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개과천선>이 종영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상반기 드라마 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장르물'의 약진도 함께 마무리 된 듯하다. sbs는 5월 1일 <쓰리데이즈> 종영 이후 형사물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방영중이지만, 형사물의 외피를 쓴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경우는 장르물이기 보다는, 신참 형사들의 성장기와, 늘 그렇듯이 경찰서에서 연애하기에 촛점이 맞춰진 양상이다. kbs2의 월화 드라마<빅맨>의 후속극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트로트의 연인>이고, 수목 드라마<빅맨>의 후속 <조선 총잡이>는 개화기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기반해 있긴 하지만, <공주의 남자>와 비슷한 무협복수극에 가깝다. mbc <개과천선>의 후속은 <운명처럼 널 사랑해>, tvn<갑동이>의 후속은 <연애말고 결혼>처럼 로맨스물로, 마치 그간 장르물로 찌푸려진 미간을 달달한 사랑이야기로 달래주겠다는 듯이 약속이나 한 듯 익숙한 사랑 이야기들이 포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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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로만 설명할 수 없는 성취
되돌아 보면 동시간대에 서로 시청률 경쟁까지 벌이며 장르물이 시청률 파이를 나눠가지던 2014년 상반기와 같은 때가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장르물에 목말라 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고, 반면, 겹치는 장르의 드라마가 동시에 반영되는 바람에, 갈리게 된 시청층은, 안그래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던 장르물의 시청률을 깍아먹어, 장르물 자체의 대중성을 폄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표절도 불사하고, 개연성 따위는 제껴둔 채,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여, 한류붐에 편승하여, 막장의 전개조차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나라 드라마 계에서, 2014년 상반기의 궤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공공 자산으로서의 방송의 책임을 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장르물의 첫 포문은 3월 5일 <쓰리데이즈>가 열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신경수 피디, <추적자>의 손현주, 그리고 20대의 대표적 배우인 박유천의 조합만으로도 관심을 이끌었던 <쓰리데이즈>는 걸고 넘어진 것은 도발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재벌 기업의 컨설턴트라는 과거를 가진 대통령(손현주 분)은, 과거 자신이 공모자가 되었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인한 양진리 양민 학살의 진실을 한태경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면서, 진실을 알리고자 나선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당장의 먹고 사는 나라 경제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대통령은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라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나라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써의 진실된 본문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을 둘러싼 집단과, 직책에 따른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실장임에도, 양진리 학살 현장에서 동료들을 잃었던 함봉수(장현성 분)는 대통령의 저격에 나섰고,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자 최측근이던 신규진(윤제문 분) 그의 국가관에 따라 대통령에 맞서 김도진의(최원영 분) 편에 서지만, 결국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그렇게, <쓰리데이즈>는 이제는 그 단어 조차도 생경한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정의가 피상적인 글 속의 문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직업, 일의 문제라는 것을 제기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그저 밥을 벌어먹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쓰리데이즈>를 통해 돋보인 것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대통령의 강직한 모습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태경(한태경)을 비롯한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일개 경호관일 뿐이었던 '갑남을녀'들의 사명감넘치는 헌신이다. 

공교롭게도, <쓰리데이즈>가 드라마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에 대해 논하던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현실의 가장 절박한 문제 제기가 되었고, 드라마 이상의 공감을 자아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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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이 바라본 2014년의 대한민국
이렇게,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들은, 막연한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얼마 전, 혹은 바로 지금 맞부닦치는 현실의 사건들을 길어올린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회자되는 수많은 음모론들이, <쓰리데이즈>의 그것과 낯설지 않다. <빅맨>에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애꿏은 젊은이의 생명을 엿보는 재벌가의 실상은, 그들이 자신의 상권을 위해 시장 바닥에 목숨을 건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골든 크로스>의 상위 1% 가 벌이는 은행 합병과 침탈, 그리고 <개과천선>을 통해 그려진 부실 환율 상품 사태, 재벌 그룹 경영권 싸움, 해외 비자금을 이용한 부당 파산 선고 등은 우리가 이미 사회면을 통해 익숙해진 사건들의 복기였다. 

이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불러들인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땠을까? 그 이전의 장르물이나 사회물들이 드라마의 극적 모순 고리를, 억압적 사회, 국가 체제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2014년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은 부도덕한 자본의 자기 증식 과정에 짓밟힌 사회이다. 
즉 8,90년대 고도 성장기의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자본의 성장을 부추키는 억압적 체제의 국가, 즉, 국가 자본주의 형태였다면, 이제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조차도 자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 문제 의식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절대 악은 자본(쓰리데이즈의 김도진, 빅맨의 강동석)이거나,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상위 !%의 화이트 칼라군(개과천선 차영우, 골든 크로스 서동하)이다. 

