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겁니다.'

이 말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여는 대사이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가장 리키는 조금 더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트럭을 사서 '택배 기사'를 지원한다. 그리고 그 면접에서 매니저는 리키에게 저 말을 한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한다. 이 그럴듯한 말이야말로 오늘날 '택배 기사'들의 존재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문구이다. 그들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법적으로 자영업자'인 택배 기사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복지와 생존권을 외주화하는 '긱이코노미'의 최전선에 놓인 그들은 코로나 19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살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인 그들의 생존권은 법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  

<포스트 코로나>5부 코로나 19 이후 세상은 평등해질까는 바로 이렇게 코로나 19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코로나 시대의 필수 노동, 택배 기사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2020년 10월 8일 택배기사로 일하던 김원종 씨는 배송을 하던 도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두었다. 작년 한 해에만 16명이 택배 기사들이 초장시간 노동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루 17~18시간의 살인적인 노동 현실이다.  고 김원종씨가 떠난 자리, 트럭 의자는 헤져있었고, 정리정돈할 시간도 없었던 듯 개인 소지품들이 나뒹군다. 닳아버린 신발을 덧대가며 일하던 고 김원종 씨, 이제 그 닳은 신발은 주인을 잃었다. 

7년 째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도균 씨의 생활도 위태롭다. 이른 새벽 출발한 김도균씨는 아침 7시부터 분류를 시작,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첫 배송에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삔 다리로 쉼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다른다. 병원이 바로 옆에 있어도 갈 시간이 없다.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 리키가 다친 몸으로 트럭을 몰고 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그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아프다고 쉴 만한 여력이 없다. 대신 배송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앉아서 편하게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쉬면 쉬는 만큼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평일 적다할 때 하루 200~300 개의 물량, 추석같은 명절이면 그게 500개까지 늘어난다. 게다가 코로나로 물량이 15% 증가했다. 매변 물량은 늘지만 단가는 낮아지고 있다. 400개가 넘으면 밤 11시간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다.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로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과로사를 하는 이가 자신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는 현실이다. 

택배, 배달업 등은 '필수 노동자군'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으로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사회가 그들에 의존하는 비중이 늘어나는데 비해 그들의 처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노동 시간 관리에 법적인 규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로사 방지를 위한 택배 관련법'이 제정중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심이 식으면 유야무야될 지도 모를 상황이다. 

 

 

배제된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 
위협받고 있는 건 택배 노동자만이 아니다. 29살의 이은혜 씨는 빛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다. 부천 장애인 일자리 사업으로 도서관에서 다른 장애인을 도우며 살아왔던 은혜 씨에게 코로나는 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외부 일정이 있는 경우 활동 보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은혜 씨,  팔을 잡아야 하는데 '접촉'이 불가피한 상황이 불안하다. 엘리베이터에는 항균 필름을 붙여 놓아 장갑을 끼고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 맨손으로 더듬어서 확인하는 상황 역시 불안을 가중시킨다. 코로나로 인한 방역이 외려 장애인들에게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늘어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는 보편적 장치가 되어가고 있는 QR 코드 역시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마스크를 나눠주던 시절, 마스크를 나눠주는 약국에서는 '마스크가 없습니다'를 종이에 써붙여 놓았다. 그래서 점자가 아니고서는 읽을 수 없었던 은혜씨는 마스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진행성 근이영양증의 정영만 씨는 코로나로 인해 병실이 없이 이동을 할 수 없었다. 신체 보조를 받아야 하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사회적 격리를 하던 아내가 방호보조복을 입고 정영만 씨를 보살폈다. 장애의 유형 별로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다르지만 갑작스럽게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한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장애인 개개인이 온전히 코로나로 인한 불편은 책임져야만 했다. 그렇게 장애인들은 코로나 방역에서 배제된 존재가 되었다. 전체 확진자 중 장애인 확진자는 4%였지만 사망자 중 장애인은 20%에 이르렀다. 비장애인에 비해 6배나 높은 수준이었다. 

취약 계층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온전히 개인적 고통으로 코로나 팬데믹에 노출되었다. 당장 식량이 부족했고, 여성들은 학대 가해자와 한 집에 머물러야 했다. 사회적 약점과 불평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 방역이 가시화되고 있는 이즈음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이 문제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국 인구 몇 배의 백신을 사들이고 있는 한편에서 최빈국들은 백신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백신 국가주의를 지양할 것을 호소했다. 전세계가 연결된 현재의 세계에서 세계적 협력 없이는 코로나는 종식될 수 없기에 가난한 나라에도 백신의 보편적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가 끝이 아니라고. 코로나는 우리 세계에 붙어있던 반창고를 떼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 반창고를 떼고 보니 깊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고.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 위기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예비 훈련장이 되기 위해서는 사각 지대에 놓인 노동자들과 배려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그리고 배제된 가난한 이들, 가난한 나라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1. 2. 5.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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