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에게 셜록만큼 똑똑한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가정으로 <에놀라 홈즈>는 시작된다. 그런데 왜 하필 여동생이어야 할까? 이건 영국을 중심으로 그간 백인 남성 중심의 고전들을 성과 인종적 평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문화적 시도의 일환이다.

 

 

당대 최고의 탐정 셜록, 그를 키운 어머니는 아직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선각자로서 참정권 운동에 나선 패미니스트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 분)였다. 일찌기 오빠들이 집을 떠나고 어머니와 남겨진 막내 여동생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 분), 어머니는 딸에게 격투기를 가르치는 등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에놀라 홈즈 1> 은 에놀라가 전적으로 의지하던 진보적인 어머니가 사라지고 그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탐정 에놀라의 서막을 연다. 

이제 <에놀라 홈즈 2>는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탐정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에놀라 홈즈가 본격적으로 '탐정'일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도 허용되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 그런 시대에 여성이 탐정 사무소 문을 열었다고 '문전성시'를 이루겠나. 탐정 사무소라고 들어와 여성이 탐정이라니 질색을 하고 나가는 사람들, 에놀라를 찾아와 오빠 셜록에게 부탁 좀 해달라는 사람들, 이대로 문을 닫아야 하는가 싶은데 소녀 베시가 탐정 에볼라를 찾는다. 성냥 공장에 다니는 자기 언니를 찾아달라는 사건이었다. 

언니 세라는 베시와 함께 성냥 공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기꺼이 맡은 에놀라는 수사를 위해 성냥 공장 직공으로 들어간다. 모든 직공이 다 여성인 공장,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것같은 미성년 베시에서 부터 아줌마들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나무판자를 쪼개 여기에 인을 입혀 성냥을 만든다. 베시와 세라가 함께 살던 집을 조사하던 중 성냥 공장과 세라의 실종에 일련의 관계가 있었다는 걸 눈치 챈 에놀라는 공장 사무실에 잠입 장부 중 일부분이 뜯겨져 나갔음을 알아낸다. 장부를 뜯어낸 건 세라였을까? 

 

 

성냥 공장으로 간 에놀라 
<에볼라 홈즈 2>에서 실종된 여성은 세라 채프먼, 그녀는 1088년 매치걸스 스트라이크((Match Girls’ Strike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를 주도한 실존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처음 에볼라가 공장에 간 날, 공장 입구에서 남자 직원이 직원들의 얼굴을 살피며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낸다. '리프스'라면서. 전염병이라며 돌려보낸 이 증상은 사실, 공장 측이 원료를 아끼기 위해 독성이 강한 백린을 성냥 원료로 쓰면서 '아래턱 부분에서 괴사가 일어나며 턱이 주저앉는 인턱(phossy jaw)증상'이었다. 

애니 베전트라는 언론인이 '브라이언트 앤트 메이' 공장에서 벌어지는 여성 노동자의 인중독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폭로한다. 애니 베전트에 대해 공장은 소송 등을 벌이며 대응했지만, '우리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입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1400 여 명의 브라이언트 앤트 메이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선다. 이때 이 파업을 주도한 여성이 세라 채프먼이다. 

<에볼라 홈즈 2>는 이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적 파업을 극중 주요 사건으로 만든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 '픽션'으로서의 재미를 더한다. 즉, 알고보니 실종된 세라 채프먼은 연인인 공장주 아들 윌리엄과 함께 공장주의 부도덕한 인 사용 사실을 폭로하려 했다는 식이다. 또한 세라는 동료 메이와 함께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그 댄서로써의 능력을 살려 시슬리라는 여인으로 변장, 이제는 진보적인 의원이 된 에볼라의 남자 친구 듀크스베리(루이스 파트리지 분)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세라의 연인 윌리엄도, 동지였던 메이도 모두 목숨을 잃고 에놀라는 탐정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헨리 카빌이 분한 셜록, <에볼라 홈즈 1>에서는 배우의 존재감에 비해 비중이 적었던 것과 달리, <에볼라 홈즈 2>에서는 에볼라의 성냥 공장 실종 사건과 셜록의 국고 분실 사건이 맞물린다. 두 사건이 만나게 되는 곳, 그곳에서 모든 일의 배후에 드디어 실종 사건의 지도로 '만나서 반가워요 홈즈'라는 기발한 인사를 남기는 '모리아티'가 등장한다. 

