌디했던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이제 한 물 간 것이 아니냐는 조급한 진단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일한 멤버로 지속되어온 <무한도전>의 피로도를 운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최근 이미자에 이어 이선희까지 이어진 <불후의 명곡> 특집이 너무 강력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사진; 서울신문)

이선희 편만을 예로 들어 보자. 박정현, 윤민수&신용재, 더 원, 울랄라 세션, 장미여관, 홍경민, 바다 등 그 각각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슈퍼스타k>, <나는 가수다> 등은 물론, <불후의 명곡>에서도 몇 승을 거뜬히 거머쥐며 그들 자신이 전설의 역사를 썼던 가수들이, 이선희 라는 전설을 기리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더구나 전설의 자리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임창정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다. 거기에 마치 그 예전 시절의 이선희를 복기하는 듯한 신인 가수 벤에, 그간 섹시 컨셉에 가려졌던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선보인 걸스데이도 결코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이미자 편은 어땠을까? 역시나 그간 <불후의 명곡>을 통해 빛났던 기라성같은 가수들이 총망라되었었다. 왁스, 소냐, 거미, 알리 등 당대의 디바들이 자신이 이미자 선배님을 기리는 그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노래를 불렀으며, 그들 못지않은 가창력의 정동하, 조장혁, 이세준이 자웅을 겨루었다. 울랄라 세션과, b1a4의 무대도 약방의 감초다. 

물론 늘 <불후의 명곡>을 보면 훌륭한 가수들에 의해 멋진 편곡으로 거듭난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그렇듯이, 제 아무리 향기로운 냄새로 무디어 지듯이, 늘 일정 수준 이상의 내용을 선보이고 있는 두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뻔하게 느껴지게 되는 한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두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상대하는 모든 프로그램들의 생로병사의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그 생로병사의 과정을 당기느냐, 늦추느냐는 그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재량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불후의 명곡>은 그간 아껴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그간 전설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이미자와, 이선희. 한국 가요사에 있어 굵은 고딕체로 그 이름을 남기고도 남을 두 사람의 전설 무대는 그 존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불후의 명곡>은 그저 전설을 모셨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설의 이름값에 걸맞는 특집을 제대로 꾸려냈다. 

이미자와 이선희 편에 출연한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가장 이선희스러운, 이미자스러운 노래를 잘 소화해 낼 것같은 가수들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리상자 대신 이세준의 가녀린 목소리를 살리 솔로 무대라던가, 이선희와 닮은 보이스를 가진 벤의 기용, 윤민수와 신용재의 콜라보레이션에, 그 등장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 박정현, 임창정처럼, 전설의 색깔에 맞춰, 가수들의 특징을 살려 절묘하게 재배치해낸 기획의 승리이기도 하다. 

윤민수·신용재·벤, ’불후의명곡’ 올킬 ’음원차트 싹쓸이’
(사진; 뉴스 24)

또한 이제는 모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원숙미를 보이는 신동엽의 진행이라던가, 그에 못지않게 안정감있는 진행을 보이고 있는 대기실의 정재형, 문희준, 은지원의 조화도 <불후의 명곡>을 그저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 이상의 예능적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많은 관심을 끌며 시작되었던 <나는 가수다>는 가수간의 서바이벌이라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사되어 갔다. 반면 아이돌 가요 무대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전설에 대한 축제의 장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불후의 명곡>은 여전히 순항중이다. 이미자, 이선희 편처럼, 여전히 우리는 건재하다며 존재감을 뽐내며. 물론, 1985년부터 월요일 밤을 묵묵히 지켜온 <가요무대>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긴 하다. 그 시절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대를 지키는 고정 시청자 층을 가진 <가요무대>처럼, <불후의 명곡>도 오래도록, 가수들에게 좋은 무대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시청자들에게는 모처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오래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6. 10:59

이제와 새삼스레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의 문제를 꺼내는 것은 진부한 문제 제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들이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가지고 '서바이벌' 무대에 오른다는 전제가 늘 가수의 의욕과 원곡의 가치 사이에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 가수들의 첫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래 기존의 곡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른 편곡 논란은 계속 있어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논란은 김범수의 '희나리'였을 것이다. 
얼굴없는 가수로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내던 김범수가 '님과 함께'의 화려한 무대로 1등을 거머쥔 뒤, 더 이상 <나는 가수다>를 통해 오를 곳이 없다고 판단했던 김범수는 방향을 틀어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실험적 편곡을 선보인다. 
가장 애절한 노래 중 하나였던 구창모의 '희나리'를 파격적인 전자 음향을 입힌 테크노 버전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희나리'의 김범수 무대는 우리나라에서 테크노 음악을 소개하는데 앞장 선 구준엽이 디제잉까지 하며 합류하여, 파격적인 정서의 극치에 도달했다. 