이들 장르물과는 약간의 궤를 달리하며 <갑동이>는 십여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그를 흠모하는 현재의 카피캣을 '사이코 패스'로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천착했던 이 드라마의 사이코패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를 내뱉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과, '니가 감히 나를'를 되풀이 하는 <빅맨>의 강동석  등 여타 장르물의 악인들과 연결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수습을 먼저 고려하는 차영우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멸사봉공'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서동하의 성정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즉,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이는 '사이코패스'들은 엄밀히 뇌의 이상에서 비롯된 정신병리학적 증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기에 배태한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사회적 의식은 바로 이들 장르물의 악인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들은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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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삶
그래서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향을 취한다. <쓰리데이즈>의 이동휘나, <개과천선>의 김석주처럼, 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가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이 했던 과오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빅맨>의 김지혁,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 <갑동이>의 하무염처럼,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의 복수로 부터 행동의 동기를 가진다.
그렇게 자기 반성이나, '복수'에서 시작된 이들 주인공들의 소극적 동기는,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음모를 경험하며, 사회적 각성과 자각을 거치며 대승적 자아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려 했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지키는, 즉 진정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고,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강도윤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상위 1%로의 경제 커넥션 골든 크로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개 시장판 일용직에 불과했던 김지혁은 거대 기업의 오너가 되어 상생 경영의 새 장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피치 못하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거대 로펌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개과천선>은 바로 그 핵심에 서서 비자금을 관리하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상위 1%의 청와대 경호관을 등장시켰다. <골든 크로스> 역시 우리 나라를 주무르는 경제 커넥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사보와, 그 검사보가 변신한 외국계 펀드 매니저가 극을 이끈다. <빅맨>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시장 바닥 양아치같던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가 싶더니, 유통 그룹의 오너를 거쳐 에너지 계열사까지 거느린 회장이 되어야 했다. <갑동이>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형사가 맡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해결책은 이상적이다.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스스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의 최종 책임자인 재벌, 외국 자본에 대항하며,  책임을 지고 하야를 결정한다. <빅맨>과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에서 노동자들은 당당히 주인이 되어, 기업의 경영에 한 몫을 차지한다. 
물론 그런 이상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개과천선>의 마지막 여전히 거대 로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으며, 감옥을 나온, <골든 크로스>의 서동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하지만, 2014년의 장르물들은 한태경, 김지혁, 김석주, 강도윤, 하무염 등순수한 정의의 인물들을 고지식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우리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란 불굴의 진리로 귀결한다. 

때로는 키쓰신이 있기도 하고, 안타까운 밀땅도 있었지만, 대부분, 2014년의 핍박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이들 장르물은, 인기를 추구한 드라마들이 노린 웃음기와, 개인기와 사랑 놀음조차 마다한 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무뚝뚝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전 드라마들에 비해 낮은 시청률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퍽퍽했던 2014년의 상반기에, 이들 드라마들이 전해주었던 진실의 공감과 위로는, 그 어떤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설명할 길이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멀리했던 젊은 층조차, 새삼스레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쓰리데이즈>처럼, 뻔한 한류 드라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디, 하반기, 그리고 2015년에도, 현실의 고통을 '망각'이나, 환타지'가 아닌 진실로 위로하는 장르물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27. 18:34

애초에 기획되었던 18회를 미처 채우지 못한 채 16회로 <개과천선>이 마무리되었다. 16회, 조기 종영을 대놓고 드러내기라도 하듯, 드라마는, 허겁지겁 백두 그룹 사건을 마무리한 채, 어정쩡하게 끝난다. 마치, 시즌제를 거듭하는 미드가 다음 회를 기대할 떡밥을 던져놓고 한 시즌을 마무리하듯, 16회로 종영한 <개과천선>은 굳이 종영이라면 종영이다 싶지만, 다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따지고 보면 아쉬운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골든 타임> 때도 호청자들로 하여금 시즌2를 부르짖게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최희라 작가는, 애청자들의 입에서 저절로 시즌2가 아니고서야 하는 아쉬움의 단어를 내뱉게 만든다. 하지만, <골든 타임>때도 번번히 문제가 되었던 늦은 쪽대본의 문제가, 이번 <개과천선>에서도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조기 종영이라는 사태의 한 원인이 되고 보면, <개과천선>의 시즌2를 바라는 것은 이번에도 호청자들의 욕심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개과천선>이라는 제목답게 극중 주인공 김석주(김명민 분)은 완전히 개과천선을 하고 끝냈다. 16회 후반부, 차영우 로펌과 투기 자본 골드 리치 사이의 커넥션에 관련된 녹음 파일을 전달 받은 차영우(김상중 분)는 한 발 물러선다. 하지만 대신, 자신을 협박한 김석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오랜 갈등을 불러 일으켰던 어린 시절 김석주를 돌변하게 만든 인간에 대한 불신, 바로 그것을 건드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백두 그룹의 회장을 매수한다. 하지만, 김석주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 노조의 경영 참여에 대해 오리발을 내미는 회장에게 김석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비자금 문서를 들이민다. '개과천선'을 한 김석주는 더 이상 어린 시절, 아버지를 배신하고 어머니를 다치게 했던 노동자에게 상처를 받던 어린 소년이 아니다. 많이 단단해 졌다는 친구 박상태(오정세 분)의 칭찬에, 김석주는 사람이 다 저마다 다른 것이라고 덤덤하게 대꾸한다. 

<개과천선> 김명민, 아버지와 관계 완전 회복하며 해피엔딩 이미지-1


15회 차영우 로펌의 대표 차영우는 거대 로펌의 변호사가 하는 역할을 '법률적 변호'를 넘어선 '로비스트'라 정의한다. 돈이 흐르는 곳을 앞서 가서, 그 돈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주도적 역할의 직업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앞장서, 대기업의 세금 포탈을 비롯하여, 사생활 문제, 그리고 불법 투기 자본과의 커넥션까지 마다하지 않고 '설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김석주가, 자신을 공격했던 괴한들에 머리를 다치고, 사람이 달라졌다.
사실, 드라마적 개연성으로 따지자면, 사고로 인해 단기 기억 상실에 빠지고, 그로 인해, 과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개과천선'한다는 식의 이야기 구조는, 허술하다. 왜 하필, 그렇게 파렴치할 정도의 인간이었던 대한민국 상위 1%의 !% 변호사 김석주가, 단지 머리를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양심적으로 변해야 한단 말인가.