 

 

여성 탐정 셜록 시리즈답게 셜록에게 도전장을 내민 모리아티 역시 미라 트로이(그녀의 이름을 재조합하면 모리아티가 된다. 샤론 던컨 브르스터 분)라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다. 에놀라가 가는 곳마다 등장하던 이 흑인 여성,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흑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래서 존중받지 못한 흑인이자, 여성이 백인 남성 셜록의 머리 꼭대기에서 그를 농락하는 가장 지능적인 악인이라는 설정은 기발함을 넘어 상징적이다. 

또한 첫 번째 시리즈에서 폭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무력 사용을 마다치 않던 전투적 패미니스트 어머니 유도리아와 그녀의 동지 이지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에놀라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셜록은 자신의 힘으로 동생을 빼낼 수 없게 되자,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머니와 이지스는 자신들이 만든 폭탄을 던지며 에볼라를 탈옥시킨다. 

돌아온 에놀라, 그녀는 오빠 셜록과 남자 친구 듀크스베리와 함께 모리아티의 하수인 그레인 경감 등을 무찌르지만 증거가 되는 문서가 불태워지면서 인중독 사실이 덮힐 위기에 놓이게 된다. 문서가 없으면 안될까? 가장 강력한 증거들, 에놀라와 세라는 동료들이 일하는 공장으로 달려가 여공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다. 바로 영화로 온 매치걸스 파업이다. 

by meditator 2022. 11. 14. 22:14

학교와 락음악이라 하면 이제는 고전이 된 <스쿨 오브 락>이 떠오른다. 우연히 음악 교사가 된 로커 듀이 핀(잭 블랙 분), 자신이 혹한 그룹에서 쫓겨나 학교 대리 교사인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지만, 고답적인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들과 '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함께 성장하는 영화이다. 학교로 간 락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신선했던 영화, 이제 또 한 편의 락 영화가 학교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락을 하는 선생님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락을 선택한 아이들 케빈과 헌터, 그리고 에밀리의 이야기다. 

왕따, 부적응자, 그리고 감정 조절 장애 학생의 선택 
헌터(에드리언 그린스미스 분)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매냥 헌터가 비아냥대듯이 여성들의 가슴에 '식염수 주머니'를 넣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어릴 적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 후  떠나고 그 엄마 얼굴이 가족 사진에서 잘려 나간 이후 늘 일과 연애로 바쁜 아버지, 헌터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구원을 '락'에서 찾았다. 지하의 그의 방 곳곳을 메운 메탈리카 등 메탈 락 밴드의 사진들(실제 메탈리카 멤버들이 결정적인 장면에 까메오로 등장한다), 긴 머리, 가죽바지, 그에게 메탈은 '구원'이자, 삶의 열쇠이다. 하지만 그 거친 복장에도 불구하고, 학교 주먹 좀 쓰는 애들한테 맥없이 나자빠지고 마는 헌터의 모습처럼 그 '구원의 열쇠'는 어쩐지 '찌질'한 헌터의 어색한 포장지같다. 

또 한 명 <그것>의 제이든 마텔이 분한 케빈은 헌터의 유일한 친구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계기가 헌터처럼 케빈이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걸 헌터가 구해줘서이다. 체육 수업을 받는 대신에 고적대를 택했듯이 케빈은 학교 생활의 주변을 조용히 맴돈다. 그런데 고적대 작은 북이나 겨우 치는 케빈에게 락에 심취한 헌터가 드러머의 길을 종용한다. 헌터가 만든 '고문 기계'라는 곡, 하지만 그걸 치기 위한 장비도, 능력도 케빈에게는 없다. 

그런 케빈의 눈에 들어온 한 소녀가 있다. 같은 고적대에서 클라리넷을 불던 에밀리(아이시스 헤이스워스 분)다. 감정 조절 장애가 있는 에밀리는 약을 끊는 바람에 혼자 다른 음악을 하듯 부는 클라리넷을 지적하는 선생님께 욕을 하며 대들고 만다. 근데 그런 에밀리가 어쩐지 케빈은 맘에 든다. 더구나 에밀리가 첼로를 연주하는 것을 본 케빈은 그녀가 헌터와 함께 하는 메탈 밴드의 '베이스' 파트를 맡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청소년 영화'라고 해도 '청소년 관람 불가'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메탈 로드>도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막상 영화는 '순한 맛'이다. 상대 밴드의 드러머의 상습 약물 복용, 폭력, 베드씬 등 적나라한 내용들이 들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머리를 밀고 검고 하얀 색으로 칠을 해도 무시무시하게 '메탈릭'해 보이기 보다 어쩐지 애잔하고 심지어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그런 장치들이 세 주인공들의 우정과 애정의 삼각 관계 속에서 적당하게 양념처럼 뿌려진다. 