(사진; 데일리 중앙)

하지만 테크노 버전 '희나리'의 무대 뒤 과연 '희나리'라는 노래가 가진 이별의 정서가 그런 편곡에 어울렸는가를 놓고 논란이 불붙었다. 
물론 김범수 이전에, 이미 이소라가 보아의 '넘버원'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불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이소라는 빠른 댄스 곡이었음에도 가사가 오히려 애잔한 정서를 내보이고 있는 '넘버 원'의 정서를 살려낸 것인데 반해, 김범수는 '희나리'가 가진 정서는 뒤로 한 채 테크노라는 실험 정신만이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편곡이라는 외줄 타기가 건너가야 할 양 극단의 강이다. 
때로는 너무 원곡과 똑같이 불러서 차별성이 없다는 모창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원고의 아우라를 해쳤다는 평가에 직면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러이러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희나리'의 논란에서처럼, 적어도 원곡이 지니고 있는 정서와, 리듬은 보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 '편곡'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이제 <불후의 명곡>으로 돌아와서,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이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가수들이 '전설'이라 칭해지는 선배 가수를 바로 앞에 모셔놓고, 그의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광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늘 가수들이 말하듯, '누가 될 '수도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8월31일 <불후의 명곡>은 아이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러면서 또 동시에 그의 인기에 눌려 빛을 덜 발하지만, '싱어 송 라이터'의 효시가 더 그의 진면목인 전영록이 전설의 자리에 등장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마돈나'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디바'라는 말이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을 정도의 무대를 선보인 '바다'의 '불티'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바다가 화려한 무대의 '불티'를 통해 410점을 넘은 높은 점수를 얻고, 이어서 다시 여러 가수들이 도전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은 요즘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아이돌 그룹, 'exo'였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exo'가 가지고 나온 곡은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였다.
역시나 'exo'답게 칼군문에 맞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시청하던 아들이 한 마디 던진다. 
"원래 노래가 어떤거야?"
그도 그럴 것이, 'exo'버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그들의 노래, '늑대와 마녀'나, '으르렁'의 분위기와 더 흡사한 반면, 전영록의 원곡,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전영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들리기는, 그저 'exo' 앨범에 실린 어느 한 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른바 편곡의 정의에 맞춰 따지자면, 장단조의 바뀜 등,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그간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수의 가수들이 김범수처럼, 탱고, 레게,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변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exo'처럼 이 정도로 원곡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사만이 남은 편곡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멋진 아이돌 그룹'exo'만의 분위기만이 있을 뿐이다. 

늘 전설들은, 후배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노래가, 저들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 재창조되는 것이 행복하다,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31일의 전영록도, 'exo'의 노래를 듣고 그랬을까?


by meditator 2013. 9. 1. 10:20

8월 23일 <슈퍼 매치> 파일럿방송에서 노익장의 양희은은 가수 인생 40년이나 어린, 데뷔한 지 두 달된 김예림과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듀엣으로 불렀다.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이제는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 대접을 받는 양희은이 개인 콘서트가 아닌 노래 부를 무대를 얻기 위해서는 40여년이나 어린 김예림과의 콜라보레이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두 사람의 낭랑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화음만으로는 그 어느 세대에게서도 1위의 승인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등이다. 
이런 양희은의 모습은, 그리고 그 날 모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선 이승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시대 가수들의 현실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단면일 지도 모르겠다. 

(사진; 스포츠 월드)

굳이 그 시작을 까탈스럽게 걸고 넘어지자면 텔레비젼 속 가수들에게 부박한 선택을 강요하게 된 것은 <슈퍼스타 K>일지도 모른다.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가수 지망생들에 의해 불려지는 다양한 노래들에 사람들의 시선이 빼앗겼고, 서바이벌 속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불러왔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아 가수가 되고, 상금을 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지망생들의 모습은감정의 절정을 치달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자고로 한껏 고조된 지각은 다시 되물릴 수 없으니, 사람들은 프로패셔널한 가수들이 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심심해 하기 시작했다. <슈퍼스타K>를 통해 불려진 지난 시절의 노래들이 흥하면서 잠시 잠깐이나마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비슷한 무대가 각 방송국마다 만들어 졌지만,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그저 '노래'란 원조 평양 냉면처럼 심심할 뿐, 원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을 남기고 다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나는 가수다>가 등장했다. 
기존의 가수들도  더 이상 이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조건과, 프로패셔널한 가수로써의 자존심을 내걸고 '서바이벌'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절박함은  금의환양을 꿈꾸는 전국의 무수한 가수 지망생들을 등에 업은 <슈퍼스타K>와 달리, 극강의 편곡과 가창력을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무리수가 되는 <나만 가수다>의 조건이 오히려 프로그램이 '조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오히려, <나는 가수다>의 절박함을 덜고, 거기에 프로패셔널한 가수들의 버라이어티함과 오락성을 덧붙인 <불후의 명곡>은 100회 특집을 하며 자신의 포지션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지만 <불후의 명곡>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오락프로이다. <불후의 명곡>의 특징은 이른바 그 프로그램이 낳은 가수로 불려지는 문명진의 무대를 통해 보여진다. 처음 무대에 선 문명진은 마치 국악의 고수가 산 속에서 피를 토하며 목소리를 갈고 닦았듯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갈고 닦은 그의 애절한 R&B창법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의 절실한 노래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미 <불후의 명곡> 스타일의 무대에 세련된 선배 출연진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회를 거듭할 수록 문명진의 무대에도 조금씩 무언가가 하나씩 더해지고, 그가 들고 나온 노래의 편곡도 화려해 지기 시작하면서 1등을 거머쥐게 되었다. 물론 늘 <불후의 명곡>에서는 1등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기사가 되는 건 단 1승에 불과하더라도 1위이다. 가창력으로 날고 기는 가수들의 무대를 결국 결정하는 건, 오로지 노래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곡의 선정과 편곡, 무대 구성이 되는 것이 <불후의 명곡>의 불문율이다. 


