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널 사랑해>, <내 생애 봄날>,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미스터 백>까지 주춤거리고 있던 mbc드라마가 다시 '드라마 강국'으로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시청률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거의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고 있으며, 화제성면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조기 종영된 <개과천선> 이후, 연이어 방영되고 있는 세 드라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묘하게 닮았다.

 

'공중파 드라마의 중요 요건'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다. 공중파 드라마를 하려면, 주인공이 재벌이어야 하고, 그 재벌이 사랑하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화제리에 케이블에서 방영되고 있는 <미생>은 왜 공중파에서 방영될 수 없었는가를 두고, 원작자의 인터뷰까지 떴었다. 물론, <미생>의 경우, 애초에 재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지만, 그놈의 '사랑'이 공중파 방영의 제약 요소로 작용한 것을 보면, 저 우스개 소리가 빈 말만은 아닐 듯 싶다. 그런데, 이 농담같은 진담을 충실히 수행하는 드라마들이 있다. 바로, <운명처럼 널 사랑해>로부터 시작된 mbc수목 드라마들이 그것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남자 주인공 이건(장혁 분) 여주인공인 김미영(장나라 분)의 모친이 살고 있는 섬의 생사여탈권을 흔들 만큼의 재력을 가진 사업체의 사장이다. 그가 <내 생애 봄 날>의 남자 주인공인 강동하(감우성 분) 역시 지나치게 소탈한 외모와 달리, 한국을 대표하는 축산업체, '하누리온'의 ceo이다.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미스터 백>의 주인공 최고봉(신하균 분) 역시 대한 리조트의 회장이다.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시작하여, 고희에 이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안에 드는 부를 이뤘다.

 


                    럭셔리부터 코믹까지! 스케일도 남다른 <미스터백> 공식 포스터 공개!  이미지-1

 

하지만, 이들 재벌 남자 주인공들이 사실 무슨 일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회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에서 그들의 갖가지 사업은, 그저 그들이 재벌이라는 증명서에 불과할 뿐이요, 그들의 주요 업무는 여주인공과의 사랑이니까.

 

재벌인 그들이 여주인공과 만나기 위해서는,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각자의 아킬레스 건이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은 가문 대대로 30대를 넘지 못하고 요절하는 건강 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내 생애 봄 날>의 강동하는 일찌기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잃은 마흔 중반의 사춘기 딸을 가진 홀아비이다. <미스터 백>은 한 술 더뜬다. 이제 막 고희연을 치룬 70노인이니까. 이렇게 각자 재벌의 재력을 지녔음에도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이들이기에, 평범한 여주인공을 만나, 동등하게, 때로는 그녀들보다 비굴한 위치에서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 생애 봄날>의 여주인공 이봄이(수영 분)는 비록 아버지가 아버지가 병원장이고, 어머니가 이사장에, 본인은 영양사라는 전문직에, 상위 1%에 속하는 집안이지만, 대신, 심장 이식을 한 건강상 보통 사람들모다 못한 처지에 놓여있다. 장나라라는 동일한 배우가 열연하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과, <미스터 백>의 은하수는 공교로게도 두 사람 모두 정규직을 갈망하는 '인턴'사원이다. 이른바 대한민국의 88% 세대이다. <내 생애 봄날>이 결국, 있는 집안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예외로 치고, 나머지 두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전혀 만날 일이 없는 재벌과, 계약직 사원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재벌과 서민의 화해를 추구한다. 현실에서는 골목 상권까지 침 흘리는 재벌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지고지순한 멋진 남성일 뿐이다.

 

이들의 전작, <개과천선>이 대한민국의 로펌을 배경으로, 법정 앞에 선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해부했던 것과 달리, 그 이후 방영된 이들 드라마들은 2014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재벌과 인턴 사원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지만, 사실, 이들 드라마 그 어디에도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은 없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2008년 대만에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배경은 2014년 대한민국이고, 극 중에서 섬의 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을 벌이고, 여주인공은 직업을 얻기 위해 고심하는 인턴사원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그것은 그리 큰 장애 요인이 아니다. 물론, 남주인공이 섬 개발을 둘러싸고 반대 투쟁을 벌이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섬으로 가지만, 그것은 그저 두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여주인공의 인턴직도 마찬가지다. 해프닝과 같은 하룻밤으로 임신을 하게된 여주인공은, 2014년 트렌드와 어울리지 않게 남자의 집안으로 들어가 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이동윤 피디는, 전작 <여왕의 교실>을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자 한 바 있다. 살벌한 경쟁만이 득세하던 교실을 가감없이 그려내던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대만의 인기 드라마 리메이크작이다.

