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밤 10시부터 방영되는 <kbs파노라마>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자본론]을 다루고 있다.

 

칼 맑스가 [자본론]을 통해 19세기의 자본주의를 정의내렸듯이,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의 자본주의를 새롭게 정의내리고자 한다.

영어로 695페이지, 우리 말로는 820페이지에 이르는 피케티의 책은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을 2014년 4월 하버드 대학 출판부가 출간하자마자, 전세계 각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심지어 책은 과거 200년 동안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부의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세무 통계를 기초로 하여 그 추이를 수치화한 책으로, 수많은 그래프와 통계적 내용들로 가득찬 전문 경제 서적이다. 하지만, 2011년 월가 시위에서도 보여지듯이 전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각 국민의 소득 불균형을 정확하게 수치화한 피케티의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바이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kbs 파노라마>는 지난 9월 한국어판 발행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피케티를 밀착 취재하면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의 내용을 되짚어 간다. 그저 책의 내용을 되짚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걸맞는 각종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지금 한국에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고자 노력한다.

 

피케티는 그의 책 [21세기 자본론]에서,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20세기에서 21세기 초까지 상위 1%의 소득 계층이 차지하는 소득 비율을 추적한다. 2007년을 기준으로 상위 1%는  23.5나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해의 차지하는 비율이 아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노동 계층의 실질 임금율은 물가 상승률에 비해 감소되었다는 결론이 나올 만큼 전체 소득 비율 중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반면, 자본 소득의 비중은 늘어났다는 것이다.  회사는 커져도 노동자들의 삶은 위축되고, 노동 생산성에 미치지 못한 실질 임금의 감소는 기업이 잘 되도 가계에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의 삶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단언한다. 새로운 세습 사회가 등장하고 있다고. 노동 소득 비율이 증가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세습된 부의 존재가 중요하고, 심지어 노동을 하는 것보다, 부를 물려 받는 것이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kbs파노라마>는 이런 피케티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마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주부를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근속'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 온 그녀, 하지만, 그녀의 월급은 동결되었거나, 일년에 50원을 오르는 정도라, 10년 전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금액을 받고 있다. 그러니 결국 실질임금은 감소하고, 10년 동안, 맘 편히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한 채 일에 매달린 그녀는 여전히 마이너스인 삶에 시달린다. 피케티의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열풍의 근저에는 바로 이런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현실 인식이 존재함을 다큐는 보여준다.

 

이런 불평등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피케티가 제시한 통계 자료에서 이른바 피케티 지수라고 하는 국민 소득대 자본 소득의 비율을 의미하는 베타지수가 제시된다. 베티 지수의 증가는 곧 불평등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인데, 1950년대 이후 베타 지수가 증가 일로에 있고, 앞으로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 피케티는 주장한다. 즉, 존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일을 해서 버는 속도보다 빠르기에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어 왔으며 그 부는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오늘날의 교육이 부모의 계급을 강화시켜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버드에 다니는 대학생들 학부모의 소득을 조사해 보니, 미국 상위 2%의 소득과 동일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국가에서 마찬가지였다. 저성장, 저출산이 심화된 사회에서, 신분 세습, 즉 부의 세습은 사회의 출발선에 선 젊은 층에게 중요한 부의 결정 요인이 되고 있다.

 

카메라는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온다. 하루 종일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대학생,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힘들어 뒤뚱뒤뚱거리며 걷는 그녀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 그녀를 짖누르는 것은 그녀는 본 적도 없는 1000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 빚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장미빛 미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비 조달에 따른 정규직 지원 현황은 피케티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부모에게 학비를 조달받은 학생들이 더 많이 정규직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부모의 계급을 강화시켜주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듯이 사회는 이런 심화된 불평등을 간과한 채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성장만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런 성장 도그마가 허상이라는 것을 피케티는 그의 통계를 통해 논박한다.

