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에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은 여러 의미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우선은 <마귀- 파발을 달리다>는 2012년 극본 공모의 최우수 당선작이라는 것이다. 최우작이었던 만큼, 기존 드라마 스페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스케일의 역사극을 '추노'못지 않은 긴박감을 자아내는 촬영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날의 드라마 스페셜은 극본 공모 당선작을 방영하는 나름 드라마 스페셜로써는 축제의 날이었지만, 동시에, 수요일로 시간대를 옮겨 심기일전을 꾀하던 드라마 스페셜이 다시 일요일 밤 11시 50분이라는 '외진' 자리로 쫓겨나기 전 마지막 시간라는 비감한 의미도 띠고 있다. 
차라리 늘 그 한갓진(?) 시간이었다면, 그 자리에서의 고고한 고군분투로서 의미가 있었겠지만, 굳이 드라마에 드라마를 얹는 '옥상옥'의 어색한 자리에 끌어다 앉히더니, 그러기 반년이나 됐을까 하는 시간에 다시 물리는 건, 노골적으로 드라마 스페셜을 '개밥에 도토리'취급을 한 셈이다. 더구나, 외주가 아닌, 자체 제작인 드라마 스페셜은 경영 상태로 말미암마, 제작비를 줄이다 못해(이미 드라마 스페셜의 자체 제작비가 배우들의 경우는 거의 수고비 조의 출연료만을 받고 출연하는 정도로  다른 드라마에 비해 낮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편수까지 줄이겠다고 하니, 이날의 드라마 스페셜을 그저 기꺼운 마음으로만 볼 수 만은 없었다. 

그래도 <마귀-파발을 달리다>는 근래에 보기 드문 사극이었다. 
그것은 우선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그저 역사 속에 스쳐지나가던 '파발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 산성 밖으로 파발을 전달하는 중책을 맡은 파발꾼,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마는 그들의 시도로 인해, 역사는 보기드문 치욕의 역사를 남기고, 문복 개인은 평생의 절름발이가 되어 노름판을 전전하게 된다. 
자신의 실수로 왕명도 수호하지 못하고, 아내도 죽게 했다는 문복의 죄책감과 청 앞에 왕이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이라는, 그저 보잘 것 없을 거 같은 개인의 삶과 역사를 등치시키는 시선이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빼어난 점이다. 

(사진; 스포츠 월드)

치욕의 역사는 반격을 준비한다. 
인조의 아들 효종은 아비의 치욕을, 그리고 이 나라의 수치를 되갚기 위해 북벌을 준비한다. 그리고, 치욕의 과정에서 희생당한 임경업 장군의 딸 서연도 복수를 하기 위해 문복을 찾는다. 하지만 문복은 아직도 뻘밭에 나뒹그러진 자신의 삶을 줏어올리지 못한다. 그를 일으킨 것은, 자신의 노름빛때문에 팔려간 딸이다. 딸로 인해, 서연을 다시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던 과거의 자신의 파발 임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결국, 아내를 홀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그 파발 임무를 완수하고자 길을 떠난다. 

익히 역사가 김자점을 역신으로 기록하였듯이, 그의 아들 김의에 의해 시도된, 역모, 그리고 왕의 시해는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그 실패 안에는, 바로 '마귀'라고 불리는 문복의 활약이 있었다. 단연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파발꾼으로, 동료파발꾼과의 죽음을 건 레이스에서 홀로 살아남아 임무를 완수한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딸을 구할 것인가, 왕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라는 기로에서, 문복은 왕의 목숨을 구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몫에 충실한다.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아내를 놔두고 말을 탔던 병자호란의 그날처럼 문복은 다시 같은 선택을 하고, 이번에 그의 선택은 왕도, 자신의 딸도 살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 절묘한 수미상관의 스토리가 <마귀-파발을 달리다>의 묘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면 <마귀-파발을 달리다>는 그저 좀 색다른, 그저 좀 잘 짜여진 역사극이 되었을 것이다. <마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 다음이다.
죽음을 걸고 전한 사초와 표문, 하지만, 왕 앞에서 열어본 그것들은 이미 물에 젖어 얼룩에 불과했다. 그가 죽도록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또 하나의 카드가 있었다. 바로 김의가 왕을 시해하려고 한다는 것, 덕분에 왕은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문복에게 고맙다고 말 한 마디를 전한 왕은 곧 궁궐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그를 수행했던 무관은 오히려 문복을 윽박지른다. 오늘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김의에게 서체를 알려주고 죽임을 당한 공씨와 같은 처지에 빠진 것이다. '토사구팽'이다. 

물에 젖어 쓸모 없어진 사초 등은 이전의 병자호란 때 문복의 파발 역시 성공했어도 결과에는 별 상관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목숨을 살린 문복의 노력은, 그의 역사적 선택의 의의의 또 다른 상징 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저 문복과, 문복이 파발을 전하는 과정에서 죽어나간 경출이나 강계 따위랑은 상관없는 저들의 역사로 남는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머리를 내리고 참한 규방 처녀로 가마를 타고 가던 서연의 모습에서 보듯이, 양반님네의 일인 듯하여 허무하다. 

그러나, 문복이 가장 당당했던 순간이 왕이 저 멀리 도망치듯 가고, 그의 무관이 문복의 입을 막으려 닥달했을 때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제 아무리 자신의 것인 양 치부하려 해도, 그들이 껍질만 가져간 그 역사의 알맹이는 문복의 '것'이라는 사실이, 조아렸던 그의 어깨와 허리를 펴고, 그를 당당히 되돌아 서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여전히 그와, 그의 딸의 사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복은 그 예전의 아내를 죽인 죄책감에, 그리고 자신의 파발을 완수하지 못한 자괴감에 시달리던 문복이 아니다. 더구나, 저들의 앞에서 쩔쩔매는 그저 '천민'은 더더욱 아니다. 양반님네 서연을 당당하게 마주 쏘아볼 자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저 밟히면 밟히는 대로 스러지는 민초가 아니라, 유유히 흐르며 역사를 지탱해 왔던 민중의 삶을 상징한다. 

명예도, 금전적 보상도, 아무 것도 쥔 것이 없는 문복의 삶이 허무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와 같이 달리던, 하지만 그와 다른 선택을 했던, 늘 그의 화살받이였던 강개의 삶을 대비해 보면 삶의 각도는 조금 달라진다. 그토록 위악을 부리며 돈에 욕심을 부리던 강개는 돈 2000냥에 결국 자기 목숨을 내놓았다. 죽어가던 강개가 문복을 비웃자, 문복을 되묻는다. 그래, 너는 그래서 돈에 목숨을 내놓았냐고. 인간의 '자존'이 구체적 물질이나, 성취로 상치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시대에, 문복의 선택과 그의 결말은 여러가지 해석과 상념을 낳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이렇게 좋은 관점과 만듬새를 가진 작품이, 제작진 운운하며 편수가 줄어들고, 그나마 시간 역시 일요일 밤 자정으로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에서, <드라마 스페셜>이 kbs의 '민초'처럼 느껴진다. <마귀>의 채승대 작가는 올 하반기 <감격시대>를 집필 할 예정인 것처럼, <드라마 스페셜>을 통해 지금의 kbs를 있게 한 많은 좋은 작가들과, 피디들이 이 시간을 통해 배출되었고, 기회를 부여 받았었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2의 경제적 논리는 한 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by meditator 2013. 10. 2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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