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 발기는 고통(호열자 虎裂刺)'이라 하여 '콜레라'라 국민적 재앙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위생'이 국가적 화두가 된 이래, 어느틈에 다수의 '怪疾'들은 의료적 치료 대상으로 해명, 극복되었다. 하지만, 이런 각종 전염병들이 물러간 자리에, 국민 건강의 증진이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그 예전에 고통받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병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한 사회를 둘러싼 질병은 그 시대의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한병철은 그의 책 [피로사회]를 통해, 현대인은 우울증과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 경계성 성격 장애, 소진 증후군 등 각종 신경증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면역학적 시대를 뛰어넘는 각종 질병들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스스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사회적으로 싸워야 할 주적이 희미해진 세상, 사람들은 이제 '자아'와 맞서 싸운다. '강제'와 '금지'가 횡행하던 규율 사회에서, 이제 '되어야 한다'라는 사회적 명령을 내재화한 사람들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다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만다. '자아를 극대화'하기 위해 싸우다 사람들은 지쳐 쓰러진다. 




자신과 싸우다 쓰러져 간 '성취 사회' 사람들을 위한 위로 
드라마 리뷰를 쓴다 해놓고 이 장황한 현대 사회 질병에 대한 담론이 웬말인가?
하지만 최근 범람하다시피 하고 있는 드라마 속 '정신병'적 증후군에 시달린 주인공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자기 자신과 싸우다 쓰러진 현대인들'의 자화상에 대한 기본적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과 싸우다 쓰러진 주인공의 극강 캐릭터가 나타났다. '지킬 앤 하이드'의 두 개의 인격은 웃음거리로 만들고 만 자그마치 7개의 인격이다. 20부작 <킬미 힐미>의 과정은, 차도현(지성 분)이라는 인물을 분열시킨 7개의 인격에 대한 유래와 치유의 과정을 다룬다. 

20부 커다란 곰 인형 '나나'라고 알려진 차도현의 또 다른 인격, 그 정체가 밝혀진다. 바로 그 커다란 곰 인형 뒤에 몸을 숨겼던 어린 시절 차도현, 지금의 오리진(황정음 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들어간 승진가, 그곳에서 지금의 차도현이 마주친 것은 그의 어린 인격으로는 견뎌낼 수 없었던 어른들이 만들어 낸 부조리한 현실이었다. 
할아버지는 기업을 살리지 위해 남의 자식을 키우는 며느리의 자식마저 내 손주라 속이며 며느리를 승진가로 데려온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유롭게 살다 아내의 닥달에 못이겨 초등학교에 갈 아들을 데리고 마지못해 승진가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버지와 아내의 협잡에 분노하며 그 분노를 아내가 데리고 온 딸에게 푼다. 심지어 아버지는 자신의 사촌 동생이 아버지와 아내를 죽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암묵적으로 묵인한 채 승진 그룹을 넘겨 받고자 하였다. 
자신들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 그 어른들이 벌이는 사건의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얹힌다. 아버지는 아내가 데리고 온 진짜 차도현을 학대했고, 지금의 차도현은 그 어린 차도현을 학대하는 과정의 방관자이자, 또 다른 피해자였다. 어른들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분열, 망각뿐이었다. 

그래서 차도현은 그 사건의 모든 것을 자신의 인격으로 감내한다. 그의 인격은 파멸한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어린 자신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견뎌내기 위한 것이었으며,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또 다른 어린 차도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억을 잃은 어린 차도현 대신, 그 기억을 나나를 통해 봉인했고, 그 어린 나나를 지키기 위해 '신세기'란 폭력적 자아를 탄생시켰다. 또한 승진가에 들어와 변한 아버지가 아닌 아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낚시를 다니고 싶어하던 자유로웠던 아버지를 '페리박'으로 기억해 두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차도현이 유일하게 기대고 싶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조차 '미스터 x'라는 존재로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이런 자아 분열은 그런 자신을 용인하지 못해,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요섭'이란 부정적 존재를,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이자, 삶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집착을 '요나'를 통해 낳게 된 것이다. 이렇게 차도현이 어린 시절의 모든 고통을 분열된 7개의 인격을 통해 감내하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 오리진은 그것을 '망각'하는 방식을 통해 고통을 지운다. 

