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종영한 <킬미힐미>에서 지성은 전무후무한 7개의 인격의 변주를 연기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서브남은 주인격인 차도현(지성 분)에게 대립하는 또 다른 인격인 신세기였으며, 배우 지성은 사투리를 팍팍 써대는 뱃사람에서 부터 '오빠'를 남발하는 여고생, 심지어 개까지 종횡무진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킬미힐미>는 전체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다루는 미덕을 지녔지만상대적으로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생각보다 단선적이어서 아쉬웠지만,  배우 지성의 폭발적인 연기의 변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선택한 시청자들은 흡족했다. 이제 7개의 인격의 변주는 지나가고, 그 아쉬움을 또 다른 '롤로코스터'같은 연기들이 달랜다. 비록 여러 개의 인격들으리 변주는 아니지만, 그 못지 않은 극과 극을 달리는 연기의 향연들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는다. 




1. 순수와 위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위 1% 중의 1%-유준상
sbs의 월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상류층의 위선과, 거기에 맞물려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연작처럼 풀어왔던 정성주 작가의 치밀한 대본과, 그 대본을 100% 이상 구현해 내는 안판석 pd의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거기에 '화룡점정'처럼 찍힌 유준상의 연기가 대한민국 상류층의 위선을 보다 실감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tv에서는 생소하지만 이미 2014년 영화 <표적>을 통해 '순수한' 악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유준상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순진무구한' 상류층의 위악 자체가 된다. 
이미 극중 한정호로 분한 유준상과 그의 아내인 최연희로 분한 유호정의 광고가 tv를 통해 등장하듯이, 극 중 이들 부부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생 상위!%의 물에서 살아온 그들은 그들과 다른 봄이네 가족들을 만나며 당황하고, 그럼에도 상류층의 품위를 지켜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속물적인 근성에서비롯된 '인간적(?)'인 반응들은 또 다른 인간적인(?) 시청자들에게 친밀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유준상의 연기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손주를 보고 싶어 깨금발을 하며 돌아다니고, 머리가 빠질까 노심초사 하는 그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가장 무자비한 '갑'질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획하고 지시한다. 그런 그의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당연시 하는 '갑질'을 통해 시청자들은 우리 사회 갑의 실체가 그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체득된 계급적 본질이며, 그것은 그저 일개인의 반성이나 좋고 나쁨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바로 그런 깨달음에 가장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순수하다 못해 순진한 얼굴을 하고, 거침없이 '을'들을 요리하는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 배우 유준상의 자연서런 연기에서 비롯된다. 



2. 상실감과 개그를 오가는 무감각한 형사- 박유천
동생을 잃고 감각을 상실한 남자와, 역시나 부모를 잃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고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얻은 초감각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배우 박유천이 맡은 역할은 무감각한 순경이다. 
동생이 죽은 후 사건의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력함에 실망한 그는 스스로 경찰이 되어 동생 사건의 범인을 찾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냄새를 보는 소녀', 그런데 개그우먼 지망생인 그녀가 내걸은 '딜'의 조건은, '내가 너의 수사를 도울테니, 너는 나를 위해 만담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개그와 수사의 만남을 설득시키는 것은 배우 박유천의 연기이다. 지난 해 해무로 둘러싸인 낡은 어선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져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막내 선원은 그가 연기한 최무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분명 같은 배우 박유천인데, 그가 연기한 인물들 속 박유천은 다 다른 인물이 되어 보는 사람을 흔든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팔이 빠져도 아프지 않은 무감각한 남자, 하지만 동생을 잃은 허전함을 몇 그릇의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을 쏟아부어도 달래지지 않는 남자의 상실감을 '최은설'이라는 동생의 이름을 듣는 순간 차오르는 그의 눈빛만으로 설득해 낸다. 하지만, 이 봄에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해 배우 박유천은 그저 애틋한 상처입은 남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주는 오초림을 위해 그는 망가지를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린라이트'의 만담을 오초림보다 더 '바보'스럽게 하고, 좀 더 확실한 눈도장을 위해, 대머리 가발을 쓰고 기괴한 표정과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췌~'를 연발한다. 하지만 보는 사람를 폭소케 만드는 개그 연기의 장면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최무각의 무감각이야말로 진짜 이 만담 장면의 절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감각하던 그가,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오초림을 만나, 그녀를 얼르고 달래면서, 때론 자신도 모르게 삐지고, 미소를 지을락말락 하는 순간,  로맨틱코미디로 <냄새를 보는 소녀>는 완성된다. 