결국 이미 가수로써 인정받은 프로패셔널들이라도 그들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는 '서바이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힙합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는 <Show Me The Money>를 통해야 하고, 이미 지명도가 있는 락밴드라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밴드 서바이벌>이나 <탑 밴드>의 출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아니 그것 말고는, 이제는 아이돌에게조차 자리를 나눠주어,  1주일에 겨우 한 자리만 알려지지 않은 가수나 팀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인 것이다. 
하지만 자리는 얻었으되, 그 결과가 단비가 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Show Me The Money> 자체가 이미 시즌 2에 들어서는 대중적 관심도가 더 낮아졌고, 비록 거듭하면서 '노예 계약'이나 개인간의 인정 투쟁으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힙합퍼들의 디스전의 시작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 지명도와 실제 힙합계의 존재감의 불협화음을 평하고 했던 것처럼, 시즌 2 내내 여러 문제들이 돌출되어 역효과를 낳은 감마저 있었다. 

그래도 <Show Me The Money>나, <슈퍼 매치>, <불후의 명곡> 정도까지는 애교 수준이다. 
여기까지는 신인과 기성의 가수들의 경계가 분명했고, 선배와 후배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기존 정도의 수준으로는 관심을 끌 수 없기에 더 '센' 서바이벌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jtbc의 <히든 싱어>이다. 
기존의 가수와 그 가수를 모창하는 사람들이 장막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누가 진짜인지를 알아맞추는 게임까지 하게 된 것이다. 가수가 그저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누가누가 잘 부르나의 수준을 넘어, 내가 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진짜야, 아니야 의 수준까지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에 열광한다. 심지어 '누가 더 잘해'의 소리까지 나온다. 존재감을 건 서바이벌이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하나의 노래를 가지고, 가수와 가수가 아닌, 혹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바이벌을 벌이다 못해, 그 판정을 하는 <퍼펙트 싱어 VS>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30일 첫 방송을 탄 <퍼펙트 싱어 VS>에서 92점을 넘은 점수로 1위를 한 성진환은 '이제까지 감성보컬인 줄 알았는데 기계적인 보컬임을 깨달았다'는 촌철살인의 소감을 내보인다. 처음, 16세 여중생과 손승연이 대결을 할 때만 해도 그저 노래를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박완규도, 이정도, 그리고 가요를 자신 분야의 창법으로 해석한 성악가 서정학, 국악인 고금성의 절창도 소용없이 오로지 기계의 판독에 맞춘 정확한 창법만이 유효한 결과는, 제 아무리 박완규가 기계의 판정으로 가름할 수 없는 개성있는 노래라고 면피를 하려고 해도, 이 시대의 가수란? 음악이란? 질문을 허무하게 던져보게 만든다. 

자신의 노래를 제껴두고 남의 노래를 그럴듯하게 부르고, 그걸 관객들의 판정에 맡기는 것도 모자라, 이젠 그걸 기계의 판독에 맡기게 되는 상황, 이게 2013년 대한민국 가요계의 자화상이다. 


by meditator 2013. 8. 31. 10:32

7월 20일 <불후의 명곡>, 이미 5승을 거둔 문명진이 이제 막 노래를 마친 하동균과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 이어진 문명진의 인터뷰, 자신이 오랜 무명 후에 <불후의 명곡>을 통해 세상에 나왔듯이 하동균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어진다. 그때 자막엔 '10년의 무명 문명진, 그리고 6년의 칩거 하동균'이란 멘트가 적혀 있었다. 


<불후의 명곡>엔 늘 대세가 있다. 그런데 그 대세라는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대세'와 좀 다르다. 