<개과천선>은 그렇게 이야기 구조의 허술함을, 드라마가 딛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길어올림으로써,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달리 보이게 만든다. 
오히려 황당무게한 듯한 김석주의 기억 상실을 통한 자기 반성이란 설정이, 사실 현실의 김석주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해프닝과 같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렇게, 김석주가 자기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개과천선>은 현재 거대 로펌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그저 가진 자들의 법률적 이해 관계에 복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가진 법률적 지식과, 그들이 끌어모은 인적 자원, 자금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한민국 부의 재창출에 간여하고 있는 모습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런 부의 재창출 과정이, 처음 현성 그룹 사건에서 부터 시작하여, 중소기업을 상대로한 불법적 환율 상품 매각, 그리고 투기 자본에 의한 백두 그룹 경영권 침탈까지, 불법적이며, 부도덕한 과정으로 일관되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재 '돈이 되는 곳이라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 아니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들의 것을'불법'과 편법을 마다하지 않고  '강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부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바로 그들이 '키코 사태', '동양 증권 사태' 등 신문 지상에서 마주쳤던 사건의 실상을 드라마를 통해 '복습'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드라마에서 고발하고 있는 우리 사회 실상을 다시 부도덕한 고위직 인사들을 통해 확인하면서, <개과천선>의 진가를 확인하고 감동한다. 차영우가 16회 실토하듯이, 돈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목적,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 '전관 예우'라는 명목으로 상식 이상의 돈을 벌었던 사람이 번연히 총리 후보직에 나서는 세상에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지향하는 ''고발'의 힘은 드라마적 감동이 된다. 

강직했던 아버지가 고난을 겪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다치자,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거두었던 김석주는 머리를 다치면서, 오랫동안 닫아왔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가 잊었던 '인간에의 연민'을 회복한다. 그저 돈을 좀 더 많이 벌거나, 재판에 이기는 승패의 세계에 있던 그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누군가에겐 전 생애가 걸린, 혹은 목숨이 달린 절체 절명의 일일수도 있음을 깨닫고 회한에 젖는다. 

오늘 종영! <개과천선> '정의' 김명민 VS '힘' 김상중, 마지막 대결은? 이미지-1

하지만, 그건  '천재일우의 기회로 '개과천선'한 김석주의 경우일 뿐이다. 마지막까지 노회한 눈빛을 늦추지 않은 차영우도, 승부사의 욕망으로 기꺼이 또 하나의 김석주가 되어가는 전지원(진이한 분)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오늘날 거대 로펌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개과천선>의 16회는 종전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싸움의 서막과도 같다. 그래서 이제야 비로소, 한국 사회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차영우 로펌과, 김석주로 대변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의 연민을 잃지 않는 한 줌의 양심적 변호사 그룹의 싸움이 시작될 거 같은 16회의 엔딩이다. 아직 채 시작되지도 않은 우리 사회의 '법률적' 전쟁을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by meditator 2014. 6. 27. 08:10

프랑스의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는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도발적 언급을 한다. 즉, 전폭기 조종석에 딸린 스크린을 통해 일종의 전자 오락 형태로 제시된 전쟁 상황은, 고전적 전쟁의 참혹함을 간단히 증발시켜 버린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렇게, 현대의 고도화된 사회적 문화적 기제들은, 그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거세시켜버린 채 문서 상의 문구나, 혹은 기계의 장치로 대체시켜 버린다. 그래서 모든 현실은, 그저 편리한 절차나, 과정, 프로그램으로 상치되어, 그 속에서 '인간'은 증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다시 역설적으로, 그 어떤 무기도 장착하지 않은 사무실 안의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다루고, 숫자 놀음을 하는  '화이트 칼라'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원 권력자가 되어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알츠하이머를 앓은 김석주의 아버지(최일화 분)는 눈 앞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아들을 닮은 듯한 김석주(김명민 분)에게 속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영민하여 오만해 질까, 남들이 다 칭찬만 하는 아들에게 지레 더 엄격해야만 했던 아버지, 하지만, 그 아들에게 법원 건물의 재료가 되는 돌 석자를 이름에 넣어, 돌로 지어진 건물처럼 오래도록 강건하게 살아갈 인물이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진심을 알고, 김석주는 오열한다. 아버지 앞에서 당당하게 서로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말했던 자신의 오만을 절절하게 깨달으면서. '엘리트'의 눈을 잃고, '인간'의 눈을 회복한 김석주는, 그간 자신이 변호했던 여러 사건의 피해자들을 목도하면서, 자신의 다른 생각이 가지는 엄청난 파급 효과, 그 오만의 실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마치 전투기 조종석에서 게임을 하던 전투기 조종사가 폐허가 된 전쟁터에 던져지듯, 김석주는 자신이 투하한 변호의 피폐함을 마음의 눈으로목도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다. 

(사진; OSEN)

12회에 이르기까지,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을 통해 변호사로서 부도덕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되었던 김석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차영우 로펌을 사직한다. 거대 기업들의 비자금을 주무르던 변호사 김석주의 사직으로 그의 주 고객들이었던 그룹, 은행들은 당황한다. 하지만, 차영우는 그런 클라이언트들을 진정시키며, 여전히 차영우 펌이 고객들의 의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김석주의 다음 카드를 준비시킨다. 

