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관한 경구 중, 아마도 가장 대중적으로 공감을 받는 문구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바로 이것일 것이다. 유홍준 교수가 그의 책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통해 소개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경구는, 조선 후기 문장가 유한준 선생(1732~1811)의 정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행 프로그램은, 바로 이 정의를 실현하는데 충실하고자 한다. 7월 18일 방영된 <7인의 식객>도 다르지 않았다. 악숨에서 우여곡절 끝에 '에티오피아 식' 닭고기를 맛본 식객들은 마늘향이 감싸고, 숯불로 잡내를 없앤 닭고기 맛에 감탄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세계 어디를 가도, 미식에 대한 취향은 통한다라는 공감을 하며, 알면서 사랑하게 된 에티오피아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탠다. 
바로 거기서 등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은 바로 유한준 선생의 경구와 통한다. 7인의 식객들이 만난 에티오피아, 인터넷 웹서핑으로는 만날 수 없었던 에티오피아의 진정한 맛에 새삼 그들은 감탄한다. 그런데, 이제 세번 째 시간을 맞이한 그들의 여행에서 그런 그들의 감탄사가 과연 시청자들의 공감으로 이어질까? 그건 미지수다. 아니 미지수라기 보다는 '불감'에 가깝다는 걸, 3.8%(닐슨)의 낮은 시청률이 증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한국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닭고기 바베큐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에티오피아의 맛이라, 그게 정말 에티오피아의 진면목일까? 제목에서부터 내걸었듯이, '식객'으로서의 관점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에티오피아 식 닭고기를 통해 그렇게 접근할 수도 있다 싶기는 하다. 하지만 어쩐지, 그건 마치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 음식점에서 맛본 김치맛 하나를 통해, 한국을 알았다 호들갑 떠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지. 

(사진; osen)

물론 에티오피아 식 닭고기 바베큐를 먹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너무 편한 여행이다 싶었는지, 느닷없이 직접 닭고기를 잡으라는 미션이 주어진 악슘팀, 서로 누가 닭을 잡으로 갈건가 미루다 결국 투표까지 하게된다. 이 심각한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이 유추할 수 있는건, 어디 정글에 가서 직접 닭을 사냥이라도 해오나 싶은 거였다. 하지만 정작 남상일과 키가 한 일이라곤 에티오피아 시장을 찾아가 닭을 사오는 거였다. 그저 낯설은 동물, 직접 닭을 손으로 들고 오는 과정을, 심각하게, 프로그램은 닭을 잡는다고 내세운다. 당연히 그 다음, 진짜로 닭을 잡아 요리를 하는 과정은 에티오피아 요리사의 몫이고 그 과정은 생략된 채, 식객들은 바베큐용 나무 쌓는 걸 실랑이를 벌이다 지글지글 숯불 장작에서 요리된 닭고기를 뜯으며 에티오피아의 참 맛을 알았다며 감탄한다. 상대편 방송에서는 정글로 들어가 요기꺼리가 되는 거라면 벌레에서 나무 뿌리까지 모든 것을 '채집'하고 '사냥'하는데, 에티오피아의 참맛을 알겠다며 기껏 시장에 가서 닭을 직접 사오는 걸로 '닭을 잡는다' 호들갑을 떨고, 요리를 한다며 니가 나무를 잘 쌓았네, 내가 나무를 잘 쌓았네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이 '식객' 프로그램이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에티오피아에 간다고 할 때만 해도 이번에는 제대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려나 싶었는데, 막상 에티오피아에서 <7인의 식객>이 보여주는 모습은 하다못해 ebs의 <세계 테마 기행>보다도 겉훑기식이고, 우리나라 버전 식객 프로그램인 <한국인의 밥상>보다도 어설프다. 

소금 사막을 찾아 '다나킬'로 여행을 떠난 김경식과 손헌수, 대낮에는 40도가 넘는 사막의 열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인다. 겨우 소금 사막에 도착한 두 사람, 두 사람은, 거기서 소금을 캐는 사람들의 일을 체험한다. 소금 땅을 캐보기도 하고, 상품화 하기 좋게 정사각형으로 소금을 깍아 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뿐이다. 힘들게 간 소금 사막도, 거기서 소금 캐기 체험도 해보지만, 그저 그곳에 가고, 거기서 신기한 체험을 해봤다는 이상의 감동을 주지 않는다. 
곤다르의 전통 음식점, 포시스터즈를 찾아간 서경석, 이영아, 신성우 등 나머지 식객들,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을 맛보고, 전통 춤 공연을 보고, 직접 인제라, 떼지 등 에티오피아 음식들을 만들어 본다. 
힘들게 소금 사막에 들어간 김경식 팀도, 전통의 에티오피아 음식을 맛본 5인의 팀도, 분명 그들은 에티오피아의 많은 것을 보고, 맛보고, 체험하는데, 그저 그뿐이라 느껴진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민속촌에 가서 절구질도 해보고, 전도 부쳐보고, 각종 공연을 보는 느낌이랄까. 

