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2013년 말미에 새롭게 시작한 <1박2일>의 멤버들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무려 평균 연령 39.4 세, 제일 연장자 김주혁이 마흔을 훌쩍 넘긴 건 이미 예전 일이고, 막내 정준영과 무려 17살의 나이차가 난다. kbs 연예 대상에서도 보여졌듯이 이 형 슈트만 입혀 놓으면 아주 멀쩡할 뿐만 아니라, 작년 한 해 mbc에서 전설의 허준 선생으로 열연까지 하셨던 분인다. 그런데 제일 연장자이신 이분, 당신 입으로 말한다.
"1박2일 몇 회 만에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냐!"고
그리고 그의 자조적 표현 그대로, 지금 김주혁이 <1박2일>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동네 바보형'이다.
(사진; cnb 뉴스)
강호동이 이끌었던 1박2일의 전통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강호동이란 인물에서 연상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도력이라 할 수 있겠다. 때로는 동생들의 연합에 밀리고 치이는 순간이 있어도 어거지를 써서라도 물러서지 않는 기가 바로 시즌 1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호동이 사라지고, 이어진 시즌2는 그의 그늘을 메우고자 제일 연장자로써 김승우를 앞세웠지만, 당연히 강호동의 빈 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시즌2는 매사에 시즌1과 비교되는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었고.
새롭게 시작된 시즌3는 그런 시즌2의 도로를 밟지 않는다. 대신 그와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 누가 오던, 리더쉽을 앞세운 방식으로는 강호동이라는 거인과의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기에, 시즌3는 아예 리더쉽이 없는 리더쉽을 택한 것이다.
당연히 나이 순으로 따지자면 김주혁이 시즌3에서는 리더가 되어야 할 처지다. 하지만, 지난 주 방송에서 보여지듯이, 김주혁은 가위바위보 게임 하나에서도 동생들이 단체로 짬짜미를 해 자신을 골탕 먹이는데도 매번 당하는 바보같은 형이다. 방송을 통틀어, 무려 다섯 번의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고, 그때마다 매번 보자기를 내는 동생들한테 따돌림을 당하는데도, 천연덕스럽게 내가 운이 나쁘구나 라며 순순히 벌칙을 당하는 형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형, 순진한데다가, 허당스럽기까지 하다.
1월 12일 방송분에서, 허벅지 싸움을 하는데 동생들이 어이없이 나가 떨어지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주혁, 보기와 달리, 세 아이의 아빠 차태현에게 대번에 나가떨어진다. 비장한 표정을 하고 나설 때만 해도, 아, 저 형 뭔가 한 건 해주겠구나 하지만, 결과는 예상 외다. 그 덕분에, 처음 셋이 함께 할 때만 해도, 구멍이다 싶은 김주혁, 김준호, 김종민 그룹에 '쓰리쥐'라는 허당 캐릭터가 만들어 졌다. 이때만이 아니다. 달고나를 만들 때도, 처음 나설 때만 해도, 이 형 이걸 잘 하는구나 했는데, 막상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영 미덥지가 않은 게 이 형의 모습이다. 형이라고 뭐든 다 잘하는 게 아니라는 어찌보면 평범한 진리를 김주혁은 몸소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궁시렁궁시렁 대면서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어떤 게임에서도 '나만 아니면 돼' 하다가도, 자신이 벌칙에서 제외되면 누구보다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다가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뒤로 물러서는 적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서도, 제일 먼저 앞장 서서 패달을 밟고, 언제부터인가 차을 몰면 운전대는 그의 차지인 경우가 많다. 1월12일 방송분, 아프리카 문화관 광고 촬영 과정을 보면, 아프리카 옷을 입고 제일 높이, 제일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며 춤을 추는 사람도 역시나 김주혁이다.
(사진; 조선닷컴)
김주혁이 가장 열심히 하면서도, 나이가 많다, 형이다 내세우지 않으며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자연스레 상황상황에 맞게 손아래 동생들이 제 역할을 하며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제작진과 딜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데프콘이 예의 그 둔중한 카리스마(?)를 내세우며 한 마디 하고, 게임을 하는 상황에선 차태현이 발군의 능력을 내보인다. 차태현만 해도 그의 재기발랄함으로 시즌2에서 누구보다 기대를 많이 받았지만, 그의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들이, 시즌3에 오면서 종종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심지어,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 도대체 저기 저 사람이 왜 있나 싶은 취급을 당하던 김종민조차도, 제 몫이 있어 보이기에 이른다. 어디 그뿐인가. 제일 막내 정준영이 광고 촬영 분량에서 추장 역할을 하며 형들을 좌지우지해도, 그 누구하나 어색하지 않게 그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사실 그런 김주혁의 모습은 몹시 인간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치는 형들이 인간적이지 않듯이, 막상 사회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나이로, 자리로 위압적인 캐릭터로 변모해 가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실수를 해도, 그것을 덮으려 하고, 그러다 보면 무리수를 저지르고, 그걸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눈을 부라리게 되는데, 그런 나이듦의 왜곡된 반응이 김주혁에게는 없다. 그가 시즌3에 새로 들어온 신참이라는 처지가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김주혁이란 인물의 캐릭터 본연이 그런 탓도, 그가 , 혹은 제작진이 설정한 시즌3의 맏형 캐릭터가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맏형 만이 아니다. 피디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누나> 마지막 회 크로아티아 바다에 입수를 해야 하는 이승기는 야심차게 나영석 피디의 수영복세트를 준비한다. 물귀신 작전으로 피디와 함께 입수를 할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바닷가 한 구석에서 피디가 가려주는 대형 수건 안에서 혹여나 자신의 맨발이 들킬카 노심초사하는 이승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1박2일>의 윤호진 피디는, 나영석 피디의 말을 빌리면 '밀당의 하수'다. 새해 첫 소망을 말하려 찬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멤버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윤호진 피디는 주먹을 꽉 쥐고,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얼음장과도 같은 물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매번 야무지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만, 종종 멤버들의 화이팅에 밀려 그가 준비한 작전이 먹히지 않아, 혹은 자연이 도와주지 않아, 고개를 수그리는 모습을 보이는게 <1박2일> 시즌3의 새로운 매력이다. 김주혁의 동네 바보형 캐릭터에 이은, 어쩐지 만만해 보여 도와줘야 할 거 같은 피디, <1박2일>의 묘한 새로운 매력이다.
덕분에, 아직은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없는 시청률이지만, 사실은 고난의 행군이다 싶은 혹독한 미션들이지만, 어느새 <1박2일>은 참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새삼스러운 '불통'과 '상명하복'이 리바이벌되는 분위기에서, 형답지 않은 형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는 형이 있는 <1박2일>은 정신적 휴식을 준다. 부디 이 정서를 잘 유지해 매력적인 <1박2일>이 새 전통을 만들어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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