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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3 <나의 해방일지> 내가 만든 '마음 감옥' 에서의 첫 발
- 2022.04.10 <나의 해방일지> '흰자위'같은 동네, '흰자위'같은 삶
- 2015.02.08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활용되는 jtbc예능 4
우울증, 무기력, 자존감 저하 등 이 단어들은 현대인이 자기 자신을 마음 감옥에 가두는 이유들이다. 실재하는 '감옥'도 없고, '간수'도 없고, 문도 활짝 열려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감옥' 안에 웅크리고 앉아 한 발자국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뜨겁디 뜨거운 여름, 신영복 씨는 감옥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계절이 여름이라 말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옆의 사람를 증오하게 만든다는 그 계절, <나의 해방일지>는 바로 그 나 한 사람 서있기도 힘든 계절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나 한 사람 혼자 서있기도 힘든, 그런데 한 집에서 부대껴야 하는 삼남매가 있다.
왕복 4~5시간을 걸려 출퇴근해야 하는 처지, 드라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정, 창희, 미정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낙담'이 이해도 된다. 그런데 그것 뿐일까? 되돌아 보면 <나의 아저씨>에서도 박동훈과 그 주변의 삶은 처음엔 참 답답했다. <나의 해방일지> 속 삼남매의 삶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심지어 서울 변두리 박동훈 네가 낫다 싶을 정도이다. 존재로부터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회사 생활도 뾰족한 것이 없고, 관계는 더욱 지지부진한 염씨 댁 삼만매의 처지가 안쓰럽다. 그런데 어언 4회차에 이를 즈음에,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의 '존재'가 답답한 건 맞지만, 어쩌면 저들은 '존재' 이상, 스스로 만든 '마음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음 감옥에 갇힌 이들
서울이란 계란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 같은 동네, '흰자위'론을 들고 나온 건 아들 창희(이민기 분)이다. 그런데 창희의 이른바 '맞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의식에는 사람의 존재도 노른자, 흰자가 나뉘어져 있는 듯하다. 그토록 흰자위 이 변두리 동네의 존재를 탈출해서 '노른자'로 가고픈 열망에는 그래야 그 스스로 '노른자'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드디어 '창희'가 연인과 헤어진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늦은 저녁 전철을 타고 집에 오던 기정(이엘 분)은 창희와 헤어진 연인이 홀로 창희에 동네에 오는 전철을 탄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돌아와 그 소식을 전하니, 창희는 말한다. 그 연인이 자신을 보게 되는 그 '별 수 없는 놈이라는 눈빛'때문에, 그래서 스스로 벽을 치고 헤어졌노라고.
연인과 함께 멋들어지게 자가용을 타고 데이트도 할 수 없는 놈, 회사에서 '갑'이 될 수 없는 처지, 에어컨 한번 맘대로 틀 수 없는 가정 형편, 그런 것들이 모두 창희에게는 '흰자위'같은 삶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창희는 그런 삶의 조건들에 견딜 수 없다. 대리점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든 동료에게 '입바른 소리'를 한없이 풀어놓으며 창희의 결론은 승진을 해서 스스로 '노른자'와 같은 인물이 되어 그런 '흰자위'같은 것들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승진'처럼 삶이 달라지면 '노른자'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창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무한루프같은 경쟁 사회에 자신을 던져 그 안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된 삶만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창희의 또 다른 모습일 지도.
창희가 스스로를 자존의 늪에 가두었다면 기정을 혼돈스럽게 하는 건 '권태'이다. 십 수년의 쳇바퀴같은 회사 생활, 그리고 늘 출퇴근에 시달리는 나날, 그 속에서 기정은 삶의 활로를 찾지 못해 바둥거린다. 그런데 그녀가 찾는 그 삶의 활로가 막막하다. 머리를 해보고, 성형외과를 찾아 시술을 해보고, 그리고 올 겨울 안에 그 누구라도 붙잡고 사랑을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막상 이혼남을 소개해줬다고 소개팅 주선자에게 거품을 무는 처지이다.