과연 하루 종일 사막에서 일하는 에티오피아 인들의 삶을 알아본다며, 소금 땅 한번 깨고, 소금 덩어리 한번 맛보는 것으로 에티오피아의 삶을 알 수 있을까? 정말 그곳을 체험하고 싶다면, 적어도 하루라도, 그들처럼 소금 사막의 일꾼이 되어 일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에티오피아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에티오피아의 잘 알려진 음식점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려 지내야 하지 않을까? <7인의 식객>은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문물과 음식들을 소개해 주지만, 그 소개가 '공감어리게' 다가오지 않는 건, 여전히 '관광'을 온 여행자의 눈높이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7인의 식객>이 빌려쓴 이름, 허영만의 <식객>이 장기간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는, 거기서 소개한 하나, 하나의 음식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과 역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7인의 식객>에 에티오피아의 멋지거나, 희한한 풍광과 맛있는 음식은 있지만, 거기에 지금 에티오피아에 사는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관광지에서 만난 이방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에티오피아 인들을 비춰주는 것만으로, 에티오피아 인들을 만났다 하면 안된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유래가 주인들이 먹다 버린 목과 날개를 먹기 위해 닭을 기름에 튀기기 시작한 흑인 노예들의 음식이라는 정보도 고맙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닭은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라는 그 에티오피아의 실정으로 조금 더 천착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어떨까? 비싼 식당에서 이게 에티오피아 음식이야 할 게 아니라, 한때는 지중해의 강자였으며, 단 한번도 식민지의 경험을 가지지 않는 자부심을 지닌 독립국이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40도가 오르내리는 소금 사막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겨우 일당 몇 푼을 손에 쥐는 닭고기조차 귀한 에티오피아의 참모습으로 조금 더 다가가면 어땠을까 싶다. 

에티오피아의 닭고기를 맛보면서 '생각 외로 맛있다며 감탄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에는, 사실, 에티오피아 음식은 먹기 힘들 것이라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하는 것이 보인다. 거기에는 여전히 호텔과 식당과 풍광좋은 여행지를 전전하며, 이방인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이 있을 뿐이다. 

비단 <7인의 식객>만이 아니다. <꽃보다> 시리즈를 시작으로 여행 프로그램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여행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이국의 문물 앞에서도, '나'만이 중심이 된 자기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국의 문물 앞에서 우리까지 웃고 떠들고, 감동하고, 감상에 빠지고. 장소만 바뀌었을 뿐, 어쩌면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이다


by meditator 2014. 7. 19. 13:07

6월 11일 sbs의 <도시의 법칙 in NEW YORK>이 첫 선을 보였다. 정글의 법칙 도시판으로, 땡전 한 푼 없는 뉴욕 생존기를 다룬다. 물론 단순 여행은 아니지만, 뉴욕이라는 이국의 도시로 떠나간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긴' 여행기에 가깝다. 그에 앞서, 6월 9일과 10일 양 일간에 걸쳐 <SNS  원정대 일단 띄워>가 방영되었다. 명목상 브라질 월드컵 특집으로, 오로지 SNS에 의지하여 브라질을 문물과 먹거리를 체험하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SBS만이 아니다. MBC는 지난 5월 30일부터 <7인의 식객>이라 하여, 이른바 스토리가 가미된 음식 기행 프로그램을 방영 중이다. 봄 개편을 맞이한 공중파 예능들은, 현재까지 KBS를 제외하고, MBC와 SBS가 각가 한 두개씩의 여행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왜 하필 지금 여행 예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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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런 여행 관련 예능의 시도에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나영석 피디가 만든 '꽃보다' 시리즈일 것이다.  과연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시리즈가 트렌드 상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지 않았다면 이렇게 여러 개의 여행 예능이 거의 동시에 출격할 수 있었을까. 그저 여행을 하는 형식만이 아니다. <도시의 법칙>이나, <SNS원정대 일단 띄워>나, <7인의 식객>까지 내용면에서도 <꽃보다> 시리즈에 빛을 지고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떠난다는 기본적 전제 조건은 두 말하면 잔소리겠다. 그런데, 누가 여행을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영서 피디의 <꽃보다> 시리즈는 기존 예능의 틀을 한 단계 뛰어 넘었다. 이른바 강호동, 유재석, 신동엽 등 인기 MC는 물론, 그들을 대체할 만한 내로라하는 MC진들의 주도 없이,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백일섭 등, 예능은 물론, 연예계 자체에서도 뒷방 신세이던 할배들을 프로그램 전면에 끌어들였으며, 그들의 조력자로, 기껏해야 <1박2일> 게스트 경험만 있었던 이서진을 '짐꾼'이라는 희한한 캐릭터로 등장시킴으로써, 신선한 예능의 틀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성공은, 그에 이은, 하지만 사실 할배 시리즈에 비해서는 맛깔난 재미는 덜했지만, 할배 시리즈가 안정정 성공을 거두었기에 접고 보아줄 수 있는 <꽃보다 누나> 시리즈가 가능했다. 