김석주의 다음 카드, 즉 포스트 김석주로 선택된 것은, 서울지법 판사 전지원(진이한 분)이다. 지검장보다는 학계에 뜻을 두었다는 전지원을, 선배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고자 한다. 전지원 만이 아니다. 차영우는 전투기 조종사가 게임을 하듯, 법원의 조직도를 놓고, 이리저리 인사권을 재단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안다.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 속 차영우 펌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변호사 집단이, 그간 드라마 속 기업들이 실제 기업들을 상징하듯, 실제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로펌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차영우가 쥐락펴락하는 법원의 인사들이, 그가 입막음하는 관료들이, 그가 무자비하게 댓가를 치루게 하는 중소기업가들이 다 우리 사회의 실존인물이요, 실재의 사건들이라는 것을. 아마도 우리 사회의 사회 경제면을 차지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차영우같은 사람들의 온기 한 점 없는 목소리로 농락당했음을 <개과천선>은 설명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차영우도, 전지원도 게임을 하듯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기 조종사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좌지우지하는 인사가, 돈으로 매수하는 인물 들이 벌이는 사건의 속내에 관심이 없다. 차영우가 전지원이 자신의 로펌을 올 가능성에, 그의 승부사 기질을 들듯이, 그저 그들은, 게임을 하듯, 자신들이 개입한 사건에서 이기고, 그 성취의 댓가로 많은 돈을 벌면 그뿐이다.

그들의 논리는 엄정하고 화려하다. 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김석주와 만난 전지원, 소송 대리인으로 나선 김석주가 재판부에 호소하는 것은 과도한 이자로 인해 부도 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형편이다. 그런 김석주의 호소에 맞대응하는 전지원의 논리는 약속 이행이라는 지극히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이다. 당신이 계약을 했으니 약속을 지키라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사진; TV리포트)

그들은 종잇장을 통해 익힌 엄정한 원칙, 이론 들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리고 그 이론의 관철을 위해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한다. 양심적인 판사인 듯했던 전지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기기 위한 승부수를 마련하기 위해 선배 판사들을 움직인다. 자신들이 책을 통해 배운 형이상학적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승부를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화이트 칼라들의 지식과, 힘이 무기가 되어, 누군가의 편을 들고, 그들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짓밟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안 원칙을 실천할 뿐이라 여긴다. 바다에 퍼진 석유에 검게 찌든 물고기를 들고 몰려와 항의를 해도, 항의를 하다하다 건물에서 몸을 던져도, 그것은 그저, 해결해야 할 부수적 사건 사고에 불과하다. 한 나라의 국부가 해외에 넘어가도, 기업이 수많은 피해자를 내며 자기 이익만 챙겨도, 은행이 부조리한 계약으로 억울한 손해를 입혀도, '종이'로 부터 비롯된 논리와 원칙에 따라, 그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사실 법원 인사를 농락하는, 중소기업 대표의 세무 조사를 지시하는  차영우의 눈빛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진압하는 독재자의 그것과 다름없지만, 세련된 로펌 속 그의 말투는 지극히 온화하고 사무적이며 냉정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거세된 로펌 속 이겨야 할 사건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차영우의 권력이 더 소름끼치게 무섭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차가운 권력의 무자비함이란 상상 그 이상일 테니까. 천하의 망나니같던 김석주는 어쩌면 새발의 피일 뿐, 진짜 실세는 바로 차영우로 대표되는 공고한 법적 권위와 재량과 능력을 가진 저들이다. 아득함마저 느껴지는 13회이다. 그 예전 6.25 때 B29의 공습 앞에 무기력했던 피난민의 마음이 이랬을까.


by meditator 2014. 6. 19. 10:21

2014년에 들어서면서 <쓰리데이즈>, <신의 선물>을 시작으로, <골든 크로스>, <개과천선>, <빅맨> 그리고 케이블의 <갑동이>, <신의 퀴즈 4>까지 다양한 장르물의 드라마들이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장르물이라는 특성상 시청률면에는 대중성을 타 장르 드라마만큼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뉴스에서도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사회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젊은 층에게는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화제성을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위의 드라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장르물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남자들이다. 그것도, <빅맨>의 김지혁을 예외로 하고, 대부분, 청와대 경호관, 전직 형사나 형사 혹은 검시관, 검사시보, 변호사 등의 전문직 남성들이다. 이들은 자기 가족, 혹은 자신이 하고 일의 과정에서 조우한 사회의 부도덕한 면에 맞서 진실을 수호하는 의지의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 드라마에는 모두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경찰관으로 쫓기는 경호관을 돕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피해자의 엄마가 되어 직접 유괴범을 쫓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여성 캐릭터들이, 올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장르물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들처럼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라고 하면, 드라마마다 형편의 차이가 느껴진다. 때로는 신선한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가하는가 하면, 여전히 수동적이며 보조적이며, 때로는 민폐에 가까운 '여성'으로서만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진; osen)

6월 13일 방영된 <갑동이> 17회는,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그 어떤 회차보다도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오마리아(김민정 분)와,마지울(김지원 분)이 그들 앞의 사이코패스로 인해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갑동이가 바로 수사반장 차도혁(정인기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마리아, 하지만 공소 시효 만료로 인해 더 이상 그를 벌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의붓 아버지 한상훈(강남길 분)이 희생을 하여 가까스로 갑동이 사건을 검찰 수사선상에 올려놓게 되는 과정에 무기력감을 느낀다. 더구나 48시간을 구금하고 심문을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갑동이라는 알게 된 상황에서도 너무나 태연자약한 차도혁에게 좌절감까지 절망감까지 느끼던 오마리아는 그런 자기 자신의 무기력감의 돌파구를 차도혁의 다중인격에서 찾으려 한다. 즉, 다중인격이라 갑동이가 아닌 차도혁은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정신적 분석으로, 그가 자신에게 여전히 뻔뻔하게 대하는 그 상황을 설명하고, 피해자인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울은 한 술 더 뜬다. 무려 여덟 명의 여성을 즐기듯 죽인 사이코패스 류태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명목하에, 류태오를 찾아든 마지울은 그가 가진 분노를 일깨우며, 그 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피해자로써 자신의 사건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싶어하는 오마리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와 벌]의 쏘냐처럼, 범죄자의 구제에 연연해 하는 마지울이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게, 그가 아니라, 그녀여야 하는가?

