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금토 드라마 <하녀들>이 3월 28일 4.725(전국 유료가구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첫 회가 방영된 이후 세트장 화재로 인해 사람이 죽는 화마를 겪는 등 순조롭지 않은 출발에 무색하게 잘 마무리된 것이다. 심지어 이 시청률은 동시간대 1~3%를 오가는 종편 시청률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편은 물론, 수치상으로만 놓고보면 공중파 sbs의 드라마와 kbs2의 시사 다큐보다도 높은 시청률이다.




어느 사극에서도 다루지 않은 이야기 
무엇보다 이처럼 <하녀들>이 종편이라는 제약을 넘어 대중적 인기를 거둔데에는 그간 어느 사극에서도 다루지 않은 '하녀'라는 소재를 도입하고, 그것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간 점이 크다. 
그간 고려 말 조선 초를 다룬 사극은 많았다. 하지만 그 여말 선초를 다룬 사극들은 대부분, 역사적 격동기를 산 정치적 인물들에 촛점을 맞추어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데 집중했다. 물론 <하녀들> 역시 여말선초의 정치적 격동기를 다룬다. 극중 배경이 된 시대는 아버지 이성계가 왕이 된 아들 이방원을 뒤로 하고 함흥으로 떠나버린 역사적 시점이다. 드라마는 이런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 뒤로 한 발 더 들어선다. 조선의 왕권조차도 채 정립되지 않은 시절, 당연히 고려 왕조의 잔당은 고려 왕조의 부흥을 꽤한다. 극중 그 부흥세력은 호판 김치권(김갑수 분)을 중심으로 한 '만월당'이라는 비밀 조직이다. 만월당은 미래의 반란을 도모하기 위해 이방원의 서자 무명(오지호 분)을 거둬 자기 아비의 목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살수'로 키웠고, 중앙 정계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인 호판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국인엽(정유미 분)의 아버지 국유를 '거열'형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이렇게 만월당이 고려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벌인 갖가지 정치적 책략 및 음모들로 인해 <하녀들>의 주인공 남녀들의 운명은 격동에 휘말리게 된다. 

이렇게 한편에서 여말 선초의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을 드라마의 씨줄로 삼았다면 또 한편에서는 그런 시국과 상관없이, 신분제 사회를 살아가는 노비들의 삶을 날줄로 삼아 드라마는 풀려 나간다. 2011년 방영된 <공주의 남자>처럼 정치적 격변기에 신분적 격변을 겪는 정치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양반가의 안방과 대청마루를 넘어서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을 <하녀들>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노비' 신분으로 격하된 인엽의 삶을 중심에 놓으면서, 그녀를 둘러싼 하녀들, 노비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드라마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그래서 드라마는 안방과 대청마루와 기생집을 넘어, 노비들의 삶의 공간인 부엌과, 침방, 창고격인 지하 동굴, 그리고 그네들이 오고가는 양반댁의 방과 방사이의 복도를 중요한 드라마가 풀어지는 장소로 등장시킨다. 공간만이 아니다. 이미 인엽이가 노비가 되기 이전부터 병판 댁 노비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무명을 중심으로 세도가 병판의 그 위세만큼이나 세를 보이는 수많은 하인들의 삶이 퍼레이드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희로애락은 노비가 된 인엽의 굴곡진 삶에 풍성함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 외면한 역사 노비들의 삶에 함께 웃고 울게 만들었다. 이런 기존 사극이 다루지 않았던 소재적 신선함이야말로 <하녀들>이 이룬 가장 큰 성취다. 



로맨스 사극으로서의 아쉬움
하지만 이런 소재적 개발과 별개로, 로맨스 사극으로서 <하녀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무남독녀 외동딸로서 아비의 억울한 죽음이후 노비로 전락되었고,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아비의 신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체적 여성상 인엽을 드라마는 그려가고자 하였다. 또한 언제나 누군가의 손에 떠받들어지기만 했던 꽃같던 처자가 노비가 되어 미처 들여다 보지 않았던 주변인들의 삶에 공감하는 자아 확장의 서사 역시 <하녀들>의 미덕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적 의도는 원작 소설의 완성도와 별개로 사극치고는 그리 길지도 않은 20부의 시간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며 주인공의 캐릭터를 변조시켰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꿋꿋하던 여주인공은, 하지만 '로맨스 사극'이 무색하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과연 아비의 신원 외에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옛 정인 은기를, 혹은 병판댁 노비장이자, 만월당의 살수, 그리고 왕의 서자이기도 한 무명을 이용하는 '어장 관리녀'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어장 관리녀' 인엽의 손에 두 남자는 하염없이 놀아난다. 

여성이 주체적 인물로 그려지는 '로맨스 사극'의 가장 큰 병폐는 남자 주인공들이 객관적으로 입지를 가진 주요한 캐릭터임에도 언제나 그 캐릭터의 효용을 여자 주인공을 위해서만 써먹는다는 것이다. <하녀들> 역시 마찬가지다. 호판의 외아들 은기(김동욱 분)는 때론 애절하게, 때론 비겁하게, 심지어는 파렴치하게 변신하지만, 그것들이 여전한 고려의 충신 아비의 실체를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한 여인을 잃은 상실감을 넘어서지 못한다. 
무명으로 가면 더 아쉽다. 왕의 숨겨진 아들임에도 아비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살수로 길러져 노비로 살아온 그는, 마지막 회 자신의 심정조차 '인엽'의 입을 빌어 말하게 되는 수모를 겪는다. 실제 후에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에게 조차 지적 감화를 준 인물로 알려진 경녕군이 무영의 실존 인물이지만, 드라마 속 무명은 마지막까지 여자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자를 찾아 떠도는 일면적 캐릭터로 마무리된다. 아니 그것조차도 로맨스 사극이니 순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은기나, 무명의 순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정말 은엽이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로맨스 사극'으로서 <하녀들>의 치명적 단점이다. 자신때문에 칼을 맞은 은기를 부여잡고 울때는 은기를 여전히 못잊는 거 같다가, 무명때문에 사라질 때는 무명을 간절하게 사랑한 거 같은 인엽, 아비를 신원하겠다는 소망 외에 드라마에서 그녀의 심정이 간절하게 보여진 것은 희박하다. 


물론 로맨스 사극뿐 아니라, 애초에 미덕으로 꼽은 새로운 사극으로서의 <하녀들> 역시 로맨스 사극이라는 장르에 갇혀 여말 선초의 고려 부흥 운동도, 노비들의 삶도 단편적 양념으로만 쓰인 점 역시 <하녀들>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매주 혹시나 하다, 그럼 그렇지 하고 주저앉아 버리면서도, 다시 또 이 신선한 이야기에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 <하녀들>의 신선함은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체 최고 시청률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하녀들>의 본연의 매력이다. 
by meditator 2015. 3. 29. 13:42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