 

 


                    <운널사> 장혁-장나라, 감동의 종영소감…"행복한 순간들, 또 올 수 있을까 생각" 이미지-1

 

 

<내 생애 봄날>의 경우, 이미 2003년에 방영된 손예진 주연의 <여름향기>에서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가 방영된 바 있다.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심장이 떨리기 시작한 남자, 그리고 역시나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십 여년 전에 했던 이야기의 방식이다. 2012년 성폭행 사건을 다룬 사회적 멜로를 다루었던 이재동 감독은 그로 부터 2년이 흐른 2014년, 사회적 의식이 탈색된 순순한 사랑 이야기 <내 생애 봄날>을 가지고 돌아왔다.

 

<미스터 백>에서 나이든 주인공이 젊어지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된 서사의 방식 중 하나이다. 지난 해 영화 <수상한 그녀>가 할머니의 회춘을 다루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미스터 백>의 최고봉 할아버지는 운석 조각의 도움을 받아 젊음을 얻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그저, 드라마일 뿐인 이야기들에 대해, 굳이 왜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달간, 연달아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 드라마의 재벌들의 사랑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로코이든, 가슴을 저리게 하는 멜로이든, 코믹이든 장르적 장치와는 별개로, 한번쯤은, 왜 지금 여기서, 그런 이야기들이 되풀이 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굳이, <개과천선>과 같은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진 드라마를 종영시키고, 재벌과 서민들의 사랑, 혹은, 그들만의 리그같은 있는 집 사람들끼리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가?라는 질문말이다.

 

그저,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테니까? 시청률이 잘 나올 거 같아서?

이런 노림수가 들어 맞았는지, <운명처럼 널 사랑해>, <내 생애 봄날>, <미스터 백>은 시청률 면에서 동시간대 1위를 얻기도 했고, 주인공으로 열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화제성면에서 사람들의 대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돈많은 재벌들의 사랑 이야기,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아가씨가 당당하게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하지만, 10년 전에 해도, 지금 해도 별 다르지 않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며 관심을 끌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을 보며 울고 웃다 슬그머니 허전해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코 이들 드라마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미생> 등이 주는 찐한 현실에의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없어서는 아닐까?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하는 '공중파'라는 공중의 이기가, 가장 현실과 괴리된 '환타지'만을 양산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이런 '환타지'성 사랑 이야기들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mbc 교양국의 해체의 또 다른 이면은 아닐까 라는 음모론은 그저 과대망상인 걸까?

 

by meditator 2014. 11. 7. 11:02

8월 18일 kbs2의 월화 드라마가 새로 시작되었다. <연애의 발견>

제목에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헤어진 연인과, 지금 한참 만난고 있는 연인 사이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샅샅이 검토해보는, 진짜 말 그대로 '연애'를 조사하고 발견하는 드라마이다. 덕분에, 이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는, 연애를 '톺아보는' 이 드라마의 어느 지점에선가 무릎을 치게 된다. 맞아, 내 연애도 그랬어, 맞아, 저런 감정이었어! 라며, 그런데, 마치 납량 특집극에서 나온 귀신처럼 물어 보고 싶다. 정말, 저 연애가 니 연애처럼 보이니? 라고. 

이 드라마에서 화근이 되는 핵심 인물은 한여름(정유미 분)이라는 여주인공이다. 현재 성형외과 의사인 남하진(성준 분)을 사귀고 있는 그녀는 남친이 선을 본다는 말을 듣고 다짜고짜 그 자리에 찾아갔다가, 오래 전 헤어진 전 남친 강태하(에릭 분)를 만나게 된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그녀,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전 남친은 그녀에게 미련이 남은 듯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다시 잘해 보면 안되겠냐고 말한다. 우연히 술을 마시고 전 남친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그녀, 이 피치못할 해프닝으로 지금 사귀고 있는 남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졸지에, 이중 생활을 하는 어장관리녀가 되어가는데........