이렇게 그간 예능이라면 늘 있어야 할 것만 같았던 존재인 MC, 그것도 개그맨 출신의 MC없이, 예능에서 낯선 연기자 출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프로그램을 만듬으로써 나영석 피디는 예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도시의 법칙>, <SNS 원정대 일단 띄워>, <7인의 식객> 들의 출연자들의 면면도 김성수, 정경호, 백진희, 오만석, 서현진, 김민준, 이영아 등 신선한 연기자 출신들이 대다수다. 

(사진; 7인의 식객 중, OSEN)

<꽃보다 누나> 시리즈에서 후배 이미연은 늘 따라다니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과연 자신들이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선배 윤여정에게 털어놓는다. 그런 후배의 고민에, 윤여정은, 자신들이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모습이 온전히 날 것만은 아닌, 연기와 리얼의 경계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 즉, 연기자 출신 리얼리티 출연자들은, 각각 배우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실제와 연기의 경계 선상에서, 보다 풍부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풀어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서 짐꾼 이서진, 직진 순재 등의 캐릭터의 성공이 바로  그런 연기자이기에 가능한 지점이었다. 시청자들은 몰래 카메라를 통해 보여진 이서진의 면면이 100% 그의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 상황을 수용해낸 연기자 이서진의 진솔한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진짜인듯, 진짜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간 연기 외에는 방송을 통해 노출이 되지 않은 배우들이기에 가능한 매력들이다. 

후발 주자로 출발한 <도시의 법칙>, <일단 띄워 SNS 원정대>, <7인의 식객>은 선배인 <꽃보다> 시리즈의 이 성공 사례를 충실히 답습한다. 상황을 벌여놓고, 그 상황 속에 던져진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배우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매력과 재미를 끌어내고, 그것을 프로그램의 주된 흥미 요소로 끌어 가고자 한다. 그래서 <도시의 법칙>은 예능 블루칩으로 가장 예능에서 낯설은 정경호를 밀고, <SNS원정대 일단 띄워>는 소탈한 오만석과, 자유인 김민준, 야무진 서현진의 매력을 발굴하는데 공을 들인다. 묘하게도 세 프로그램 모두에서 여성 캐릭터인 이영아, 서현진, 백진희는, 남성 못지 않은 털털함과 당당함으로 자리매김하며, 여행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간다. 

또한 <꽃보다> 시리즈의 주된 흥밋거리는, 흥청망청 여행이 아닌, 이른바 '배낭여행'으로서의 조건적 제한이다. 노년의 할배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배낭 여행'이라는 컨셉에 따라, 적은 돈을 가지고, 스스로 여행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벌이는 '고생'이 이심전심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 하는 인기인이지만, 그 사람들이 낯선 이국땅에서는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그 고생담의 공감이, 거기서 빚어지는 진솔한 인간적 매력들이 시청자들을 흡인시키는 매력이 된다. 

그리고 <꽃보다> 시리즈를 벤치 마킹한 후발 주자들은 빠짐없이 이런 요소들을 포함시킨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생존기라며, 가지고 있는 돈과 핸드폰부터 빼앗아 버리는 <도시 법칙>이나, 여행의 극과 극을 보여주겠다며, 배낭 여행팀을 정하고, 적은 돈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미션을 마쳐야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는(그 어드벤티지 조차도 과연 정말 어드밴티지조차 의심이 되는) 극한의 조건을 제시한다. 어떤 도움없이 SNS에만 의존해 여행을 가야 하는 <SNS 원정대 일단 띄워>의 모습은, 핸드폰에 의존해서 갈 길을 찾던 <꽃보다> 시리즈의 짐꾼이 연상된다. 
(사진; SNS원정대 일단 띄워 중, 오마이스타)


