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2월 21일에서 22일 양 일에 걸쳐 3D특집 2부작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를 방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인생 막장에 몰린 노무사 이재구(박용우 분)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지만, 만약 좀 더 정확하게 드라마의 제목을 짓는다면,  아니 부제라도 붙인다면 '회사원 김태수(엄효섭 분) 씨의 억울한 죽음'이라고 하는 편이 어떨까? 물론 노무사 이재구의 드라마틱한 활약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보다는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회계 업무에 종사하던 김태수 씨가 영업사원으로 급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버티다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되는 우리 사회 '을'의 슬픈 자화상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무사 이재구가 맡은 김태수 사건 
8년 동안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를 거듭한 채 결국 노무사가 된 이재구,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무사 생활은 여의치 않다. 오랜 고시 실패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3년 째 별거에 이혼을 신청 중이고, 병원에 장례식장을 전전하며 '목숨값을 받아드린다'고 명함을 돌리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분노한 유족이 쏟은 육개장 국물이다. 

실의에 잠긴 그를 찾아왔던 김태수 씨를 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불법 영업으로 쫓기다 졸지에 형 동생으로 의기 투합한 이재구는 그날 밤 김태수 씨의 집에까지 함께 하며 김태수 씨의 사연을 헤아리게 된다. 

김태수 씨는 의료 기기를 파는 GB메디컬에서 회계 업무를 보던 직원이다. 하지만 20년 째 근무하던 회사는 하루 아침에 그를 사무직에서 영업직으로 발령낸다. 의료기기라는 걸 팔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이미 기존 영업 사원들이 차지하고 남은 할당을 맡아 실적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간 이재구 노무사의 충고대로, 그는 거의 드러내놓고 회사에서 나갈 것을 종용하며 견디기 힘든 일만 골라 맡기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참고 견디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새벽부터 지방으로 영업을 돌던 그는 그만 계단에서 굴러 뇌에 출혈이 생기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채 밤 늦게까지 접대를 돌다, 다시 또 다른 지방 영업을 하기 위해 가던 중 교통 사고를 내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김태수 씨가 하던 일이 반품된 의료기기를 몰래 처분하는 일이었기에 회사 측에서는 그의 지방 행을 무단 결근으로 처리한다. 당연히 그의 사고는 그 개인의 사고일 뿐이다. 억울한 아내는 집까지 왔던 노무사 이재구를 찾아가고, 만류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며 남편의 행적을 쫓는다. 

드라마 속 김태수 씨는 입사 동기였던 GB메디컬 이사의 비리를 알게 되는 바람에, 그리고 그 비리에 동조한 또 다른 입사 동기의 비리를 폭로할 수 없어서 영업직으로 좌천되고, 갖은 수모를 겪는 걸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하지만, 그런 김태수 씨의 특정한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건, 우리 사회 '을'들의 보편적인 억울한 사연들이다. 


김태수라는 개인을 넘어선 우리 사회 보편적 '을'의 이야기
하루 아침에 자신이 일하던 부서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대부분 영업직으로 쫓겨나는 것은, 말이 전출이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한 명예 퇴직 강권의 징조이다. KT의 수많은 사원들이 그렇게 졸지에 전봇대에 올라가게 되고, 전단지를 돌리기도 한다. 증권맨이 하루 아침에 이 식당 저 식당에 명함을 모으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해오던 일이 아니니 잘 할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GB메디컬 박이사로 상징되는 '갑'들은 그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 라고 말한다. 그렇게 개인의 문제로 밀어부치며 코너에 몰린 '을'들은 그래도 '가장'이란 이름 아래, 어떻게든지 그곳에서 버티려고 한다. 생전 들어보지 않은 무거운 기기를 들고, 생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굽신거리며, 생전 해보지 않은 접대를 한다. 하지만 동료들의 눈은 차갑고, 회사는 어떻게든 몰아내기 위해 더 몰아가기만 한다. 심지어, 극중 김태수 씨처럼 업무 중에 다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의 죽음값조차 아까워 갖은 편법을 통해, 개인의 죽음을 온전히 개인의 과실로 밀어부치고자 한다. 

물론 드라마는 이혼을 하고 아이까지 잃게 된 노무사 이재구가 '배수진'의 심정으로 노무사로서의 본령을 찾아 김태수 씨의 사건에 매달리고, 아내 송연희(유선 분)가 남편에 대한 중상 모략은 물론, 갖은 회유와 협박, 심지어 집에 빨간 딱지가 붙는 상황에서도 굳굳하게 남편의 죽음을 밝히고자 하는 의연함을 보였기에 김태수 씨는 죽음값이 아니라, 인생의 값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2부작의 과정 중에, 김태수라는 사람의 사고, 그리고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사측이 벌이는, 김태수 라는 개인을 무능력한 사람에서, 비리 사원으로까지 몰고가며 가족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한 사람의 '을'이 그 죽음의 과정에서 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게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노무사로 삼고 있듯이, '을'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 을이 을로써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치의 사람들이 얼마나 제 몫을 해내는가를 주목한다. 
극중 주인공 노무사 이재구는 처음 김태수 씨의 사건이 났을 때, 그의 명함에서 대놓고 '목숨값을 받아드린다'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아내 송연희에게 사측과 협상을 권유한다. 그는 그가 그간 해온 노무사 일의 과정에서 한 개인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를 몸소 체험한 결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재 보상 위원회 위원장은 의료 기기 업체인 GB메디컬 측의 회유에 손쉽게 넘어가 공적인 그의 일을 쉽게 사적 이익 아래 희생한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개인이 자신의 일을 사적 이익에 희생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2부작 <인생 추적자 이재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재구가 노무사로서 자신의 본령에 섰을 때 결국 김태수 씨의 인생을 보상받을 수 있듯이, 공적인 그들이 사리사욕을 넘어 제대로 할 일만 한다면, '갑'의 횡포를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덧붙인다. 결국 노동부의 산재 조정 위원회에서 증거도 없이 GB메디컬을 몰아가야 하는 이재구 노무사의 편에, 김태수 씨의 입사 동기였던 이성식(이기영 분) 과장이 선 것을 통해,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김태수 씨는 자신이 영업 사원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동료였던 이성식 과장을 보호하기 위해 박이사의 비리를 눈감는다. 하지만 이성식 과장은 정작 김태수 씨의 사고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자기 안위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구는 한 회사원의 산재 보상은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이 없이는 받기 힘들다며 이과장을 설득한다. 그리고 결국 이 과장은 보상 위원회에 선다. 이는 그저 드라마틱한 결말을 위한 극적 장치일 뿐이 아니다. '을'의 정당한 댓가, 정당한 대우는 결국 또 다른 '을'과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라마가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3D 특집 드라마로 특이하게도(?) 우리 사회 '을'의 억울한 위치와, 그들을 돕기 위한 공공직 노무사의 직업 윤리를 돌아본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 박용우, 안석환 등의 노무 법인 공수래의 활약은 어쩐지 단 한 번의 특집 드라마로만 보기엔 좀 아깝단 생각이 든다. 공익적 차원에서, 시청률 차치하고, 시리즈로, 아니 그게 어렵다면 시즌제로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영국의 <셜록>처럼 1년에 한 번이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 억울한 을들의 사정이야, 차고 넘치니 이야기가 고갈될 이유는 없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5. 2. 2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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