마지울은 그저 우연히 들른 커피숍에서 눈에 띤 류태오를 자신의 만화 속 범인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고, 그로 인해 그와 면식을 튼 사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17회를 오는 동안, 과연 마지울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며, 류태오와 빈번하게 접촉하는 상황에 개연성이 충분한가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류태오가 마지울을 자신을 구원해줄 여인으로 삼고 싶었다는 말 한 마디에 낚여, 죄책감을 느끼고, 이제 그의 인간성 회복에 앞장서는 마지울은 단면적이다. 그녀는 여전히 하무염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대뜸 연쇄 살인범 류태오를 따라 나서던 자기 중심적인 맹랑한 여고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류태오가 살해했던 여덟 명의 여자들은 마지울의 염두에 없다. 오로지, 자신을 바라보는 류태오와, 그에게 대단한 존재인 것 같은 자신만이 있다. 거기에, 모성성의 발로라 여겨지는 무한한 측은지심이라니!

오마리아는 한 술 더 뜬다. 갑동이를 잡기 위해 치료 감호소의 정신감정의가 되고, 류태오를 갑동이를 잡기 위한 제물로 쓰기 조차 마다치 않던 그녀가, 정작 갑동이 앞에서, 정신과 의사인 그녀의 직분을 망각한 채 흔들린다. 아니, 정신과 의사라는 그녀의 지식이, 그녀의 감정에 노예가 되어, 그녀의 눈을 막게 된다. 

17회에 이른 <갑동이>의 여성 캐릭터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눈 앞에 있는 상황에 대해, 이성보다는 '감성', 냉정한 판단, 보다는 충동적 감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르물에서 이렇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캐릭터의 몫은 대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개과천선>에서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이지윤(박민영 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의협심이 강한 법학 전문 대학원 출신의 로펌 인턴 사원이 된 이지윤은 늘 그녀의 정의감이 그녀를 앞선다. 대형 로펌의 인턴 사원이지만, 사사건건 대응은 감정적이기 일쑤고, 늘 사건을 앞에두고 그녀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건, 그녀의 감성이다. 결국, 청소년 범죄자를 두고 연민에 사로잡힌 그녀는 사건의 진실에  눈 감은 채, 그를 변호하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 자책한다. 물론 이런 사건은 변호사로서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장르 드라마에서 유독 여성 캐릭터에게는 이렇게 감정으로 인해 사건을 망가뜨리는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화제를 안고 시작했던 <신의 선물>에서 납치된 딸 샛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엄마 김수현(이보영 분)은 번번히 민폐적 상황을 만든다. 딸을 찾기 위한 맹목적인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앞뒤 안 가리고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고, 정작 그 상황을 해결해 주는 건, 남자 주인공이나, 주변 남자들의 몫이라, 욕을 먹게 되었다. 심지어, 그토록 사랑하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납치범을 찾겠다고, 정작 딸을 방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골든 크로스>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 서이레(이시영 분)와 아버지 기업을 망가뜨린 골든 크로스 멤버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골든 크로스 대표가 된 홍사라(한은정 분)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이 주로 하는 일은 사랑에 눈물 흘리고, 가슴아파하는 역할이다. 그녀들이 하는 일은 복수이거나, 정의 실현이지만, 사실 그 핵심은 '사랑'이다. 

즉, 2014년의 장르물은, 시스템을 갖춰 진 미드를 뺨칠 정도는 아니지만, 2014년의 한국 사회를 냉정하게 재단하는 사회 비평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그 드라마 속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정적이며, 전근대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꼭 여성을 섹스어필한 존재로만 쓰는 것이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오로지 감성이나, 모성, 혹은 연민이라는 특정한 감정적 기제로서만 여성을 소비하는 것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방식에 다름아니다. 

(사진; 뉴스엔)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웃음기 하나 없니, 사랑 타령도 없이, 건조하게 묵묵히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론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여성 캐릭터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었다. <쓰리데이즈> 속 여성들은 감정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사랑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경찰이면, 경찰, 청와대 경호관이면 경호관으로서의 사회적 삶에 충실하다.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위기에 빠져도 거의 누가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빠져나온다. 온 몸이 묶인 채 갇힌 이차영(소이현 분)은 스스로 악을 쓰며 묶인 것을 풀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중회전을 하며 차에 치일 뻔하고서도, 동료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에게 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 뿐이며, 내가 나의 일을 하듯,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 윤보원 순경(박하선 분)은 한 술 더 뜬다. emp 탄을 맞고,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끄덕없고, 남자 세 명 정도는 거뜬히 쓰러뜨린다.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조력자로,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쓰리데이즈>의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얼마든지, 작가의 의지만 있다면 여성 캐릭터들도, 보다 진일보한 이성적인 인물로써 드라마 내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2014년의 대부분의 장르물은, 여성을 '여성'으로 소비하고, 소모하는데 진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늘 여성들은 문제를 만들고, 헤매고, 흔들리며, 그녀를 그렇게 만든 남성들의 잿밥이 되거나, 그녀들을 잡아주고, 이끌어 주는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봉사한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회적 시선의 성취만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취가 아쉽다. 여성을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존재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조명해 주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4. 6. 14. 18:29

