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종영한 <유혹>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에서, 주제 의식을 끌고가는 화자는 송미경(김지수 분)이다. 그녀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이 자신 외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걸 '감지'한 송미경은 나은진(한혜진 분)과 같은 쿠킹 클래스를 다니며 그녀를 지켜본다. 하지만, 송미경의 분노는, 그녀보다 한 발 빠른 동생 송민수(박서준 분)의 섣부른 복수로 일찌감치 행적이 드러나 보이고 만다. 하지만 송미경은 당당하다. 비록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가정을 꾸려왔던 남편, 자신과의 사이에 아이를 둔 아빠인 남편을 빼앗아 간 그녀를 '단죄'하는 것에. 
<따뜻한 말 한 마디>란 드라마 역시 처음 견지했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유재학과 나은진이 잠시 서로에게 '미혹'되지만,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가정이 있는 존재임을 놓지 않는다. 결국 덕분에 드라마는 흔들렸던 두 가정의 행복으로 끝난다.
그런데 만약,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가, 가정의 행복과, 안녕을 주제 의식으로 삼지 않았다면, 나은진의 자아 찾기, 사랑 찾기가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 버렸다면 어땠을까? 동시간대 1위는 아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공감가는 송미경의 처지로 인해 화제를 불어일으켰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아마도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했던 바로 그 월,화 10시에 방영된 드라마 <유혹>은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대척 지점에 있는 주제 의식을 논하고자 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치자면, 나은진이 사랑을 찾아 유재학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막장'을 피하고자, <유혹>은 여러가지 장치를 준비한다. 우선 '사랑'을 도발하는 주인공 유세영(최지우 분)는 사랑도 모른채 마흔이 넘어 조기 폐경이 오도록 회사 일에만 매달리는 ceo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녀가 홍콩에서 만난 사이좋은 차석훈(권상우 분)-나홍주(박하선 분)를 보고 알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자신은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데, 한없이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 부부부에 대해, 뜬금없이, '파멸'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세영은, 선배와 운영하던 회사의 자금으로 인해 막판으로 몰린 차석훈에게 '돈'을 매개로 한 '사랑'의 딜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보험금을 바라며 '자살'까지 감행하려던 사랑하는 아내을 생각하며, 유세영이 던진, '함께 하는 3일'의 딜에 손을 맞잡는다. 

(사진; 스포츠 투데이)

굳이 몇 달전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끄집어 낸 것은, 바로 <유혹>의 시작점에 놓인,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의식에 따른 부도덕한 계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결국 '순애보'로 마무리 지어져도 두 사람의 만남을 매개했던 '돈'으로 얽혀진 '원죄'를 <유혹>은 넘어설 수 있었을까?또한 과연 종영을 맞이한 <유혹>은 이런 부도덕했전 가정 파괴의 원죄를 극복했을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유혹>은 갖은 장치를 마련한다. 
정작 차석훈 가정을 파멸에 이를 '딜'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세영은 차석훈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그에 반해,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차석훈을 구하려 했던 나홍주는 불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나홍주의 계속되는 의심과, 그에 이은 불신은, 차석훈과의 가정을 깨는 주체를 나홍주로 만든다. 심지어 '이혼'하기도 홀가분하게 차석훈과 나홍주 사이에는 억지로 두 사람의 결혼을 이어붙어야 하는 '아이'조차도 없다. 덕분에, 홍콩에서 유세영의 딜은 그저 해프닝으로 덮어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정을 깨뜨린 유세영과, 그녀에게 미련을 놓지 못하는 차석훈에 대해 나홍주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녀 자신이 먼저 복수의 도구로, 강민우(이정진 분)의 가정을 이용한다. 나홍주가 유세영만큼, 혹은 유세영보다 더 부도덕한 길로 가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차석훈과 나홍주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다는 유세영의 '욕망'은 어느 틈에, 평생을 사랑 한번 못해 본, 그리고 이제 '암'까지 걸린 고통받는 운명의 자아 성찰이자, 순애보로 돌변한다. 

