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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년 만에 자신의 앨범을 발매한 신해철이 <snl>을 방문했다. 공중파 <100분 토론>에 나가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했던 논객 신해철이었으니, 그런 그의 <snl> 방문은 기대가 될 수 밖에 없다.
늘 연예인들의 자기 디스에 충실한 ,<snl>인 만큼 신해철도 거기서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에 발매된 뮤직 비디오 컨셉을 가져온 오프닝에서부터 독한 팬 유세윤을 등장시킨 코너에 이르기까지, 대학 가요제에 나왔던 꽃소년 신해철이 지금의 '돼지'가 된 모습의 과정을 줄곧 '비아냥'거린다. 뮤직 비디오 컨셉을 흉내낸 <snl> 출연자들의 모습의 차이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해철의 모습으로 빗대면서, 급격하게 외모가 달라진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반문을 하다가, 스리슬쩍 '대마초' 이야기를 끼워넣고, 한때 그것으로 물의를 빚었던 신동엽이 더 당황하면서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는 식의 컨셉으로 일관한다.
이런 '디스'의 촛점은 세월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망가짐'이나 '몰락'에 있다.
이후에 유희열과의 토크 과정에서 스스로 해명하듯이 '병'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의 결과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런 신해철의 외모의 변화가 코너 중에서 은근슬쩍 나타나듯이 '대마초'와 관련된 퇴폐적인 행위와 매니저와 관련된 코너에서 보여지듯이 피씨방에서 30분만에 잔뜩 쌓아진 라면 등의 주전부리 빈 그릇에서 보여지듯이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처럼 묘사된다. 즉, 7월5일 <snl>의 일관된 논조는 아름다운 소년이었던 신해철은 마약과 잘못된 습관으로 그동안 망가져서 지금처럼 '돼지새끼'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 디스' 과정에 자신의 몸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일부분일 뿐이다. 한때 아이돌스타와도 같았던 젊은 가수가, 이제 중년의 가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런 변화를 세월에 흐름에 따른 변화, 혹은 그 개인의 피치못할 속사정이 아니라, 일관되게 젊음에 기준을 두고, 미디어가 요구하는 가녀린 몸매에 잣대를 맞춘 채 '디스'로 일관하는 게 자유로운 풍자를 지향하는 <snl>의 정신일까?
어쩌면 '마왕'으로 칭해지는 우리 시대의 상징성을 띤 가수 신해철을 데리고, 겨우 그의 외모만을 논할 수 있는 <snl>은 바로 지금 <snl>가진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회차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마왕'의 변신일까?
(사진; 텐아시아)
이후 신해철은 유희열과의 토크 과정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내뱉었던 독설에 대해 반성하는 듯한 소감을 밝힌다. 자신이 말했던 생각에는 변화가 없으나, 하지만 자신이 말했던 방식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꺼라는 조급함이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경직되게 했으며, 교육과 관련된 언급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런 연배가 되어야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 거 같다는 반성도 보인다. 늘 날이 잔뜩 벼려저 있는 것만 같던 '마왕'도 나이가 먹으며 세상을 돌아보며, 자신을 되짚어 보고,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snl>의 풍자가, 지난 시간 그가 했던 경솔했다던'독설'에 대한 풍자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다. 아니 조금은 아쉬운 게, 유희열과의 토크에서, 지난 시간 경솔했던 발언의 반성에만 촛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치않는 그의 생각 같은 것도 좀 밝혀 줬다면, 어땠을까? 마치 이제 앨범도 나오고, 순한 양이 되어 돌아온 방황하던 늑대가 아니라, 그저 나이든 뚱뚱한 아저씨가 아니라, 꽃미남이건, 중후한 몸집의 아저씨건 여전히 '마왕'인 신해철의 그 무엇이 드러난 한 회였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7월 5일의 <snl>만큼 신해철에게 '마왕'이란 칭호가 무색했던 시간이 있었을까?
이런 신해철 편에 대한 소회는, 어쩌면 신해철 편만의 소회가 아니라, 과연 매주 출연하는 게스트들이, <snl>의 출연, 거기서 수행되는 '자기 디스'와 '망가짐'을 통해, 그의 진솔한 모습 이상 그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라는 회의로 이어진다.
물론 여전히 <snl>에도 신랄한 풍자는 존재한다. 한 눈에 봐도 홍명보 대표팀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현재의 홍명보가 과거의 홍명보를 찾아간 코너는, 적나라했다. '의리'를 앞세우지 말라던가, 대표팀 감독은 꿈도 꾸지 말라던가, 아니, 감독을 하더라도 올림픽까지만 하라던가 하는 속시원한 언급이 마구 쏟아내졌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한편에서 씁쓸하기도 했다. 전국민이 나서서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패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드러내놓고 팰 수 있고, 그외의, 그간 신해철이 했던 비판적 언급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기껏 그의 외모 비하나 하는 프로그램이라니!
풍자와 개그의 묘미는 남들 다하는 걸 나도 따라 한 마디 거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속으로 생각하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걸 먼저 터트릴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이다. <snl>이 시작했던 19금의 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쩌면 할 게 없어서, 오로지 그것만 매달리는 듯한 19금은, 혹은 남들이 다 하는 비판의 꽁지에 매달려 역성드는 시누이 같은 풍자는 '카타르시스'의 묘미가 사라진 채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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