3, 중 2병과 순정남을 오가는 기업 사냥꾼- 정경호
타인에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심장 이식 러브 스토리는 새삼 스러울 것이 없는 진부한 소재이다. 더욱이 2014년 10월 <내 생애 봄 날>이 종영한 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소재를 재탕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 부담이 크다. 하지만, 그런 진부함과 위험부담을 <순정에 반하다>는 배우들의 연기로 설득한다. 그리고 그 설득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다른 이의 심장을 받아 혼란에 빠지는 강정호 역, 정경호의 연기다. 

잔뜩 웅크린 채 발톱만을 내세운 채 으르렁거리는 상처입은 짐승처럼 지난 주 첫 선을 보인 <순정에 반하다>의 강정호를 연기하는 정경호에게 공감을 느낄 여지는 부족했다. 부모님을 단번에 잃고, 가업마저 잃은 채 비열한 기업 사냥꾼으로 성장한 그의 비사는 비극적이지만, 그 비극을 '백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캐릭터로 변모한 그에게서 '연민'으로 전화시키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일말의 정조차 느껴지지 않던 강정호란 캐릭터가, 절명의 순간 순정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마동욱(진구 분)의 심장을 받고 나서 달라졌다. 

분명 하는 행동은 여전히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인데, 지난 주 비열하던 그 모습은 어느 덧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질주하는 '중2병' 같아진다.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순정에 자꾸 반하는' 순정남의 감정에 얹혀 진다. 그녀를 보면 가슴이 뛰고, 자신의 차 문에 다친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설득해 내는 건 배우 정경호의 연기다. 
1,2회차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도 숙원이었던 헤르미아 인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비극적 인물 강정호와, 이제 새로운 심장을 받은 강정호가 하는 행동은 다르지 않은데, 미묘하게 빚어지는 온도차를 배우 정경호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거기에, 순간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심장이 사랑했던 순정에 대해 반응하는 그 불가항력적 상황마저도 개연성있게 그려낸다. 단 한 회만에, 심장을 받고 달라진 그 모습을, 비극에서, 중2병의 증상으로 완화시켜버리는 연기 톤과, 자신도 모르는 순정에 대한 쏠림에 당혹스러워하는 감정은, 극단이지만 묘하게 정경호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 뻔한 심장 이식 스토리가 새로운 버전의 사랑 이야기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은, 강정호란 독특한 캐릭터부터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의 박유천, 그리고 <순정에 반하다>의 정경호 모두, 객관적으로는 화합할 수 없는 양 극단의 캐릭터를 스스로의 연기로 조화하고 설득해 낸다. 또한 그 극단의 캐릭터를 화합하는 물리적 결합을 넘어, 그 조화를 통해 자신이 구현하는 인물의 캐릭터를 성숙하게 한다. 그들 덕분에, 시청자들은 팔딱거리는 한 인물에 공감하고, 감동하고, 작가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대본에 씌여진 대사를 읊조리는 이상의 창조적 행위가 연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준상, 박유천, 정경호, 이 세 사람의 연기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by meditator 2015. 4. 12. 12:57