흔히 대세라고 하면, 거대 기획사에서 기획에 따라 만들어지고 알뜰하게 밀어주는 아이돌이거나, 단박에 주인공을 꿰어찬 신예 배우라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후의 명곡>의 대세는 그런 기성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아마도 처음 <불후의 명곡>을 통해 대세로 등극한 것은 '알리'였을 것이다. 그토록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노래를 잘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지만 언제나 세상이 외면했던 그녀를 대세로 만들어 준 것이 바로 <불후의 명곡>이다. 그녀 이후로도 여러 명의 대세가 등극했다. 이미 슈퍼스타 k를 통해 인정을 받았지만 높은 공중파의 장벽을 넘지 못했던 '허각'과 '울랄라 세션'이 그 진가를 인정받고, 뮤지컬 가수였던 임태경이 광고를 찍을 정도의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사진; tv 리포트)



그리고 100회를 찍고, 안정기에 들어선 <불후의 명곡>은 좀 더 자신감있게 묻혀진 여러 가수들을 발굴하거나, 다양한 장르의 숨겨진 재주꾼들을 섭외한다. 그런 의미에서 21일의 <불후의 명곡>은 상징적이다. 

mc 신동엽은 문명진을 이렇게 소개한다. 오십 먹은 아줌마를 처음으로 가수의 팬까페에 가입을 하게 만든 요즘 대세라고, 그리고 그 말에 대기실의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문명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문명진은 파죽의 5연승을 거둔다. 문명진이라는 사람이 평상복같은 차림으로 외로이 무대에 서서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듯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 머지 않은 시간 동안, 이제 문명진은 그가 무대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환호를 하게 만드는 가수가 되었다. 이제 지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사람이 된 문명진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하동균에게 자신처럼 세상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덕담을 남길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문명진이라는 가수의 저력이요, 그 저력을 알아보고 띄워준 <불후의 명곡>의 힘이다. 


20일 방송의 대미는, 문명진의 바램(?)처럼 문명진의 뒤를 이어, 문명진을 이기고 하동균이 2승을 거두며 새로운 대세로 등극할 조짐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집 밖에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한때 가장 촉망받던 그룹의 일원이었으나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날개를 꺽여버렸던 하동균, 말수도 적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를 대세로 만들기 위해 <불후의 명곡>대기실은 분주했다. 하동균의 모창을 하동균에게 시키는 해프닝을 벌이는가 하면, 매번 모든 질문의 향방이 하동균을 향해, 세상과 담쌓은 그의 칩거를 순수함과 고독함의 표상으로 이미지메이킹한다. <불후의 명곡> 현장의 관객들은 무대를 보고 판단하겠지만, 집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보는 시청자들은 이미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 문명진을 꺽고 새롭게 대세로 등극할 적임자로 하동균을 마음에 두도록 프로그램은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문명진의 짙은 소울과는 다른, 짙눌러 가두지만 그 벽을 뚫고 나와 호소하는 하동균만의 '절창'으로 새로운 대세의 탄생을 알렸다.


(사진; tv리포트)


20일 방송의 큰 줄기는 문명진의 내민 손을 잡은 하동균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대세의 탄생이긴 하지만 꼭 그런 '대세론'이 아니더라도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이 많다. 

한때 나가수의 음악 감독이었던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수상자였던 정지찬이 또 다른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수상자인 박원과 함께 만든 그룹 '원모어 찬스'의 출연도 기념비적이다. 이제는 사라진 상대 방송국 음악 서바이벌의 관계자가 경연 대상자가 되어 무대에 서는 것도 묘하지만, 무엇보다 유재하를 기념하는 자리에 유재하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경연대회 수상자가 나왔다는 '역사적' 상징성 또한 의미심장하다. 십 여회를 훌쩍 넘겨버린 유재하 경연대회의 수상자들이 조금 더 많이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뿐만이 아니다. 롤러코스터의 일원으로 전설의 언더그라운드 여자 가수로 이름을 날렸던 조원선의 등장도 주목해야 한다. 하동균처럼 사연있는 6년의 칩거는 아니지만, 조원선 역시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었고, 파격적인 탱고 리듬의 편곡으로 조원선의 매력을 한껏 살린 '우울한 편지'를  열창해보였다. 꼭 1승이라는 성과를 논할 필요없이 이미 충분히 특정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하지만 일반 대중에겐 조금은 낯선 실력자들의 귀환은 반갑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여전히 누군가의 노래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진가를 내보여야 하는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도 그러하거니와, 또 여전히 나가수 식의 내지르고 통곡해야만이 판정단의 눈에 잘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편곡의 딜레마 역시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가수가 등장해 보석처럼 빛을 발할까 하면서 <불후의 명곡>을 기대하는 마음이 덜해지지는 않는다. 



by meditator 2013. 7. 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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