한때 사귀었지만 이제는 보는 것도 싫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화'를 낸다. 반면, 그녀가 그토록 매달렸음에도 잔인하게 끊어버렸던 '그'는 사업적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그녀에게 다시 접근하고자 한다.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두 사람이 지내 온 연애의 역사는, 그 장마다, 서로가 사랑했지만, 얼마나 달랐는가, 그래서 서로가 교감하기보다, 사랑하기에 외로웠는가를, 그리고 지금도 상반된 태도를 보이지만, 그들의 연애가 진짜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에 연애 한번 정도라도 해본 사람이면, 그들의 궁상스런 혹은, 달콤했던 연애사의 어느 지점에선가 자신의 연애를 비춰 볼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착각하지 마시라. 돈이 없어 결혼하기 싫은 척 한다는 찌질한 여주인공이 나오는 이 평범한 연애담이 정말 내 얘기 같다고. 등록금 융자금 고지서가 메시지로 날라오고, 꼬박꼬박 방세를 받는 엄마의 독촉 메시지도 거기에 얹어지고, 친구와 함께 연 공방의 밀린 웰세가 독촉되어 마치 평범한 여느 사람같은 그녀는, 사실 친구와 함께, 카페 못지 않은 풍광을 가진 멋진 공방의 주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못지 않게 폼나는 이층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는 싱글라이프를 즐긴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은 또 어떻고? 그녀의 현재 애인은 우연히 소개팅 자리에서 만나 첫 만남에서 키스를 나눈 로맨틱한 남자라는 설정을 가진 성형외과의사이고, 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전 애인, 하지만 '그 남자랑 헤어지고 나에게 올래?'하는 그 남자는 건설사 대표이다. 심지어 이 건설사 대표는 돈 문제로 고민(?)하는 그녀에게 자기 회사에서 건설 중인 건물의 와인바 인테리어를 맞기며 접근해 온다. 현실에서 한 사람도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스펙의 남자가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그런데 제 아무리 강남 한 복판에 가면 한 건물에 수두룩 성형외과라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주인공 중 두 명이나 '성형외과' 의사인 건, 우연치고는 좀 노골적인 우연같지 않나? 아니, 성형외과 의사만이 아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연애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직업들을 통계 내어 보자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장혁 분), <마이 시크릿 호텔>의 조성겸(남궁 민 분), <연애의 발견>의 강태하가 다 ceo들이다. 집안 사업을 물려 받았건, 능력으로 거머쥐었건 그들은 한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능력자들이며, 현재는 그 능력을 회사 사업보다는 '연애'에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사업마저도 '연애'를 위해 활용하면서. ceo만 있는게 아니다. <연애의 발견>의 또 다른 남자 주인공도, <연애 말고 결혼>의 주인공도 하필이면 의사 중에 돈을 제일 잘 번다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이분들 역시 드라마 상에서 본업보다, '연애'에 치중하고 계신다. 심지어 <연애 말고 결혼>의 공기태(연우진 분)는 연애를 하느라 자신의 본업인 성형외과도 날려먹을 판이다. 아니, 이들 못지 않게 멋들어져 보이는 직업 건축가도 있고(<마이 시크릿 호텔>의 구해영(진이한 분)), 디자이너도 있다(<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다니엘(최진혁 분)). 찌질한 남주인공이라면, <잉여공주>의 백수 이현명(온주완 분) 정도이다. 마치 훈남 남자 연예인을 총망라한 듯한 이 멋지 배우들이, 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스펙 중 되기도 힘들고, 되기만 하면 돈을 마구 번다는, 직종들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노골적인 우연이 아닌가. 