물론 유세영의 순애보의 여정도  만만치 않다. 자신을 망가뜨리며 덤벼드는 나홍주의 복수심에 손을 잡은 강민우 덕분에 유세영의 회사는 위기에 빠지고, 차석훈은 하는 일마다 태클을 받는다. 하지만, 단 한번의 유세영의 딜에,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남편을 구하려던 나홍주가 결혼을 파괴하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과 달리, 유세영은, 그런 위기 상황을 겪으며 오히려 차석훈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키워간다. 나홍주가 믿지 못했던 '사랑'을 유세영은 오히려 의지한다. 
하지만, 댓가는 치명적이다. 유세영은 마치 그녀의 도덕적 딜의 죄가라도 되는 양,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수술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차석훈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일말의 기회조차 놓친다. 그리고 이제, 언제 끝날 지 모를 항암 치료의 여정만 남아있다. 하지만, 유세영은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차석훈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에서 유세영의 순애보로 명명한 것은, <유혹>의 주체가 유세영이기 때문이다. 안스럽게도 차석훈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의 '사랑받아 마땅한' 그녀처럼, 그저 사랑받아 마땅한 그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삶을 위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유세영이 던진 며칠 밤의 딜을 마다지 않았던 책임감있는 가장(?)이었던 차석훈은, 아내가 홀로 떠나자 뜬금없이 유세영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홍콩을 주유하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 유세영에게 사랑을 바치는 순애보의 기사가 되었다. 그게 나홍주이든, 유세영이든, 그는 언제나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셋팅된 사랑의 로봇과도 같다. 

만약 <유혹>의 캐스팅이, 지금처럼 유세영 역에 여전한 당대의 스타 최지우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최지우가 나홍주의 역을 맡았다면, <유혹>의 스토리가 지금처럼 전개되었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떠올리면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이상하게도, <유혹>은 첫 회부터, 고고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최지우가 연기한 유세영에게 마음이 쏠리게 된다. 분명, 나홍주와 차석훈이 부부인데, 불륜인 유세영과 차석훈에게 마음이 간다. 정식 아내는 나홍주인데, 어쩐지 그녀가 미덥지 않다. 오히려 이 부부를 탐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유세영에게 마음이 자꾸 쓰인다. 이것이, <유혹>의 매력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최지우의 매력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독설을 내뿜던 송미경에게 열광했던 바로 멜로 드라마의 애청자층이, 이번에는 <유혹>의 불륜을 품은 순애보에 열광했다는 것이다. 가정 파괴를 부르는 불륜을 징벌하고자 하는 도덕적 잣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도 놓치지 않는 순애보로 포장된 유혹은 그저 또 다른 이야기였을 뿐일까? 그게 아니면, 현실에서는 가정을 공고히 하고 싶지만, 나도 유세영처럼, '돈'으로 시작해서라도, 다시 한번 누군가와 순애보를 이루고 싶다는 숨겨진 욕망의 발현이 <유혹>이라는 기괴한 판타지로 드러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남편의 신실함을 믿지 못했던 나홍주의 어리석음에 대한 우화였을까?

주 시청자층의 아이러니한 열광만큼, <유혹>은 비록 차석훈과 유세영의 앞날을 알길 없는 모호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실한 순애보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드라마의 시작을 지켜 본 사람으로 뒷맛은 개운치 않다. 과연, 비록 몸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하룻밤의 딜이, 저렇게 순애보로 기승전결이 이루어 지는 것인지, 도덕적, 논리적 딜레마에서 놓여나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서슴없이 욕망을 순애보로 마무리하는 그 얕은 환타지에 쉬이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일까? 