이렇게 <꽃보다> 시리즈로 부터 시작된 여행 예능은, 이제 <도시의 법칙>, <SNS원정대 일단 띄워>, <7인의 식객>을 통해 만개하고 있다. 케이블의 아이디어를 공중파가 답습하거나, 확산시키는 컨텐츠의 역전이다. 
물론 <꽃보다> 시리즈 이전에도 무수한 여행 예능이 있었다. 하지만, <꽃보다> 시리즈의 성공은 단지 여행을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 연예인의 날것의 모습을 통해, 나이가 들거나, 젊거나, 혹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상관없이 인간 본연의 매력을 깊이있게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이라는 점이다. <꽃보다 할배>에 새삼스레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열정적인, 하지만 지는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듯한 안타까움에의 공감때문이 아니었을까? 후발 주자들이 성공을 거두가 위해서는, 그저 여행을 떠나거나, <꽃보다> 시리즈가 가진 재미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선배를 뛰어넘을 여행 속에서 발견한 인간미에 대한 천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꽃보다> 시리즈건, 혹은 <도시의 법칙> 등 여러 후발 주자건, 자기 충전과 삶의 돌파구로서의 대안으로서 여행이 보편화된 세상을 반영한 모습이다. 일찌기, 들뢰즈는 노마디즘을 설파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는 유목주의야 말로, 몇 천년의 정주 문화 속에 숨겨진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에, 여행이 삶의 주된 반전이 되며, 그것이 예능 컨텐츠로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삶과 생활 방식에 대한 권태와 회의, 새로운 삶의 대안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갈구의, 감각적인 반응일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4. 6. 12. 17:29

훈훈한 가족애를 추구하던 <사남일녀>가 결국 낮은 시청률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종영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새롭게 선보인 것은, 요즘 인기 좋다는 먹방과 리얼 버라이어티를 합체시킨 <7인의 식객>이다.


'단순한 음식 소개가 아닌 한 나라를 이해하는 창으로서의 음식 기행'을 추구한다는 <7인의 식객>은 인류학적 정보를 위해, 수능 인기 세계사 강사 고종훈씨를 섭외,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성 내용을 제외하고 보면, 제목은 7인이지만, 고정이 아니라는 명목 하에 8명의 출연자를 섭외하고, 그들을 음식 알아 맞추기 게임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직접 발로 뛰며 여행을 하는 배낭 여행 팀과, 가장 화려한 볼거리와 이름난 음식을 먹고 다니는 팀으로 나누어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는 방식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일찌기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음식 기행을 선보인 바 있으며,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긴 팀과 진 팀으로 나누어 가장 비싼 여행과 가장 저렴한 여행으로 여행의 극과 극을 다룬 사례는 예능에선 낯설지 않은 컨셉이다. 

(사진; 뉴스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가 있는 먹방처럼, 여행 전문 케이블 tv가 따로 존재하듯이, 누군가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집을 지키는 시청자들에겐 이미 누군가 했던 익숙한 컨셉일 망정 흥미를 유발한다. 

특히나, 매번 미션이 주어지고, 그 미션을 통과해야 어드벤티지가 주어지는 배낭 여행팀의 행로는 시안 역을 찾아 간식까지 사며 허겁지겁 뛰어가는 그 모습에서 이미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정글의 법칙>의 고생담을 작정하고 타깃으로 삼은 듯 고생스런 여행이란 목적이 분명한 배낭 여행팀은 그 팀원의 말처럼, 90분이라는 시간 안에 시안 역에 도착하기 위해 이십 여분을 달려가고, 겨우 기차를 탔는가 싶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을 배경으로 한 22시간의 기차 여행이 이어진다. 여행의 종착지에 도착해서는 또 어떤가. 22시간의 기차 여행을 마치고 땅에 발을 딛었는가 싶었는데, 사막의 오아시스 둔황을 가기 위해 다시 2시간 여 사막길을 따라 차를 타고 가야한다. 그러고서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면서 특전으로 제공한 것이 온통 모래 언덕뿐인 명사산 여행이었다. 

두 팀으로 나뉘어진 <7인의 식객> 첫 번째 여행의 주제는 국수 기행이었다. 실크 로드를 통해 밀이 전파되고, 그 밀이 중국의 요리법이 만나 탄생한 국수에 대해 알기 위해, 여행 팀들은 밀이 전파되어 국수가 된 그 과정을 역으로 거슬러 여행을 한다. 

