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잊으라고 합니다. 그래요, 잊어야 하지요. 잊어야 한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아직 그럴 수가 없어요. 전 그 아이의 부모이니까요.'
2014년 대한민국의 가족은 과연 행복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가족 모두가 행복해 지는 가족의 방향을 모색해보고, 새로운 가족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ebs 다큐 프라임은 11월 17일부터 9부작으로 <가족 쇼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1,2회로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1부 나는 부모입니다와, 2부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를 방영했다.
세월호 참사 217일 11월 18일 사고 수습을 담당했던 '범정부사고 대책본부'가 해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세월호 추모관 건립조차 불투명해 졌다. 차가운 광화문 광장 바닥에서 여전히 세월호 부모님들은 '진상 규명'을 외치며 시민들의 호응을 부탁한다. 광화문만이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들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고 다닌다. '특별법'이 통과된 이즈음 더 이상 무엇을 받아내려 하느냐며 이들 부모님들에 대한 시선이 따가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광화문 광장이 세월호 진상을 지켜가는 유일한 보루이며, 특별법이 진실되게 수행되고, 성역없는 진상이 밝혀질 수 있는 지키미가 되기에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조차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이즈음, 부모님들이 차가운 도시의 바닥을 쉬이 떠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다큐 프라임- 가족 쇼크>는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문을 떼면서, 제일 먼저, 가족을 잃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자식을 잃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 자체가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세월호 사건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님들은 어렵사리 인터뷰의 자리에 앉는다.
49제, 18살 아들의 영전에 마흔이 넘은 아버지가 절을 올린다. 이 말도 안되는 불효막심한 상황을 낳은 것은, 이 사회가 낳은 세월호 참사이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가 돼서 해줄 것이 없어서, 아빤데, 그래도 아빤데, 사건이 난 이래, 팽목항에서 기다리며 수습을 기다리고, 재판을 지켜보고,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라는 것 말고 해줄 것이 없는 아빠라서 무능력한 아빠라서 서럽다. 그래서 아빠는 아들의 옷을 입고, 아들의 신발을 신고, 아들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나선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번호를 줄줄이 왼다. 반 번호가 아니다. 주검이 수습된 번호다. 첫번째 주검을 수습한 아빠는, 아들을 데리러 간건데, 아들의 주검을 수습하러 간 게 아니었는데, 라며 말문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번호가 이른 부모님들은 그래도 수습된 아이들의 주검을 만져보기라도 하고, 뺨을 대보기라도 했단다. 하지만 어느 틈에, 팽목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은 먼저 주검을 수습한 부모님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100번대가 넘어간 부모님들은 가린 얼굴을 차마 보지 못했단다. 살이 흐트러질 까봐, 만져 보지도 못했단다. 그리고 아직, 그런 시신조차 만나지 못한 부모님들이 있다.
부모님들은 말한다. 다시 한번만 만져보고 싶다고, 안아보고 싶다고. 그저 그렇게 한번만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예전처럼 아이의 두툼한 볼을 꼬집고, 고춧가루낀 이빨을 놀려보고 싶다고, 자식과 나누는 평범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몇 달이 흐른 후 유류물처리반이 찾아 보내온 물에 젖은 아이의 가방 앞에 어머니는 물에 빠진 아이를 다시 본듯 목놓아 오열한다. 그리고, 바닷 기운을 빼기라도 한듯 빠득빠득 빨아 볕 좋은 곳에 말린다. 마치 바닷속에서 죽어간 아이에게서 바닷물의 음습한 기운을 빼기라도 하듯이.
남은 엄마는 아침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우리 아이만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게 힘들다고 한다. 생존한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날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은 너희라도 살아서 돌아와서 반갑다고 하면서도, 결국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내 아이만 이곳에 없다. 이렇게, 남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지 도무지 엄마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아이를 잃고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엄마도 있다.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가족을 위해 해외에서 돈을 벌던 아빠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 지 모르겠단다. 재판을 보기 위해 혈압약까지 챙겨 먹으며 걸음을 재촉했던 아버지는, 재판이 끝난 뒤 무기력한 자신에 담배를 피워문다.
아이의 누나는 학교도 휴학한 뒤, 아빠와 함께 전국을 돌며, 진상 규명 서명을 받기 위해 분주하다.
아이의 생일날, 엄마와 아빠는 단원고 아이들 100명이 잠든 하늘 공원을 찾는다. 아직 따스한 밤과 미역국, 생일 케잌, 하지만 생일 케잌에 촛불을 불 아이는 사진 속에 있다. 엄마는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생일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매일 아침 한겨레 신문에는 단원고 아이들의 얼굴이 박재동 화백의 스케치로 등장한다.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그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이들은 매일 아침, 말간 얼굴과, 착한 아들과 딸의 이야기로 우리들을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500명의 부모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다.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이들의 방, 때때로 들어가 빨지 않아 다행이라며 아이의 체취가 묻어있는 옷에 얼굴을 파묻는 부모들, 이것이, <ebs다큐 프라임-가족쇼크>가 제시한 대한민국 가족의 첫번 째 얼굴이다. 다큐는 말한다. 이것이 부모라고, 그리고 묻는다. 그렇게 이 상처난 가정을 잊고 싶은 당신의 가정은 얼마나 안녕하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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