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자 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는 최근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떨어진 완성도는 마블 코믹스와 경쟁에서 쫓긴 DC코믹스와 손잡은 워너브라더스 경영진의 조급함과 그에 따른 과도한 편집권 침해라 결론 내린다. <기사] 마고로비·설경구·빅뱅탑... 누가 더 억울하게 망가졌나> 하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DC코믹스발 영화가 덜 만들어진단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일진일퇴를 할 뿐, 이제 미국 영화 시장에서 '2차원 미디어'의 영상화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원더우먼, 아쿠아맨, 플래시 등 대기하고 있는 캐릭터에, 여성 아이언맨까지, 코믹스의 영화화는 앞으로도 미국 영화의 주류가 될 것이다.
미국에는 코믹스, 한국에는 웹툰
이렇게 미국 영화 시장의 콘텐츠 소스로서 '코믹스'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의 2차원 콘텐츠 소스로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건, '웹툰'이 대세다. 일찌기 <외인구단>을 비롯하여, <식객>까지 영화와 드라마의 콘텐츠 소스로서 각광을 받던 만화는, 이제 '웹'이라는 광활한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읽는 행위 영역'을 '독점'하고 있다. 일년에 책 한 권 안 읽은 사람은 많아도, 웹툰 한번 들여다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에 따라, 늘 '소재'의 갈증에 시달리는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 인기리의 웹툰은 더할 나위없는 '꺼리'가 된다. 윤태호 작가의 경우, <이끼>는 영화로, <미생>은 드라마로 만들어 졌으며, 심지어 그의 완결되지 않은 <내부자들>조차 영화화되어 2015년을 달구었다.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의 강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2015년 드라마화한 JTBC의 <송곳> 역시 최규석 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종의 장르가 결합된 <밤을 걷는 선비(MBC 2015)>나, <냄새를 보는 소녀(SBS, 2015)>역시 웹툰을 각색한 작품이고, 기발한 상상력의 <패션왕<2014 개봉)>이나, 색다른 소재의 <닥터 프로스(OCN, 2015)>가 가능했던 것도 역시 원작 웹툰이 있었기 때문이다.
2차원의 공간 속에 펼쳐진 상상력 '웹툰'은, 그 2차원이란 한계를 '상상력'이란 날개를 달아,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든다. '보는' 욕구를 적절히 만족시키며, '보는' 것 이상의 '상상'의 나래를 독자에게 달아준다. 그러기에 시각적 욕구가 과점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상상력의 덩어리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웹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 '자가 발전'을 한다. 웹툰을 드라마화하는 것을 넘어, 웹툰과 현실이 교차하고, 웹툰이 현실로 튀어 들어온다. 바로 MBC 수목 드라마 <W>다.
웹툰의 주인공과 사랑을?
공중파 수목드라마, 그것도 전통의 강호 이경희 작가가 줄곧 1위를 수성하고 있던 수목 드라마 대전에, 도전장을 내민 <W>는 방송 3회만에 <함부로 애틋하게>를 제쳤다.(전국 12.9%, 수도권 15%, 닐슨 코리아 기준) 김우빈, 수지 VS. 이종석, 한효주의 별들의 전쟁은, 싱겁게도 이종석, 한효주의 승리로 끝났다. 18일 8회를 방영한 <W>는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1위를 수성했다.(12.8%, 닐슨 코리아 기준)
스타급들 출연진의 별들의 전쟁보다, 이 수목 대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수적인 공중파 시청자들을 상대로, 누선을 자극하는 정통 멜로를 독특한 아이디어의 <W>가 압도했다는 점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그래도 외계인이라는 '존재'가 분명한 대상과 사랑에 빠졌다지만, <W>속 남자 주인공 강철(이종석 분)은 웹툰의 주인공에 불과하다. '실재'하지 않는 인물, 가상의 세계 속 인물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 오연주(한효주 분)라니!
