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에 이어 '빵'이더니, 이번엔 양복이다!
바로 <월계수 양복점>의 작가 구현숙이 그려내고 있는 소재들의 이야기이다. 2013년 mbc 주말 드라마였던 <백년의 유산>은 삼대에 걸쳐 운영되는 국수집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이듬해 역시나 mbc 주말 드라마였던 <전설의 마녀>에서는 부모와 자식대가 '빵'을 매개로 어울려 졌다. 그리고 이제 자리를 바꿔, kbs2 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월계수 양복점>에서는 '비스포크', 즉 맞춤 양복을 통해 화해하고 모색하는 부자의 삶을 그린다.
구현숙 작가가 그려내는 전통
구현숙 작가의 드라마에는 늘 '장인'과 '전통'이 그 중심에 있다. 산업화가 극대화된 세상에서, 그런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기술'을 밑천으로 우직하게 '전통'을 꾸려낸 명장들이 등장한다. '국수', '빵', '양복'이라는 소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소재들은 바로 근대 문명이 우리 땅에 들어오며 받아들인 문물들이다. 즉 근대사의 증거물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산업화'라는 새로운 조류 앞에서 기계화되고, 공장 제품화 되면서, '장인'을 밀쳐버린 제품들이기도 하다. 구현숙 작가는 바로 그런 명장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놓쳐버린 지난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온 '부모' 세대의 사연과, 그 사연의 결과물로 등장한 자식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주말 드라마의 가족사의 영역를 구축해 왔다.
<월계수 양복점>은 그렇게 구현숙 작가가 기존에 그려왔던 근대적 전통으로서의 소재라는 지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되, 기존 mbc주말 드라마로써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가졌던 <백년의 유산>과 <전설의 마녀>와는 좀 다른 궤도를 보인다. 즉 전통의 유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악연'과 복수극이라는 구조를 가졌던 전작들과 달리, 최근 등장하고 있는 '슬로우 라이프'라는 새로운 조류의 삶의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이는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비스포크, 즉 맞춤 양복과 절묘하게 조응한다.
선친에 이어 월계수 양복점을 운영하는 이만술씨(신구 분)는 공장제 기성복이 대세를 이루는 세상에서 여전히 맞춤 양복을 고집한다. 당연히 그의 양복점은 운영이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양복점을 운영했던 그지만, 패션 회사 부사장이 된 아들은 가업에 뜻이 없다.
비스포크와 대를 이은 양복점
여기서 이만술씨가 고집하는 맞춤 양복을 뜻하는 말이 비스포크(bespke)이다. 비스포크는 been spoken for의 줄임말로, 이른바 '말하는 대로'라는 뜻이다. 고객의 취향에 맞춘 '나만의 양복'을 뜻하는 말로, 고객의 취향에 따른 원단과 디자인을 상담 결정하고, 신체 사이즈를 재서 가봉(몸에 맞는 지 보기 위하여 듬성듬성 대강 꿰매어 맞춘 상태)을 하여 고객의 몸에 맞는 지 확인 한 후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뜻한다. 공장제 양복, 기성복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양복은 당연히 양복점에 가서 맞추는 것이었지만, 기성복이 야곰야곰 맞춤 양복 시장을 잠식하며, 어느 덧 거리마다 한 두곳씩은 있던 양복점은 이제 구시대의 유산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더불여 '소비'적 부분에서 '명품', '한정판' 등 '하이엔드'한 물건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양복을 비롯한 '비스포크'한 물건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월계수 양복점>은 바로 양복의 변천사를 드라마적 배경으로 담는다.
그런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거기에 따라 맞춤 양복의 수요가 달라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면서, 거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담는다. 패션 회사 사위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이만술 씨의 아들 이동진(이동건 분)은 아버지의 초라한 양복점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배다른 형제와 그 어머니의 음모로 졸지에 밀려나고 급기야 사표를 쓰고 이혼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성공'을 화두로 '사랑'도 없는 결혼을 꾸려가던 그가 자신의 삶에서 튕겨져 나왔을 때, 비로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의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아버지는 이유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수석 제자였던 배삼도(차인표 분)가 다시 돌아와 아버지 대신 양복점을 사수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스러져 가는 전통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이제 그 아버지의 전통을 잇기 위해 돌아온 두 명의 남자들을 등장시킨다.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밀려나는 맞춤 양복 시장 때문에 실패하고 아내의 닭집이나 도왔던 배삼도와, 역시나 성공이라는 담론으로 자신을 밀어부쳤던 이동진, 두 사람 그들은 이만술의 가출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꿈과,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매개로 양복점을 삼는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듯 돈을 벌고, 성공을 따르던 두 남자가 삶의 속도에서 튕겨져 나와 돌아온 곳, 그 본의든, 본의 아니든 선택한 '다른 속도의 삶에는 '느리게 만들어지는 양복' 비스포크가 있다.
15회, 아버지와 똑같은 양복을 부탁했던 청년은 배삼도만 만든 가봉한 양복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버지의 단벌 양복, 자신의 퇴학을 막기 위해 선생님 앞에서 무릎 끓고 벌을 섰던 그 양복, 그래서 아들을 개과천선 시켰던 그 양복을 이제 아들은 첫 출근의 양복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진은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살피고, 그와 똑같은 원단을 구하기 위해 원단 시장을 헤매고, 그러고도 배삼도는 여전히 스승님의 양복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한숨을 쉰다. 원단을 찾고, 치수에 맞춰 가봉을 하고 완성품까지 대략 두 달여가 걸린다는 과정, 기능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아직도 멀었다는 완성품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가 써놓은 메모의 뜻을 헤아리는 아들의 모습은 흡사 '수련'의 과정과도 같다.
이렇게 드라마는 '속도전'의 시대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고집스레 전통을 고수하던 아버지, 뒤늦게 나마 그 아버지대의 전통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뒤를 따르려는 제자와 아들, 그 철 지난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최근의 비스포크 붐에 편승하여 드라마의 힘을 준다. 그리고 더불어 그 철 지난 이야기에 가능성을 연다. 전통이라지만, 새로운 전통이다. 독짓던 늙은이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자신을 불에 놓았고, 방망이를 깍던 노인은 뒤늦은 사과를 받을 사이도 없이 자리를 떴다. 그렇게 오래전 전통이 사라진 사이, 서구의 문물이 우리 땅에 와서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마저도 밀려났던 근대적 전통이 새로운 삶의 스타일에 힘을 얻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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