아마도 <메탈 로드>의 가장 큰 미덕은 왕따이거나, 부적응자, 그리고 감정 조절 장애를 겪는 청소년들이 '메탈'이란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 애쓰는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카드는 허용해도, 아들을 위해 시간과 맘을 허락해 주지 않는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카드로 '메탈' 장비를 사서 학교의 '배틀 오브 밴드'에 출전하고자 한다. 사실 '메탈 밴드'를 표방하지만 헌터의 겉멋과 어설픈 케빈의 연주가 버무려진 상황이었을 뿐인데, 그래도 두 사람은 열심히 준비해 간다. 무엇보다 겨우 작은 북 리듬 정도를 연주하던 케빈이 헌터가 준 음악을 들으며 메탈릭한 연주자로 거듭나는 부분이 흥미롭다.

청소년 영화답게 이들의 밴드 출전은 험란하다. 물론 그 험란함은 충분히 해피엔딩을 예상할 정도의 험란함이다. 둘도 없는 친구 헌터와 케빈은 케빈의 여자 친구가 된 에밀리와의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늘 카드만 쥐어줄 뿐 무관심했던 아빠는 헌터의 폭주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처방을 내린다. 물론 '영어'의 몸이 된 헌터를 케빈이 구하며 두 사람은 결국 애초에 목적한 대로 '베틀 오브 밴드' 경연에 나서게 된다. 


 

어설프기만 했던 두 찌질한 소년이 '메탈' 정신을 표방하며 좌충우돌한 끝에 선 경연장, 거기에 에밀리가 합류한다. 예의 '메탈' 정신을 늘 운운하던 헌터의 연주와, 앳된 미소년에서 제법 거친 드러머가 된 케빈의 성장도 볼만 하지만, 소심과 폭주를 오가며 자신없어 하던 에밀리가 케빈의 응원에 힘입어 약대신, 메탈릭한 첼로 연주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한껏 뿜어내는 장면은 통쾌하다. 청소년의 불안정한 감정을 그저 '약'으로만 다스리려는 오늘날의 세상에 한 방을 먹이는 듯한 설정은 주목할 만한 장면으로 남는다. 

'순한 맛'이라고 했던 것처럼 <메탈 로드>는 예측 가능한 설정과 스토리의 영화이다. 마치 예전에 주말마다 하던 디즈니랜드 아동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이유는 그저 잡풀처럼 밟힐 것 같은 아이들이 그 누구의 도움없이 밟혀도 다시 일어서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우정과 사랑을 일궈가며 영화의 제목처럼 자기 삶의 'Lords'가 되어가는 과정은 '순한 맛'이지만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든다. 게다가 <스쿨 오브 락>의 한 주인공이 음악이었던 것처럼 클래식에서 부터 메탈에 이르기까지 음악들은 빠질 수 없는 듣고 볼 거리이다. 


by meditator 2022. 4. 17. 13:12

우리 '액션' 영화의 오래된 갈증이 무엇이었을까? 나현 감독의 <야차>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4월 8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이 영화는 사천왕을 모시는 8명의 신 중 하나인 '야차'를 제목으로 내세운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귀신'이지만 '부처님을 수호'하게 되는 야차가 가지는 양면성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강인(설경구 분)와 '블랙팀'을 통해 한껏 구현해 낸다.

4년 전 홍콩의 뒷골목, 차에 다가가 무언가를 건네는 인물, 그런데 갑자기 지프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그 차를 들이받는다. 한바퀴를 돌아 나뒹구는 차, 보통 액션 장면에서의 호흡보다 한 번 더 나아가며 이 영화의 정체성을 각인한다. 그리고 들이받는 지프에서 유유히 등장하는 지강인, 거래를 하려했던 인물은 동료들을 배신한 지강인과 한 팀이었던 인물이다. 그에게 총을 들이댄 지강인은 배후를 묻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잠시 뒤 하늘을 울리는 총소리, 배신자에게는 '자비'없는 처단만이! 이렇게 '야차같은' 장르의 이름표를 내보이며 영화는 시작된다. 

 

 

선양을 배경으로 한 무한액션 
'한국' 사회는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물론 그럼에도 요즘 장르물을 중심으로 '총기'의 등장이 빈번해지고는 있다. 하지만 총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구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액션 장르에서 황야의 결투처럼 총기를 들고 끝장을 보는 서사에 대한 갈증, 그 갈증을 풀어내기 위해 <야차>는  '선양'이라는 지역적 장치를 선택했다. 

