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 예전 원시인이던 시절부터 자신들을 괴롭히던 막강했던 '자연'에 '신'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거기에 걸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그 시절부터, '인간사'와 '이야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제 하물며 젊은이들의 '광고'에서 조차 배우들이 더빙을 하여, 게임 캐릭터에 '혼'을 불어넣어 유혹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 곧 서사는 인간사의 중심에서 그 압도적인 영향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문제다. 샘이 마르지 않도록 인간사의 삶에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흘러넘치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전설'이 '신화'가 되고, 다시 '성경'이 되던 이야기가, 어느 때인가부터 구체적인 이야기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이야기꾼'들 역시 장황한 서사시인이었다가, '소설가'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인간사'의 무대에 오르내린다.

 

 


 


한때 TV와 영화의 젖줄이었던 '문학'

tv가 안방을 차지하고, 보통 사람들의 가장 손쉬운 문화적 선택이 '영화'가 된 세상, 한때는 그 2D의 세상을 주름잡은 것은 '문학'이었다. 우리 영화사의 시조라 할 나운규 선생은 스스로 <아리랑>의 극본을 쓰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당시 문학 작품이었던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를 작품화 한 것처럼, 그때 이래로 문학은 2D콘텐츠의 주요한 젖줄기가 되었다. TV문화의 황금시대라 일컬어지는 <MBC 베스트극장>, KBS1의 <TV문학관>을 가능케 했던 것은 바로 주옥같은 현대사의 장, 단편들이다. 하지만, 노벨상을 욕심낼 정도였던 우리 문학이 이젠 서로 '베끼기'의 징죄와 고해의 지경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를 동안, 결국 그것을 젖줄로 삼았던, TV의 콘텐츠들도 함께 무기력해만 갔다.

 

그렇게 순수문학이 침체기를 걸으며 더 이상 풍성한 2D의 자원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동안 그 자리를 대신해 왔던 것은 로맨스 소설, 소위 인소라 불리우는 인터넷 소설들이다. 귀여니의 소설들은 강동원을 미소년의 대명사로 만들며 2004년 <늑대의 유혹>으로 영화화되었고, 역시나 같은 작가의 <그 놈은 멋있었다> 역시 당시 청춘 스타 송승헌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 그런가 하면, TV에서는 2006년 작품화된 <커피프린스 1호점>로 공유와 윤은혜를 청춘 스타로 만들었으며, 작가 정은궐의 작품 <성균과 유생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은 각각 2010년, 2012년 TV 드라마화되어 로맨스 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여전히 다양한 웹드라마로 작품화되어지고, 2016년 KBS에서 웹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을 예정한데서 보여지듯이 그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미 장르 자체가 '로맨스'라는 장르로 규정되어지듯, 대부분의 작품들이 '남녀'간의 애정 이야기에 치중된, 소위 '인소' 라는 장르로 칭해지듯, 그 공간이 현대이건, 과거이건, 예견된 해피엔딩의 애정 서사로 이어지는 장르 상의 한계는, 이 장르의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한계를 노정한다.

 

 


 


새로운 콘텐츠의 강자, 만화, 웹툰

이렇게 로맨스 소설이 장르적 제한을 가지는 동안, 2015년과 2016년의 2D콘텐츠에 새로운 젖줄로 등장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웹툰'이 대표하고 있는 '만화'이다. 감독판으로 새로이 재개봉하여서도 여전히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는 <내부자들>은 대표적인 만화가 윤태호의 작품으로,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미생>은 2014년에 가장 각광받는 TV드라마가 되었다. 또한 2015년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 된 JTBC의 송곳 역시 최규석의 만화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만화가 강풀의 작품은 2006년 <아파트>를 위시하여, 2012년 <26>년까지 거의 대부분 작품화되었다. 윤태호 작가 역시 <이끼>에 이어, <미생>, 그리고 <내부자들>까지 TV와 영화에 인기있는 작가이다. 그런가 하면 허영만 작가의 <식객>은 일찌기 '먹방'의 선두주자로 '식객'붐을 일게 만들어 TV 드라마와 영화 양자 모두의 원작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최근 이렇게 만화, 혹은 웹툽이 각광받고 있는 것은, 이 장르가 가지는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현실감있는 주제 의식에 기인한다. 2015년 SBS드라마화된 <냄새를 보는 소녀>는 사고 후 휴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런가 하면 <미생>은 88만원 세대의 공감을, <송곳>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노동투쟁이라는 현실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내부자들>이 <더 오리지날>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을 해서도 관객을 끌어모으는 이유에는, 통쾌한 <베테랑>을 앞지르는 실감나는 대한민국 생태계와 인물군에 대한 묘사때문이다. 최근 그 어떤 소설도, 이들처럼 풍부한 이야기와 실감나는 현실을 다루어 대중의 공감을 산 작품이 없단 것은 바로 우리 문화의 또 다른 현주소인 것이다.

 

1월4일 첫 선을 보인 <치즈 인더 트랩>은 이른바 '인소'성 로맨스 웹툰의 대표주자이다. 오랫동안 웹상에서 이 웹툰의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여러 청춘 배우들이 회자가 되었을 만큼 많은 웹툰 애독자들의 드라마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던 작품이다. 그런만큼 첫 방후,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두고 설왕설래가 분주했다.

 

<치즈 인더 트랩>이 첫 선을 보인 후 등장한 논란처럼, '웹툰' 혹은 만화의 작품화가 가진 가장 큰 부담은 이미 독자들의 뇌를 통해 형상화된 작품을 어느 만큼 실감나게 실효화시키느냐이다. 그래서 <미생>이나, <송곳>처럼 싱크로율로 이미 일정한 공감의 지분을 얻고 가는가 하면, <치즈 인더 트랩>처럼 그 호불호가 엇갈리며, 그것이 앞으로의 작품 전개에 부담으로 얹혀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인기있는 만화가 강풀이지만, 막상 강풀의 작품 중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그대를 사랑합니다>외에는 변변히 없는 것처럼, 만화적 구성을 화면에 옮기는 과정의 어려움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냄새를 보는 소녀>의 경우, 웹툰의 배경이 되었던 어둡고 침울한 맨홀 아래의 세계 대신, 화려한 쉐프의 레스토랑과 저택을 배경으로 삼았고, 소녀의 어두운 캐릭터를 성격을 달리하는 대신, 원작에서 비중이 적었던 남자 주인공을 강조하여 드라마적 균형점을 맞추었다. 2016년에도 여전히 그리고 계속 웹툰은 TV로, 영화로 바쁠 듯하다. 하지만, 붐을 이루었던 '인소'나 로맨스 소설이 스스로의 한계로 주저앉아버렸듯, 결국 웹툰의 성공은 얼마만큼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제대로 TV, 영화에 맞는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by meditator 2016. 1. 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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