by meditator 2014. 9. 17. 09:45

<괜찮아 사랑이야>는 2회 전국 기준 9.1%의 시청률을 보였다. (닐슨 코리아) 그 전날 방영된 1회 9.3%에 비해 0.2%가 내려간 결과이다. 더구나 동시간대, <조선 총잡이>와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보이며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 하락한 것이라 수치와 상관없이 그 낙차가 커보인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경우, 10.6%로 10%의 장벽을 넘어서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보였지만, 동시간대 1위는 조선 총잡이에게 내주었다. 한편, 월화 드라마로 가면, 최지우가 주연인 <유혹>은 8,3%로 그 전회 9%에 비해 하락폭을 보이며, 첫 회부터 동시간대 <트라이앵글>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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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최지우가 누구인가? 2002년<겨울연가>로 '지우히메'라 불리며 한류 붐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하는 권상우 역시, 내용상 논란은 있었지만, 2013년 <야왕>을 통해 25% 내외의 시청률 고공 행진 기록을 세웠던 스타 중의 스타이다. 장나라나, 장혁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새로운 작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조차 그의 전작 <추노>를 패러디할 만큼, <추노>의 이대길을 연기한 장혁은 그 누구도 대체불가능한 스타이다. 장나라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20002년 <명랑 소녀 성공기>를 성공시킨 이래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오가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으며 스타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조인성임에랴, 2001년 <피아노>로 두각을 내기 시작하여, 2002년<별을 쏘다>,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로 정점을 찍었던 그가, 2013년 <괜찮아 사랑이야>의 감독 김규태와 작가 노희경과 함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화려하게 군 제대 이후 복귀를 성공시켰다. 그와 함께 하는 공효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가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주군의 태양(2013년)>, <최고의 사랑(2011년)> 등 늘 동시간대 1위는 물론 가장 트렌디한 화제작들이었다. 

이렇게 2000년대 초반 가장 화려한 정점을 찍던 스타들은 2014년,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야를 들고 귀환했다. 하지만, <유혹> 첫 회 시청률 7.6%, <운명처럼 널 사랑해> 첫 회 6.6%, <괜찮아 사랑이야> 첫 회 9.3%로 스타의 귀환이라기엔 조촐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엄밀하게 최지우건, 조인성이건, 장나라, 혹은 장혁이건,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값으로 드라마를 보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들 스타의 조촐한 귀환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혁 장나라
(사진; tv데일리)

최지우의 경우, 전작 <수상한 가정부>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봤지만, 일본 드라마를 복사한 듯한 <수상한 가정부>의 내용은 우리나라 실정에 어울리지 않았으며, 최지우의 연기 역시 원작<가정부 미타>의 마츠시마 나나코의 연기와 비교되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유혹>으로 돌아온 최지우는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빼어들었다. 그녀와 함께 등장한 권상우 역시 마찬가지다. <야왕>을 통해 시청률의 성취는 얻었지만, 여주인공 주대해 역의 수애에 밀려 제대로 활약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겼던 권상우는 <메디컬 탑팀>을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보지만 여의치 않았고 이제 <유혹>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복귀하였다. <유혹>은 멜로물로 최지우, 권상우에 이정진, 박하선까지 네 남녀의 얽히는 상황은 영화 <은밀한 유혹> 등을 통해 뻔하며, 전개는 예측가능하지만 막상 드라마 속 최지우와 권상우는 그런 뻔한 드라마 속에서도, 드라마를 놓지 못하게 할 만큼, 각자 본연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조기 폐경을 맞이하였다지만 자태 자체만으로도 중년의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내뿜는 최지우가 아니라면,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눈빛을 잃지않은 권상우의 순수함이 없다면, 유혹이란 드라마는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만으로는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 버거운지, 시청률은 주춤하고 있는 편이다.

