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는다. 그에 맞추어 sbs스페셜은 교황 방한 특집으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방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이 여느 유명 인사의 특집과 다른 이유는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 때문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을 쓰는 사람이 특정 종교인이 아님을 밝혀둔다)
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를까?
2013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세계의 유수 인물을 제치고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도안 교황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유독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차근차근 sbs스페셜은 밝혀간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남미 출신의 첫 교황이다. 천주교 사제들의 성추문 등 각종 사건이 교황청을 강타한 가운데 2013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처음으로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 난 이후,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첫 교황이 되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교황의 이름에 선정되지 않았던,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거리의 성자로서 맨발의 헐벗은 옷차림으로 그들과 함께 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교황인 자신의 이름으로 택했다. 또한 프란치스코란 이름에 걸맞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까지의 교황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며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당연히 교황이 되면 교황청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된 이후에도, 바티칸을 방문한 사제들의 숙소에 머물며, 교황이 타고 다니는 방탄차를 거부하고, 이동시에는 소형차를 고집한다.(이번 한국 방문때도 그의 차량은 1600cc급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교황의 행보는 그런 형식적인 면을 뛰어넘는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내려 종종 거리의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아이는 물론, 심지어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섬유종으로 온 얼굴이 뒤덮힌 사람들의 얼굴에 입맞추기를 즐겨한다.
또한 소리내어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이것을 방해하는 탐욕만이 목적인 돈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을 소리 높여 비난한다. 대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당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며, 이것을 위해 카톨릭이 거리로 나설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간 마피아들의 자금 세탁 창구가 되었던 바티칸 은행의 개혁을 실천한다.
이런 교황의 신념과 실천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학창 시절 오전에 공장을 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던 그는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깨우쳤다. 그에게 인간의 존엄성은 노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제가 된 이후, 거리에서 폐지를 줍던 까르또네르들이 조합을 만들어 정당한 사회적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마약에 찌든 거리의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입을 맞추어, 그들을 거듭나게 하는데 앞장섰다. 물론 그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사제로 재직할 당시 아르헨티나는 군사 독재 시절이었기에 보다 강력하게 거기에 저항하지 못한 호르헤 신부는, 당시 군사 독재에 침묵으로 협조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비난에 단 한번도 변명을 하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장서 저항하는 대신 음지에서 많은 핍박받는 아르헨티나인들을 구하는데 앞장 섰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행보에 반성이라도 하듯이, 거리의 피습 가능성에 대해 하늘의 뜻이라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소리높여, 가진 자들의 탐욕을 비판하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을 소리 높여 주장한다.
이렇게 대부분 보수적인 행보를 거듭했던 기존 교황들과 달리 사회개혁적 행보를 거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외 순방 역시 남다르다. 교황이 된 후 그가 처음 방문한 곳은, 많은 아프리카 인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밀항을 하다 풍랑에 희생되는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이었다. 그곳에서 난민 500명이 희생된 사건과 관련하여, '부끄러운 비극'이라며, 돈이 사람과 우리가 사는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방관하지 말자'며 교황 취임의 일성을 높였다. 또한, 2014년 5월 분쟁의 도시 팔레스타인 요르단 서안 지구를 방문하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 더구나 대부분 팔레스타인 방문이 이스라엘을 통과해야 하는 관례를 깨고, 헬기를 타고 직접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는, 상징적 행보를 보였다. 그렇기에,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교세의 확장에만 치중해 오던 한국 카톨릭 계에 교황의 방한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번 아시아 청년 대회를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전국 순례 길에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과 만나게 되어있다. 또한 광화문에서 구한말 천주교 입교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성인 추도식을 행한다. 윤지충 등 성인들은 그저 카톨릭 성인의 의미가 아니다. 당시 국가 권력에 대해 저항하다 희생된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카톨릭 성인들임을 카톨릭 쪽은 밝히고 있다.
리더는 누군가 될 수 있지만, 리더가 누군가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음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행보를 통해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교황의 방한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질 파급 효과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sbs스페셜은 단지 카톨릭의 지도자가 아니라, 무능한, 혹은 부당한 국가 권력의 행사에 신음하는 한국 사회에 방향을 제시해 줄수 있는 등대로, 교황의 방한을 기대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다양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타 종교에 대한 편협한 이해을 뛰어넘는 종교 개혁적 입장, 하지만, 그 중에서도, sbs스페셜이 주목한 것은 가난한 자, 핍밥받는 자를 향한 전투적이기까지한 교황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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