잊거나 분열하거나, 차도현과 오리진이 받은 고통은 상징적이다. 어른들이 저질러 놓은 부조리한 세상, 바로 지금의 현재를 사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기성 세대의 모습 그 자체이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것쯤이야 예사로 여겼던 어른들, 그들은 '승진 그룹'처럼 물질적 유산을 젊은 세대들에게 남겨 주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해 분열한 젊은 세대를 낳는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물질적 부의 세상에서 자신들처럼, '성취'하고 또 '성취'하며 살라며 '끊임없이' 훈육해 왔다.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딸로 고립되어, 자신의 '성취'를 위해 싸우는 개인들은, 그 속에서 느끼는 절망과 막막함을 내재화한 채, 차도현처럼 분열한다. '미치겠네', '돌겠네'가 일상어가 된 세상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성취를 향해 홀로 싸우다, 홀로 쓰러진다. 바로 그렇게 외상은 없어도 지치고 고통받는 고립된 '자아'들을 위한 '치유'의 과정이 <킬미힐미>였기에 이에 공감을 하는 젊은이들은 이 드라마에 환호한다. 그리고, 19, 20부 하나씩 사라져가는 인격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이 그저, 병증이 아니라, 고통의 흔적이었음을, 또 다른 자아였음을 그 누구보다 공감하기에.



보편적 공감은 아니지만, '인생 드라마'가 된 짙은 공감
지성의 화려한 열연에 힘입어 화제가 되었던 <킬미 힐미>가 중장년층의 시선을 사로잡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발목을 잡혀 수목 드라마 2위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암만해도 '피로 사회 증후군의 드라마화에 있어 공감의 온도를 보편적으로 나누기엔 역시나 역부족인 측면이 있었던 듯 싶다. 하지만 되돌아 보면, <킬미힐미> 만큼 화제가 되었던 역시나 정신병적 증후군을 다루었던 <괜찮아 사랑이야>의 경우도 마지막 회 2회 정도를 제외하고는 내내 10% 미만의 시청률을 답보했던 것을 보면, 단지 이것이 드라마적 재미나 흥미로만 국한 할 수 없는 시청층의 인식론적 한계라고도 보여진다. 드라마에 공감하는 누군가는 '인생 드라마'라고 칭하며 눈물을 흘리며 칭송하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어떤 재미도 찾을 수 없어 멀뚱멀뚱하다 다른 드라마로 눈을 돌리는, 사회적 공감대의 양극화의 단면을 <킬미힐미>에서 다시 한번 찾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킬미힐미>의 역성을 들 수 없는 아쉬움도 남는다. 
7개의 인격의 화려한 변주를 벌인 드라마였지만, 정작 20부의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데 있어, 주인공의 인격의 변주 말고는 이렇다할 극적인 스토리라인이 부족했다. 결국 어린 시절 승진가 지하실에서 벌어진 아동 학대 사건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끌고 가기에는 20는 좀 버거운 분량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오히려, 16부, 아니 그 보다도 조금 더 타이트하게 드라마를 이끌어 갔다면 조금 더 여운있는 명작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최근 20부작 드라마의 한계를 다시금 짚어보게 한다. 

그러나 20부작의 무리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약점 또한 있다. 일찌기 진수완 작가의 전작 '<해를 품은 달>에서 무시무시한 캐릭터로 각인되었던 김영애씨는 역시나 <해를 품은 달>의 대비마마 격인 승진 그룹의 대표로 등장했지만 이렇다할 호연의 기억은 없다. 어디 그뿐인가, 주인공 지성이 7개의 인격의 변주를 화려하게 보이는 동안,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단선적인 캐릭터로 뻔한 갈등만을 야기하다 퇴장하고 만다. 20부라는 장구한 시간에, 이렇다할 조연들의 변주가 없다보니, 드라마가 더 단조롭고 뻔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내 주인공들만 울고 웃다 끝나는 느낌이 들고, 안봐도 뻔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것들을 아버지와, 자신의 친구, 그리고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자아로 분열했던 착한 아이 차도현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그게 그저 드라마 속 한 인물이 아니라, 도무지 숨 쉴틈도 없이 공부하라며 닥달하는 어른들, 그리고 공부를 다했으니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라며 다시 재촉하는 어른들, 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어떻게든 열심히 견뎌보라는 요즘 '아이들'의 자화상인거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또 다른 자아들인 7개의 인격이 퇴장하는 장면 하나하나에 눈물이 난다. 그들이 아픔을 어떻게든 견뎌보려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었기에.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맞서 견디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신세기의 협박처럼, 고통스러웠던 기억이지만 맞서 싸울 수 용기를 북독아 준 것 같아, 좋은 친구가 하나 생긴 듯 든든하다. 