이 '허무맹랑'한 러브 스토리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강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웹툰을 그린 것은 오연주의 아버지 오성무 작가이지만, 정작 드라마 속 강철이 위기에 빠지자, 웹툰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은 그의 딸 오연주이다. 오연주는 아버지 오성무 작가가 자신이 그린 강철을 '죽음'으로 내몰려고 하자, 솔선하여 그걸 말리는 존재다. 그런 오연주의 행동의 근거에는, 아버지 오성무 작가가 그린 캐릭터 강철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즉, <W>의 러브 스토리는 죽어가는 강철을 살리기 위해 웹툰 속으로 뛰어든 오연주의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사실 이미 그 사랑은, 그런 '사건'이 시작되기 이전에, 만화 독자로서의 '오연주'의 일방적인 강철에 대한 사랑으로 부터 비롯된다. 즉 자신이 보는 만화 캐릭터를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작가의 '전지전능'한 캐릭터의 생사여탈조차 막아내는 열성 팬의 도발, 이것이 강철과 오연주 사랑의 근저에 깔린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거기서 더 나아가, 강철의 마음에 반응하는 오연주의 현실과 만화 사이의 공간 이동의 원인이 알고보니, 강철의 탄생자가 아버지 오성무가 아니라, 오연주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얹는다. 학창 시절 본 사격 시합의 여운을 캐릭터화시킨 오연주의 상상력, 거기서부터 강철과 오연주의 사랑은 시작된 것이다.
일찌기 <캔디>의 남자 테리우스와 안쏘니를 둔 '사랑과 전재'으로부터 시작하여, 만화 속 남자 캐릭터를 사랑하는 전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해프닝, '덕질'의 역사가, 현실의 드라마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드라마의 전개는 아직 작가의 의도가 다 드러나지 않은 것인지 종종 맥락이 분명치 않다. 그토록 '복수'에 매달렸던 강철이 오연주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목표를 '사랑'으로 변환한 채, 질주하는 것도 머쓱하다. 마음의 변화가 '공간 이동'의 전제라는 건 공감하면서도, 어쩐지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종종 석연찮은 맥락조차도, 오연주의 캐릭터 강철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면 다 용서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오연주의 '덕심' 가득한 사랑에 대한 공감이 드라마 <W>에 대한 시청자 호응의 전제가 되기도 한다. 만화 캐릭터를 사랑하는 여자가 공감되는 시대다.
웹툰 속 상상력에 대한 공감
거기에, 오성무 작가가 그렸지만, 작가의 권역을 뛰어넘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강철, 그리고 그의 세계에 대한 공감 역시 드라마 <W>가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작가의 의지를 뛰어넘는 만화 주인공, 그리고 그의 세계. 17일 8회에서 사라지려했던 친구 윤소희(정유진 분)를 달랜 강철은 오연주에게 말한다. '우리도 인간이니까', <W>에서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슬픈 장면은 자신이 만화 캐릭터임을 강철이 느낀 그 순간부터이다. 그토록 복수에 매진해 왔지만, 그것이 결국 '설정값'이었단 사실 앞에 좌절하는 강철, 그리고 이제 자신이 그녀를 택하지 않자, 사라지려한 여자 친구 앞에 슬퍼하는 강철, 그리고 그의 세계, 그런 외계와는 또 다른 2차원의 공간 속에 갇혀있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드라마 <W>의 또 다른 자산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에 대해 수긍하는 대중이 바로 드라마 <W>를, 강철이 자신이 갇혀있던 웹툰의 세계를 뛰쳐 나오고, 그래서 작가의 의지를 뛰어넘어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고, 이제 그와 그의 가족을 헤치도록 '설정'된 디멘터조차 뛰쳐 나오는 설정들을 '개연성'을 넘어 받아들이게 한다. 어느덧, 웹툰을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그 웹툰의 주인공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의 세계가 '실존'한다는 상상력이 공중파 드라마에서 수긍되는 세상, 바로 '웹툰'의 시대의 또 다른 증명이다. 웹툰 속 상상의 존재와의 사랑이 불치병을 이기고, 현실 비판을 넘겨버리는 시대, 2016년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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