요즘 sbs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세상에서 월화수목금토일, 아침, 저녁, 밤 10시대 미니 시리즈까지 단 한 편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이 없으니까. 새로운 해석이라며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고 야심차게 시도했던 장옥정은 본래의 악녀 장옥정으로 리턴하는 강수를 뒀지만 집나간 청률이는 좀 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 <옥탑방왕세자>, <더 킹 투 하트>, <적도의 남자>가 격돌한 수목드라마 대전에서 결국 <옥탑방 왕세자>를 승리로 이끌었던 신윤섭 피디가 정지우 작가를 만나 따스한 가족애를 내걸며 일일 드라마로 돌아왔지만 막장의 대가 임성한 작가와 맞물리면서 진가를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리한 설정에, 퓨전이라고 용서하기에도 무리한 역사 해석, 그리고 연기 논란까지 잇달아 문제가 되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제외하고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들이 꼭 문제가 있어서 시청률이 나쁜 건 아니라는 거다. mbc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스토리는 개그콘서트의 패러디 대상이 될만큼 '막장'의 본류라는 건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드라마가 항상 주말 1위를 차지하였던 kbs주말 드라마를 제끼고 1위까지 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털 먼지가 있든 없든 애꿎은 상대편 드라마들만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청률은 하늘의 계시'라, 지금 단지 sbs드라마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단지 시청률이 낮다고 폄하되는 몇몇 작품들에서 유독 안쓰러운 배우들이 있다. 유준상과 신하균이다.

 

 

 

 

유준상과 신하균은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두 사람 모두 작년에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브레인>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두 사람 모두 sbs드라마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에 출연하는 중이고,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 모두, 5~6%의 치욕적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시청률만 낮은 게 아니다. 한때는 그가 표현해낸 캐릭터가 하도 사랑스러워 '국민 남편'이었고, 얼마나 연기를 잘했으면 '하균신'이란 별칭을 얻었던 이 두 사람이 단지 몇 개월만에 다른 드라마에서 연기력 논란 혹은 과도한 설정의 불명예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전작의 그림자 따위는 단호하게 지워버리고 전혀 다른 캐릭터로 돌아온 두 사람의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부적응이 클 것이다.

<출생의 비밀>에서 유준상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잘 배운 미국 교포 출신의 엘리트 의사는 싹 지워버리고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말끝마다 '이 잡녀르~~"를 달고 사는 단순무식한 애기 아빠로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 차갑기가 동짓날 저리가지만 그 속에서 연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던 브레인의 이강훈 쌤은 가운데 가리마의 대뜸 첫회 부터 비호감의 말들만 골라하는 싸가지 여당 국회 의원으로 등장해 그의 호청자들을 식겁하게 만들었다.

연극과 영화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두 사람은 이전 캐릭터의 영광에 기대는 것 혹은 이미지메이킹 따위는 개나 주어버리고, 새로운 드라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불성설 연기력 논란에 비호감 딱지 뿐이다. 연기를 잘 했을 뿐인데 새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의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앉게 된 처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제 아무리 전작 드라마가 40%가 넘는다 해도 전작의 후광 따위는 없는,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시간에도 수십번씩 채널을 돌리는게 여사된 세상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이 제 아무리 전작에서 좋았다 하더라도 비호감 캐릭터로 돌아온 두 배우들이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배우는 톡톡히 배워갈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이 현재 출연하고 있는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게 낮은 시청률로 폄하할 만큼 형편없는 드라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김규완 작가가 모처럼 집필한 <출생의 비밀>은 제목에서 보여지는 상투적 '출비' 스토리가 아니라, 김규완 작가가 언제나 그래왔듯 가족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인 것이다.

또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이미 탄탄한 원작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품으로, < 보스를 지켜라>의 권기영 작가와 손정현 피디가 시청자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작품의 질에 있어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담 초반에 지나치게 과한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빼앗긴 배우들의 패착에 모든 것을 돌려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지긋이 비호감 캐릭터가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이 시대 시청자들에게, 개콘 패러디가 딱 맞듯이 극적이지 않으면 참고 보아지지 않는 막장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기호의 탓이 더 클 것이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드라마를 지켜내고,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 낮은 시청률이더라도 좋은 드라마는 좋게 평가받을수 있는 여유있는 환경을 덧없이 바래보기도 하고.

by meditator 2013. 5. 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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