ebs에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자본주의> 5부작, 이 다큐는 자본주의는 빚이라고 정의 내린다. 즉 실물과 실물의 교환에서 시작된 거래는, 그것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물물교환대신 그 상징물인 '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경제는 실물이 아닌, 허상의 세계의 '운명적인 장난'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운명적인 장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은행, 그 은행이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고도화된 형태인 금융자본주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이상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의 구분이란 의미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 마라찌는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통해 이제 금융 경제는 실물 경제에 기생하거나, 비생산적인 위치를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그 순간부터, 금융은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거대 산업까지 신용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금융 시장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움직인다는데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그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시스템의 희생자는 언제나 약자라는 사실이 더 심각한 것이다. ebs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의자 놀이에 빗댄다. 노래하고 춤추며 의자를 빙빙 도는 동안, 함께 즐기는 듯 하지만, 노래가 멈춘 순간,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며, 그 탈락자는 대부분, 가진 것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사진; OSEN)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 매몰된 우리들이 자본주의라거나,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자각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개과천선>에서 보여지듯이 은행에서 적금보다 이윤이 높다하여 CP를 샀는데, 그게 종이쪼가리보다 못하게 되는 바람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희생자가 되어야,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1985년부터 거의 2년 주기로 금융 위기를 되풀이하며, 그 위기를 발판삼아 자신을 키워 온 금융 자본주의는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우리 경제를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가 몰랐거나, 무지했던 금융 위기의 민낯을 이제 드라마가 친절하게 '학습'시켜 주는 중이다. 

이제 마지막 2회만을 남김 <골든 크로스>, 강도윤(김강우 분)이 테리영이 되어 나타나는 동안, 대한민국 상위 1%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해왔던 골든크로스 멤버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이익으로 인해 자가분열 중이다. 한민 은행 재매각과 관련된 펀드 조성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김재갑 전 부총리(이호재 분), 서동하(정보석 분) 경제부총리 내정자, 마이클 장(엄기준 분)은 각자 자신이 새롭게 조성될 펀드의 주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말로는 금융 허브를 지향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자신이 불법적으로 돈을 끌어모아, 그것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도덕한 사건으로 사표를 냈던 서동하가 경제 부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있어 하는 것도, 바로 자신이 그 펀드의 주최자가 될 것이라는 야심이다. 

그에 앞서, 강도윤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이미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강도윤의 아버지같은 직원들을 무작정 해고해 가면서, 충분히 회생 가능성 있었던 한민 은행을 수치를 조작하면서 부실로 만들어 외국계 사모 펀드인 마이클 장의 손에 안겨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동하와, 김재갑 등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이렇게, 정,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은행 하나쯤은 거뜬히 들었다 놨다하면서, 거기에 속한 애먼 직원과 고객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골든 크로스>는 강도윤 가족의 비극사와 복수를 통해 착실히 설명한다. 

<개과천선>은 좀 더 전문적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법인 모처를 연상케 하는 ,차영우(김상중 분) 펌의 김석주(김명민 분) 변호사의 기억 상실과 그로 인한 개과 천선의 과정을 다룬, 이 드라마는, 기억을 잃은 김석주가 얽혀진 사건을 풀어나가며, 현재 대한민국을 난맥상으로 만든 금융 자본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김석주의 약혼자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 당한다. 그리고 김석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까지 당하는 과정에, 과거의 김석주가 설계자로서 개입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유정선을 돕기 위해 법원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설계에 따라 유림이 발행한 불법적인 CP를 사들이는 바람에 애꿏은 피해자가 된 수많은 시민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바로 얼마전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모 그룹의 사태다. CP를 샀던 애먼 시민들이 떼로 몰려들어 통곡을 하고, 그것을 정확히 모른 채 팔았던 담당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경제 사회면 기사를 통해 얻어 들었던 모 그룹의 사태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복습된다. 즉, 드라마 속 유림 기업은,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자기 기업의 부실을 막기 위해, 불법적으로 대량으로 CP를 팔았고, 그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신문 지상을 통해 망해버린 줄 알고 있는 이 기업이, 사실은 외국계 은행이라는 자금 도피처를 통해, 그리고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에 대한 순진한 사람들의 탄원서 등으로 인한 구제로 인해, 결국은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한 채, 모든 피해를 아무 것도 모른채, CP를 샀던 사람들에게 돌린 채, 자신들의 기업은 온전히 지켜내는 과정을, 김석주의 약혼자가 구속되는 유림 사건을 통해 알게 해준다. 즉, 신문이 보도해 준 기사 이면의 진실을 김석주가 과거의 김석주와 대면하고, 대결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개과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들었다 놨다 했던, 파생 금융 상품 사건에 대한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김석주 아버지에게 찾아온 중소기업 대표들의 억울한 사정을 끌고 들어온다. 즉, 중소기업들의 환투기 사건으로 시작된 이 사건이, 사실은 은행 측에서, 순진한 중소 기업을 상대로 한 환율 변동과 관련된 사기 사건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설명하는 중이다. 즉, 환율의 등락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은행의 말만 믿고, 결국은 자신들에게 절대 불린한 금융 파생 상품을, 자신들에게 유리해 보이던 환율이 낮은 시기에 샀다가, 결국은 환율이 오르면서, 중소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덕분에, <골든 크로스>이든, <개과천선>이든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현학적으로 등장하는 경제 관련 용어들과, 전문적 대사들에 다보고 난 후에도,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그간 신문 지상에서 조차, 다 알 수 없었던 경제 관련 사건들의 진실을 어렴풋하게나마라도 이해 할 수 있게 해준다. <개과천선>의 김석주 말대로 얼마나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순진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해준다. 
드라마로 공부하는 경제라, 뭐 그렇게 드라마에서 조차 골치 아프게 경제 어쩌고 해야 하게냐고 하지만, 드라마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멀쩡한 은행이 수치 조작 몇 개로 넘어가고 애먼 직원들과 돈을 맡긴 사람들만 희생이 되는 세상, 은행 말만 믿고 샀던 증권이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세상,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하려다가, 오히려 덤태기를 쓰는 세상에서, 오죽 갑갑했으면, 드라마까지 나서서 진실은 이렇다고 설명해 내고 있겠는가 말이다. 드라마라도 나서서 진실을 '학습'시켜줘야 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도, 개과천선한 김석주처럼, 진실을 알리고자 애쓰는 드라마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학습(물론 시청률의 장벽은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무료 동영상 강의가 어디 있겠는가. 