선양, 한때 만주족의 수도였던 도시,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가장 큰 공업 도시가 된 이곳을 영화는 동북아 각 나라 스파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로 설정한다.  번성한 도시답게 밤에 더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하지만 조금만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잘해줄게'를 연발하며 데려가 신장, 간, 쓸개 등을 해체해 버리는 '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이다. 또한 마약 등의 사건에 현장범은 그곳에서 '사살'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대낮에 북한로동당에서 외화벌이를 총괄하던 문병욱이란 인물을 두고 북한 스파이들과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총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여기에 지강인을 팀장으로 한 국정원도 연루되어 있다. 애초에 블랙 팀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한 문병욱, 하지만 그 사건으로 문병욱의 행방은 오리무중, 지강인은 그를 되찾기 위해 D7라 불리는 일본인 스파이 오자와(이케우치 히로유키 분)의 아지트를 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게 문병욱이라는 인물 찾기라는 사건을 씨줄로 선양을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살벌한 쟁투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걸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를 묻다 
정의에 대한 질문, 그 시작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강직한 검사 한동훈이 등장한다.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공정은 더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진 한동훈 검사는 재벌 총수를 구속시키려 하지만 절차 상의 문제로 인해 스스로 물러선다. 수사관들이 무단으로 총수의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그 이유만으로 다된 밥에 스스로 코를 빠뜨리는 고지식함, 이렇게 영화는 한동훈이 내세운 원칙적인 정의의 한계를 먼저 내보인다. 

한동훈은 좌천되고 다시 돌아가 수사를 마무리하고 싶은 그의 열망이 스스로 선양이라는 도시로를 택하게 만든다. 그저 선양 국정원 팀의 불투명한 보고를 감찰하면 된다는 명목이었는데 도착한 그를 맞이한 건 블랙 팀의 총격전이다. 

영화는 날 것의 액션씬에 더해, 지강인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의와 한동훈의 원칙적 정의를 대비시키며 서사적 흥미를 자아낸다.  적에 대해 가차없는 작전, 거기에 더해 배신자에 대해서도 추호의 용서도 없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의문의 여성에게 고문을 마다하지 않는 방식이 사사건건 한동훈으로 하여금 반발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첫 장면, 지강인이 같은 팀원이었던 인물을 '처단'하게 만들었던 '두더지'라는 암약하는 이중 스파이의 존재가 그 갈등의 고뇌를 깊게 만든다.

물과 불처럼 결코 섞일 수 없을 것같은 지강인과 한동훈, 그리고 블랙팀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한동훈에 대해 반발하는 블랙팀원들과의 신념과 인간적인 갈등을 영화는 주된 관전 포인트로 삼는다. <오징어 게임>에서 멀쩡한 대기업 직원에서 결국 자신의 승리를 위해 '협잡꾼'이 되어버린 상우였던 박해수가 이번에는 그 반대로 고지식하고 원칙적이어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고지식해서 종종 웃픈 상황을 자아내는, 하지만 그래서 지강인이란 인물과 '버디(BUDDY)'가 되어가는 캐릭터를 맡아 극중 주된 재미를 이끌어 낸다.

 

 

<야차>는 어떤 면에서는 '정의를 이루어 내는 모든 방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며 절차적 정의에 천착했던 , 순수했던 인물 한동훈이 '선양'이라는 공간에서 '정의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며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는 블랙팀의 작전을 통해 스스로 '정의'에 대해 물으며 변화해 가는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그 성장의 결과물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통쾌하게 선사된다. 

물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동훈의 맞은 편에 배신을 하는 이는 가차없이 처단해 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 밑바당에 팀원들이 목숨을 내어줄 정도의 '의리'를 장착한 지강인이란 중심이 우뚝 서있어야 한다. 설경구란 배우가 오래도록 우리 영화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기점으로 다른 질감과 색채를 가진 배우로 새롭게 다가왔다. <야차>에서 설경구는 <불한당>이래 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질감의 연기, 그 연장선상에서 '니 껍데기를 벗겨줄게'란 대사에 전혀 이물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야차'같은 캐릭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낸다. 

제작진이 해보고 싶었다는 총성이 마구 울리며, 거침없이 상대방의 머리를 겨누는 선양이라는 스파이들이 번성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한 액션, 거기에 '정의'의 방식을 둘러싼 주연들의 갈등과 화해라는 서사적 재미를 통해 <야차>는 흥미로운 장르물이 된다. 물론, 눈밝은 관객이라면 예측 가능한 악역들, 굳이 <야차>만이 아니라 액션 장르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보여주기 식 선악의 대결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도시에서 한동훈을 소환하는 지강인의 호출에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4. 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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