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좀 좋아해 주시지, 사람 속 다 태워버리고....."

한때 김광석과 함께 동물원의 멤버였던, 그리고 아직도 동물원의 김창기로 남은 김창기, 옆에 있어줄 친구가 필요하다고 뒤늦게 '광석이에게'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김창기가 인터뷰 말미에 속내를 비추다 끝을 맺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김광석을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그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김창기의 저 말과 비슷한 감정이 살짝 밀고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에 둔중한 부채감마저 얹어진다. 나 역시 그랬다. 화려한 댄스 음악이 텔레비젼 화면을 메울 때 거기에 초라하게 구석을 차지하던 김광석을 보고, 저렇게 한 사람의 시대가 가는구나 하고 쉽게 단정지으며 외면해 버렸다. 현란한 새 음악의 조류에 눈과 귀를 빼앗겨 버렸었다. 바로 그의 속을 태워버린 일인이다. 쉽게 그의 노래가 좋다라고 말하기 미안하다. 미안해 하면서도 자꾸 그의 노래를 읊조린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그렇게 유행에 홀려 그의 노래를 외면한 대중 덕분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 그는 가고, 여전히 그의 노래는 불리운다. 
그의 노래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만 3편, 그리고 그 작품들이 다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오디션 프로에서는 하도 많이 들고 나와서 이젠 암묵적 금지곡이 되었을 정도요,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란다. 그는 가고,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남아있다. 
그리고 <mbc스페셜>은 외국에서 살다온 젊은 가수 존박을 내세워 이제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가는 '김광석'을 조명한다. 

평론가 임진모는 김광석을 9번 타자라고, 더 이상은 다음 타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9번 타자, 황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노래 부르는 마지막 가수라고  단정짓는다. 더 이상 다음 타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9번 타자 김광석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꼭 그와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나지 않은 존박임에도 김광석의 노래가 좋단다. 존박은 약과다. 빅마마의 멤버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프랑스 남편도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외국인이 들으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슬퍼지는 노래란다. 김광석만이 표현할 수 있는 '한'이 있다고 정의내린다. 
친구였던 박학기는 하회탈같던 김광석의 웃음을 기억해 내며, 그는 늘상 웃었고, 웃었는데도 슬퍼보였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웃음 속에도 남아있는 슬픔이 바로 그의 노래의 '한'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와 함께 그룹 동물원을 했던 김창기는 당시 동물원의 노래를,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를 보통 사람들의 보잘 것업는 일상, 서글픈 상념을 공유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보통 사람들의, 바로 자신의  보잘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통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 운동을 하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에서 활동하기 했던 김광석이기에, 평론가 강헌씨의 말대로, 그의 노래에 '스트레이트'한 운동적 이념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더라도 '시대성'을 노래하는 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중략)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물론 90년대 초반 서태지 등이 대중 가요 시장을 장악하며 tv에서 그를 마주치기는 점점 힘들어 졌다. 친구 박학기의 말대로 그의 노래는 패셔너블하지 않기에 유행가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 가슴에 푹 들어오는, 삶의 고개마다 만날 수 있는 진실한 울림이다. 
뮤지컬 <그날들>을 만든 감독 장유정은 김광석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드는 작업이 흡사 잘 만든 영화의 속편을 만드는 것처럼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청춘의 골목길에서 자신의 등을 두드려 주었던 그의 노래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뮤지컬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16번을 보러 온 관객들로 인해 성황이다. 그가 통키타랑 하모니카 하나로 두 시간 여의 공연을 하던, 학전 소극장 그의 부조 앞에는 아직도 종종 그가 좋아하던 술과 음식들이 놓여져 있다. '나 노래 잘하지'가 아닌, ' 내 마음 알지'라며 노래로 소통하던 김광석은 20살의 김지향이 2013 김광석 따라 부르기에 나서게 할 정도로, 존박과 같은 젊은이도 듣고만 있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한 위로가 되고 있다. 

바람이 불어 오는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길 그길에 서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 오는곳 그곳으로 가네

1996년 33세의 나이로 김광석은 생을 마쳤다. 그와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반백이 되어 그를 회고하는 지금에서 되돌아 보면, 참 '젊은(?) '나이다. 2013년의 대표적 문화 콘텐츠가 되었고, 여전히 그의 노래가 많이 불리는지 그는 알까. 
19일 <굿닥터>에서는 하늘나라가 있는지 유뮤를 두고 현실적인 김도한 선생과, 아이같은 박시온의 대립(?)이 있었다. 그렇다. 나이가 든 나에게 현실은 김도한 선생의 하늘 나라 따위는 없어 이지만, 더 이상 내가 설 자리는 없어 하고 몸을 날린 김광석을 생각한다면, 박시온 선생 말처럼 하늘나라에 닿는 마음의 문이 있어, 김광석이 하늘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by meditator 2013. 8. 20. 10:14

박근형 할배는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신구 할배에 이어 지난 주 먼저 <꽃보다 할배>의 여행에서 빠져 나왔다. 마지막 방송분에서 지금까지의 출연 소감을 붇는 제작진에게 수십년의 연기 생활을 해온 박근형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늘 근엄하고 위압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데, 형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풀어져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이 너무 드러나, 다음에 연기를 할 때 사람들이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70이 넘은 노익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박근형 옹의 고뇌는 그가 해온 연기의 세월의 무게를 더해 진중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박근형 옹의 고민이 기우가 될 만큼 요즘의 대세는 기존에 쌓여진 자신의 이미지를 부숴가며 스스럼없이 속내를 보여줘야 환영을 받는 시절이다. 물론 꼭 그 스스럼없는 속내가 망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사나이>의 멤버들은 고된 훈련 속에서도 변치않는 순수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나, 노래 이미지와 다른 자상한 아빠의 마음으로 사랑받고 있으니까.