'국수'는 이미 다큐멘터리를 통해 여러 번 다룬 익숙한 주제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우리나라의 국수 문화를 다루었고, 요리 전문 tv 올리브 tv에서도 우리나라와 외국의 국수 문화를 직접 발로 뛰며 전달한 적이 있다. 특히나, <7인의 식객>이 다루고 있는 국수의 전파 과정은 이미 <누들 로드>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7인의 식객>이 지향하고 있는 인류학적 바탕이 깔린 리얼 버라이어티는 당연히 내용 면에서 <누들 로드>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수능 인기 강사까지 초빙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회 <7인의 식객>에서 소개된 내용은 그저 외국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맛본다는 먹방의 의미를 넘어서지는 못한 듯하다. 

서경석 일행이 처음 간 음식점에서 일행들은 당나라 시대의 국수를 비롯하여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지만, 그들을 통해 시청자들이 전달받은 건, 인류학적 탐험 자세라기보다는 외국 여행지에서 타문화의 음식을 맛본 여행객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맵다', 맛있다'라는 그들의 반응으로는 당나라 시대의 음식 문화를 시청자들이 간접 체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국수 만들기 체험 정도가 인류학적 탐험에 어울리는 시도로 보여졌다. 배낭 여행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배낭 여행이라는 보다 '날 것의 체험'이 그래도 서경석 팀에 비해서는 훨씬 더 진솔한 맛 기행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신성우나, 이영아는 적극적으로 타문화으 음식에 접근하는 태도가 긍정적이었고, 그런 그들을 통해 전달되는 이방의 음식은, 때론 겨드랑이 냄새같을 지언정, 색다른 문화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7인의 식객
(사진; tv데일리)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7인의 식객> 자체가 맛 기행이라는 목적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신성우 팀의 손헌수는 과연 이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멤버라기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행동을 보인다. 신성우의 표현대로, 여행을 가서 만나게 되는 그 지역의 음식은, 바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이기에,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더구나, 제목 자체도 <7인의 식객>인 프로그램에서 입이 짧아, 이방의 향취에 도무지 적응을 못하고, 고추장을 더하는 손헌수가 과연 <7인의 식객>에 어울리는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손헌수의 입짦음에 짜증이 난 것도 잠깐, 첫 회 <7인의 식객>은 맛 기행이라는 취지를 깡그리 잊어버릴 정도의 사건을 벌인다. 미션 성공으로 주어진 명사산 기행에서, 타조를 타고 모래 언덕 투어를 떠난 일행이 그만 모래 폭풍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제작진이 머무는 곳의 의자와 식탁이 나뒹굴고, 서서 있기가 힘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모래 폭풍 속에 신성우 팀은 오로지 낙타에 의지한 채 버려진다. 굳이 '버려졌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들을 따라가던 카메라 팀이 그들을 놓쳤고, 제작진은 일찌감치 목적지에 먼저 와있는 상황에서, 신성우를 비롯한 세 명의 팀원이 모래 폭풍 사이에 갇혀버린 것이다. 제작진은 경찰이 와서 신속하게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그 과정, 제작진과 떨어져서, 제작진이 헐레벌떡 그들을 찾으러 가는 과정을, 리얼 버라이어티의 일환인 양 상세하게 프로그램 말미에 보여준다. 

그런데, 요즘처럼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되풀이 되는 상황에서, 제작진의 케어를 받지 못한 채 모래 폭풍에 사라진 출연진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건, 목숨을 걸고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야 하는가 싶은 분노이다. 물론 다음 회 예고를 보면, 출연진들은 무사히 그 모래 폭풍을 빠져나온 듯하다. 하지만, 충분히 사막의 모래 폭풍이 예견된 상황에서, 그 어떤 대안도 없이, 제작진마저 손을 놓은 상황에서 출연진만을 떨어뜨려 놓은 것은 '방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제 아무리 <정글의 법칙>의 날 것을 타겟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7인의 식객> 첫 회의 모래 폭풍 해프닝은, 그런 수준을 넘어, 안전 불감증처럼 보여졌다. 이미 연예인의 해외 여행 프로그램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는 바, 제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지만, 제작진마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건, 무신경과 준비 부족으로만 보여지는 것이다. 

덕분에 배낭 여행의 긴박감도, 뱀을 목에 두르고 춤까지 선보인 김유정의 고군분투을 입힌 호사스런 여행의 맛도 함께 모래 폭풍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프로그램을 이어간다면, 원래의 취지는 살리되, 출연진의 위험을 담보로 한 흥미끌기는 지양하기를 바란다. 맛있는 외국의 먹거리를 먹으러 목숨 걸고 갈 일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by meditator 2014. 5. 3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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