무리한, 아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그 무모함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을 어루만지고자 했던 <킬미힐미>, 그 노력과 수고에 감사를 보낸다. 

by meditator 2015. 3. 13. 10:08

공교롭게도 mbc와 sbs의 수목 미니 시리즈에는 다중인격 장애를 지닌 재벌남들이 등장하여 경쟁을 벌이고 있다. sbs 의 <하이드 지킬 나>의 웹툰 원작가인 이충호 작가가 표절을 주장하고 나설 만큼, 두 드라마는 동일하게, 다중인격, 정확하게는 해리성 인격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지닌, 그러면서도 재벌가의 자제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충호 작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킬미 힐미>가 앞서 시작한 선점 효과에 더해, 자그만치 7중 인격의 캐릭터를 앞세워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반해, <하이드 지킬 나>의 경우, 현빈, 한지민 등 스타를 앞세워 화제몰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첫 방을 선보인 후, 상대적으로 밋밋한 캐릭터와 연기로 인해, 동시간대 꼴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1위를 하거나, 꼴찌를 하거나, 결국 공중파의 수목 드라마는 세 개 중, 두 개가 이상 인격을 가진 재벌남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킬미 힐미>건, <하이드 지킬 나>건 채널을 돌리다 문득, 왜 우리가 이런 정신 이상 재벌남 이야기나 보고 있어야 하는가? 란 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공중파만이 아니다. 미생의 후속 작품으로 tvn에서 한참 방영 중에 있는 <하트 투하트> 역시 외관상으로는 정신과 의사인 남자 주인공 고이석(천정명 분)이 대인기피증 차홍도(최강희 분)를 치료하는 듯 보이지만, 기실 들여다 보면, 차홍도가 없으면 환자 조차 치료할 수 없는 고이석의 정신적 문제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고이석 역시 직업은 정신과 의사이지만, 자전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고상규 회장의 단 하나뿐인 손자라는 점에서, 이른바 재벌가 남주의 계보를 잇는다.

 

드라마 킬미힐미 인기. 킬미힐미 황정음과 지성이 계약을 맺고 함께 살게 됐다. /MBC 킬미힐미 방송화면 캡처

the fact

 

여심을 흔드는 재벌가 남주의 등장은, 이미 로맨틱 코미디를 비롯하여 여성들을 주시청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는 빼놓을 없는 설정이 되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트렘펫을 불며, 거기에 매너까지 완벽했던 강풍호(차인표 분)라는 캐릭터를 통해 신출내기 차인표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1994년작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만 해도 재벌가 남주는 가난한 여성을 위해 준비된 키다리 아저씨였다. 그러던 것이, <하이드 지킬 나>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빈의 히트작이 된 2010 <시크릿 가든>에 들어서면, 재벌가 남주는 가진 것은 많되 '찌질하기' 이를데 없는 보살펴 주어야 하는 캐릭터로 변모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주군의 태양>의 주중원(소지섭 분)을 거치며 정신적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아예 대놓고 해리성 장애라는 반사회적 정신적 증후군의 환자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그런 해리성 장애를 가진 주인공에 대한 반응이 갈린다. 원작 <지킬앤 하이드>를 전복시킨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손을 물고, 자신을 쫓아오는 여주인공을 엘리베이터에서 밀어버리는 싸가지 없는 행동으로, 비도덕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여, 원성을 사는 것과 달리,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재벌가의 불우한 혼외 자식으로 뒤늦게 재벌가에 입성한 사연에, 기억을 잃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감당키 힘든 7인격을 만들어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애처로운 존재로 대접받는다.