그리고, 법률 사무소 임시직이거나, 등록금 융자 빛에 시달리는 여주인공, 혹은 심지어 결혼 경력이 있는 여자들에게 목을 맨다. 그리고 그들과 당당하게 밀땅을 하며, 나의 사랑을 찾아가는게, 요즘 '범람하고 있는' 연애 드라마의 '주제'들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마치 드라마계는 상반기와 중반기가 같은 나라가 맞는가 싶게 달라도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중파에서는 <개과천선>의 조기 종영을 끝으로, 그리고 케이블에서는 <갑동이>의 종영과 함께, 그 어느 곳에서도 진지한 사회적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사라졌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동시에 입을 모아, 연애를 하자, 연애가 중요해,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sbs의 월화 드라마 <유혹>, 수목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kbs2의 월화 드라마<연애의 발견>, mbc의 수목 드라마<운명처럼 널 사랑해>, 그리고 tvn의 <마이 시크릿 호텔>에, <연애 말고 결혼>, <잉여 공주>까지, 죽도록 연애만 한다. 솔직히 <야경꾼 일지>도 귀신잡는 척하면서 연애하는 드라마 아닌가. 
<쓰리데이즈>가 가졌던 국가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 의식이나, <빅맨>,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가 가졌던 날카로운 사회 해부와, 비판적 의식은, 마치 일장춘몽인양 드라마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 시시콜콜 연애사를 해부하며, 연애를 할 때라고, 너의 연애를 되돌아 보고, 드라마 속 연애를 검증하며, 남녀 관계에 집중하라고 설득한다. 세월호로 인해 방송이 정지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 이렇게 흔적도 없이, 우리 사회를 진지하게 논하는 드라마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건지, 어떻게 한결같이, '연애'가 지상 최대의 과제인 양 그럴 수 있을까?

그것도 사실은 현실에서는 길에서 조차 마주치기 힘들 것같은 상위 1%의 남자들이, 평범한 여자들에게 목을 매며, 너도, 나도 사랑한다고 달겨드는 그런 한결 같은 내용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마취시키고자 하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연애 드라마' 음모론이 나올 만도 하지 않은가?


by meditator 2014. 8. 20. 12:10

그녀들은 그저 평범한 여자들이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장나라 분)과, <연애 말고 결혼>의 주장미 말이다.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법한 그런 여자들 말이다. 어디 내놓을 것없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손벌리고 살 정도는 아닌 멸치 쌈밥집에, 치킨집을 하는 부모에, 내로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밥벌이 정도는 할 줄 아는, 로펌 계약직 직원에, 백화점 판매원의 직업을 가진 그녀들이다. 거기에 우리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경험 한 가지씩은 장착하고 있다. 마음이 약해서 자신이 부탁을 거절한 그 누군가의 낙담을 견뎌내지 못하는 김미영은 거절불능 증후군을 가졌고, <마녀 사냥>에 나올 법한 연애사를 겪은 주장미는 그 덕분에 즉결 재판 처분까지 받는다. 사회에서 대인 관계에 취약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평번한 생각들이 그녀들을 곤란한 처지에 이르게 만드는 그 묘한 기시감도,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의 트라우마에 닿아있다. 

(사진; OSEN)

그렇게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그녀들에게  뜻밖의 사건들이 닥쳐온다. 
운좋게 뽑힌 마카오 행에서 그녀와 함께 동행했던 로펌 변호사가 그녀를 이용했던 것과 달리, 우연히 아니, 불행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된 해프닝을 통해 재벌가의 이건(장혁 분)을 만나, 그와의 결혼 소동에 꼬이게 된 것이다. 
주장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결혼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훈동 때문에 스토커로 몰렸지만, 그 과정에서 훈동의 친구였던 역시나 교수집 자제에, 현재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공기태(연우진)을 만나 결혼 소동을 벌이게 된다. 

공교롭게도, <연애 말고 결혼>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두 여주인공은, 가장 평범한 여성들이지만, 드라마틱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주장미가 자신의 부모님이 잠시 꿈이라도 꾸실 수 있는게 어디냐며 자위하듯이 평소라면 어울릴 수 없는 상류층 남자와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연애 말고 결혼>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새로운 해프닝과, 그 해프닝을 그려내는 실험적 양식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통한 계층 이전이라는,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전형적 구조에 맞닿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덕분에, 결국은 주장미와 공기태의, 그리고 김미영과 이건의 사랑 찾기로 결론이 나겠지만, 대부분의 스토리는 '결혼'을 매개로 이어진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공기태, 하지만 그가 머무는 집이 주인은 어머니이고, 집을 담보로 어머니와 공기태 사이에 결혼에 관한 밀땅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결혼을 원하는 어머니와 달리 결혼에 회의적인 공기태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주장미를 이용한다. 
이씨 문중의 9대 종손 이건 역시 처지가 당장 1년 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문중이 중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회사 대표직 조차 위태로운 상황에서, 하룻밤을 보낸 김미영의 원치않는 임신은, 그에게 닥쳐온 위기를 모면하고, 인간적 책임을 다할 묘수로서의 결혼을 부른다. 

