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애초에 이 드라마의 제목을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라고 지었을까? 마지막 회까지, 이런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 정세로는 한영원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젊은 청년 톰 리플리의 야망과 좌절을 다룬 영화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청년 톰 리플리가 자기 또래의,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달리 부호의 아들로, 멋진 요트와 아름다운 애인을 가진 청년 필립을 만나, 결국 그에 대한 질시를 못이겨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태양이 작렬하는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그리로 그 이후 요트에 달린 시체가 발견되기 까지 청년 톰 리플리의 동인은 오로지 그의 야망이었고, 태양을 닮은 야망의 좌절과 그로 인한 살인에,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치명적인 그의 젊음에 빠져들어 버렸다.
하지만 굳이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와 동명의 제목을 건 <태양은 가득히>라는 드라마의 시작은 태양과 전혀 반대의 느낌을 주는 눈 쌓인 벌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려고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눈 정세로(윤계상 분)로 시작된다. 타인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을 가지고자 했던 톰 리플리와 달리, 정세로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막내리고자 한다.
그렇게 전혀 태양을 닮지 않은 정세로의 인생을 <태양은 가득히>는 내내 그려낸다. 작렬하는 태양이 빛나는 남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난 것도 잠시, 그의 아버지는 차에 치어 사경을 헤매고, 정세로는 한영원(한지혜 분)의 약혼자의 살인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박강재(조진웅 분)의 말만 믿고 한영원에게 복수를 다짐하지만, 정세로의 '복수 혈전'은 시작부터 삐끗거린다. 첫눈에 반해버린 한영원때문에 16회 내내 정세로는 복수심과, 사랑의 애증으로 내내 헤매어 버린다.
드라마는 야심차게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을 내걸고 한영원과 그의 아버지 한태오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영원의 '벨 라페어'로 잠입하지만, 그의 사랑은 늘 그의 발목을 잡는다. 오히려 아버지 한태오의 야심에 희생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발목이 잡힌 처지가 되어 버린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사경에 헤매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게 자신을 얽어매어 버린 악연에의 분노로 시작된 정세로의 복수전은 야망이라기엔 너무 취약했으며, 결국 복수라 하기에도 사랑에 발목 잡힌 이도저도 아닌 처지의 이야기로 둔갑해 버렸다. 심지어, 15회에 이르러, 그가 복수하려 했던 대상 한태오와 자신의 아버지 정도준(이대연 분)이 그리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세로는 그간 자신이 해왔던 모든 행동의 근거를 상실한 채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박강재의 말만 믿고 복수를 한다 하더니, 이제 복수의 대상인 여자를 사랑한다 하여 복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버지가 나쁜 놈이니, 내가 대신 죽겠다고?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지는 주인공이라니!
오히려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정세로를 이용해 먹으려 했던 박강재(조진웅 분)가 가장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와 유사한 캐릭터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 조차도, 결국 정세로에 대한 정에 못이겨, 그리고 재인(김유리 분)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결국 야망이 아닌,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증으로 점철된 16회였다.
당분간은 '태양'으로 시작되는 제목의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공중파의 드라마로써, 종편의 <밀회>보다도 낮은(물론 종편의 시청률 집계가 애초에 공중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시청률로 16회에 이르기까지 굴욕을 맛보았다.
(사진; 뉴스엔)
윤계상, 한지혜라는 두 주연 배우의 선택에 있어서, 그간 자신들이 해오던 역할보다 보다 폭넓은 역할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정세로, 한영원이라는 캐릭터가 두 배우로 인해 보다 빛났는가 라는 점에선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김영철, 조진웅, 전미선 등 빛나는 조연들의 호연은 빛났지만,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왔는가 하면 그 역시 어디선가 이 배우들이 했던 이 비슷한 역이 떠오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복수극도 아닌 것이, 애정물도 아닌 것이, 심지어 기업물도 아닌, 그 어디선가에서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는 그래서 보다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고, 다음엔 어떻게 될 것이 뻔한 그래서 정세로가 감옥에 가도, 죽음의 위기가 와도, 심지어 두 주인공이 헤어져도 다음에 예측되는 뻔한 힘이 떨어지는 이야기에 기인한 바는 가장 크다 할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곁들여, 시청자들은 뻔히 아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모른채 고민하고 고뇌하는 방식의 진부한 전개, 복수를 한다 하면서도, 신파적 감상주의에 휘감싸여있는 두 주인공을 견디어 내기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트렌디해졌달까. 나와 내 가족을 망가뜨린 사람과 기업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도한다고 다 <비밀>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랴, 그 하는 과정과 사람의 문제라는 걸, <태양은 가득히>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태양은 가득히>가 낮은 시청률로 종영하게 됨으로써 공중파 드라마의 고민은 깊어졌다. 시청률 집계 산정의 근거 자체가 신빙성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는 판국에, <태양은 가득히>의 시청률만은 문제 삼는 건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화제성에 있어서 조차, 아직도 그 드라마가 하고 있느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라면 분명 재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더구나, jtbc의 <밀회>처럼 명확한 주시청층을 타겟으로 한 드라마들이 만들어 지는 상황에서, 세 개의 공중파 드라마의 경쟁 속에서 균분 분할이 아니라, 몰아가는 시청률의 분포에서 공중파의 선택은 더 신중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신중함의 근거는, 어디선가 본듯한 드라마의 재탕은 결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에 있어야 한다. 시청률이 1위를 하지 않더라도, 매주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신의 선물>처럼, 신선한 시도와 기획만이, 치욕스런 종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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