자기 자신을 가둔 감옥에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채 '여름'이라는 계절을,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별 다른 변화없는 삶을 상대로 끝없는 실랑이를 벌이는 창희와 기정, 그들 사이에서 서늘하게 침묵을 지키는 미정(김지원 분)이 있다. 그런데 염씨네 막내 미정과 염씨네에 일을 도우는 정체불명의 구씨(손석구 분)는 참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
한 걸음
한여름 볕보다도 더 묵직하게 자신의 일만 묵묵하게 해내는 두 사람, 끝없이 술만 마셔대는 구씨와, 조용히 회사와 집을 오가는 미정, 삶을 겨우 버텨내는 짙은 우울이 두 사람 모두에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일까? 미정의 눈에 구씨가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날 미정은 구씨에게 당돌하게 말한다. '나를 추앙해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그 '구문'의 문체, 미정은 설명을 보탠다. 그 거창한 '추앙'이 서로를 무조건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미정의 도발은 '구씨에게 추앙'을 요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출퇴근으로 회사 그 어느 동아리에도 들지 않아 요주의 인물이 된 미정은 자꾸만 회사의 행복 센터로 불려가고 거기에서 미정처럼 각자의 이유로 요주의 인물이 된 다른 두 사람 박상민 부장과 조태훈 과장(이기우 분)을 만나게 된다. 본의 아니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 세 사람, '동아리' 문제로 고민하던 중 미정이 제안한다. 우리가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자고. 그렇게 해방클럽이 탄생한다.
'해방 클럽'이 뭐냐는, 뭘로 부터 '해방'을 하는 거냐는 동료의 질문에 미정은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나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여기서 미정의 웃음이 중요하다. 4회 만에 처음으로 미정은 진짜 웃음을 웃었다. 늘 무표정하게, 심지어 오빠와 언니가 싸워서 언니가 날린 슬리퍼를 맞아도 무표정하게 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문 밖으로 슬리퍼를 던지는 것으로 겨우 자신을 드러내는 미정인데, 그런 미정이 자신감넘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어떤 동아리에 끌려들어갈 처지에서 탄생한 해방 클럽,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색하지만 나란히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세 사람의 표정이 편안하다. 그저 늘 자신들은 세상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세 사람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전남친을 위해 신용대출을 받고 그걸 대신 갚아야 하는 처지, 회사 동료들은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쑥맥' 취급을 하고, 상사는 '빨간펜'으로 대놓고 미정을 무시하는 처지가 미정이를 꿈틀하게 만든 것이다. 미정은 벼랑 끝에서 배수진을 치듯 한 걸음 나선다. 지금까지 그녀를 가두었던 자신의 감옥 밖으로.
많은 심리서의 결론은 사실 뜻밖에도 명쾌하다. 무엇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구구한 심리 이론의 끝에 도달하는 건 '실행'에 있다.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행동'에 옮기라고 한다. 바로 그 심리서의 '답정너'에 삼남매의 막내 미정이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런 미정에 구씨가 화답했다. 미정의 모자를 , 아니 미정을 향한 도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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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도 아니고 '산포'다. 노른자 위 서울을 둘러싼 흰자 같은 경기도, 그 중에서도 전철을 타고, 다시 또 마을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는 곳에 사는 삼남매가 있다. 염제호 씨댁 기정(이엘 분), 창희(이민기 분), 미정(김지원 분)이다.
경기도에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 역시 경기도민으로 서울 웬만한 곳에서 약속을 잡으면 넉넉하게 2시간을 잡고 움직인다. 한 시간 정도면 괜찮은 거리다. 이런 이야기를 서울 시민인 친구들이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30분이 넘으면 멀다고 생각하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내게도 마을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는 삼남매가 애잔하다. 웬만하면 '독립'한다고 할 만도 하건만 꿋꿋이 셋은 택시를 타고서라도 집으로 간다.
집에 갈 택시 잡을 궁리를 하다 여자 친구에게 '촌스럽다'는 타박을 당하고 헤어지게 된 창희는 어렵사리 아버지 앞에서 자동차를 사겠다는 말을 꺼낸다. 몇 년 전에도 차를 사서 그 할부를 못갚는 바람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처지, 전기차라서 비용이 거의 안든다느니, 집에 오는 택시비가 더 든다느니, 이리저리 구색을 맞춰보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아버지의 손 앞에 불가항력이다.