드라마의 배경은 2014년 서울이지만, 트렌디한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갈등을 부추키는 건, 전통적인 제도 결혼이다.
그리고 이 난센스 결혼이 의미하는 바는 상징적이다. 성형외과 의사, 기업 대표라는 그럴 듯한 사회적 지위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에서 완벽하지 벗어나지 못한 채,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결혼을 이용한다. 부모들이 제시한 전통적 제도를 당당하게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그들은, 대신 결혼할 상대방 여성들에게 '협잡'을 요구한다. 물론,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원작이 2008년 대만 드라마라는 점도 있지만, 2014년에 여전히 일정한 공감을 얻고 있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또한, 집에서 쫓겨나기 싫어서 결혼할 여자가 있는 척하는 공기태의 상황은, 결국은 부모의 힘에 의존하여, 부와 지위를 거머쥔 이 시대의 능력남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부산일보)

어른들의 눈을 피해, 여주인공과 결혼 해프닝을 벌이자고 하는 남자 주인공들에, 김미영과 주장미는 한결같이 순응적이다. 
물론 김미영에게는 원치않던 하룻밤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임신이란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혼율 세계 수위의 대한민국에서, 생면부지의 남자와 원나잇을 통해 임신을 했다고 주변 어른들의 강권(?)에 못이기는 척 결혼부터 하고 보는 김미영은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캐릭터을 일관성있게 구현한 것이지만, 수동적이다. 
주장미 역시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오해에서부터 시작하여, 결혼을 기대하는 어머니의 환상을 깨뜨릴 진상녀가 필요했던 공기태의 얕은 수에서 시작된 주장미-공기태의 연합 작전은, 매번 그로 인해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말로는 열번도 더 아니다 하면서도, 10회에 이르는 동안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부모님에 대항한 결혼 밀땅 작전으로 허비한다.
 
그리고, 이런 김미영의 원치않는 결혼, 하지만 그 상대가 재벌남인 상황과, 마지못한 계약 약혼, 하지만 역시나 그 상대는 성형 외과 의사인 상황이, 어쩌면, 지극히 쿨해 보이는, 하지만 알고 보면 이제는 내 부모에게서도, 계약직이거나, 판매직인 내 직업에서도 위로를 얻기 힘든, 이 시대 여성들의 흔들리는 속내를 유혹하는 달콤한 환타지가 아닐까. 즉, 2014년, 흔들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들에게 필요한 건, 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쟁취하는 진정한 사랑보다도, 어거지로 시작되었어도, 지내고 보니 내 가족이나 '도찐개찐' 그저 사람사는 곳이면 다 비슷한 혹은 그보다도 못한 견딜만한 시가에, ''재수 옴붙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살 정도 드는 괜찮은 능력남이 아닐까. 즉, 불안한 사랑보다는, 지금의 불안정한 존재를 잡아줄, '취집'말이다. 


by meditator 2014. 8. 7. 15:39

<괜찮아 사랑이야>는 2회 전국 기준 9.1%의 시청률을 보였다. (닐슨 코리아) 그 전날 방영된 1회 9.3%에 비해 0.2%가 내려간 결과이다. 더구나 동시간대, <조선 총잡이>와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보이며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 하락한 것이라 수치와 상관없이 그 낙차가 커보인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경우, 10.6%로 10%의 장벽을 넘어서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보였지만, 동시간대 1위는 조선 총잡이에게 내주었다. 한편, 월화 드라마로 가면, 최지우가 주연인 <유혹>은 8,3%로 그 전회 9%에 비해 하락폭을 보이며, 첫 회부터 동시간대 <트라이앵글>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본문이미지

(사진; 스타 투데이)


