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보석, 하지만 미국의 봉새 조치가 60여년이 넘게 이어져온 쿠바가 혁명 55년을 맞이하고 있다.
봉쇄 조치 이전에 운행되던 클래식 자동차가 여전히 거리를 누비는 나라 쿠바, 하지만 2008년 라울 카스트로 집권 이후, 쿠바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개방화 정책이 조금씩 진행되면서, 쿠바에도 조금씩 자본주의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그나마 쿠바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던 소련의 해체 이후, 쿠바는 고난의 시기(perodo especial)를 견뎌오고 있다. 모두가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가난'이 50여년을 넘어가면서 하지만, 국민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봉쇄조치 이전 수입되었던 미국의 클래식카들이 여전히 거리를 누비지만 운행되는 시간만큼, 고장으로 멈춰서는 시간이 못지 않게 많아진 것처럼, 아니 겉모습은 클래식카이지만, 기실 그 모터는 도요타 것인 것처럼, 쿠바의 사회주의는 지쳐가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이후, 쿠바를 떠난 부자들의 집을 환수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언 준 지도 50여년이 지났다. 한 집에 열 다섯 세대가 사는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가난을 칭송하지만은 않는다.
이런 국가적 불안, 사회적 위기에 대응하여, 라울 카스트로는 서서히 개방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관광 산업의 활성화 등으로 외국의 문물을 접하면서 자본주의 문화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기 시작한 국민들, 그리고 개방화 정책에 따른 국민간 수입의 차별화,그에 따른 빈부 격차, 그리고 군, 관료들의 특권 체제, 개점 시간부터 붐비는 쇼핑몰, 메이저 리거 야구선수가 꿈인 아이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쿠바는 최후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혁명 55주년을 맞이하여 <sbs스페셜>은 쿠바인들에게 그 질문을 돌린다.
하지만, '배고픈 혁명'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불타버린 집을 고쳐주지 않는 정부를 원망하기도 하고, 정부비판적인 힙합 가사를 쓰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맞이한 이제는 국민의 70%가 혁명 이후 세대인 대다수의 쿠바인들은 지금의 쿠바를 긍정한다.
과연 배고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체제를 긍정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카메라가 찾아간 한 주택, 50여년 전 부유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주택을 정부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탓에 한 건물에 열 다섯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산다. 실제 쿠바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주택 공급 문제이고, 그에 대해 정부는 정책을 바꿔 교환 가능에서 최근 들어 매매 가능까지 정책을 유연하게 전환했다. 하지만, 평생 벌어서 집 한 채 얻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매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전셋값에 밀려 옮겨다니는 우리의 현실에서, 정부가 집을 고쳐주지 않는다 불평하는 쿠바의 주민은 불행한 걸까? 그럼에도 집 걱정은 안하니 행복한 것일까?
그들은 가난하다. 하지만, 세계 7위의 삶의 만족도에서 보여지듯이, 현재의 쿠바인들은 여전히 대다수 행복해 보인다.
쿠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은 정부가 책임진다. 먹거리의 기본이 되는 밀가루에서 닭고기 등까지 기본적인 먹거리를 정부가 공급을 해준다. 물론 한 달 중 약 열흘에 해당되는 분량이지만, 쿠바 사람들은 그렇게 정부가 공급해 주는 먹거리에, 무료로 공급되는 가스와 전기에, 그리고 집에, 가난한 쿠바인들은 이웃과 더불어 삶을 즐긴다.
물론 개방화 이후 새로 생긴 맛있는 식당의 음식은 국영 식당의 그 맛을 훨씬 뛰어넘지만, 정부가 제공해 주는 기본적 삶의 근거가, 그들의 낙천적 행복론의 원천이다.
먹거리와 집뿐만이 아니다. 쿠바는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뎌오면서도,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의 복지 제도 근간을 결코 허물지 않았다.
학생들은 누구나 의지가 있고, 재능이 있으면 배울 수 있다. 자국의 학생만이 아니다. 가난한 제 3세계의 학생에게도 그 문은 열려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의과 대학에서, 예체능까지,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모든 비용을 쿠바는 국가가 책임진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암이 걸려도, 심장 이식을 해야 해도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다 해준다. 수준 높은 양질의 치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 일은 없다. 가정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쿠바에서, 의사는, 우리나라처럼, 돈많이 버는 특권 직업이 아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는 박봉의 직업이다. 때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만두기도 하지만, 여전히 기꺼이 박봉을 감수하며, 무상 의료 제도를 지탱해 주는 대다수의 의사들이 존재한다. 혁명 55주년의 기념식에서 제일 선두에 선 것은 바로 이들 무상 의료를 책임지는 의료진들이다.
봉쇄 조치 이후 더 이상 외국에서 농약 등을 수입할 수 없자, 무농약 등의 방식으로 자력 구제에 나선 쿠바 농업이 환경 오염이 문제가 되는 농업 위기에 대안으로 떠오르듯이, 저성장의 시대,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위기의 현재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쿠바가 삶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혁명가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대답하는 젊은이가 있는 쿠바, 쿠바식의 사회주의적 실험은 55주년이 되는 현재,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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