흰자위같은 동네
4년 만에 돌아온 박해영 작가는 <나의 아저씨>에서는 서울 변두리 동네를 배경으로 삼형제의 이야기를 풀어내더니, 이제는 그 보다 조금 더 떨어진 경기도 한 동네로 시선을 옮긴다. 우러러 볼 만한 경력도, 부러워 할 만한 능력도 없이 그저 순리대로 살던 아저씨들은 이제 2030 세대의 '갑남을녀'들이 '프레임'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저씨들이든 2030세대이든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기정, 창희, 미정 역시 부대끼는 지하철에서 만나는 평범할 대로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모처럼 찾아온 동네 친구에게 창희는 말한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으면 너랑 친구 안했을 거라고. 그 말인즉, 서울에서 살았으면 친구는 '선택'의 대상이 되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친구'는 가족처럼 날 때부터 그냥 주어지는 거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런 면에서 동네 운동장에서 술을 먹는 건지, 축구를 하는 건지 모르겠던 <나의 아저씨>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사람 냄새나는 곳, 하지만 그래서 '촌스러운' 곳, 그곳이 이들의 '터전'이자, '아킬레스 건'이다. 그렇게 박해영 작가는 <나의 아저씨>에 이어 또 다시 '장소'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풍경'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의 사연에 앞서 그들이 처한 공간의 정서 속에 물씬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계란 흰자같은 경기도민의 한계에 대해 구구절절 하소연을 하는 창의 곁에서 미정이 반문한다. 서울에서 살았으면 달랐을까? 그럼, 서울에서 살면 달랐지라고 강하게 답하는 창희에게 미정은 말을 잇지 않는다. 그리고 혼잣말을 더한다. 서울에서 살아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사는 것도 흰자위
노는 날에도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가 머리를 볶고 들어와 맘에 안든다고 감았다, 그걸 다시 드라이로 풀어내느라 난리를 치는 큰 딸, 그 딸을 보고 엄마는 속터져하며 말한다. 지랄도 팔자라고. 지 성질머리가 지 팔자를 들볶는다고. 하지만 새벽부터 해질 녁까지 싸구려 싱크대에 밭일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아버지 염씨 앞에 오며 가며 시간을 다 보내느라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창희의 말처럼 지랄 맞아 보이지만 술 마시다가도 꼬박꼬박 집에 들어가는 삼남매의 고분고분한 일상은 머리라도 볶아야 숨통이 트일 것처럼 보인다.
미정이 생각은 안하냐는 엄마의 지청구 앞에 기정은 미정이는 젊잖아?란다. 젊다고 다를까? 카드 회사 계약직 직원인 미정은 어디서나 그림자같다. 오빠가 전기차를 사겠다고 아버지 앞에 야심차게 들이대다 맞을 뻔하는 해프닝을 벌이는 옆에서도 미정이는 꾸역꾸역 밥을 입에 넣는다.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 역시도 출퇴근 시간에 쫓겨 그 흔한 회식 한번 못하고, 그 덕일까 '이쁘지만 매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간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미정과 같은 이들을 회사의 '행복 지원센터'가 부른다. 볼링 동호회라도 들라는데, 함께 불려간 박상님 부장은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냥 이런 사람들도 있는 건데 그냥 이렇게 살게 놔두면 안되는 거냐고. 하지만 그냥 그런 걸까?
팀장에게 넘긴 보고서가 빨간펜 선생님이 매긴 답안지처럼 빨간 줄이 정신없이 그어진 날, 그런 자신을 두고 팀원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회식 자리로 떠나가는 것을 보며 미정은 답답한 마음에 '가상의 당신'을 찾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선뜻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힘든 미정만의 '해방'이다. 가상의 그가 과연 미정을 해방으로 인도할까?
그런데 염씨네 삼남매만 답답한 게 아니다. 전기차라도 사겠다고 그래야 뽀뽀라도 하지 않겠냐고 궁여지책으로 말을 건네보는 창희의 처지도 이해가 되지만 그런 창희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려는 아버지 염제호의 삶도 녹녹치 않아 보인다. 흰자위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흰자위같은 삶은 세대 불문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공감은 멀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사는 게 참 답답해 보이는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옴짝달싹하기 힘들게 옭죄어 오는 삶, 일도, 연애도, 아니 사는 것이 통털어 무엇 하나 그리 뽀족하게 '씨원'하게 풀리는 것이 없는 기정, 창희, 미정 삼남매를 통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말한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로 젊은 세대에서부터 중년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위로와 힐링을 주었던 박해영 작가, 과연 이 답답한 삼남매의 '해방 일지'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비빌 언덕이 되어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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