구서진이 '땅콩 회항'의 주인공인 모 재벌가 자제의행동을 연상케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비난을 사는 반면, 차도현은 극중에서도 그를 설명하는 단어로, 책임감이란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만큼, 자신은 물론, 자신의 나머지 인격에 대한 뒤치닥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존재로 설정한다.

 

하지만 실제 '땅콩 회항' 사건이, 물론 그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할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건에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 정작 어쩌면 더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정치적 사안들이 물에 물 탄 듯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처럼, 그저 구서진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불쾌감으로, 혹은 차도현이란 캐릭터에 대한 연민으로, 실은 구서진이나, 차도현이나, 한 기업의 중요한 직책을 맡기에는 심각한 결격 사유를 가진 인물이란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해리성 장애'는 정신과 질병 중에서도 중증 질환으로, 과연 이런 질환을 가진 인물이, 한 기업, 놀이 동산이나, 엔터테인먼트라는 공익적 성격이 농후한 사업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 드라마는 전혀 반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가, 책임감있는가라는 그 일개인의 자질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가 분분할 뿐, 기본적으로 그 기업이 가진 본질적 전횡과, 부조리에는 무감각하듯이 말이다. <하트 투 하트>에서는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고이석은 차홍도를 대동한 채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을 재연한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드라마 속에서 재벌이라는 조건에서 용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하겠다. 차라리 주말 드라마의 부도덕한 그래서, 지탄받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등장하는 재벌들이 더 현실감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런 공적 직함을 가질 수 없는 재벌남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들이다.

<하이드 지킬 나>의 여주인공 장하나(한지민 분)는 서진의 전속 테마 파크에 소속된 서커스단의 단장이자, 배우이다. 하지만, 첫 회, 당장 구서진에 의해 서커스단의 해체를 통보받는다.

<킬미힐미>의 여주인공 오리진은 정신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이다. 하지만, 차도현의 승진그룹의 입김으로 6개월 휴직 처리를 당한다.

<하트 투 하트>의 차홍도는 어떤가, 대인기피증 치료를 위해 고이석을 찾아간 환자이다.

드라마 속 그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을'이다. 하지만, 을인 그녀들은, 을로써의 불이익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갑'인 남자 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질 예정이다. 심지어,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보듬어 주고, 감싸안아주고, 치유해 줄 예정이다. 정신과 의사인 <킬미힐미>의 오리진이야 그렇다 치고, 서커스단을 이끄는 장하나와, 사람만 만나면 얼굴이 빨개지는 차홍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런 갑을 관계를, 을의 정신적 우위, 도덕적 우위를 통해 설명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 '을'로써의 분노와, 저항을 해야 할 존재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갑을 보다듬어 주고, 치유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들로 인해 상처받고, 치유되어야 할 존재들이, 오히려 저들을 치유하는 존재로 등장하니, 제 아무리 '사랑'이야기라지만, '을'인 그녀들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이건 뭐, '계급 화해'라기에도 무색한 퍼주기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드라마는, 재벌이라는 캐릭터, 혹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을 넘어, 정신적으로 혼돈스런 세상에서 여전히 순수한 그 어떤 사랑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대상이, 재벌, 그것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재벌을, 을의 위치의 여성들이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이 전형적 구도는, 청년 실업이 짖누르는 21세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도 허황한 설정이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1. 30. 06:33

mbc 수목 드라마로 새로 시작된 <킬미힐미>는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곱 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라는 난해한 캐릭터로 인해, 전작인 <미스터 백>이 중반을 향하도록 캐스팅이 결정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모 배우의 경우, 기사까지 난 후임에도 결정을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구원투수로 지성이 남자 주인공 차도현 역을 맡게 되었고, 그의 파트너로, 이미 드라마 <비밀>을 통해 멋진 앙상블을 선보였던 황정음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됨으로써 <킬미힐미>는 지난한 캐스팅의 장벽을 넘게 되었다. 하지만, 우려도 있었다. 전작 <비밀>에서 조미혁과 강유정으로 치명적 사랑을 선보였던 두 사람이 과연 전작 캐릭터의 그늘을 지울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2회를 마친, <킬미힐미>에서, 도무지 <비밀>의 조민혁과 강유정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다.

