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없다. 50여분의 시간 동안 세 쌍의 노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고즈넉히 담는다. 별 다른 사건도 없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밥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 다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별 다른 일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머쓱해 온다. 사람사는게 저런 건가 싶어 허무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저렇게 함께 친구처럼 나이 들어 가는게 복인가 싶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아름답지만 쓸쓸한 노년의 부부 이야기, <추석 특집 백년해로 참 고마운 당신>이다.
<추석 특집 백년해로 참 고마운 당신>에는 세 쌍의 노부부가 등장한다.
첫번 째 부부는 강원도 강릉 성산면에 사는 70년을 살면서도 한번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동갑내기 심재은(88) 할아버지, 탄용문(88)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는 부부의 삶은 싱겁기 이를데 없다.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본 적 없으며 부부 싸움 한번 한적 없는 이유가 오로지 할머니가 매사에 다 할아버지 뜻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할머니의 해석에, 할아버지는 당신만의 결혼관으로 동문서답한다. 요즘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살다 좋아하는 맘이 없으면 헤어지는데, 그게 말이되냐고, 부부란게 좋든 싫던 그저 함께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대신 혼자 논에 나간 할아버지는 말한다. 땅 한뙈기 없는 자신에게 시집와서, 이 정도의 일가를 이루도록 함께 살아내기 까지 할머니가 참 고생했다고. 그런 할아버지 맘은 할머니를 애써 불러 앉으라며 마련한 마당 한 구석의 비치 파라솔과 테이블로 드러난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할아버지 맘은, 어설픈 비치 파라솔 구색이 뒤집어지듯 아직은 할머니에게 닿기엔 어색하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랑 결혼하겠다는 할머니 역시 그런 할아버지의 검버섯이 핀 늙은 등에 지청구 하며 약을 바르는 것과, 늙은 나이에 여전히 일 욕심을 부리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으로 사랑 표현을 대신한다. 평생 쓰신 할머니의 일기에는 늘 할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가 손수 쓰신 자서전에는 할머니와의 사연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노부부는 기록으로, 기억으로, 그리고 이제 역사가 되어 함께 한다.
(사진; 연합뉴스)
카메라가 두번 째로 시선을 돌린 곳은 충북 옥천군의 시골 마을이다. 그곳에선 아침 댓바람부터 94세의 차상육 할아버지의 91세 이복례 할머니 찾기가 한참이다. 집 마당에서부터 시작하여, 논으로,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결국 경로당에서 할머니를 찾아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한다. 이유가 있다. 얼마전 부터 할머니가 치매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를 이유로 대지 않아도, 할아버지는 평생 할머니에게 자상한 남편이었다. 역시나 부부 싸움 한번 하지 않았으며, 욕 한 자락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할머니는 자랑이다. 그 덕인지, 치매 증상이 나타난지 몇 년이 지났지만, 가끔 할아버지랑 먹으려고 맛난 걸 장농 속에 숨겨놓고 잊은 등 건망증 말고는 이렇다할 징후가 없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뇌에 좋다는 호두를 잔뜩 사와서는 할머니에게 깨준다. 호두 알을 손에 한 움큼 쥐어주고 이걸 먹어야 기억도 좋아지고, 망령도 나지 않는다며.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찾아간 곳은 경남 하동군 지리산 자락의 외딴 집이다. 이종수(94)할아버지가 없으면 무섭다는 김순규(93)할머니는 저녁밥을 준비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엌 문 앞을 떠나지 않는다. 모처럼 찾은 막내딸은 이들 노부부의 삶을 소꿉장난이라 표현한다. 평생을 아내의 봉사를 받은 남편, 깡보리 도시락을 싸서, 수천 평의 콩밭, 팥밥을 일구며 허리 한번 펼 사이도 없이 살았던 이 부부는, 노년에, 남편보다 먼저 기력이 쇠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밥을 지어 바치는 일상을 지내고 있다. 자식들이 산을 내려오라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젖는다. 어머니 밥 해줄 기력이 남아있을 때까지만 산에 머물겠노라고. 밥 한 술 뜬 부부는 그것도 힘들었는지 툇마루에 마주 보며 쓰러지듯 잠을 청한다. 다음 날 기력이 쇠해 일어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할머니 밥해줄 시간이 그리 길게 남아 보이지 않는다.
노년의 삶은 고즈넉하다 못해 쓸쓸하다. 계절이 젊다는 차상육 할아버지 말에, 이복례 할머니는 그 젊은 계절도 곧 늙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말을 덧붙인다. 늙어도 내년이면 다시 젊어질 것이라고, 할머니는 쓸쓸하게 답한다. 계절은 젊어져도, 사람은 늙어지면 그뿐이라고. 아기같은 웃음을 짓는 김순규 할머니도 말한다. 꽃도, 사람도 한 철이라고. 시인의 비유보다, 한 평생을 살아낸 노인들의 비유 속의 삶은, 더 진솔하다. 그분들이, 바로 그 계절에 빗댄, 꽃에 빗대어진 짦은 생을 거의 살아낸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없어 몸을 재산으로 한 평생을 살아, 굽은 등에, 갈고리 같은 손에, 닳은 손톱을 가진 노인들은, 자연의 부분 같다. 부부란 이름으로 살아낸 그분들의 인생은, 도회에서 아우성거리며 사랑을 논하는 우리네 인생과는 류가 달라 보인다. '가난'이라는, 혹은 그저 '삶'이라는 지게를 함께 지어왔던 동반자일 뿐. 하지만, 그런 노목같은 부부들도, 남편이 만들어 준 나무 비녀를 꼿으며 없는 자신의 머리숱을 부끄러워 하는 할머니에 이르면, 그래도 다시 태어나도 남편이랑 결혼하겠다는 새색시같은 미소를 띠는 할머니에 이르면, 갓 결혼한 신혼 부부 저리 가라하는 '사랑'이 느껴진다.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십년을 살기도 버거운 남남이, 육십 년을 해로하면, 저렇게 은근해 지는 것인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저 이젠 할아버지, 할머니인 그분들이지만, 우리가 보기엔 친구같은 그분들이, 여전히 남편으로, 아내로 손을 맞잡고 그분들에게 남겨진 삶의 행로를 충실히 마무리하고자 하신다.
십대의 나이에 부부로 연을 맺어 60년의 세월 이상을 함께 한 세 부부를 조명한, <추석 특집 백년해로 참 고마운 당신>은 기묘하다. 굳이 전통의 삶을 논하지 않고, 그저 90이 넘은 노부부의 일상을 돌아보는데, 새삼,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사랑'이라는 변덕이 죽끓는 듯한 감정을 넘어, 일가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남은 세월을 견뎌 가야 하는가,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 많은 것들을, 50여분의 짦은 담담한 다큐를 통해 무수히 물어본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