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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09 <장옥정, 사랑에 살다> 해를 품은 장옥정? 2
한 발 앞서 나간 <직장의 신>에 이어 나란히 시작한 두 편의 월화 드라마는 모두 공교롭게도 사극이다. 그 중 sbs의 사극 <장옥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조선시대 악녀의 전형인 장희빈의 그 장옥정이다. 그런데, 어라? <야왕>이 종영되기 한참전부터 그리고 시시때때로 방영되는 예고편 속의 장옥정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장희빈이 아니다.
<장옥정>의 예고편을 보는 내내 혼동을 느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야? 아니면 <해를 품은 달>의 배우만 다른 버전이야? <해를 품은 달>의 화사한 청사 초롱을 아름다운 꽃잎이 대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세자 김수현을 대신한 유아인이 첫 눈에 아름답고 당찬 연우, 아니 장옥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가지고 있고, 덧붙여, 두 사람 사이에는 역시나 권력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정쟁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예고편이니 그러려니 했다. 예고편이야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 그런데, 드디어 첫 방송, 어? 여전히 <해를 품은 달> 같은데?
물론 똑같지는 않다. 노비가 될 뻔한, 아버지를 비명횡사 죽음으로 몰고간 양반이 아닌 장옥정의 가족사는 더더욱 치명적이고 그리하여 장옥적이란 캐릭터를 극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다 자란 옥정이는 조선시대에 패션쇼를 열어 돈을 버는 전문직 여성이란다. 하지만, 마치 기본적인 옷에 장신구를 달아 그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저런 치장의 요소들을 걷어치우고 본 장옥정은 <해를 품은 달>의 구도랑 닮아도 너무 닮았다.
장래의 숙종이 될 왕은 등에 업은 권세가가 왕권을 좀먹어 가는 것에 분노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해를 품은 달>의 양명처럼 벗과 같은 왕족 동평군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역시나 사랑을 두고 이해가 엇갈릴 듯하다. 권세가와 이해를 같이 한 모후는 세자와 인현왕후와의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만 역시나 운명은 세자와 장옥정을 만나게 하고, 첫 눈에 설레이게 된 이 두사람은 알고보니 어릴 적 사연까지 있단다. 인현과의 만남이 엇갈린 것을 안 모후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분노는, 그리고 권력을 둘러싼 가문 간의 이해타산은 <해를 품은 달>에서 처럼 장옥정을 비극의 길로 인도 할 것이다. 아마도 추측컨대, 단지 다를 것이 있다면, <해를 품은 달>은 해피엔딩, <장옥정>은 새드 에딩이 분명할 수 밖에 없다는 거 정도?
<해를 품은 달>이 어떤 드라마인가, 시청률 40%를 넘봤던 2012년 최고의 히트 상품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 히트 상품의 모작처럼 보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들어고 싶은 마음이 왜 아니 들겠는가. 그런데, <해를 품은 달>은 훤과 연우의 권력의 피바람을 거스른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연우가 왕후가 되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 언젠가 해피 엔딩이 예정되리란 기대가 있기에 그녀의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엔 장옥정, 아니 장희빈으로 알려진 이 여인에 대해 시청자들의 선입관이 너무 강하다. 그간 장옥정을 다뤘던 드라마를 봐왔던 재미는 욕하면서 마지막까지 주다해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다 망할까 하며 <야왕>을 봐왔던 기대와 다르지 않다. 그런 시청자들의 기대를 제 2의연우로 대신 할 수 있을까?
<장옥정> 제작진 측은 야심차게 장희빈으로 알려진 여인을 재해석하겠단 포부를 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장옥정을 다뤘던 작품들의 불성실을 일갈하면서까지. 그리고 내세운 장옥정은 생뚱맞게도 조선시대의 패션디자이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여인의 상징으로 21세기의 트렌디한 직업을 내세운 것이다. 화려한 조선시대 패션쇼를 보노라니 눈호강은 되지만, 얼마전 모 드라마의 웨딩 드레스 논란처럼, 과연 역사의 재해석이라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최정미 작가의 원작을 보면, 장옥정은 권력을 탐한 희대의 요부가 아니라, 지아비인 숙종을 사랑해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낌없이 내놓은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오히려, 악역은 정략 결혼의 대상자 인현이요, 훗날 장희빈을 대신할 최귀인이다. 장옥정이란 인물을 순애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역시 또 다른 여인들은 권력의 화신이 되어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글쎄, 권력을 탐하다 왕에게 미움을 받고 사약까지 받게 된 장희빈보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은 새로운 장희빈이 새로운 해석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21세기에 어울리는 해석인지에는 의문이 간다. 오히려, 진정 이쯤이라면, 여전히 왕실의 사랑 놀음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처첩을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몇 번의 정난으로 신하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진정한 권력의 화신 숙종을 그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또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로 미화시키기엔 숙종 연간은 너무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과연 그 익숙함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사랑에 살다간 장옥정을 설득시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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