최지우가 누구인가? 2002년<겨울연가>로 '지우히메'라 불리며 한류 붐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하는 권상우 역시, 내용상 논란은 있었지만, 2013년 <야왕>을 통해 25% 내외의 시청률 고공 행진 기록을 세웠던 스타 중의 스타이다. 장나라나, 장혁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새로운 작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조차 그의 전작 <추노>를 패러디할 만큼, <추노>의 이대길을 연기한 장혁은 그 누구도 대체불가능한 스타이다. 장나라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20002년 <명랑 소녀 성공기>를 성공시킨 이래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오가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으며 스타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조인성임에랴, 2001년 <피아노>로 두각을 내기 시작하여, 2002년<별을 쏘다>,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로 정점을 찍었던 그가, 2013년 <괜찮아 사랑이야>의 감독 김규태와 작가 노희경과 함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화려하게 군 제대 이후 복귀를 성공시켰다. 그와 함께 하는 공효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가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주군의 태양(2013년)>, <최고의 사랑(2011년)> 등 늘 동시간대 1위는 물론 가장 트렌디한 화제작들이었다. 

이렇게 2000년대 초반 가장 화려한 정점을 찍던 스타들은 2014년,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야를 들고 귀환했다. 하지만, <유혹> 첫 회 시청률 7.6%, <운명처럼 널 사랑해> 첫 회 6.6%, <괜찮아 사랑이야> 첫 회 9.3%로 스타의 귀환이라기엔 조촐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엄밀하게 최지우건, 조인성이건, 장나라, 혹은 장혁이건,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값으로 드라마를 보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들 스타의 조촐한 귀환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혁 장나라
(사진; tv데일리)

최지우의 경우, 전작 <수상한 가정부>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봤지만, 일본 드라마를 복사한 듯한 <수상한 가정부>의 내용은 우리나라 실정에 어울리지 않았으며, 최지우의 연기 역시 원작<가정부 미타>의 마츠시마 나나코의 연기와 비교되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유혹>으로 돌아온 최지우는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빼어들었다. 그녀와 함께 등장한 권상우 역시 마찬가지다. <야왕>을 통해 시청률의 성취는 얻었지만, 여주인공 주대해 역의 수애에 밀려 제대로 활약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겼던 권상우는 <메디컬 탑팀>을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보지만 여의치 않았고 이제 <유혹>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복귀하였다. <유혹>은 멜로물로 최지우, 권상우에 이정진, 박하선까지 네 남녀의 얽히는 상황은 영화 <은밀한 유혹> 등을 통해 뻔하며, 전개는 예측가능하지만 막상 드라마 속 최지우와 권상우는 그런 뻔한 드라마 속에서도, 드라마를 놓지 못하게 할 만큼, 각자 본연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조기 폐경을 맞이하였다지만 자태 자체만으로도 중년의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내뿜는 최지우가 아니라면,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눈빛을 잃지않은 권상우의 순수함이 없다면, 유혹이란 드라마는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만으로는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 버거운지, 시청률은 주춤하고 있는 편이다.

<학교 2013>에서 선생님 역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장나라 역시 그녀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 로맨틱 코미리로 복귀했다. 자존감이 떨어지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김미영이란 캐릭터를 표현하는 장나라의 안쓰러운 연기와 눈빛이 아니라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은 그저 민폐녀에 불과할 뿐일 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늘 눈빛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캐릭터만 연기하던 장혁은 모처럼 멜로물로의 귀환이었다. 덕분에, 방송 초반,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추노>의 적을 바라보는 눈빛과 헷깔렸고, 이건의 호탕한 웃음은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연기 잘 하는 배우답게,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이건 캐릭터를, 가장 진지한 자세로 선보이는 장혁의 연기는, 이상한데 중독성 있는 캐릭터로 이건을 변모시킨다. 재벌남과 소심한 평범녀의 그저 그런 뻔한 동거기일 수도 있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독특한 드라마로 변신시킨 건, 두 사람의 호연에 힘입은 바 크다. 덕분에, 가장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획득하며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 

(사진; osen)