<학교 2013>에서 선생님 역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장나라 역시 그녀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 로맨틱 코미리로 복귀했다. 자존감이 떨어지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김미영이란 캐릭터를 표현하는 장나라의 안쓰러운 연기와 눈빛이 아니라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은 그저 민폐녀에 불과할 뿐일 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늘 눈빛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캐릭터만 연기하던 장혁은 모처럼 멜로물로의 귀환이었다. 덕분에, 방송 초반,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추노>의 적을 바라보는 눈빛과 헷깔렸고, 이건의 호탕한 웃음은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연기 잘 하는 배우답게,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이건 캐릭터를, 가장 진지한 자세로 선보이는 장혁의 연기는, 이상한데 중독성 있는 캐릭터로 이건을 변모시킨다. 재벌남과 소심한 평범녀의 그저 그런 뻔한 동거기일 수도 있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독특한 드라마로 변신시킨 건, 두 사람의 호연에 힘입은 바 크다. 덕분에, 가장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획득하며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 

(사진; osen)

그에 반해, 단 2회에 불과하지만, 하락세를 겪고 있는 조인성, 공효진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앞날을 점치기 어렵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조인성, 공효진이 각각 분하고 있는 장재열, 지해수란 캐릭터는 이전의 조인성과 공효진이 연기했던 캐릭터에 비해 역시나 큰 변주가 없는 캐릭터들이다. 아니, 데뷔 이래, 작품의 장르가 어떠하건, 조인성과 공효진은 늘 그다지 큰 변주가 없는 연기를 해왔고, 그것이 시대적 트렌드에 맞추어 두 사람에게 스타의 자리를 넘겨 주었었다. 하지만, 이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해오던 연기를 해오고 있지만, 작품이 변수가 되고 있다. 대놓고 섹스를 논하며, 정신적 장애를 '감기'쯤으로 치부하며 다루고, 흠모했던 선배와, 첫키스를 했던 후배와 한 집에 살며, 원하지 않던 추리 소설가까지 한 집에 들이는, 미드의 소동극과도 같은 <괜찮아 사랑이야>는 시청자들의 호불호에서, '호' 편에 서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치유하겠다는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면면과 행보에서 부터 심상치않은 상황을 들이대며, 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낯설게 여기고 있기에, 그 속에서 가장 익숙한 장기를 선보이는 조인성, 공효진조차 돋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과연 이 드라마가 2014년에 어울리는 실험작으로 박수를 받을 것인지, 또 한번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지 미지수다. 

비록 동시간대 1위라는 찬란한 성취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 화려한 성취를 보인 이래, 십 여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스타로서의 이름값을 놓지 않는 이들 배우들은 여전히 드라마 속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어야 할 것같은 아련한 최지우의 눈빛,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할 것같은 장나라의 눈빛, 연기를 할때만큼은 세상 그 어느 여배우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공효진에, 그의 눈빛은 그의 어눌한 대사조차도 잊게 만들만큼 순수한 권상우에, 어색했던 웃음마저도 설득시켜버린 장혁의 연기, 그리고 여전히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적인 조인성의 웃음까지 때론 뻔하고, 그저 그렇거나, 적응하기 힘듬 드라마 조차도, 그들의 연기로 인해 참아내게 만드는 그들은 여전히 스타들이다. 하지만 박한 시청률의 세상에 스타들도 예외없이 고전중이다. 


by meditator 2014. 7. 25. 10:16

<유혹>은 드라마의 내용이 소개되는 순간부터, 1993년작, 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은밀한 유혹>이 언급될 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세월이 흘러, 데미 무어를 유혹하던 중후한 신사 로버트 레드포드는, 고혹적인 재벌녀 최지우가 되었고, 젊은 데미 무어는, 몸짱 권상우가 되었을 뿐이다. 아니 십여 년 된 옛 영화를 들먹일 것도 없다. 피고지는 각 방송사의 아침 드라마 중, 재벌남과 젊은 주부, 혹은 부유한 여자와 젊은 남편, 그리고 그의 아내 식의 고리타분한 애증의 관계들이 새록새록 재 부팅되는 경우는 빈번하다. 

하지만, 그런 소재의 뻔함에도 불구하고, <유혹>은 그런 뻔함을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드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쩌면, '멜로'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1부 1처제의 부조리함을 논하는 드라마적 장치 본연의 호기심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견고하리라 믿었던 사랑이 파열음을 내는 그 지점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시청자들이, 그리고 드라마의 주인공 차석훈(권상우 분)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3일의 시간에 10억의 대가를 제시했던 유세영(최지우 분)의 유혹은 시시했다. 그녀는 아내를 버리고 온 차석훈에게 그저 자신이 홍콩에서 하고자 했던 컨설팅 관련 업무의 보조적 역할만을 맡겼을 뿐이다. 