by meditator 2014. 6. 13. 10:22

5월 14일에 방영된 <개과천선>, 경찰서에서 우연히 혜령(김윤서 분)과 마주친 김석주(김명민 분), 혜령은 김석주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침을 뱉는다. 모욕을 당했다 생각한 김석주는 항의하려 하고, 그런 김석주를 이지윤(박민영 분)은 말린다. 도대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까지 겪느냐는 김석주의 말에, 이지윤은 정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냐고 반문하면서, 차영우(김상중 분)가 내가 알고 있는 당신보다 실제 당신이 20배나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당신은 지금 어렴풋이 알게되는 당신보다, 20배, 아니 그 이상 더 나쁜 놈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 이지윤의 말에 긴가민가 했지만, 시스타 호 서해 기름 유철 사건 와중에서 얼핏 떠오른 자신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린 김석주는 결국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만다. 결국 서해안 어민들의 생계를 빼앗은, 그리고 노인 한 분이 건물에서 떨어지도록 절망케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석주가 포기한 시스타 호 사건을 맡고 '로또'를 맞은 듯 기뻐하는 강팀장(이한위 분)처럼 그저 높은 수임료로만 측정되었던 사건의 이면에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이 숨겨져 있음을 병원에서 도운 환자의 보호자가 건네 준 음료수 한 병의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김석주는 비로소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독특한 시도를 한다. 우리가 흔히 밥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참치 통조림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각종 물류 과정을 거쳐, 참치 통조림으로 만들어 지는 과정을 샅샅이 훑어본다.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은 그런 알랭 드 보통의 시선을 따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마트에서 만난 고기들이 포장에 얌전히 쌓여, 그들이 도살되는 과정의 살육의 잔인함이 사라지듯, 많은 현대인들이, 원자화되어 책임지고 있는 일들 역시 그 일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책임과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밥벌이로만 전락해가고 있는 과정을. 숫자에 둘러싸인 회계 업무와, 기계 장치로 산적한 물류 과정에서 먹거리로서의 참치 통조림의 의미는 유실되고, 그저 숫자와 과학적 수치로만 계산될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부재는, '도대체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이다.


(사진; 스포츠 서울)


최유라 작가의 <개과천선> 역시 마찬가지다. 
개과천선이라는 선명한 결과를 제시하는 제목과 달리, 드라마는 촘촘히 김석주라는 이 시대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자신을 잃고 되찾아 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꼼꼼히 짚어간다. 

태진 전자 인수건을 둘러싼 과정에서, 변호사로서의 김석주가 가진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통해, 충분히 비도덕적일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더니, 이제 시스타 호 보상 사건을 통해, 그 비도덕적인 일의 범위가 그저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실제 삶을 빼앗고,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또'라는 표현처럼 높은 수임료, 그에 따른 명망이라는 변호사라는 직업적 능력이라는 배후에, 5년 동안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생존의 기반을 빼앗긴 어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김석주는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5회의 김석주는 그런 면에서 <쓰리데이즈>의 이동휘 대통령과 통한다.
이동휘 역시 팔콘이라는 기업의 컨설턴트로서 기업 이익의 극대화라는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양진리에 북한 잠수함 투입이라는 작전을 실행토록 한다. 또한, 이제 막 기업 회장이 되어 어떻게 하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있는 김도진에게, 남한 사회의 불안이 곧 기업에게는 노다지가 됨을 교육한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개입했던 양진리 사건이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애초에 기획된 양민 학살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석주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다치면서, 비로소 돈과 승소라는 업무적 효율성의 근거로만 보았던 사건들의 실체에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동휘가 그랬듯이, 김석주 역시 자신이 일이 가져온 무책임한 사회적 결과를 느끼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쓰리데이즈>의 김은희 작가와, <개과천선>의 최유라 작가가 공통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이 사회의 거대한 비리나, 부도덕의 폭로가 아니다. 결국, 귀결되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무감각한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닦뜨리고 있는 거대한 슬픔의 현장에서 우리가 낱낱이 목격하고 있는 무책임과 방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잊고 무디어져 가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두 작가는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라며, 우리 사회에서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일에서 사회적 채무를 다하고 있냐고 김석주와 이동휘를 통해 두 드라마들은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모든 일들이 고도로 체계화되면서, 개인들은 그 아래 원자화된 부속품으로 그저 각자의 일의 미시적인 분야에만 골똘하도록 편제되어 간다. 그러기에 더더욱, 각자가 자신의 일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길어내지 못한 채 그저 몇 푼의 돈이나, 직위로만 그 일의 의미를 치환하기 십상이기 쉽다. 그러기에 알랭 드 보통은 굳이 식탁 위의 참치 통조림을 거슬러 남태펴양의 참치 잡이 어선까지 갔을 것이다. <개과천선>의 김석주나, <쓰리데이즈>의 이동휘가 우리에게는 알랭 드 보통의 참치 통조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잊었거나, 무시했던 삶의 수단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by meditator 2014. 5. 15. 16:43

