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그랬었다.

그저 여름이면 납량 특집 <전설의 고향>정도는 봐줘야 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사연이 억울하건 어떻건 결국에는 귀신의 본연에 충실해, '내 다리 내놔~~' 정도의 대사에, 공중 뒤집기 두 바퀴 정도는 여유있게 해내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사람사는 세상이 하도 그악해진 탓일까. 이젠 사람보다 못한 귀신이 귀신이랍시고 텔레비젼을 메운다. 

엄마가 귀신이 됐는데 왜 슬프지?
<드라마 스페셜-엄마의 섬>의 엄마(김용림 분)에게는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다. 하지만 네 명이나 되면 뭐하랴. 
드라마 초반 엄마를 만나러 온 둘째 아들 역의 유오성은 꽃무늬 장화를 엄마에게 드리며 '이런 이쁜 장화 하나는 신어주어야 한다'며 온갖 설레발을 떤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나머지 형제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둘째 아들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강도와 같은 태도로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한다. 그간 엄마가 자신에게 못해주었던 과거까지 들먹이며 엄마의 숨통을 죄는 건, 차라지 강도가 낫지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다른 자식들이 나은 편도 아니다. 사업을 하고, 변호사를 하고, 재벌 짐에 시집을 갔다는 자식들도 각자의 복잡한 속사정 때문에 치매를 앓는 엄마를 모셔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결국 엄마는 홀로 죽어간다. 그리고 귀신이 되어 자식들 앞에 나타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식들이 스스로 느끼는 자식이 되어 해드리지 못했던 도리에 대한 죄책감이, 귀신의 모습으로 엄마를 불러들인다. 
하지만, 그런 귀신이 된 엄마를 물러나게 만드는 것도, 또한 '나야, 엄마'라는 자식의 목메인 한 마디이다. 
<엄마의 섬>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클라이막스에서 잠시 등장하는 귀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뻔히 엄마가 아픈 걸 알면서도, '깜빡깜박 잊어버리시기도 잘 한다'며 자신의 편의에 따라 엄마를 외면하는 자식들의 모습이다. 그렇게 엄마를 '고독사'로 몰아가는 인간 자식들의 모습이 더 무섭다. 그리고 그런 자식들에게 남은 땅뙈기를 팔아 돈과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남긴 엄마, 그리고 귀신은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다. 

매회 눈물이 난다. 
<주군의 태양>이 방영 중반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홍미란, 홍정은 자매 특유의 허술한 플롯이라는 단점이 드러나지 않고 탄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찌보면, 눈 가리고 아웅일 지도 모른다. 거의 매회, 하나씩 등장하는 귀신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보면, 여전히 홍자매의 이전 작품과 다르지 않게 허술한 틈이 보인다. 특히나, 8회에 이르러, 갑자기 진전된 주군(소지섭 분)과 태양(공효진 분)의 사랑 이야기는 어차피 그렇게 될꺼였으니라는 이해(?)를 차치하고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다리를 건너가듯 어딘가 껄쩍지근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럼에도 막상 <주군의 태양>을 시청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느끼는 이 두터운 밀도의 감동이, 주군과 태양의 러브 스토리의 탄탄함으로 인한 것인지, 귀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이끄는 사연때문에 그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그렇다. <주군의 태양>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공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귀신들의 이야기이고, 귀신들의 이야기는 매회 뭉클함을 지나 눈물이 나올 만큼 애절하고 안타깝다. 

(사진; 뉴스엔)

외국 호러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두 눈의 색깔이 다른 인형에, 그 인형과 함께 등장하는 아이들은 괴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아이들, 보호자의 방치, 혹은 유기로 인해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은 채 죽어갔던 원혼들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신처럼 외로운 아이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태양이 제일 무섭다는 물귀신이란 전제를 깔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나꿔채는 메니큐어를 바른 여자 귀신은 알고보니, 호텔 이벤트에 당첨되어 너무나도 기뻐했던 고단한 삶을 혼수 상태에 빠진 주부였다. 
이번 주 만이 아니다. 8회에 이르도록 등장했던 귀신들은 늘 억센 인간사에 치여 이 세상을 하직한 억울한 귀신들이고, 그 자신의 억울함을 풀지 못해 태공실 앞에 등장해 칭얼거리는 것이다. 한을 좀 풀어달라고. <전설의 고향> 버전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던 구신들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게다가 한만 풀어주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 세상을 향해 연기처럼 날아버리기 까지 매우 '쿨'하기까지 하다. 

<드라마 스페셜- 엄마의 섬>과 <주군의 태양>을 보다보면,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귀신을 만들 정도로 인간 세상이 지독하게도 모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2013 납량 특집은 지나가는 인간도 다시 보게 만드는 '인간의 무서움'을 항시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무서운 효과를 낳을 거 같다. 


by meditator 2013. 8. 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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