바로 그런 이 시대 대중들이 연예인에게 바라는 진솔한 속내라는 갈증의 지점에, <방송의 적>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겨난다. <방송의 적>은 이적과 존박이라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좀 있어보이는 뮤지션 두 사람을 데려다, 이적은 여자밖에 모르는 철면피에, 존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보를 만들어 버린 리얼리티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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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라는 단어가 이미 그 이름에서 부터 논리적 모순을 담고 있는 것처럼, <방송의 적>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존의 이적과 존박의 이미지를, 마치 잘 빗질된 머리를 보면 한번 엉크려 뜨리고 싶은 사람들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뒤틀어 보인다. 분명 그것 역시 쇼이지만, <방송의 적>을 통해 보여진 모습이 너무도 또한 그럴 듯하다보니, 사람들은 거기서 만들어진 이적과 존박을 <방송의 적> 1회 이용권이 아니라, 자유이용권 정도로 활용하고 싶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본인조차 생뚱맞아 한 이적의 <힐링 캠프> 출연이요, 존박의 '예능 대세론'이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은 결국 만들어진 세트를 탈출하는 감동 드라마를 보여주었지만, <방송의 적>이 이 모든 것이 결국 이적의 '일장야몽(一長夜夢)'이었음을 보여주었음에도 여전히 시청자들은 <방송의 적>의 존박과 이적을 '리얼'로 소비하고자 한다. 

<방송의 적> 마지막 회 존박은 그 예의 태연한 얼굴로 말한다. '자신의 신곡 순위는 자꾸 떨어지는데, 예능 섭외는 물밀듯이 들어온다'고.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박은 <무한도전> 예능 기대주 특집에 나와 한껏 웃음을 주었고, 지지부진하던 <우리동네 예체능>조차 화제의 중심에 오르게 만들었다. 
시쳇말로 잘 될 때는 그가 그저 숨만 쉬어도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처럼, 이제 존박이 나와서 눈만 멀뚱하니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청자들을 떼굴떼굴 굴러갈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에서 존박 방송분의 상당 양이 그렇다)
그와 함께 <슈퍼스타 K>에 출연하여 1등을 거머쥔 허각이 노래만 나오기만 하면 음원 1위는 따논 당상인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그 시절 미국 유학생 출신의 엄친아 같던 존박이 '바보', '덜덜이', '냉면 덕후' 캐릭터로 예능을 종횡무진 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런 존박의 행보에는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첫 미니 앨범을 김동률이라는 프로듀서의 색깔을 진하게 입힌 채 가지고 나왔던 존박은, 이번에 들고 나온 정규 앨범에서는 그 누구의 색깔도 아닌 존박 자신의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곡에 따라 그루브가 강하기도, 목소리가 담백해지기도 했지만, 이젠 그 누구가 떠올려지기보다는 존박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심지어 음악 방송에 출연해 부르고 있는 'baby'가 본인은 가장 오그라든다고 말할 정도로, 존박 자신은 기존에 <슈퍼스타k>의 과정에서 기획된 '말랑말랑한 발라더'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재정립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그의 예능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오랜 칩거와 고민 끝에 얻어진 또 하나의 해결책이요, 선택인 것이다. (GQ인터뷰 중)

(사진; 뉴스엔)


<방송의 적> 마지막 회 게스트 중 유희열은 예의 그 감성 변태 캐릭터로 등장해, <방송의 적> 리얼리티 쇼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화려한 여자의 힐을 들이마시고, 채찍을 즐겨 이용하며, 존박의 무릎에 걸터앉는 등, 자주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감성변태'로서의 모든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었다. 물론 유희열의 화룡점정이 무색하게 그간 이 방송을 통해 이적이 보여준 '속물'의 경지는 거의 레전드 급이다. 하지만, 유희열과 이적이 제 아무리 푼수를 떤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의 음악적 세계의 공고함을 인정받았으니까. 
하지만, 아직 존박은 미지수다. 그가 기존에 자신을 인식했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길들이, 과연 그의 음악적 영역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을지, 폄하하지 않을지는 단박에 예능 기대주가 되어버린 존박에게는 좀 버거운 과제같다. 

재미있는 놀이처럼 시작한 <방송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예능 불루칩 존박을 낳고 종영되었다. 이러다 혹시 한여름밤의 꿈처럼, 야리꾸리하면서고, 은근히 공감되었던 <방송의 적>이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진짜 <존박쇼>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by meditator 2013. 8. 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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