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남성 잡지의 표지에 테이프로 발목이 묶인 여자를 차에 실은 남자를 싣는 나라

*여성에 대한 혐오와 심지어 강간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소라넷 등이 버젓이 인터넷 공간에서 활개치는 나라

*십오년이 넘게 대학교에서 '성의 이해'라는 강의의 명목으로 남성 중심의 성적 편견을 강의하는 나라

*지난 6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삼일에 한 명씩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나라, 그런데 그에 대한 대처는 '스토킹 처벌법'?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 하지만 남녀 성평등지수 115위, 인도, 네팔보다 뒤진 나라,  대한민국




자생적으로 패미니스트가 된 그녀들
과연 이런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까?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답적으로 쉽게 변화되지 않는 남성 중심 사회에, 저돌적으로 안티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12월 20일 <sbs스페셜-발칙한 그녀들>은 남성 중심사회에 전사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작은 말 그대로 발칙한 그녀들이다. 대놓고 '여성 납치'가 연상되는 표지를 실은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남성 잡지에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으나, 거부한 것으로 화제가 된 정두리 씨, 하지만 그녀의 남다른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늦은 밤 열리는 파티, 이름하야 '젖은 파티', 그곳에 프랑스 유학 중 잠시 귀국한 정두리씨가 하얀 천사의 복장을 하고 파티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잡지의 발간자이기도 하다. 이름하야, '젖은 잡지'.

그녀가 내세운 '젖은', 이라는 수식어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젖은' 잡지의 표지는 바로 그녀가 거부한 남성 잡지의 바로 그 여성 납치를 연상케 하는 그 장면을 패러디한 것으로, 소복을 입은 그녀가 남성으로 연상되는 대상의 간을 핥고 있는 모습이다. 즉 이렇게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비'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여성들의 입장에서 적극 해석하고자 한다. '젖은' 파티의 주역은 술 취해 흥청거리는 남자들이 없는 여성들이다. 

또 한 명의 패미니스트는 독일 유학 중 거침없이 섹스 토이샵을 드나드는 은하선이다. 섹스 토이의 사용 후기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녀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성 칼럼니스트로 시작하여, <이기적 섹스>의 저자로,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함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은하선의 오르가슴 투나잇'을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양지르 끌어내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발칙한 그녀들'의 마지막 주자는 2014년 7월 광화문 광장에서 웃통을 벗어제친 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친 송아영이다. 그녀가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가슴을 드러내는 '토플리스' 시위는 'FEMEN'이란 여성 인권 단체의 시위 방식이다. 

이렇게 도발적인 혹은 발칙해 보이는 그녀들과 함께,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괜찮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배우 박철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온화한 하지만 몹시 조심스러운 박철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래도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는 보통의 남성이고, 대한민국에는 자신과 같은 남성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발칙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냐고, 완곡하게 그녀들의 '발칙함'에 발을 걸고 넘어진다. 

하지만 그런 '완곡한' 하지만 정두리의 방식에 또 다른 '성의 상품화' 아니냐고 정곡을 찌르는 박철민의 생각에, 돌아온 대답은 '성의 상품화'가 왜 나쁘냐는 것이었다. 즉, 밤만 되면, 아니 밤이 되지 않아도 대한민국을 온통 휘감은 남성 중심의 성의 상품화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혹은 그녀들의 욕망이 대변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그 누구를 대상화시키지 않는 성을 상품화 하겠다는, 그녀들의 대답은 말 그대로 '발칙하다'


하지만, 다큐는 그런 '발칙함'의 선정성에서 한 걸음 더 들어선다. 어릴 적 호된 시집 살이를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때린 척 하는 아버지를 보며, 남성의 폭력성에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정두리씨, 그리고 대학 시절 '광클'을 해야만 들을 수 있던 '성의 이해' 강의가 알고보니 여성 폄하 심지어 여성 혐오가 만연한 수업이었다는 걸, 그런데 자신을 제외한 다수의 학생들이 웃으며 그걸 듣고 있다는 사실에 더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는 은하선씨, 그리고 2014년 7월 이전 이미 여러 다른 방식으로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였지만, 세상의 외면을 받았었다는 송아영씨, 남성 중심의 세상이 막아선 벽에 그녀들은 '계란'이 되어 바위 치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다큐는 그녀들의 '패미니즘'의 시원을 밝힌다. 

그렇게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된 그녀들의 패미니즘은 정두리씨의 경우,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내세운 '잡지'와 '파티'와 같은 형식의 모임으로, 그리고 은하선씨의 경우에는 그렇다면 내가 써보는 여성 중심의 성 이야기로, 나아가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항이 아닌 여성의 욕구에 대한 적극적 발견으로, 그리고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FEMEN처럼 자신을 무기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발전'해 간 것 뿐인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의 절박한 고공 농성
평범한 남성의 입장을 내세우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성의 상품화나, 왜곡된 시각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박철민은 펼쳐놓은 정부의 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번연한 소라넷 등의 버젓한 활개와, 그에 반해 등장한 '매놀리아'의 페북 삭제 등의 편협한 현실에, 거리를 가득 메운 남성 중심의 성 상품화와, 그리고 크레인에 올라가듯 하다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내세운 것이라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평범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세계를 넘어 세상을 감싼 여전히 강고한 '남성 중심의 벽'과, 이젠 그 벽을 타고 무성하게 자란, '여성 혐오'의 줄기들, 그리고 그런 줄기들을 끊어 내기 위해 자신이 전사된 그녀들의 절박함이 이해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방송 마지막 생명이 위협을 느끼는 우크라이나의 성 산업을 반대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국제 FEMEN 회원들처럼, 여성 혐오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드러낸 보인 송아영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복싱을 배우듯, 그녀들의 현실은 위태롭다. 발칙함으로 시작된 그녀의 도발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외로운 고공 농성으로 마무리된다. 


by meditator 2015. 12. 2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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