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남편찾기 전략은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소소한 우정, 가족애 에피소드로 화력이 딸리던 드라마에 '남편찾기'란 노이즈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등장했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정환)'란 신조어가 무색하게 일대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접전'은 그저 드라마 속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정환과 택의 신경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배우조차도 자신이 못내 이룬 사랑을 자신보다 더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말할 만큼, 시청자의 대리전은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겐 <응팔>은 애청자를 배반한 최악의 드라마로 기억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초지일관 엄마도 없이 불쌍한 택이네의 가족 만들기라는 뚝심있는 주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나서도 가라앉지 않는 <응팔>의 열기는 다른 드라마의 남편감조차 흐트러 뜨리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하고 나면 어줍잖게 응답하라의 복고적 분위기를 따라한 드라마가 우후죽순 등장했던 <응답하라> 낙수 효과(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고 맨 꼭대기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흘러가듯, 영향력의 확산을 노리는 전략)와도 같은 현상이다. 즉, <응팔>의 전략을 따라하면 '중간'은 가겠다는 안이한 제작 방식이, 복고 전략에 뒤를 이어 드라마 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과도 같은 사랑 찾기
<응팔>을 연출한 신원호 피디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한 이경규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예능 피디'라 재확인했다. 그런 그의 예능 피디 커밍 아웃이 어색하지 않게 <응팔>이란 드라마는 예능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이다. 일찌기 드라마계에선 볼 수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면 등장하는 '매에에~~'하는 양의 울음 소리에서 부터, 거의 두 시간을 육박하는 방영 시간을 채우는 상당부분의 이야기들이 '에피소드' 중심의,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시트콤과 같은 내용, 거기에 무엇보다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남편찾기'에 둔 마치 한 편의 게임 관전과도 같은 전반적인 드라마의 구조가, 여느 드라마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실제 거의 두 편의 미니 시리즈를 방영하는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응팔>을 보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응팔>은 앞선 <응사>나, <응칠>보다 더 노회한 '남편 찾기' 전략이 등장했다. 이미 전작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어남류'란 신조어를 만들며 그간 제작진이 했던 방식을 간파하자, 드라마는 '어남류'로 낚으며, 그 아래 '어남택'의 복선을 깔면서, 시청자를 희롱한다. 즉, 카메라의 시선은 정환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그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된 곳에서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반응, 혹은 제작진의 의향에 따라, 정환과 택이 두 사람 중 그 누구라도 '남편'이 될 수 있는 '사전 포석'이 된다. 만약에 정환이 남편이 된다면, 역시나 <응답하라>의 전통에 따랐다고 할 것이요, 택이가 남편이 되었다면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사전에 깔아놓았던 복선을 들먹이며 이것을 몰랐나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시청자들은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남편이 누구였는가를 추적하려고 하지만, 가장 정확한 의견은, 바로 어차피 남편감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아니 그것보다 시청자를 낚기 위해 철저하게 밑밥을 깔아두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한 밑밥 덕분에 덕선은 '금사빠'가 되었다가, 모성이 충만한 택이 바라기가 되었다가의 이중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덕분에 마지막에 가서 덕선의 마음을 한껏 드러내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정해지지 않은 남편감 때문에 '덕선'은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언제나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걸, 그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게 생각하는 십대 소녀의 캐릭터로 대체하기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기엔 미흡한 캐릭터가 되었다. 아직 '자아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설명하기엔 해프닝을 넘어선 '내면'의 묘사가 미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흡한 덕선의 마음은 '남편찾기'의 불을 붙이는 데 충분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신의 마음조차 모른 채 휘둘리는 덕선을 따라,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를 하느라 눈이 벌개진다. 결국 덕선은 게임 속 보물을 찾아가는 캐릭터처럼, 시청자를 대신해 남편이란 보물을 찾는 여정을 떠난 존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응팔>이 88년 당시의 골목 공동체를 매개로 여전히 소중한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소박하게 그려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방식에 있어, '불손'함은 거기에 휘둘린 시청자들의 마음을 쉬이 침잠할 수 없게 만든다.
<응팔>의 전략을 되풀이 하는 로코들- <치즈 인더 트랩>, <한번 더 해피엔딩>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배우들의 인터뷰 토씨 한 자를 가지고 여전히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하는 설전은 이후에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부러운 전략이다. 그러니 당연히 따라할 밖에.