그에 반해, 단 2회에 불과하지만, 하락세를 겪고 있는 조인성, 공효진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앞날을 점치기 어렵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조인성, 공효진이 각각 분하고 있는 장재열, 지해수란 캐릭터는 이전의 조인성과 공효진이 연기했던 캐릭터에 비해 역시나 큰 변주가 없는 캐릭터들이다. 아니, 데뷔 이래, 작품의 장르가 어떠하건, 조인성과 공효진은 늘 그다지 큰 변주가 없는 연기를 해왔고, 그것이 시대적 트렌드에 맞추어 두 사람에게 스타의 자리를 넘겨 주었었다. 하지만, 이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해오던 연기를 해오고 있지만, 작품이 변수가 되고 있다. 대놓고 섹스를 논하며, 정신적 장애를 '감기'쯤으로 치부하며 다루고, 흠모했던 선배와, 첫키스를 했던 후배와 한 집에 살며, 원하지 않던 추리 소설가까지 한 집에 들이는, 미드의 소동극과도 같은 <괜찮아 사랑이야>는 시청자들의 호불호에서, '호' 편에 서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치유하겠다는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면면과 행보에서 부터 심상치않은 상황을 들이대며, 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낯설게 여기고 있기에, 그 속에서 가장 익숙한 장기를 선보이는 조인성, 공효진조차 돋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과연 이 드라마가 2014년에 어울리는 실험작으로 박수를 받을 것인지, 또 한번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지 미지수다. 

비록 동시간대 1위라는 찬란한 성취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 화려한 성취를 보인 이래, 십 여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스타로서의 이름값을 놓지 않는 이들 배우들은 여전히 드라마 속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어야 할 것같은 아련한 최지우의 눈빛,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할 것같은 장나라의 눈빛, 연기를 할때만큼은 세상 그 어느 여배우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공효진에, 그의 눈빛은 그의 어눌한 대사조차도 잊게 만들만큼 순수한 권상우에, 어색했던 웃음마저도 설득시켜버린 장혁의 연기, 그리고 여전히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적인 조인성의 웃음까지 때론 뻔하고, 그저 그렇거나, 적응하기 힘듬 드라마 조차도, 그들의 연기로 인해 참아내게 만드는 그들은 여전히 스타들이다. 하지만 박한 시청률의 세상에 스타들도 예외없이 고전중이다. 


by meditator 2014. 7. 25. 10:16

장혁과 장나라는 2002년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까칠한 재벌남 한기태와 제목처럼 내세울 것없지만 언제나 밝고 씩씩한 19 소녀 차양순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르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재벌남과 소텨처럼 밝은(?) 여자가 되어 로맨틱 코미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조우하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12년 전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는 이유만으로도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첫 회를 연 드라마에서 그 예전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스했던 한기태와, 놀이공원에서 동물 탈을 뒤집어 쓰는 일을 해도 씩씩했던 차양순 대신,<주군의 태양> 주중원과 태공실이 다시 돌아온 듯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샴푸 모델의 촬영 현장에 난입한 장인 화학의 회장 이건(장혁 분)은 트집을 잡는 모델대신 스스로 긴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물에 적셔 웃통을 제낀 채 가슴을 열어제낀채 호탕한 웃음을 웃어제끼며 자신과 자신의 기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샴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이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장혁이 재벌남이며, 그가 보인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안하무인의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혁·장나라, 첫방부터 ’12년 묵은 케미’ 폭발
(사진; 뉴스24)

다음 장면, 양 손 가들히 커피와 도넛을 들고 뛰는 김미영, 그녀는 스스로 '포스트 잇'같이 존재감없다고 평가하는 로펌의 계약직 사원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존재감은 사무실 곳곳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위해 불려지는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절을 할 줄 모르는 그녀의 성격 덕분에 그녀는 첫 장면 커피 심부름에서 부터 시작하여, 이후 장혁과 만나게 되는 그 장면의 계기가 되는 상사 딸의 사탕 심부름까지 차고도 넘친다. 

괴팍한 재벌남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여자라, 이 두 사람을 통해 시청자들은 12년전 <명랑 소녀 성공기>보다는 2013년 인기를 끌었던 홍자매의 <주군의 태양>이 자연스레 떠올려 진다. 가진 것은 많지만, 심리적 하자가 있었던 주중원처럼, 이건은 능력있는 재벌이지만, 허황한 웃음에서도 당장 느껴지듯이 결핍감이 느껴지는 캐릭터요, 김미영은 그 예전에 당차고 씩씩했던 소녀 대신, 귀신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부탁에 휘말려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가진 것 없는 하지만 마음만은 착한 여자이다. 