흔히 같은 방송국의 작품으로 20대의 젊은 남주와, 그와 호흡을 맞추는 중년 연기자의 조화로, <쓰리데이즈>의 후속작으로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견주어 논하고는 하지만, 오히려 작품 주제면에서 보자면, 직업적 사명감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점에서 진정한 <쓰리데이즈>의 후계자는 <개과천선>이라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쓰리데이즈>가 대통령에서 부터, 일개 경호관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위직에서, 그 고위직을 지키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까지의 직업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개과천선>은 우리 사회의 지배 계층을 이루고 있는 화이트 칼라의 직업적 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를 가져온 원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결정적인 것은, 바로 엄청난 월급을 챙기면서, 부실한 금융 자신에 투자를 유도하고, 그 이익만을 챙겨 먹은 금융 기관 등의 상위 화이트 칼라들의 부도덕을 빼놓을 없다. 이를 놓고, [문명의 대가]에서 제프리 삭스는 '미국의 경제 위기 뿌리에는 도덕적 위기가 존재한다'며, '정치와 경제 엘리트 층에서 시민적 미덕이 쇠퇴함으로써, 힘있는 자와 부자들이 사회 전체와 세계에 대해 정직하고 사려 깊고 동정적인 태도를 갖지 못한 채 사회가 시장, 법류, 선거만으로 이루어 진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멀리 미국을 예로 들 것도 없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임원과 직원 사이의 보수의 격차가 직원 월급이 160% 오르는 동안, 임원 월급은 240% 오르는 등,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사외 이사 등을 포한한 케이스고,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사내 임원의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상장 10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봉은 11억6천4백13만원 으로, 이들 연봉은 같은 회사 직원의 평균 임금(6729만원)의 17배, 전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보다는 32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임원들이 연봉만큼의 일을 해치울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의 성격들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보탬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일 것이다. 미국 금융 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금융 사태의 배경에 이들 상위 엘리트들의 비도덕과 비윤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우리나라 상위 엘리트의 도덕성의 부재를 <개과천선>은 기억력이 상실된 변호사를 통해 꼬집는다. 

<개과천선>만이 아니다. <골든 크로스>에서 절대악으로 포스를 내뿜는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  서동하(정보석 분)나, 그의 장인 법률 사무소 ''신명'의 고문 김재갑(이호재 분), 조력자 변호사 박희서(김규철 분)가 또 다른 김석주이다. 
(사진; 뉴스엔)

대기업 왕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할 정도로 유능한 변호사였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사고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변호사로서의 능력은 여전하지만, 김석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되찾은 그에게 닥친 것은 그가 벌려놓았던 태진 전자의 태진 건설 인수건이었다. 그의 말만 믿고 입찰 가격을 적어넣었던 태진 전자는 예상치 못한 탈락으로 그 책임을 김석주에게 떠넘기고 추궁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은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을 잃기전 자신이 과연 어떤 의도에서 이 일을 처리해 갔는지 알 수 없다. 그의 과거와, 자료들을 훑어 보면서, 김석주는, 바로 자기 자신 김석주가 어떤 의문이었는지 의문을 가진다. 또한, 그가 몸담고 있는 로펌과, 그 로펌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태에 대해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환자들의 부당한 의료 사건을 솔선수범 해결할 정도로 도덕성을 회복한 김석주는, 파렴치한 변호사로서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그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하던 일은 마무리 짓지만, 그 댓가로 화려한 아파트와 멋진 외제차를 모는 삶에 대해 낯설어 한다. 그런 김석주라는 사람의 기억력 상실을 매개로, <개과천선>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가진 도덕적 위치에 대해, 그리고 그를 통해 화이트 칼라들의 부도덕성을 꼬집는다. 

이미 <골든 타임>을 통해 의사의 직업적 윤리와 사명감에 대해 고찰했던 최유라 작가는 그런 내공을 바탕으로 거기에 착실한 조사를 덧대어  이번에는 변호사라는 또 다른 직업의 세계에 도전한다. 
현대건설을 둘러싼 현대 가의 쟁탈전을 연상케 하는 극중 태진 전자의 태진 건설 인수 사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황한 법적 용어와 경제적 논리가 등장함으로써 이미 의학적 용어를 정확히 몰라도 익숙한 의학 드라마의 상황으로 넘겨짚을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대강의 흐름은 알아도 낯선 용어와 사례들이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몰입을 용이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한 나라의 경제를 위기로 빠뜨릴 만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배 엘리트 층의 직업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만으로도 <개과천선>의 의의는 이미 충분하다. 부디 이 드라마도 <쓰리데이즈>만큼 처음의 그 의도대로, 자신의 주제 의식을 잘 밀고 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파헤치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로 남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5. 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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