미국의 지난 역사에서, 자본 소득 비율이 높았던 즉 소득 불평등이 최대였던 1928년, 그리고 2007년 바로 다음 해 미국은 경제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빈곤한 가정이 많아지고, 그들이 빚을 지고, 그러면서 그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자본의 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용이해지지 않음으로써 사회 전체가 위기를 겪게 된다는 것을 피케티는 엄연한 통계를 통해 증명해 낸다.

즉, 레이건, 대처 등이 규제 완화를 시키고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시킨 시기 경제는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루스벨트 대통령 시기 미국은 상위 1%에게 소득세를 물리는 등 상위 1%의 소득비율은 감소했지만 경제는 황금기였다는 것을 통해 경제는 곧 정치이며,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해 피케티가 제시한 대안은 크게 글로벌 부유세, 교육 공공투자, 고소득자 누진과제 등 세 가지이다. 이 중에서, 피케티가 강조하는 것은 고소득자의 누진과세이다. 루스벨트가 상위 1%에게 82%의 누진세를 적용해도 자본주의가 파괴되지 않았음을, 아니 오히려 당시 경제 성장률이 80년대 이후보다 오히려 높았음을 들면서, 누진과세가 지금의 불평등을 해소할 좋은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tv파노라마>는 피케티의 주장을 넘어 실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한다. 미국 상위 1%에 속하는 닉 하나우어는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불평등이 심화되면 물건을 구매할 사람이 없어진다면서, 부자 증세 찬성론을 펼친다. 즉 소비자들이 돈을 더 많이 가져야 기업가들이 돈을 더 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본 요코하마 게임 업체는 기업의 이익을 한 달에 하루 주사위를 던져, 그 나온 비율만큼 직원의 월급에 추가로 지불함으로써 이익을 환원하고자 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로 알려진 일본의 작은 빵가게 와타나베 이타루는 가게 수익을 골고루 나눠주는 혁신적 경영 방식을 보여준다. 심지어 매출에 비례해 직원의 월급은 늘어나지만, 주인은 그대로 받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의 재분배가 정말 피케티가 말하는 바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올까?카메라는 미국의 최저임금 시위로 시선을 돌린다. 맥도날도 노동자들을 위시하여 미국의 노동자들은 오랜 시위 끝에 15달러라는 최저 임금의 상승을 얻어냈다. 시간당 그 금액의 인상은 큰 건 아니지만, 미국 전체 경제로 보면, 엄청난 금액이 되고, 이제 최저 임금이 상승된 노동자는, 자시만의 집 등 소비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보안관인 김진훈씨 2012년 5월 정규직이 되어 월급이 두 배가 된 그의 삶이 달라졌다. 비정규직으로 살던 당시에는 소비란 개념이 없이 먹고 살기에 급급하던 그가, 정규직이 되면서 자녀의 보험에서 부터, 보금자리까지 규모있는 소비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결국 소득이 소비를 낳는다는 것을 카메라는 발품을 팔아 증명해 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극명한 피케티의 획기적인 진단이 곧 현실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tv파노라마>는 보여준다. 여전히 현실은 불평등의 심화보다는 성장만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다. 피케티의 나라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상위 1%에 대한 소득세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프랑스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tv파노라마>의 마지막은 피케티의 질문을 맺는다. 피케티는 묻는다. 우리 사회가 정말 민주적일까? 21세기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은 어때야 할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우스개 소리가 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산 사람은 많아도 막상 그걸 완독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21세기 자본론]에 대한 해설서가 다시 나오는 등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갑론을박이 되고 있는 책이지만, 정작 800여 페이지가 넘는 그 책을 소화해 내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tv파노라마>는 피케티의 자본론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저 설명만이 아니다. 우리와, 일본의 각종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피케티가 주장하고 있는 각종 통계들이 얼마나 정확한 현실 진단인가를 확인해 준다. 뿐만 아니라, 미국 상휘 1% 기업가의 입을 통해, 그리고 우리나라 정규직 전환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피케티의 해결책이 그저 이상향이 아님을 부연 설명한다. 비록 한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쉽고, 설득력있는 21세기 자본론 독해였다.

by meditator 2014. 10. 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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