귀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와 태공실과 달리,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치 못하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포스트 잇같다고 폄하하는 김미영은 직장 생활을 하는 그 누군가라면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공감가는 캐릭터이다. 동시에, 어떤 드라마에선가 보았던 거 같은 익숙한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아직도 소녀같은 눈망울을 지닌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 캐릭터는, 언제나 장나라가 해왔던 연기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이기에 공감을 일으키는 묘한 연민의 대상이 되어 나타난다. 진부함과 공감의 경계, 거기에 첫 회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라는 캐릭터가 서있다. 

그에 반해, <주군의 태양> 첫 회, 늘 진지한 역할만 했던 소지섭의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재벌남의 연기로, 연기력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듯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은 그 예전 까칠하고 무심한 재벌남 대신, 굳이 <추노>의 ost를 끌어오지 않아도, 당장이라도 '언년아~'라고 외칠 것만 같은 진지한(?) 발성과, 과장된 연기로 <주군의 태양> 첫 회 오그라드는 손발을 견뎌내며 소지섭의 연기를 참아내야 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건 역의 장혁 연기가 오버 페이스인지, 아니면 이건으로서의 독특한 설정인지 판가름내기 위한 좀 더 장혁의 연기를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듯 보여진다. 
 
아니 참고 견뎌내야 할 것은 장혁의 연기만이 아니다. 젊은이들 결혼률이 나날이 감소해 가는 세상에, 전주 이씨 22대 종손에 서른 전에 요절해버린 선조들을 가진 대을 이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이건의 결혼 해프닝에, 마카오 여행권을 노려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 뻔해 보이는 변호사의 접근에도 무방비한 김미영의 '착함'에, 이 둘의 첫 만남을 위한 박진감넘치는(?) 장면을 위해 온갖 개들의 찬조출연조차 마다하지 않는 뻔한 설정과,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물에 떠내려 가는 물병을 다짜고짜 잡아 들이키는 마지막 장면의 어이없는 해프닝까지 로맨틱 코미디니까 봐줘야 하는 것들로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첫 회는 가득차 있다. 

<주군의 태양>은 어색했던 소지섭의 연기와, 귀신을 본다는 황당한 설정의 태공실이라는 캐릭터를,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수 있는 귀신들의 사연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적 공감을 길어올렸다면,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우리에게 익숙한 재벌남과 가진 것 없는 여자라는 로맨틱 익숙한 정석 외에, 어느 지점에서 시청자들의 호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2008년 대만 tv를 통해 인기를 끌었던 39부작의 드라마이다. 제 아무리 대만에서 히트를 쳤다지만, 2008년의 대만과, 2014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시간적 격차를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극복해 냈는지, 혹은 낼 수 있는지가 아마도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될 듯싶다. 다짜고짜 원나이트를 위해, 느닷없이 등장한 재벌남 이건을 노린 음모에서부터, 우연이라기에도 과한 김미영의 물병 '원샷'에 다음 회에 이어질 하룻밤까지 시청자들의 인내심 이상의 그 무엇을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불러 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12년 만에 다시 재벌남과 보통의 혹은 보통보다도 못한 소녀로 만난 장혁과 장나라의 처지는 같은 듯 다르다.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가진 것 많아서 여자를 '케어' 해줄 수 있는 남자와 가진 것 없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여자로 만났지만, 12년이 지난 재벌남은, 그때 그 시절의 부만으론 부족한 듯 한껏 과장된 제스쳐로 결핍을 뚝뚝 흘린다. 씩씩했던 그 시절의 소녀는, 여전히 씩씩하지만 세파에 시달린 듯, 자존감은 결핍되어 있다. 2002년 살기 힘들어도 자부심이 넘쳤던 젊은이들은, 12년이 흐른 후 2014년의 젊은이들처럼, 번듯한 듯 하지만, 결핍이 가득한 세대로 돌아왔다. 과연 이들의 사랑도 동시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4. 7. 3. 09:39
| 1 |