 

<킬미힐미> 이것이 궁금해! 지성이 앓는 정신병 'DID'란? 이미지-3

 

대를 이어 불운한 사고를 당한 재벌 집의 손자인 도현은, 5개 국어를 장착한 엘리트에, 운동까지 잘하는 능력자인 승진 그룹의 승계 순위 1위의 인물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재벌에 대한 선입관과 다르게 그는, 말끝마다 '괜찮습니까?'를 덧붙이는 친절하고 세심한 사내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는, 숨겨진 또 다른 여러 자아들이 있다. 첫 회, 그가 같은 학교 친구를 찾아간 곳에서 그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과정에서 뛰어나온 인격은, 신세기, 샌님같은 차도현과는 정반대로, 온몸에 문신을 드리우고, 스모키한 눈매에 자신을 때린 학우의 아버지를 '눈에는 눈'식으로 때려 눕히고야 마는, 야성남이다.

 

반듯한 모범생같은 주인공의 또 다른 인격 야성남, 여기까지는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다. 극중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등장한, '지킬앤 하이드'의 양 극단의 캐릭터가 그러하고, 가깝게는, 미드 <닥터 제이슨>의 설정과 흡사하다. 더구나, 주인공을 제치고, 스스로 자신이 주인격의 자리를 넘보며, 그를 통제하고자 하고, 그의 첫 사랑조차 손에 넣으려는 설정은, <닥터 제이슨>의 그것을 거의 빼다 박은 듯하다. 게다가 밤의 사나이로, 가죽 잠바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거침없이 거리를 질주하며, 열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섹슈얼'한 캐릭터는 또 어떻고. 그저, 신경 외과 의사 닥터 제이슨과, 그의 또 다른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인격 '이안 프라이스'의 미드를 우리식 로코로 둔갑한 것이 <킬미힐미>가 아닐까란 우려가 들만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킬미 힐미>는 차도현과 신세기가 '지킬앤 하이드'와 비슷하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논하더니, 2회 마지막, 가죽 잠바를 찾기 위해 볼모로 잡힌 오리진(황정음 분)을 위해, 얻어 맞으며 불러 내려던 신세기 대신, 여수 사투리를 걸쭉하게 내뱉는 페리 박이 등장하면서, 전혀 새로운 궤도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반듯한 차도현과, 거친 신세기까지는 그렇다치고, 어쩐지 경박한 여수 사투리를 쓰며 등장한 페리 박에 이르르면, 왜 이 드라마가,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었음에도 선뜻 남주 주인공이 결정되기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페리 박뿐인가, 안요섭에, 미지의 인물 x에, 심지어 여성 캐릭터 안요나에 7살 나나까지, 대기중인 캐릭터가 네 명이나 더 남았고, 개성이 강한 그들을 온전히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연기력으로 커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많은 타 배우들이 지레 물러서고, 결국 그 몫이 배우 지성에게 떨어진 것이, <킬미힐미>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입자에서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 되었다는 것을, 단 2회만에, 그것도 페리박의 경우, 단 한 장면만으로도, 증명해내었다. 남은 네 인격의 등장이 기다려 질 만큼.

지성만이 아니다. 제작 발표회에서, 지성이 화려한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말에 어울리게, 여주인공 황정음 역시, <비밀>의 강유정이 떠올려지지 않는, 오리진 그 자체이다.

황정음만이 아니라, 그 외의 인물 면면이,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적재 적소의 캐스팅으로,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물론, <킬미힐미>가 지금까지 선보인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재벌가의 부의 승계를 둘러싼 암투와, 갈등이, 드라마의 주된 줄기를 이룬다. 하지만 뻔한 재벌가의 이야기임에도, 재벌가의 승계 순위 1위의 남자 주인공의 변주만으로도, 드라마는 전혀 새로운 색채를 띤다. 게다가, 그가 가진 일곱 인격의 사연과 상관 관계가, 흔한 재벌가의 암투를 넘어선, <킬미힐미>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그리고 이미 신세기가 선언하듯이, 주인격을 둘러싼 여타 인격들의 살벌한 한 판, 그리고 그를 통한 '힐링'이 새로운 이야기로 이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5. 1. 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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