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중년 남성들이 텔레비젼을 보는 특징 중 하나는 어떤 프로그램도 집중해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번 마누라의 리모컨을 강탈하여 모 프로그램을 보는가 싶으면, 어느새 리모컨 사냥에 나선다. 공중파에서 종편을 거쳐, 뉴스전문 채널에서, 여행, 낚시 채널까지를 종횡무진 한 채널에 정착하기 힘들어 한다. 마누라와 아들이 깔깔깔 거리며 보고 있는 프로그램을 지그시 바라보는가 싶으면 어느새 쓴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가 십상이다. 우리집만 그런가 싶어서 하소연을 하니, 다른 아줌마들도 공감 백배인 걸 보면 일반적이란 전제를 달아도 그리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런 남편이 드라마를 다 보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는 마누라의 리모컨을 고정시킨다. 조용필이 나온다! 그리고 한 시간여, 추억을 공유한 사람만이 가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sbs스페셜- 대한민국 가수, 조용필>을 지켜본다.
(사진; sbs)
프로그램 중간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조용필은 야광봉을 흔들며 그를 '오빠'라 연호하는 팬들에게 엎드려 손을 뻗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터뷰, 조용필은 말한다.
"오빠는, 조용필의 다른 이름과도 같다"고.
그렇다, 그의 노래, <비련>의 첫 마디 가사, '기도하는~'의 다음 가사는 '꺄악!'인 것처럼, 조용필은 '오빠부대'라는 말을 처음 말들어낸 가수이다. 그의 19집 <hello>가 발매되었을 때 수그리고 있던 그의 오빠 부대들은 다시 떨치고 일어나, 조용필의 사진을 들고 앨범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그의 말대로,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조용필이라는 것을 프로그램은 여러 가수들과 평론가의 입을 빌려 증언한다.
63세의 조용필이 무려 19집 <hello>를 들고 나왔을 때, 입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행보에 대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은 '바운스'나 '헬로'를 듣고, 조용필답다라던가, 젊은 세대조차 매료시킨 능력이라던가, 혹은 조용필이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하지만 굳이 '가왕'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떼어놓고 보면, 그리고 나이를 또한 지워버리고 보면, 한 사람의 가수가 기존의 자신의 색깔과는 다른 새로운 앨벌을 들고 나와, 세간의 이슈가 된 것만으로도 어쩌면 일정 정도의 성공을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크레용 팝이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처음에 "빠빠빠'라는 곡을 들고 나왔을 때 그 낮은 지명도로 인해 음악 방송 무대에 조차 서기 힘들다가, 호불호가 갈리든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니 방송 출연의 기회가 보다 많이 주어지는 것처럼. 조용필의 19집 앨범이 조용필다웠던 그렇지 않던 젊은 세대조차 그의 노래에 대해 왈가왈부할 만큼 화제가 되다보니 sbs스페셜>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가 말이다.
(사진; tv 리포트)
하지만 <sbs스페셜>은 2013년의 조용필에 대한 논란이 1회성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이른바 '뽕짝', 트로트 장르에서 확고한 인기를 얻었던 조용필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자 드럼을 활용한 '단발머리'라는 곡을 들고 나왔던 것처럼, 이미 그는 국악, 재즈 등 특정 장
르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는 실험을 계속 해왔다는 것을 후배들과 평론가의 입을 빌어 확인해 준다.
장르만이 아니다. 그 예전에 젊은 사람들이라면,'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화려한 거리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에 공감을 얻고,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에 젊음의 다하지 못한 열정을 담아냈었다. 심지어, 시위를 하다 잡혀간 친구를 생각하며 운동가요가 아닌 '친구여~ 모습은 어디갔나~ 그리운 친구여~'를 부르기도 했었다. 머리가 희끗해진 남편이 계면쩍은 미소를 띠며 <sbs스페셜>을 지켜보는 이유 역시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던 지난 날이 떠올라서 였을 것이다.
조용필 자신이 불순한 젊은이들이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하여 수사기관에 끌려 갔었다고 증언하듯, 아니 그 증언의 협소한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당시 젊은이들이라면 사상과 노선을 가리지 않고, 조용필의 노래에 심취했었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같이한 노래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조용필은 세간에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노래와 함께 호흡해준 사람들의 삶에 천착한 노래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도 프로그램은 짚고 넘어간다. 광주 항쟁을 배경으로 한 '생명'이나, 6월 민주 항쟁을 직접적으로 그린 '서울 1987'같은 곡들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그램은 조용필의 전국 순회 마지막 공연에서 '설렘'을 부르는 조용필의 모습을 노래의 자막과 함께 담는 것으로 끝난다.
'너에게 간다. 설레임 그대로야'라고.
<sbs스페셜>은, '가왕' 조용필의 전설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보다는, 19집이 생뚱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전한 현재 진행형의 실험맨 조용필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 아직도 노래방에 가서도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자신에게 노래를 시켜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는, 노래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 조용필의 매력을 다시 확인 시킨다. 여전히 '오빠'인 그를 통해,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본질적 의미의 '청춘'을 환기시킨다. 보는 늙수그레한 시청자들조차 지레 눌려버린 나이가 무색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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