유세영은 차석훈에게 4일간의 시간을 사는 대신 10억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SBS 방송화면


하지만, 유세영이 차석훈에게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차석훈과 나홍주(박하선 분)을 바라보았던 그 질시의 눈빛은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을 넘보지 않는 유세영에게 안심하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 차석훈에게 나홍주는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절규하며 분노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유혹>은 그저 삿된 남녀간의 유혹을 넘어서, 부부간의 사랑, 혹은 신뢰에 대한 문제 제기로 드라마의 시야를 넓힌다. 
차석훈은 유세영과의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미 차석훈은, 돈 10억에 자신을 위해 3일을 쓰라는 유세영의 요구에, 아내를 공항에 홀로 남겨 둔채 가버린 그 순간, 아내를 배신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혹>에서 차석훈의 선택은, 얼마전 화제를 끌었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그 문제 의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가 나은진(한혜진 분)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미경(김지수 분)은 복수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정작, 호텔까지 갔던 두 사람 사이에, 전혀 육체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미경은 분노한다. 그 분노의 핵심은 '사랑'이다. 그저 스쳐지나갈 욕망의 '바람'도 견딜 수 없지만, 심지어, 둘이 진짜 사랑을 했다니! 라는 좌절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송미경의 좌절감은, 공항에서 차석훈을 기다리던 나홍주의 좌절감이다. 

차석훈의 상황은 절박하다.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의 집은 자신으로 인해 담보로 잡혀 있으며, 돈을 구하지 못한 자신은 이대로 귀국하면 고스란히 장인의 집도 날리고, 감옥 행이다. 1회의 <유혹>은 바로 그런 차석훈의 절박함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2회, 그런 차석훈에게 유세영은 단 3일에 10억이라는 유혹을 한다. 

그 누구보다 남편 차석훈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건 아내 나홍주이다. 심지어, 그녀는 아버지의 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려고 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10억을 얻기 위해 유세영에게 달려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차석훈은 유세영과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고 했지만, 이미 유세영에게 달려가던 차석훈은, 그가, 그리고 시청자들이 예상했듯이, 보조적 업무 이상의 일을 기대했었고, 아내 나홍주는 누구보다 그 '딜'의 실체를 안다. 즉, 자신들의 결혼을 담보로 한 '딜'에서 그것을 알면서도 달려간 남편 차석훈, 그의 절박함을 알면서도, 아내 나홍주는 그를 용납할 수 없다. 결국 그가 던지고 달려간 것은, 자신들의 결혼 서약이기 때문에.

개인 파산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몸을 바쳐서라도 돈을 주겠다는 '딜'과, 그런 딜의 목적이 결국은, 한 개인의 소박한 행복이라는 결론은,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유혹>이라는 드라마에 현실성과, 그에 바탕을 둔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끔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다. 애틋하게 포옹하는 차석훈 부부를 바라보던 유세영의 미묘한 눈빛처럼, <유혹>이 뻔한 드라마를 넘어, 심리극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만드는 지점이다. 

물론, 일관되게 결혼의 도덕성이라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달리, 1, 2회만에, 유혹과 파멸의 징조를 보이는 <유혹>은 포진된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의 면면에서 보여지듯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믿음에 천착하기 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어, '멜로' 본연의,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로 변주될 가능성이 높다. 3일 째 아침, 이제는 돌아가도 좋다는 유세영의 결정에, 뜬금없이, 첨밀밀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차석훈의 행보가 그걸 증명한다. 이미 깨져버린 그릇을 다시 붙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깨져버린 그릇을 붙일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로 <유혹>은 판을 달리할 듯하다.  부디 아침 드라마식의 스테레오 타입의 결론이 아닌, 시청자들이 '나라면?'하면서 멜로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고품격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7. 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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