1월 4일 부터 방영되는 tvn의 <치즈 인더 트랩>은 순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캠퍼스 연애물이다. 원작의 팬들 중에 드라마화 된 <치즈 인더 트랩>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원작인 웹툰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유정 선배와, 거기에 쥐덫에 걸린 쥐처럼 사랑의 노예가 된 홍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풀어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걸출한 피디 이윤정에 의해 작품화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은 이윤정의 장기인 전형적인 청춘 연애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웹툰의 원작이 드라마화 되는 과정에 '각색'을 거치고 원작과 다른 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 심리물이, 연애물로 탈바꿈되는 것은 연애물이 융성한 드라마계의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불 수 있다. 하지만 그 달라진 전략이 원작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조차 훼손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즉 원작은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지닌 유정 선배와 홍설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된 <치즈 인더 트랩>은 <응팔>처럼 팽팽한 남녀 관계를 대두시킨다. 즉, 원작에서 그저 주요한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백인호(서강준 분)가 유정(박해진 분)과 홍설(김고은 분) 사이에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호는 로맨틱 물의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로 홍설이 어려울 때면 나타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홍설을 돕는 홍설 바라기의 인물로 설정된다. 문제는 이렇게 백인호가 홍설 바라기로 그려지는 동안, 드라마 방영 초기 원작의 유정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로 찬사를 받았던 유정이란 존재가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치즈 인더 트랩>이란 원작이 가진, '심리적 질감'을 고스란히 반영된 유정이란 존재가 미미해 지면서, <치즈 인더 트랩>이란 드라마가 그저 재벌남과 가난한 피아노 천재 사이에 낀 대학생 홍설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홍설 역시 그 캐릭터의 진실성 대신 점점 이 남자는 이래서 좋고, 저 남자는 저래서 좋은 어장 관리녀가 된다.
이렇게 대놓고 두 남자를 내세운 전략을 드러내는 것은 <치즈 인더 트랩>만이 아니다. 1월 20일 시작한 mbc의 새 로맨틱 코미디 <한번 더 해피엔딩> 역시 다짜고짜 첫 회부터 송수혁(정경호 분)과 한미모(장나라 분)의 결혼식 해프닝을 벌이는가 싶더니, 다음 회에선 상황을 확 뒤집어 한미모를 구해준(권율 분)에 빠진 금사빠로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르른 드라마는 한미모를 놓고, 일찌기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가꿔 온 두 싱글남의 팽팽한 싸움을 예고한다. 이 드라마 역시 '우정'이냐, '사랑'이냐 전략까지 놓치지 않을 기세다. 드라마는 한 회에서는 한미모를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청순한 여자라며 자신의 친구와 결혼식 해프닝까지 벌인 그녀의 금사빠를 거뜬히 받아넘긴 구해준에 집중하는가 하면, 또 한 회는 그런 구해준의 거침없는 행보에 속앓이를 하면서 속정깊게 한미모를 챙기는 송수혁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한 회에는 송수혁이 괜찮았다, 또 다른 한 회에는 구해준에 마음이 쏠린다. 한미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예 <한번 더 해피엔딩>은 시트콤처럼 두 남자와의 갖가지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채운다.
이렇게 <응팔>에서 전염되기 시작한 '남편 찾기', '사랑찾기' 전략은 달라진 철저히 리모컨을 쥔 '고객 만족 서비스'이다. <응팔>의 배경이 되던 시대 한 잘 생기고 멋진 남자를 두고, 순정파의 여주인공과 악녀 조역과의 피말리는 '사랑과 전쟁'에 집중하던 tv는 좀 더 적극적으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층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실은 이러면 이래서 잘 나고, 저러면 저래서 좋은 양 손의 떡을 쥐어준다.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싸우지만, 쌍문동 골목길의 공부도 못하고, 미래도 불투명했던 덕선이가 잘 나가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공군 파일럿이랑, 당대 최고의 바둑 기사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체가 환타지의 끝판왕인 것이다.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같지만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순정파인 재벌집 자제랑, 가난하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자신바라기인 두 남자나, 비록 아들은 딸렸지만 자상하면서도 능력있는 기자랑, 뭇 여인들이 흠모해 마지 않는 역시나 마음마저 따뜻한 잘생긴 의사라니, 그 나열만으로도 '므흣'해지는 구도인 것이다. 사실은 누가 된들 동화같은 환타지이지만, 게임을 시작 한 순간 쉬이 로그오프를 할 수 없는 게이머처럼, 시청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남편감을 향해 치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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