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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3 <장영실> 태종의 구식례를 통해 단번에 설득해 낸 '과학 사극' 2
고증으로부터 매우 심하게 자유로운 '퓨전 사극'이 대부분인 세상에 kbs1의 대하 사극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제 아무리 <육룡이 나르샤>의 김명민이 피를 토하듯 소리를 높여도, 2014년 50부작으로 방영된 본격 정치 사극 <정도전> 속 정도전를 따를 수는 없다. 비록 그 후속작인 <징비록>이 '임진왜란'이라는 이제는 역사극에서 진부한 소재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말 그대로 '역사'를 징계하는 입장에서, 선조를, 그리조 당시의 지배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점에선 <징비록>의 의의 또한 어설픈 퓨전 사극의 주제 의식을 뛰어넘는다. 그런 kbs1의 사극이 2016년을 맞이하여 들고 나온 것은 분야도 생소한 '과학' 사극, 우리 역사에서, 특히나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빛나는 과학 문화 유산을 남긴 주인공 장영실과 장영실이 살았던 시대를 '과학'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과학'사극,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손에 손 잡고 극장으로 향해 <인터스텔라> 등의 우주 과학 영화가 한국에만 오면 흥행을 기록한다지만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수포(수학 포기)', '과포(과학 포기)'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현재의 현실에서 단발성의 영화가 아닌 긴 흐름의 '과학'의 콜라보레이션 대하 사극은 무모한 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첫 회를 방영한 <장영실>은 정통 사극으로써의 클리셰를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거기에 낯선 '과학'이란 장르를 태종의 구식례를 통해 섦명해 냄으로써 명쾌하게 엮어간다.
출생의 비극, 그 평이한 사극의 클리셰
첫 장면 늙고 노쇄한 몸을 이끌고 벌판을 헤매는 노년의 장영실, 하늘을 보며 쓰러져간 그의 손에는 그의 말대로 그가 이루려 했던 '세상의 법칙' 혹은 '이치'를 밝혀내고자 애썼던 흔적이 들려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과학'에의 열정을 거스를 수 없었던 노학자의 집요한 열정에 대한 '물음표'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 노인의 어린 시절, '은복'이었던 시절의 장영실로 돌아간다.
그리고 뛰어노는 말을 섬세하게 조각하는 어린 은복이 등장하고, 그런 천진한 은복을 끌고, 그가 장씨 가문의 핏줄이라며 부득불 우기며 장씨 집안 제사에 들이닥치는 그의 어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은 사극에서 그래왔듯이, 기녀의 몸에서 난 이제 관노가 될, 환대받지 못한 장씨 집안 핏줄 은복의 수난사라는 사극의 클리셰가 전개된다. 사촌인 장영제가 만든 해시계에 뱀 조형물로 절기의 변화까지 더하려 했던 은복은 그의 재능을 시기한 사촌의 발고로 인해 멍석말이에 처해진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 기가 막히게 등장한 그의 아비로 추정되는 인물 장성휘(김명수 분)는 장영실을 매타작으로부터 구해줄 뿐 아니라, 장씨 집안 모두가 부인한 은복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장씨 집안 자식임을 인정하는 항렬에 따른 '영실'이란 이름마저 지어준다.
뿐만 아니라 장성휘는 고려 시대부터 천문에 조예가 깊었던 그답게 어린 영실의 재능, 그리고 자신을 쏙 빼어닮은 듯한 열정을 눈밝게 알아본다. 그리고 그런 아들에게 자신의 연구 성과인 천문도를 주고, 일식을 함께 관찰하며 그 원리를 설명해 준다.
하늘을 보기를 즐겨하고,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아비와 아들, 그리고 그 연구의 열정을 통해 부자의 연과 유대가 이어지는 장성휘, 영실 부자의 이야기는 비록 '과학'에 문외한인 시청자라 하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막상 컴퓨터 그래픽까지 등장하며 설명해 내려간 부자의 관심 분야는, 아비와 아들이 밤 하늘에 함께 그려간 별자리를 빼놓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저, 저게 당시의 '과학'이로구나, '천문'이라는 거구나 정도였다. 해시계와 거기에 절기를 더한 영실의 도발에 분노한 장영제의 모습은 그게 성리학에서 과학으로 바뀌었을 뿐 정도로 이해될 뿐이었다.
태종의 구식례를 통해 단번에 설득해낸 조선 시대의 과학
하지만 좀처럼 쉬이 섞여들지 않던 '과학'이 명쾌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영실로 인한 장씨 집안의 소동이 아니라, 그들이 살던 동래와는 한참 떨어진 개경의 이방원, 이제는 임금이 된 태종의 구식례로 부터이다. 이미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에 이어 또 한번 등장한 태종은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인물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장영실>은 그 익숙함을 진부함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과학을 설명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 절묘하게 이용한다. 즉, 이미 타 드라마를 통해 아비인 태조와 함께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한 인물, 나아가 자신의 동복, 이복 형제들을 제거하고 왕자를 차지한 태종의 전사가, 바로 <장영실>에서 이제는 왕이 되었으나 정통성에 초조한 중년의 태종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왕조가 시작되고 무려 세 명이 왕좌에 오른 1401년, 하지만 조선의 3대왕 태종은 조선 건국의 최대 공신인 정도전을 비롯하여 자신의 형제들을 죽음으로 몬, '왕자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친한 벗이었던 영실의 아비 장성휘가 태종을 다시 볼 수 없는 벗이라 칭하듯, 이미 조선을 건국할 당시부터 조정을 멀리했던 고려 유신 세력을 비롯하여,
이제는 왕자의 난을 거쳐 왕위를 쟁탈한 태종을 못마땅하게 하게 광범위한 반대 세력들이 조정 내에 조차 암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태종 자신 역시 '살기 위해서'라는 변명처럼, 형제들을 제거하고 오른 왕위 자리에 내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전제로 하여, 드라마 <장영실>은 태종의 구식례를 준비한다. 해가 잠시 가려졌다 돌아오는 일식은 당시 전통적 관습에서 하늘이 왕의 죄를 사해주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졌고 태종은 다가올 일식, 구식례를 통해 자신의 죄를 하늘이 사해줬다는 이벤트화 하려는 열망을 가졌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미 시청자들이 타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태종의 역사적 전과와, 그런 전과를 구식례라는 이벤트를 통해 뒤집으려는 태종의 정치적 제스처를 통해, 그리고 거기서 등장한 일식의 측정의 정확함에 대한 해프닝을 통해, 드라마 <장영실>은 막연했던 장씨 부자의 과학적 흥미와 열정을 조선이라는 시대적 공간에 구체적 입지를 가지도록 풀어낸다. 마치 마법사처럼, 태종의 구식례가 실패할 것이라 예언하는 영실의 아비 장성휘는, 마치 <해를 품은 달>의 성수청과 하늘의 신탁을 받은 듯한 무녀들을 연상케 한다. 그렇게 단박에 정치적 혹은 극적 개연성을 얻은 '과학'의 존재감은 구식례의 실패를 예견한 아비 장성휘와, 그 아비의 재능과 열정을 그대로 본딴 아들 장영실을 통해 흥미진진한 조선 시대의 과학사를 맞이할 자세를 시청자로 하여금 갖추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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